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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사태의 여파가 서울까지 일어나고 유신반대로 인한 학생들의 시위 모습.
씬 78. 소은의 학교 교정.
최루탄 공기의 기운.
여러 데모대 학생들의 모습.
흰색 블라우스와 베이지색 스커트 차림의 소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강의실로 향한다.
씬 79. 소은의 강의실.
하나둘 닫혀 지고 잠겨 지는 창문.
학생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수업 중.
교수도 힘든 몰골로 수업중이며 소은 콧물…….
눈물…….
그 와중에도 동희의 자리를 본다.
비어있다.
왜 없을까?
씬 80. 학생회실.
소은 문을 빠끔히 연다.
몇몇 학생들…….
동희는 없다.
남학생 하나…….
소은을 발견하고…….
남학생: 동희?
소은: 네? 아뇨……. 그냥.
남학생: 동희……. 데모 도중에 다쳤어……. 후문 건너편에 성심병원 있지. 그곳에 입원해있어.
소은: (억 허나) 아……. 그래요…….
멍하게 뒤도는 소은…….
서서히…….
뛴다…….
뛰고…….
뛰고…….
씬 81. 교정.
대학 본부 앞길을 뛰어가는 소은.
여기저기에서 격렬했던 시위 현장의 분위기가 느껴지고, 하얀 최루탄 연기 속을 헤쳐 나가는 소은의 모습.
고속으로 보여지는 동료들의 모습사이로 불타는 현수막 등이 보여진다.
씬 82. 병원 부근의 외곽.
소은 거친 걸음…….
씬 83. 병원.
복도와 계단을 거칠게 돌아다니는 소은.
병실 몇몇에 고개를 들이밀며 헤맨다.
그러다가…….
씬 84. 어느 병실.
몇몇 학생들이 있는 병실…….
멈춰선 걸음.
침대엔 화상을 입었는지 온몸을 붕대로 감은 환자가 누워있다.
소은 경악스러운 얼굴로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그때…….
소은 어깨를 짚는 어떤 손.
동희다.
소은 깜짝 놀라 동희를 본다.
한팔에 깁스를 한 채 얼굴에 작은 상처…….
소은, 안도와 놀람으로 멍하게 잠시…….
그러다가 엉하며 울더니 동희에게 안긴다.
동희 어정쩡한 얼굴.
씬 85. 병원 복도.
동희: 내 몰골이 그렇게 감동스러웠니?
소은: …….
울다가 멈춘 붉어진 얼굴.
동희: 후……. 운이 나쁜 건지 운동신경이 없는 건지……. 왜 나만 자빠졌나 몰라.
소은: 쿡쿡…….
엷은 웃음 줄기.
동희: (펜을 꺼내며) 싸인 해라. 부적처럼. 뼈가 빨리 붙으라고 소은, 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깁스에 새겨 놓는다.
소은: 갈게요. 온 김에 선미 병실 들렀다가.
동희: 아 참……. 여기지.
소은: 아래 층요. (가려다가) 오빠가 이러지 않아도 대통령은 이번 달에 바뀔 꺼에요.
동희: (격려의 말로 들으며) 그래, 고맙다. 꼭 그렇게 돼야지.
소은: 후, 말해 뭘 해.
씬 86. 소은과 인의 무선/교차.
소은은 오늘의 일에 기분 좋아 하고 있고 인은 외국에서 온 부모님의 편지들을 만지작거리며 정리하고 있다.
소은: 오늘 그 사람 몸에 제 이름을 새겨 넣었어요.
인: 재밌네요. 문신 같은 거요?
소은: 후후……. 비슷해요. 근데 참 이상해요. 내 이름이 그 사람 몸 어딘가에 쓰여 있단 것이……. 마치 그 사람이 제 것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게…….
인: 내 이름이 새겨진 그의 팔이 흔들린다.
나를 흔들며 그가 걸어간다.
소은: 네?
인: 저희 부모님의 로맨스하고 엇비슷하군요. 우리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고 써놓은 메모래요.
소은: 어머니께서요?
인, 편지들을 만지작거리다간.
인: 아, 참……. 그러고 보니……. 저희 부모님도 우리 학교 출신이에요. 학생 커플이었죠……. 가만 있어봐……. 영문과 77학번이니까…….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소은씨하고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겠군요.
소은: 어머……. 세상에……. 누구에요? 나 당장이라도 알 수 있어요.
인: 허자, 선자, 미자를 쓰세요. 아버진 선배였고……. 지자, 동자, 희자를 쓰시죠.
소은: 아!
인: 아세요……. 허선미란 이름…….
소은: 알아요……. 그럼요……. 같은 과인데…….
인: 그래요……. 친한가요?
소은: 아……. 아니요……. 그렇게 친하진 않아요……. 그냥……. 근데 아버님 성함이 지동희씨라구요?
인: 네……. 국문과이시구요. 아세요……. 학교에서 유명한 커플이었다고 하던데…….
소은: (숨 쉴 수가 없다.) 아……. 네……. 그럼요……. 정말……. 보기 좋은 유명한 커플이죠…….
인: 와우……. 정말 재밌네요…….
뚜뚜뚜…….
끊어진 신호음.
인: ?
소은, 무선기를 끊어 버린다.
주체할 수 없는 그녀의 감정…….
숨조차 쉬기 어렵다.
눈물도 흐르지 않고.
그저 멍하게 힘겹게…….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씬 87. 병원 복도.
밤…….
동희와 선미…….
복도에서 스치다가 만난 듯 서서 서로를 보고 있다.
선미의 다리 깁스.
동희의 팔 깁스…….
서로의 모습을 보다가.
선미: (깁스를 가리키며) 이거……. 유행인가요?
실없이 둘, 웃어 버린다.
씬 88. 인의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
열어준다.
문 앞에 현지가 있다.
샤넬라인의 고급스러운 원피스와 핸드백, 그리고 깔끔하게 올린 머리와 진한 화장, 세련되고, 섹시한 모습으로…….
인: 뭐야?
현지: 놀러 왔어. 친구네 집에 놀러 왔어……. 왜?
인: 술 마셨냐?
현지: 나쁜 놈! 그래 마셨다……. 왜? 너 그거 아니? 곁에 있어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거. 내 것이 될 수없는 사랑이 있다는 거…….
이 말을 마지막으로 쓰러지는 현지.
그녀의 핸드백에서 쏟아지는 화장품들…….
시간경과.
현지를 작은 소파에 접어 눕히고 자신은 침대에 누운 인…….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현지를 본다.
화장이 진하다.
인: 일어나……. 수건에 물…….
현지의 눈과 입술을 지운다.
그리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다.
시간은 흐르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물수건을 갈아주는 인.
그의 스케치.
씬 89. 소은의 방.
소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습…….
호흡도 거칠고 불안하다.
소은: 그래……. 아닐 꺼야……. 다 거짓말이야……. 세상에 1999년도에 사는 사람이라고? 그게 말이 되……. 사기꾼……. 내일 당장 경찰에 신고할 꺼야……. 나쁜놈 사기꾼…….
소은…….
그렇게 되뇌면서도 얼굴은 점점 울상이 되어간다.
잠시 멈춘 사이.
문을 박차고 나간다.
씬 90. 어느 거리.
멜빵바지 차림의 소은, 자전거를 타고, 소은 미친 듯이 어디론가 간다.
바람에 날리는 그녀의 긴 머리.
통행금지……. 심야…….
그녀가 가는 뒤로 호루라기 소리
방범 몇몇이 뛰어 쫓아간다.
골목골목을 도는 소은.
가로수 길을 자전거를 타고 날아가듯 달리는 소은…….
빠르게 지나가는 나무들과 밤하늘…….
씬 91. 병원 앞.
소은 어느새 그 병원까지 왔다.
그 병원을 바라본다.
불 꺼진 병실.
소은, 자전거에 기댄 체…….
멍하니 그 병원 건물을 바라본다.
저 안에 그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선미도 있다.
움직일 수가 없다.
서있는 그녀의 얼굴.
그제서야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린다.
눈물 속에 보이는 도심의 야경.
그 눈물이 흘러내리는 사이에 날이 밝아온다.
밝아 온 새벽…….
그제서야 발을 땐다.
천천히 걸어들어 간다.
차근차근 그 건물로.
입구를 지나…….
복도를…….
그리고 계단을 그리고 선미가 있는 병실에 다가간다.
눈에선 왜 이리 눈물이 날까…….
지나가던 새벽 담당 간호사들이 이상한 눈으로 스친다.
문을 연다.
선미가 자고 있다.
곱게…….
아주 편안히 선미가 잔다.
눈물 흘리는 얼굴에 미소가 돈다.
그리고 곧 몸을 틀어 동희의 병실로 간다.
문을 연다.
동희가 누워 있다.
자고 있는 동희.
그의 깁스되어 있는 팔을 본다.
자신의 이름…….
그리고 그 옆에 조그맣게 새겨진 선미의 이름…….
얼굴 아이의 울음처럼 변한다.
소리 내지 말자.
입술을 깨물며 뛰쳐나간다.
씬 92. 인의 방.
침대에 누워있는 현지.
소파에 누워있는 인.
아침 햇살…….
현지 눈을 뜬다.
그녀 눈앞에 인의 얼굴이 가득 있다.
꿈인가…….
이 얼굴은 뭐지?
인의 눈도 떠졌다.
코앞에서 서로 눈만 바라보는 둘.
현지: (눈썹으로만……. '너 나랑 했니' ?)
인: (역시 눈썹으로만 '응……. 좋았어.')
그리고 둘 웃는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씬 93. 인의 교정.
작업실로 들어가는 인.
안에서 애들의 쑥덕쑥덕하는 모습…….
한 남학생이 입담을 늘어놓고 있다.
주위의 애들 몇 명.
인 다른 쪽에서 그의 소리를 듣는다.
(소리):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 그 집……. 그쪽에선 꽤 잘나간다고 하는 집이걸랑.
(소리): 현지인거 확실해?
(소리): 아니…….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하여간……. 옷차림이며 화장이며 많이 닮았어. 마담이 그러는데……. 가게에선 제일로 잘 팔린데…….
(소리): 현지 네가 집이 좀 별론가…….
(소리): 요즘 애들이 집이 가난해서 술집 나가냐?
인…….
무리들로 다가 온다.
인: 현지, 술집 나가는 거 얘기 하냐?
남학생: 너도 알았냐?
인: 니들 몰랐냐? 현지, 술을 좋아해. 술 마시러 가는 거야.
인, 휙 나간다.
나머지 인을 이상한 듯 본다.
씬 94. 학교 복도.
인, 복도를 지난다.
기분…….
묘한 게 더럽다.
그때…….
눈에 들어온 사진.
인과 현지의 옆모습만 크게 찍은 마주보는 사진.
저번에 친구가 찍은 사진이 복도에 걸려 있고 카피가 한줄 있다.
[우린 지금……. 같은 곳을 본다.]
인……. 그 사진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씬 95. 공원.
혼자 쓸쓸히 벤치에 앉아있는 현지.
그 앞을 지나가는 행복한 가족을 바라본다.
촉촉하게 젖어있는 그녀의 두 눈.
씬 96. 거리/밤.
인, 그 사진의 액자를 들고 간다.
흔들리는 액자 속(컴퓨터 그레픽스 시퀸스)에 투영되어 보여지는 현지의 도심 속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이, 액자의 거울 속에서 몸부림친다.
씬 97. 소은과 인의 무선/교차.
말없이 둘 그저 멍하니 앉아 있다.
오랜 침묵…….
소은의 머릿속엔 동희가…….
인의 눈앞엔 사진 액자가…….
소은: 오늘……. 대단히 조용하시네요.
인: 그냥……. 그런 날이 있으니까……. 저희 부모님은 만나보셨나요?
소은: 예쁘세요……. 두 분……. 참 잘 어울리는 커플이죠.
인: (가벼운 미소) 세상엔 어울리는 것들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애인하곤 잘 지내세요?
소은: 그 사람……. 어쩌면 제 인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 세상엔 인연들만이 만나는 건 아니에요. 인연이란 말은 시작할 때 하는 말이 아니라……. 모든 게 끝날 때 하는 말이에요…….
다시 둘의 침묵…….
무선음 소리…….
노이즈…….
끊어졌다.
인: 왜 끊어졌지?
씬 98. 소은의 방.
소은 고개를 파묻고 있다.
씬 99. 소은의 교정.
소은 강의실로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찰라, 문 앞에서 누군가.
왁! 하며 놀래킨다.
소은 순간 놀란다.
장난스러운 표정의 선미다.
선미: 호호……. 언니 드디어 퇴원이다.
소은: (잠시 그녀를 보다간) 놀랐잖아. 장난치지 마.
소은 휙, 자기 자리로 가버린다.
선미: 썰렁하다.
선미 절룩거리며 소은에게 간다.
선미: 야, 윤소은, 왜 그래? 내가 아픈 몸을 이끌고 무리하게 학교에 나온 게 기분 나쁘니? 나 아무렇지도 않아.
소은: 농담할 기분 아니야.
소은, 가방을 들고 휙 가버린다.
선미: 장난이 아니다. 왜 그럴까?
한참을 고민하던 선미.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한숨 한번 쉬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씬 100. 엇갈림의 몽타주.
<연극 공연장 앞>
소은은 보이지 않고, 동희와 선미는 뻥튀기 먹는걸.
흉내 내며 좋아 하고 있고, 이때 화장실 쪽에서 나타나는 소은.
<병원>
병원 복도에서 마주치는 선미와 동희.
<병실 안>
동희의 깁스에 사인을 하는 선미.
<소은집 거실>
다이얼을 돌리는 소은.
<동희의 병실>
짐을 꾸려 퇴원을 하는 동희.
병실 앞에서 선미가 기다리고 있다.
비어있는 병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은집 거실>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은.
<시계탑 앞>
소은, 시계탑 앞을 지나간다.
들고 있던 책한 권이 우연히 떨어진다.
책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는 소은.
이때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동희.
두 사람은 서로 어긋나며 스쳐 지나간다.
서서히 암전.
씬 101. 소은의 방.
소은, 가만히 어항속의 청거북이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젖는다.
그러다가 자신의 눈에 들어온 무선기.
천천히 손을 갖다 대어본다.
씬 102. 인의 방.
들려오는 무선기…….
신호음.
아무도 없다.
씬 103. 소은 방.
"CQ CQ CQ DS1AVO .
델타 시에러 원 알파 빅토르 오스카지 인님을 찾습니다. CALL 응답 바랍니다."
소은, 컨텍되지 않는 무선기만을 멍하게 바라본다.
씬 104. 1999/고속버스 안.
인, 버스 안 창에 머릴 기대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
울리는 핸드폰.
핸드폰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수정 열쇠고리.
인: 네.……. 어, 아니야……. 어디 좀 가. 집에 못 들어가. 시골집에 가는 거야. 아니야……. 아무 일도. 뭣 좀 가지러……. 술 마셨니?
씬 105. 도심 속.
현지, 앉아서 수화기를 들고 있다.
현지: 아냐……. 안마셨어.
그녀 울었는지 화장이 눈물에 지워져 있다.
현지: 아니라니까……. 미친놈……. 내가 알코올 중독자니? 언제와? 조심히 갔다 와.
씬 106. 버스 안/황혼.
인, 전화를 끊는다.
다시 창가로.
눈을 돌리면, 해맑은 미소를 짓는 인.
강물 속에서 일렬로 서서 줄낚시를 하고 있는 수녀들과 어린아이들…….
그 모습이 정겹다.
씬 107. 인의 시골 집/황혼.
마을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고목나무가 보이고, 그 밑으로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과, 천진스럽게 뛰어 놀고 있는 꼬마들.
옆으로 넓은 평야.
사과나무들이 즐비하게 보이고,
그 뒤로 작은 전원주택.
인과 노인…….
그 집으로 향한다.
굳게 잠겨 있던 문을 열쇠로 열어 주는 노인.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인.
씬 108. 집 안.
인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묵은 먼지들이 쌓여 있는 가구들…….
책장에는 수석들로 가득하고, 거실 구석구석에 오래된 듯한 계목들도 보인다.
그 사이사이로 부모님의 사진 동희와 선미다.
인, 그 사진들과 가구들을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
결혼식 때부터 학창시절.
인의 어린 시절 사진까지…….
그러다간 소은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갑자기 발길을 멈춘다.
뚫어져라 보더니 그냥 스쳐 지난다.
씬 109. 소은의 집 앞.
소은, 나온다.
그 앞에 동희가 있다.
소은: 어떻게……. 오셨어요?
동희: 왜……. 보고 싶어서 온 건데 안 되나? 그냥……. 학교에서 널 찾았는데 갔다고 그러더군……. 무슨 일 있나 해서…….
소은: 아니요……. 아무 일도……. 몸이 좀 않좋아서…….
동희: 걸을 순 있지?
씨익 웃는 동희.
씬 110. 집근처 공원.
둘 걷는다.
동희: 팔짱 낄 줄 아니?
소은: (그저 빤히 본다.)
동희: 한번 껴 볼래?
소은 시무룩해 있다간 잠시 후…….
팔을 슬며시 다가가 그의 깁스한 팔에 자신의 팔을 끼운다.
소은 표정은 아직도 어느 정도 경직되어 있다.
동희: 너……. 애인 있니?
소은, 갑자기 피식 웃는다.
동희: 지금 어떤 사람들이 우릴 본다면 분명 우리가 애인 사이인줄 알거야?
소은 슬쩍 팔을 뺀다.
동희, 소은을 본다.
소은: 그 말을 하려고 오셨어요?
동희: 비슷해.
소은: 정말로 애인 사이는 그냥 걸어도 그렇게 보일꺼에요…….
소은 그냥 먼저 걸어간다.
동희 뒤에서 그녀를 쫓아간다.
점점…….
다가가는 동희.
소은을 휙 잡고 돌리더니 입을 맞춘다.
경악스러운 얼굴의 소은…….
생전 처음 해보는 키스…….
그녀의 몸은 힘을 잃고 모든 걸 동희에게 맡긴다…….
아…….
운명이고 뭐고…….
그래…….
이 남자를 사랑하고 싶다.
소은 감은 눈을 살살 뜬다.
동희의 얼굴…….
허나, 동희 얼굴 바로 뒤에서 선미가 고개를 내민다.
슬픈 표정의 선미.
그의 붉게 충혈 된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다.
바닥에 큰소리로 떨어지는 눈물방울.
소은 순간.
소은: 아……. 악!
씬 111. 소은의 방.
소은 눈을 뜬다.
온몸은 땀에 젖은 채…….
꿈을 꾸었다.
울고 싶은데 울음도 안 나온다.
방 불이 켜진다.
그녀의 옆에 놓인 무선기.
씬 112. 인의 방.
어둡고…….
아무도 없는 인의 방.
무선 음이 울린다.
어두운 공간에서 무선기의 신호 램프만이 깜박인다.
씬 113. 소은의 방.
무선기를 끊는다.
허전한 맘…….
그녀, 다시 일기장을 꺼낸다.
펜을 든다.
오랜만에 그 일기장을 펼쳐든다.
무어라 쓸까?
[언제 부터인가 인을 찾게 된다. 왜일까?]
씬 114. 소은의 스케치.
복도에서 선미와 마주쳐도 그냥 스쳐지나간다.
선미 마음이 무겁다.
스쳐 지나간 소은의 얼굴 역시 무겁다.
씬 115. 캠퍼스.
떨어지는 낙엽들…….
낙엽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이런 풍경 속에 쓸쓸하게 학교 담벼락에 기대고 있는 소은의 모습…….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소은의 발밑으로 나뒹구는 낙엽들…….
살며시 날리 우는 그녀의 머리칼…….
시간이 조금 흐른다.
씬 116. 인의 시골 집/서재와 같은 방.
잠에서 깨어나는 인.
눈을 비비며 책장 위에서 어젯밤 챙겨 두었던
동희의 묵은 물건들을 놓은 상자를 꺼낸다.
그 상자 안에는 옛날에 받은 편지들…….
오래된 소지품들이 있다.
하나하나 호기심에 보는 인.
거기엔 소은과 보았던 연극제목이 쓰여 있는 티켓도 있고 그리고 깁스한 팔의 모형을 발견한다.
흥미롭게 그 깁스를 본다.
아, 거기엔 허선미라는 엄마의 이름 말고 작은 글씨로 다른 이름이 씌여 있다.
'이건 부적이에요. 소은'
씬 117. 동희가 가는 병원.
동희가 깁스를 뜯어내고 있다.
동희 팔을 움직여 본다.
씨익 웃는다.
동희: (깁스를 들고) 이건 제가 가져도 됩니까? 기념이 될 거 같아서.
의사 씨익 웃는다.
씬 118. 시골 집.
인…….
매우 흥분된 얼굴로 무엇인가를 찾는다.
이곳저곳을 뒤진다.
그러다간 졸업앨범을 꺼낸다.
펴서 무엇인가를 찾는다.
아, 소은의 얼굴.
그리곤 곧장…….
다른 곳에 있는 부모님 사진과 그 곁에 있는 소은을 본다.
뭔가가 상당히 잘못 되었다.
씬 119. 소은의 집.
소은 자기 방에서 나와 학교에 가려고 허나, 거실을 통과할 무렵…….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멘트…….
박정희 서거 소식…….
아, 오늘이구나.…….
그의 모든 예견…….
역시 그렇구나.
눈물이 주루루룩…….
소파에 앉아있던 아버지…….
우는 소은을 본다.
아버지: (사연도 모르고) 괜찮아……. 소은아……. 겁내지마. 전쟁 같은 건 안나. 아무 일 없을 거야…….
아버지, 소은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씬 120. 고속버스 터미널.
인, 허둥지둥 달려온다.
10월 26일 이라고 쓰인 날짜…….
서울행 창구…….
허나…….
휴일이라 표가 모두 매진이다.
다시 뛰쳐나간다.
씬 121. 택시 안.
택시를 무작정 잡고 가고 있다.
기사, 상기된 얼굴의 인을 백미러를 통해 본다.
인…….
어디론가 전화를 하려고 하고 있다.
핸드폰에 매달려 있는 반짝이는 수정 열쇠고리 그러나 배터리가 없는지 걸리지 않는다.
기사: 뭔 급한 일이 있는가. 부제? 서울까지면 왕복 매다요금 따져서 십만 원은 내야되는디…….
인: 저기……. 아저씨 핸드폰을 좀 쓸 수 있을까요?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제게 밧데리가 다 돼서…….
기사: 거시기……. 한 통화에 천원씩 받는디……. 그라문 십만 천원이구…….
인…….
전화기를 잡아 돌린다.
씬 122. 학교.
인의 친구.
전화를 받는다.
친구: 뭐? 몇 년도? 야, 그건 거의 사설탐정 수준이네……. 아니야……. 오래 걸리지야 않는다만……. 그건 그렇고 언제까지 안 오고 있을꺼냐? 그래, 빨리와라……. 너 없으니까 현지가 수녀가 된 거 같애.
씬 123. 소은의 교정/야외.
학생들의 움직임…….
10.26의 분위기 혼잡스럽다.
동희 몇몇 학생들 얘길 나누고 있다.
그때, 저만치에서 자기를 보고 있는 소은을 동희가 본다.
동희, 그녀에게 온다.
동희: 소은아…….
소은: 안녕하셨어요.…….
동희: 저번에 네가 한 말……. 참 신기하지……. 그대로 이루어졌어……. 이제 독재는 끝날 거야…….
소은 말없이 그를 바라만 본다.
동희: 미래를 알고 한 말은 아닐 텐데……. 네가 생각하는 건 다 이루어지나 보다……. 후후후…….
소은, 이 답답한 말을 들으며 아무 말도 없이 천천히 손을 올린다.
그리고 예전에 그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손으로 동희의 얼굴에 갖다 댄다.
동희, 어이가 없지만 뭐라 얘기할 수도 어찌 움직일 수도 없다.
그리고 손으로 그의 얼굴을 느낀 소은, 엷은 미소를 짓는다.
이제 그만 다 지워야겠다.
씬 124. 소은의 교정 강의실.
수업 중이다.
소은, 멍하게 생각에 잠겨 있다.
그녀, 앞쪽 줄에는 선미가 앉아 있다.
소은의 눈에 선미의 뒷모습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조금씩 그녀의 얼굴 편해진다.
수업 중.
소은 갑자기 일어난다.
천천히 선미에게 걸어간다.
다른 학생들…….
황당하게 소은을 본다.
선미 뭔가 느끼고 고개를 돌린다.
선미 앞에 서있는 소은.
눈에선 무표정한 눈물이 흐른다.
선미 더욱더 미안해진다.
씬 125. 인의 방.
인,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무선기를 켜서 신호를 보낸다.
신호가 가는데 받지 않는다.
인: 안 돼……. 다 나 때문이야……. 안 돼…….
인, 뛰쳐나간다.
씬 126. 인의 교정.
인, 강의실 앞에서 서성인다.
그 옆으로 수위 아저씨 지나간다.
그의 묘한 얼굴이 인을 한번 훑고 간다.
수업이 끝났다.
학생들이 나온다.
현지가 나온다.
현지 인을 발견한다.
아, 날 기다리는구나.
현지: (기쁘게 달려와) 인아…….
인: (밋밋하게) 어……. 그래…….
그때, 전화한 친구가 나온다.
인: 잠깐만……. (친구에게) 알아봤니?
친구: 자식 뭐가 그렇게 급하니?
인: 알아봤냐구?
친구: 그 분……. 이제 여기에 없다.
말의 뉘앙스가 묘하다.
인의 얼굴 묘해진다.
인: 그……. 그럼……. 죽었니?
친구: 죽어? 아니, 어디 아프데? 재작년에 명성대학으로 가셨대…….
인: 뭐?
친구: 유학 갔다 와서 주욱 우리학교 영문과에 계시다가 재작년에 명성대학으로 가셨대……. 근데 그 양반 어디가 아프셨니? 사진 보니까 미인이시던데……. 결혼도 안하셨구…….
인: 아니야…….
한숨.
옆에는 현지가 와 있다.
현지 인을 아리송하게 본다.
씬 127. 인의 집.
현지: 난 반대야.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건 나쁜 짓이야……. 아니……. 말이 안 되는 짓이야. 그건 어차피 운명이야. 그 여자 운명이라구……. 그 운명 고스란히 흘러서 지금의 네가 있는 거야.
인: 나 때문에 그 사람은 다 포기한 거야. 나만 없었으면…….
현지: 너만 없었다는 말은 말이 안 돼……. 야, 넌 지금 여기 이렇게 있어. 게임 끝났어…….
인: 만약 그녀가 아버지를 선택한다면 그리고 그 사랑을 이룬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현지: 그렇게 되면……. (생각……. 어지럽다.) 그건 말이 안 돼……. 세상은 하나고 우리 사는 공간의 차원은 동일한 거야……. 다른 차원에서 똑같은 형질과 구성들이 또 다른 세상을 이루며 산다면 그건……. 그래……. 아직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실존에 관한……. 뭐랄까……. 아이, 내가 왜 나도 모르는 말을 지껄이고 있니? 아무튼 사실……. 난 아무 것도 믿지 않아. 너의 고민……. 매우 재미난 에스에프 멜로소설 쯤인데……. 그런걸. 들려주고 싶다면 이걸로 족해……. 그래 충분해, 솔직히 이 무선기……. 이것도 난 안 믿어 코드 뽑힌 무선기에서 신호가 울리고 이십년 전 여자와 통화를 한다는 거……. 너 혹시, 소은이라는 그 여자 사랑하니?
현지, 무선기의 코드를 뽑고 들고서 얘기한다.
그때, 무선기에서 울리는 신호음,
현지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채 굳는다.
현지: (의심쩍게) 뭐니? 이거 알람도 되니?
인……. 긴장된 모습으로 받는다.
현지, 계속 두 손으로 들고 있다.
인: 네…….
소은: (무선음) 소은이에요. 며칠 동안 계속 무선을 보냈는데……. 컨텍 되지 못했어요.
인: 저기…….
현지…….
인…….
서로 눈이 마주친다.
현지, 어이없는 얼굴로 인에게 고개를 젓는다.
'안 돼, 아무 얘기도 해선'
인…….
고통스럽다.
인: 여행을 좀 갔었어요. 며칠 동안……. 미안해요.
소은: (무선음) 그 사람과 헤어졌어요……. 역시 제 인연이 아니었나봐요.
인, 얼굴…….
굳는다.
현지도 얼굴이 슬퍼진다.
씬 128. 소은의 방.
소은, 무선기 앞에서 얘길 하고 있다.
오히려 편해진 모습.
허나, 언제 눈물이 주루룩 흐를지 모를 얼굴.
소은: 인이씨 말대로 인연인지 아닌지 한번 가볼까도 생각했는데…….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요……. 그래서 오늘 제 맘속에서 그 사람을 지웠어요. 그리고 편한 맘으로 오랫동안 걸었어요. 학교 구석구석……. 아주 많이 걸었어요.
씬 129. 둘의 걸음.
소은의 소리가 흐르고, 소은의 스케치와 인의 스케치가 교차로 이루어진다.
동감이다.
소은: (소리) 사람은 향기를 지니고 산대요……. 그리고 그 향기를 피우면서 살고요……. 그 향기가 다 날아가면 그때 사람은 죽는가 봐요.
소은 학교 담벼락을 걷는다.
손으로 담벼락의 나무들을 대어보고 쓸어주며 걷는다.
그 손…….
어느새, 인의 손이 되어 소은과 똑같은 감정으로 걷는다.
그런 인을 현지 뒤에서 방해하지 않고 함께 해준다.
소은: (소리)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죽어도 그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대요. 그리고 그 향기를 다른 이에게 옮기는 사람도 있구요. 그럼 그 좋은 향기가 영원히 퍼질 수 있겠죠. 나. 그 사람의 향기를 알아요……. 언제 어디서고 눈을 감으면 맡을 수 있어요.
소은 학교 시계탑을 지난다.
그 옆으로 사람들 여럿이 모여 오늘에야 완공 식을 갖고 있다.
인도 시계탑 옆을 걷는다.
1979년의 소은과 1999년의 인.
시계탑 앞에서 교차되는 둘의 모습이 투영된다.
소은: (소리) 그 사람과 나, 우린 분명, 같은 감정으로 살아요. 같은 슬픔 같은 기쁨……. 같은 향기를 지니면서……. 그렇게 살 수 있어요. 1979년의 이 기분이요……. 1999년에서도 알 수 있을 거에요.
화면 어두워진다.
다시 환해진 화면.
명성 대학이다.
씬 130. 명성 대/어느 건물 앞.
인과 현지가 있다.
인 말끔히 옷을 차려 입었다.
선보러 가는 남자처럼.
현지는 무선기를 넣은 가방을 들고 있다.
둘 약간의 갈등 혹은, 망설임으로 있다.
현지: 잘 하는 걸까? 지금 와서…….
인: 그냥…….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아니면 그냥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잘 사는지……. 그 여자, 웃는 얼굴이었으면 좋겠어. 만약……. 얼굴에 슬픔이나 우울함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내가 못 견딜 거 같아.
인, 뒤돌아 가려고 한다.
현지: 인아.
인: (다시……. 돌아) 현지야, 그래 나 소은씨 사랑한다. 순수하게 말야. 내 맘 이해할 수 있겠니?
현지, 그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준다.
인, 씨익 웃는다.
그 웃음은 진정으로 현지에게 보내는 사랑스러운 미소다.
인: 고마워.
인, 간다.
현지 가는 인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씬 131. 어느 건물.
인…….
긴장된 얼굴로 건물 복도를 지난다.
강의실 팻말을 보며 그러다가 윤소은 교수님이라고 씌여진 방에 다 달았다.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대어 본다.
문이 잠겨 있다.
인 한숨…….
다시 복도를 거닌다.
그때, 수업이 끝났는지 강의실 이곳저곳에서 학생들이 나온다.
학생들의 숲…….
그때, 인 고개를 돌리려는데…….
문이 열리며 살짝 보이는 신발.
중년의 여교수…….
소은이다.
카메라 그녀의 어깨에서 목덜미…….
빰만 살짝 잡는다.
인 한눈에 사진속의 그녀임을 알았다.
소은 인의 눈과 마주쳤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턱선.
생전 처음 보는 저 남자…….
허나…….
신기하게도 소은은 그가 인임을 안다는 듯…….
그를 보고 있다.
둘…….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마주보고 서있다.
둘의 주위로 많은 학생들…….
아무 느낌 없이 스쳐 지나간다.
둘 동상처럼 서로를 보며 그렇게 서 있다.
인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고…….
소은의 눈가에도 흐르진 않지만 맑은 투명체가 서려 있다.
그러다간…….
소은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지나온 세월을 씻어주듯 그렇게 입술이 미소를 짓는다.
인 그 미소를 보며 숨을 내쉰다.
소은 그렇게 웃는 얼굴로 움직인다.
인도 이제야 발을 뛴다.
소은과 인.
그냥 천천히…….
서로의 옆을 스치며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친다.
인과 소은의 행복한 모습에서…….
무지갯빛 구름의 모습이 보이고, 구름이 사라질 쯤 희미하게 보이는 투명한 수정 열쇠고리.
씬 132. 아기 인의 방.
화면이 밝아지면 반짝거리며 대롱대는 수정열쇠고리…….
카메라 빠지면 선미가 수정 열쇠고리를 흔들며 앉아있고 아기 인이 " 수정 열쇠고리 "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있다.
이러한 그림들과 함께 내레이션.
인: (소리) 오늘……. 당신을 봤어요……. 소은씨……. 정말 예쁘고 밝았어요……. 아주 잘 살고 있구요. 소은씨 옆을 스치는데……. 소은씨가 얘기해 주던 향기가 났어요. 그 향기가 어떤 건지 맡을 수 있었어요.
카메라 빠지면서 보이는 기계칲들.
자세히 보면 무선기 안의 칲들이다.
칲들 사이로 가운데 보이는 10원짜리 동전 테두리.
기계로서의 수명이 다해가는 듯, 지지직거리고, 이러한 그림들과 함께 소은의 내레이션.
소은: (소리) 지인씨, 살다보면……. 가슴 아픈 인연으로 끝이 날지라도, 만나야만 되는 그런 사람이 있나봐요. 꼭 그래야만 하는 운명이 있나봐요. 또다시 세상을 돌고 돌다보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사랑할 수 있을까요?
순간, 심한 노이즈…….
칲들 속에 있던 동전이 서서히 움직이다가
바닥에 힘없이 떨어진다.
인: (소리) 소은씨……. 소은씨?
CQ CQ CQ 여기는 DS1AVO. 델타 시에러 원 알파 빅토르 오스카 RST 59 주파수로 윤소은 님을 찾습니다. CALL 응답 바랍니다. CQ CQ CQ 여기는 DS1AVO. 델타 시에러 원 알파 빅토르 오스카 RST 59 주파수로 윤소은 님을 찾습니다. CALL 응답 바랍니다.
바닥에 힘없이 떨어져 있던 동전이 지지직거리다가 멈춘다.
소리 컨텍 되어지지 않습니다.
호출 주파수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라저.
컨텍 되어지지 않는 주파수 콜싸인입니다.
씬 133. 캠퍼스.
옆의 현지…….
현지: 이제 무선이 안 되나 봐…….
인: (흐려진 두 눈으로 무선기를 노려보며) 이 무선기……. 나쁜 거야……. 모든 게 다 이거 때문이야…….
인……. 거칠게 일어나 그 무선기를 내팽개치려 한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수위 아저씨의 소리…….
수위: 어허……. 뭐야?
인, 멈춘다.
수위: 이 야심한 밤에……. 어이구……. 또 너희들이니?
현지: 아니에요……. 아저씨 그냥 이 기계 좀 고치려구…….
수위: 고치려는 폼이 아닌걸……. 왜? 던져서 부숴버릴려구?
인: …….
현지: …….
수위: 쉽게 안 없어질 꺼야…….
인: …….
현지: …….
수위: 어여들 가라…….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드라구…….
수위 아저씨 나간다…….
인과 현지 그 무선기를 본다.
인, 무선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카메라, 그 무선기를 집중한다.
씬 134. 시계탑 앞.
인과 현지.
걸어온다.
현지: 네가 겪은 몇 주일……. 정말 웃긴다. 사람들한테 말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야……. 그치?
인: (아무 말 없다.)
현지: 후……. 그래…….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겠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뭐가 어떻게 달라지겠니?
인: 팔장낄 줄 아니?
현지: 뭐? 미친놈……. 팔 장 못끼는 사람이 어딨냐?
인: 한번 껴봐라?
현지: 어라……. 닭살 돋게 왜 그래……. 갑자기…….
피식…….
웃다간.
새침 떨면서 인의 팔짱을 낀다…….
걷는 둘.
누가 봐도 애인 사이다.
둘의 연한 미소…….
씬 135. 어느 성당.
동희와 선미의 결혼식.
하객으로 와 있는 소은의 모습.
꽃술이 날리고, 그들을 축복해 주는 사람들.
승용차가 성당 앞에 도착하고, 동희와 선미가 차에 타려는 순간.
예쁘게 포장 되어진 작은 상자 하나를 선미에게 선물하는 소은.
기뻐하는 선미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
소은도 슬퍼하고, 미안해하는 동희.
떠나는 승용차를 뒤로한 채 화면 어두워진다.
씬 136. 인의 시골집 안.
화면 밝아지면…….
저녁식사 준비로 분주한 선미의 모습이보이고, 식탁 밑으로 아장아장 기어 나오는 어린 인이 보인다.
거실 한구석 인의 장남감속에 파묻혀 있는 무선기가 보이고, 무선기를 만지작거리며 천진난만하게 좋아 하는 인의 모습.
그 옆으로 작은 상자가 보이고 상자 안에 놓여있는, " 수정 열쇠고리 ".
씬 137. 인의 시골집.
(미니어처)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있고, 인의 집을 둘러싼 고목에는 하얀 눈이 쌓여가고, 한폭의 수채화 같은 그림을 카메라 서서히 부감으로 이동하면, 인의 집이 점점 작아지면서 마을의 불빛들만이 아롱 거리고, 카메라 한없이 멀어지면, 그와 동시에 달에서 바라본 예쁜 지구의 모습이 보여지다가, 엔딩 크레디트 올라온다.
끝.
편지
주요 인물
조환유(30): 박신양
이정인(27): 최진실
병일(40대): 최용민
명호(30): 송광수
명호처(28): 남상미
황 교수(40대 후반) 박종철
역무원(40대): 이 상우
정인모(50대): 이인옥
영훈(6): 이준섭
정인후배(21): 태유림
정인선배(20대): 안영준
승무원(30대): 김영대
택시기사(40대): 한 춘일
간호사: 상은정
레지던트: 차효주
씬 1. 프롤로그.
어두운 배경에 저인의 소리가 들린다.
정인: (소리) 나 이제 무사히 사막을 건너온 걸까?
1초원에 들어서는 정인.
정인: (소리) 언젠가, 남편이 그랬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건너야할 자신의 사막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어두워지고 정인의 소리 계속 이어진다.
정인: (소리) 남편을 만나러.
정인이 환유의 소나무 앞에 서있다.
정인: (소리) 갈 때면 언제나 내 자신에게 되묻곤 한다. 난 지금 사막 어디쯤 서있는 걸까.
화면 다시 어두워지고.
정인: (소리) 이제 무사히 사막을 건너온 걸까.
씬 2. 꽃집 앞거리.
꽃집 앞에 사람들이 오고가고 정인이 꽃을 사들고 나온다.
한 아름 장미꽃을 사들고 자동차 뒷좌석의 영훈에게 다가가는 정인.
영훈: 으와! 예쁘다!
정인, 숄더백과 함께 꽃을 앞좌석에 두고.
정인: 예뻐? 엄만 니가 더 이뻐. 영훈아, 너 쉬야 안 해도 되겠어? 뽀뽀!
씬 3. 거리를 달리는 차안.
복잡한 시내를 달리는 승용차의 시점 숏.
영훈: 하양꽃 노랑꽃…….
영훈, 앞을 보며 노래하는 천진한 모습.
영훈: 하양 나비 있어요. 우리 집 하단에 예쁜 꽃들 있어요.
정인: 우리 영훈이, 노래 너무 잘하네? 아빠가 들으면 너무너무 좋아하겠다.
씬 4. 강변 국도/달리는 차안.
차의 시점 숏.
뒷좌석에 영훈이 잠들어 있다.
영훈을 뒤돌아보고 빙그레 웃다가 카 스테레오를 켜는 정인.
씬 5. 양수리 강변길/타이틀 백.
달리는 차의 시점에서 보여지는 강변길.
차를 운전하는 정인의 추억에 잠긴 듯 한 표정.
씬 6. 수목원 입구/타이틀 백.
앞 차창너머 운전하는 정인의 모습.
울창한 숲길로 들어가는 차의 시점 숏.
수목원 길을 달려오는 정인의 차 정면.
정인 어깨너머 늘어선 나무 사이로 난 길의 시점 숏.
운전하는 정인의 추억어린 표정.
화이트 인.
씬 7. 메인타이틀.
"편지"
씬 8. 수목원 사무실 앞.
병일, 개를 데리고 부지런히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씬 9. 사무실 안.
병일 목소리에 돌아보며 일어서는 정인.
병인: (소리) 어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정인에게로 다가오는 병일, 영훈과 여직원이 놀고 있다.
정인: 안녕하셨어요?
병일: 언제 왔어요?
정인: 방금 왔어요.
병일: 어디 보자. 우리 장군 얼마나 컷나!
정인: 영훈아, 아저씨한테 인사 드려야지.
아이: 안녕하세요!
병일: 많이 컸구나.
여직원: 우리 나가서 놀자.
병일: 녀석, 갈수록 즈이 아빠네. 엉?
아이는 여직원과 함께 털북숭이 개를 데리고 나간다.
정인: 멀리 가지 마.
영훈: 네.
병일: 앉으세요.
정인: 예.
병일: 그렇잖어두 어제 문득 생각이 나길래 그 친구한테 다녀왔어요.
병일 너머 정인.
정인: 네, 그러셨어요? 한산하네요.
창문 너머 밖의 한가한 전경.
병일: (소리) 주말엔 붐벼요.
정인 너머 병일.
병일: 이젠 제법 입소문이 퍼져놔서 옛날이 좋았죠.
웃는 정인.
정인 너머 병일.
병일: 지난번 왔을 때보다 좋아 보이네요.
병일 너머 정인.
정인: 그래요?
일어서는 정인 너머 병일.
병일: 가보시게요?
정인: 네.
씬 10. 수목원 숲길.
울창한 수목의 나뭇잎들이 물방울처럼 찰랑이며 햇살을 반사시킨다.
정인이 뒷모습을 보이며 수목들을 올려다보며 걷다가 문득 뒤돌아본다.
화이트 인 아웃.
씬 11. 경강역/과거.
작은 기차역의 개찰구.
50대 중반의 역장이 개찰구에 서서 검표하고 있다.
뒤늦게 달려온 정인, 역장에서 목례하고 작은 꽃 화분들 중 하나를 들고 간다.
기차가 멈추는 소리.
정인, 기차 쪽을 보더니 얼른 달려간다.
플랫포홈, 정인이 기차를 향해 달려가고 그 맞은편으로 환유가 달려온다.
환유와 부딪히는 정인.
정인: 죄송합니다.
환유: 아, 괜찮아요.
기차를 향해 달려가는 정인, 승강구에 얼른 올라탄다.
이때, 기차는 서서히 출발하고 그런 정인을 바라보는 환유, 문득 바닥에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바닥에 떨어진 손지갑과 열차표.
손지갑과 열차표를 주워들어 보고 기차 가는 쪽으로 다가서는 환유.
멀어지는 기차를 보다가 얼른 개찰구로 뛰는 환유.
역장에게 표를 건네며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환유.
환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씬 12. 달리는 기차 안.
정인이 창가에 자리를 잡고 화분을 놓고 앉아 한숨을 돌리다.
뒤를 보는 데, 정인, 문득 표를 찾지만 없다.
씬 13. 국도/달리는 택시 안.
총알택시를 타고 가는 환유.
환유: 아저씨, 따라 잡을 수 있는 거예요?
기사: 걱정 마쇼. 운전경력 30년이야.
씬 14. 달리는 기차 안.
표를 찾는 정인, 점점 가까워지는 승무원.
씬 15. 철로/인접국도/달리는 택시 안.
환유가 탄 택시가 저 앞에 가는 기차를 발견한다.
환유: 아저씨!
옆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정면을 향해 소리치는 환유.
환유: 아저씨! 빵빵.
기사: 오케이!
환유: 기차요, 기차! 잡았어요! 더 빨리.
기차의 옆모습.
정인의 모습을 발견한 듯 기차를 향해 지갑과 열차표를 보이고 흔들며 소리쳐 불러보는 환유.
환유: 아저씨, 천천히 천천히! 어이, 여기요! 여기요!
택시 시점으로 기차안의 정인과 다가서는 승무원의 모습이 보인다.
환유: (소리) 나 좀 봐요!
씬 16. 달리는 기차 안.
창가에 앉아 여전히 가방을 뒤지는 정인.
바로 옆 국도에서 택시안의 환유가 이쪽을 보며 소리치는 게 보이지 않는 듯, 환유의 택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승무원을 올려다보며 어쩔 줄 모르는 정인.
이때 승무원의 허리가 들어서며.
승무원: 표 없어요?
정인: 아니…….
정인과 승무원.
정인: 없는 게 아니라……. 아저씨 저기요!
정인, 환유를 발견하고 창밖을 가리킨다.
승무원: 아이 참…….
환유가 택시에서 얼굴을 내밀고 웃은 채 손지갑과 열차표를 들고 흔든다.
환유: 여기요! 이거, 워!
씬 17. 국도.
기차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정인과 승무원의 모습.
씬 18. 카페.
카페 앞 공중전화에서 전화 걸고 있는 정인.
정인: 죄송해요, 교수님. 네 지갑은 찾았어요. 다음 기차로 바로 갈 거예요. 예,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 끊고 카페를 향해 걸어가는 정인.
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정인.
테이블로 다가오는 정인을 일어서서 맞이하는 환유.
환유: 안 혼났어요?
정인: 네.
환유: 커피가 식은 것 같은데……. 다시 시킬까요?
정인: 어으, 아니예요.
정인, 자리에 앉으며.
정인: 더운데요. 뭐.
쑥스러워하는 환유의 표정.
환유 너머 정인.
정인: 암튼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지갑 잃어버리고 다시 찾은 건…….
정인 너머 환유.
정인: (소리) 이번이 첨이거든요.
환유: 이 꽃, 역에서 가져오시는 거죠?
정인, 반가운 얼굴로.
정인: 어머, 아시네요? 어떤 사람이 나눠주고 있는 건지 정말 궁금해요. 이 화분을 받기 시작하면서 한주의 시작이 즐거워졌거든요.
환유 얼굴.
환유: 그래요?
환유 바라보고 있는 정인.
정인: 근데 음료수 한잔 갖고 보답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환유 빙그레 웃으며.
환유: 아, 안 돼죠.
정인, 웃으며 쳐다보며.
정인: 어머, 그럼 어떡해요?
정인 바라보고 환유.
환유: 수목원에 한번 놀러 오세요.
환유 바라보는 정인.
정인: 수목원이요?
환유 얼굴.
환유: 네.
씬 19. 국문과 사무실.
혼자 남은 정인, 책상 위에 놓인 화분을 기분 좋게 바라보다가 옆 테이블에 옮겨놓는다.
그대 들어와 정인 앞에 리포트를 내미는 여학생.
여학생: 언니!
정인: 어, 수영이 왔니?
여학생: 늦어서 죄송해요, 리포트.
정인: 그래, 다음엔 좀 빨리 내라.
여학생: 꼭 제때 낼게요. 근데, 언니 오늘 되게 좋은 일 있나 봐요?
정인: 그래 보이니?
여학생: 네.
씬 20. 수목원 잣나무길.
정인과 환유가 길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다.
환유: 여기는 잣나무숲이구요, 그 다음이 전나무 숲이예요. 저기, 저기 보이는 게 이기다 소나무예요.
정인: 네.
환유: 혹시 소나무하고 전나무하고 어떻게 다른 줄 아세요?
정인: 아니요.
환유: 소나무는 잎이 이렇게 두 개씩 나고요, 전나문 다섯 개씩 나요. 으음 냄새 좋죠?
정인: 네. 연구소라고 해서 책상 앞에서 컴퓨터나 두드리며 일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울타리 너머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사람.
환유: 여기가 다 우리 연구소이자 실험실이죠.
정인: 어머, 저건 무슨 꽃이 예요?
환유: 어, 저 꽃이 여기 피어있네.
개부랄 꽃 너머 정인과 환유.
정인: 뭔데요?
환유: 저……. 발음하기가 좀 곤란한데……. 개 ……. 개부랄 꽃이요.
정인, 푸하하 웃음을 터트리고 환유, 계면쩍어 따라 웃는다.
숲속 벤치에 앉아있는 두 사람.
정인: 그 많은 나무며 꽃 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세요?
환유: 사람하고 똑같아요. 사람을 얼굴 한번만 보고 이름을 기억 못하잖아요. 밥도 먹고, 술도 좀 마시고 그러는 것처럼 나무들도 똑같아요. 자주 보고, 인사하고 그러면 아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죠.
이때, 그들 뒤쪽 길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관리인 병일,
잠깐 멈춰 서서.
병일: 우리 수목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유와 정인, 돌아보더니 일어난다.
정인: 안녕하세요.
병일: 조환유씨를 찾아온 여자 분이 있다길래. 거,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환유: 너머 가시는 길이세요?
병일: (소리) 네.
병일의 모습.
병일: 거 괜히 국비유학 떠날 사람, 가슴 설레게 하면 안 됩니다!
아웃되는 병일, 남는 두 사람, 잠시 서로를 어색하게 본다.
환유: 다녀오세요.
병일: (소리) 네.
씬 21. 수목원 입구.
두 사람, 걸어오고 있다.
환유: 9월 학기에 맞춰 나갈 예정이었는데.
멈춰서는 두 사람.
환유: 사실은……. 아직 결정을 못했어요.
정인과 환유.
정인: 왜요? 좋은 기회 같은데…….
장대비가 쏟아 붓기 시작한다.
환유, 정인의 손목을 낚아채고 달리기 시작한다.
환유: 손잡아요. 뛰어요!
씬 22. 교외버스 정류소.
정인, 환유가 비속을 달려와 시외버스 정류소에 들어간다.
정류소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
서로 어색하게 있다가 환유가 정인 옆에 앉는다.
환유: 나중에 부모님 모시고 한 번 더 오세요. 제가 잘 안내해 드릴게요.
정인: 아버진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엄마는 재혼해서 이민 갔구요.
환유: 미안해요. 사실은…….
환유 바라보고 있는 정인.
환유: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우린 비슷한 게 많네요.
정인 너머 환유.
환유: 저는 문제가 생겨도 상의할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땐 늘 이 동전을 던져요. 그리고 나머지 선택은 잊어버리는 거죠. 우리, 이 동전에다.
환유를 바라보는 정인의 표정.
환유: 운명을 걸어볼까요?
나란히 앉아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화유: 자, 이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나는 정인 씨하고 결혼하는 거고…….
환유 너머 정인의 황당한 표정.
환유: 동전의 뒷면이 나오면 난 예정대로 유학을 가는 겁니다.
뭐라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동전을 던지는 환유.
던져지는 동전을 바라보는 정인의 어리둥절한 표정.
손등 위에 동전을 엎어놓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환유.
환유, 천천히 손등을 치워보면 동전 앞면(그림)으로 내려앉아 있다.
손등 위의 동전을 바라보는 정인의 표정.
환유, 미소를 지으며 정인을 본다.
정인, 픽 웃으며 환유를 쳐다본다.
정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환유의 표정.
씬 23. 국문과 교수실.
동전 하나를 만지자 거리며 환유의 흉내를 내고 있는 정인.
정인: 이 동전에 운명을 한번 걸어볼까요?
동전을 던져 받으려다 넘어지는 정인.
씬 24. 정인 집.
전화벨 울린다.
그 소리에 잠이 깨어 전화 받는 정인.
정인: 여보세요?
환유: (소리) 정인씨?
정인: 예, 누구세요?
환유: (소리) 저, 조환윤데요.
정인: (스탠드 켜며) 네…….
환유: (소리)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요. 지금 빨리 수목원으로 와 주실 수 있겠어요?
정인: 이 시간에요?
환유: (소리) 제가 지금 모시러 가겠습니다.
정인: 여보세요, 여보세요…….
씬 25. 새벽 길.
한산한 도로를 달리고 있는 택시.
택시 아예 나란히 앉아있는 두 사람.
씬 26. 수목원.
숲속의 수목들 너머로 달리는 환유와 정인.
숲속을 달리는 두 사람.
숲속의 새벽의 안개 속을 헤매는 두 사람.
환유: 여기다.
금강초롱의 무리.
환유와 정인, 금강초롱꽃을 쪼그리고 앉아 보고 있다.
환유: 금강초롱 이예요.
정인: 금강초롱이요?
환유: 네, 초롱처럼 생겼잖아요. 이거 점봉 산에서만 자생하는 꽃인데요. 오늘 새벽 산책하다 우리 수목원에서 제가 제일 먼저 발견한 거예요. 아, 금강초롱이 천연기념물이라고 내가 얘기했나요? 이게 무지 귀한 꽃이거든요. 정인씨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씬 27. 수목원 잔디밭 결혼식.
꽃에서 지미 집으로 들어가면 원예수목원 잔디밭에서 이뤄지는 소박한 결혼식.
정인, 환유: 나 조환유와, 나 이정인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서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며, 서로의 발전을 위해(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 이정인과, 나 조환유는 거친 사막을 건너는 낙타와 상인처럼, 푸른 풀밭을 찾아가는 목자와 양떼처럼, 영원히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정인의 손가락에 18금짜리 링을 끼워주는 환유.
반지 끼워지는 손을 바라보는 정인의 행복한 표정.
환유의 표정.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고 어머니와 병일이 박수치고 키스하자 꽃가루를 뒤집어쓰는 정인과 환유.
명호와 명호처가 박수, 꽃가루, 눈가루 뿌리고 정인, 환유 하객들에게 인사하고.
씬 28. 환유의 신혼집.
괘종시계를 바닥에 놓고 닦고 있는 정인.
환유: 이것 좀 도와줘야겠는데.
정인: 환유씨. 잠깐만!
어설프게 늘어놓은 도배지가 노란색을 칠하고 있고 신문지를 깔고 라면을 먹는 두 사람.
서로의 얼굴에 묻은 페인트를 보고 가리키며 웃기도.
티셔츠에 붓으로 글씨 쓰는 환유.
환유가 하얀 티셔츠를 정인에게 보여주더니 나간다.
정인이가 주방 싱크대를 청소하고 있고 그녀 저쪽으로 창가에 환유가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게 보이고 환유가 말끔해진 거실의 벽에 괘종시계를 걸고 밥을 주어 작동시킨다.
그걸 보고 주방에서 씻고 있는 정인에게 다가가 키스.
창문을 통해 카메라가 빠져 나와 지붕 위를 보여주면 국기게양대에 티셔츠 깃발이 펄럭인다.
'정인 이와 환유네 집'
씬 29. 관사 침실.
두 사람,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환유: 무슨 생각해?
정인: 환유씨, 후회 안할 자신 있어?
환유: 뭘?
정인: 나 때문에 너무 큰 걸 포기한 것 같아서.
환유: 유학, 미련 없어. 나중에라도 난 숲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뭘.
정인을 바라보는 환유.
환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는 이정인하고 같이 살 수 있다는 거니까.
정인 표정.
정인 너머 환유.
환유: 내일부턴 새 날이다. 어제까진 당신과 나 각자의 날이었지만 내일부턴 우리의 날이 되는 거야. 나 노력할게. 학교에 계속 남아서 공부하고 싶다는 이정인의 소망도 같이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게.
정인과 환유 껴안는다.
정인: 고마워, 환유씨.
정인, 환유에게 입 맞춘다.
씬 30. 침실.
정인, 잠에서 깨어나 보면 환유 보이지 않는다.
씬 31. 관사 마당.
정인, 거실 창밖으로 얼굴 내밀며 환유를 불러본다.
정인: 환유씨! 환유씨!
환유: (소리) 어!
정인: 환유씨!
환유: (소리) 어, 여기!
정인: 뭐해?
정인의 시점으로 뒤뜰의 모퉁이를 막 돌려는데, 환유가 불쑥 나타난다.
환유: 오늘, 월요일이지?
환유너머.
정인: 응, 왜?
환유가 뒤뜰에 감추고 있던 화분상자에서 작은 꽃화분 하나를 골라 들더니 정인에게 내민다.
정인: 이게 뭐야?
정인너머 환유, 정인에게 화분을 건네주며.
환유: 이거 직접 주고 싶었어.
환유너머 정인, 꽃화분을 받아들고는 말을 잃는다.
정인너머.
환유: 이 화분을 너무 기쁘게 받아가는 당신을…….
환유너머 정인의 얼굴.
환유: 보는 게 얼마나 좋던지……. 그래서 직접주고 싶었어.
정인: 그럼……. 환유씨가 그 기차역에서?
정인 너머.
환유: 역장님한테 부탁했지!
환유의 가슴을 두드리는 정인.
정인: 당신이었구나! 당신이었구나!
씬 32. 교수방.
노크와 함께 정인, 꽃화분 들고 들어온다.
교수: 어, 들어와. 그래, 여행은 잘 다녀왔어?
정인: 예. 집 정리 하느라고 바로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 사람이랑 곧 한번 찾아뵐게요.
교수: 그래. 자네, 시집갔다고 교수 되는 꿈 포기하면 안 돼!
정인: 네, 교수님.
씬 33. 관사 주방.
가스레인지 위에 삐삐주전자가 끊는다.
정인, 거실에서 공부 하다가 주방으로 가며.
정인: 저 삐삐주전자는 너무 성능이 좋은 것 같아. 집 무너지겠다!
커피 타는 정인의 손.
정인, 거실 탁자 앞에 커피 잔을 가져와 앉는다.
환유: 여기서 학교는 다닐 만 해? 힘들지 않아?
커피마시며 환유 바라보는 정인.
정인: 응, 괜찮아.
정인 얼굴.
정인: 난 아무래도 기차랑 인연이 깊은가 봐.
환유, 정인 얼굴을 한동안 바라본다.
환유너머.
정인: 왜?
정인 너머.
환유: 모든 게 다 신기해서.
정인, 본채 미소.
환유 얼굴.
환유: 으, 맛있다.
씬 34. 관사 마당.
길에서 파는 나무주걱을 하나 산다.
때수건도 하나 사고.
상인: 골라 보세요.
정인: 아, 이거 사야 되는데.
환유: 야, 별거 다 있다…….
정인: 아저씨, 이건 얼마구, 이건 얼마예요?
상인: 천 원 씩이예요.
정인: 똑같아요?
환유, 정인: 어쩌구, 저쩌구…….
씬 36. 어느 중고가구점 앞.
중구가구점 앞을 지나치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멈춰서는 두 사람.
정인: 환유씨, 이거 어때? 색깔 너무 이쁘지 않아?
환유: 물어봐. 비쌀까? 신발장도 있구.
정인: 저거.
환유, 같은 것 가리킨다.
씬 37. 관사.
낑낑대며 의자를 들여놓는 환유와 거드는 정인.
환유: 으차. 잠깐만 조심조심 조심.
환유: 넣고 마라 이거 됐어?
정인: 조심!
씬 38. 관사 안.
왕처럼 버티고 앉은 등나무의자에 앉아보는 환유.
환유: 어때?
정인: 근사해. 왕 같아.
환유: 당신 한번 앉아 보구려.
정인: 어때?
환유: 잘 어울리는데? 여왕 같아.
정인: 비행기 태우지 말구 옥새나 줘.
환유: 뭘 달라고?
정인: 옥새! 여왕은 이제부터 빵꾸난 한 달 생활비, 뭘로 때울 건지 고민해야 된단 말이야.
환유: 이거 도로 갖다 무를까?
정인: 아니……. 우리 너무 웃긴다. 우리 두 시간동안 시장 돌면서 산 게 겨우 요거야.
나무주걱과 때수건.
이때 주방에서 삐삐주전자 이상한 소리로 운다.
삐삐 주전자, 꽥꽥 거리는 것이 딱 오리소리다.
정인, 환유를 쳐다보면 웃음을 터뜨린다.
환유: 집 무너진다고 해서 고친다고 고쳤는데……. 소리가 왜 저 모양이냐.
씬 39. 마당.
현관문을 나와 출근하는 환유.
정인 따라 나온다.
환유: 오늘 학교 안가지?
정인: 응. 잠깐……. 손수건!
환유: 들어가 그만.
정인: 나도 따라가고 싶다.
환유: 들어가.
정인: 다녀와.
환유, 보다가 돌아와 포옹하고 간다.
환유: 갔다 올게.
씬 40. 수목원 연구실.
환유와 서너 명의 연구원들, 테이블에서 회의 중이다.
환유, 문득 고개를 돌려 창 쪽을 본다.
놀란 환유, 창에서 눈을 못 떼는데.
원장: 말씀해 보세요.
연구원: (소리) 우리 수목원에서는…….
정인, 도시락을 흔들어 보이며 환유에게 키스를 보낸다.
정인에게 키스 보내다가 당황하는 환유.
직원들 그걸 보고 뭐가 있나 모두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씬 41. 수목원 초원.
정인이 가져온 점심을 풀어 놓는다.
환유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그런 정인의 모습을 찍는다.
정인: 그만하고 먹자.
환유: 이쁘다. 다 됐어.
정인: 자, 김밥.
환유: 여기 보구.
환유가 비디오카메라를 향해 김밥을 하나 들어 보인다.
환유: 이 정인이 싼 김밥!
정인: …….
환유: 이정인, 김밥 싸는 연습은 더 해야 되겠다. 나니까 먹는다, 나니까.
정인: 정말?
흘기는 정인.
문득.
깡통 하나를 열려다 안 괘자.
정인: 이거 안 열려.
환유: 줘봐, 뭔데 이거?
한유가 그것을 어렵게 여는데, 거기서 갑자기 튀어 오르는 스프링 장난감.
씬 42. 초원.
넓은 초원에 소나무 하나가 서있다.
환유와 정인, 들어선다.
정인과 환유.
환유: 자, 인사해. 인사!
정인: 안녕하세요. 이 정인입니다. 당신은 누구세요?
환유: 조환유입니다.
정인: 환유라고?
환유: 내 이름을 따서 환유야! 몇 살이나 먹었을 것 같아?
정인: 한…….
환유: 4만 천 살!
정인: 4만 천 살이 어디 있어?
환유: 얘도 나랑 동갑이야.
환유 너머 정인.
환유: 아버지가 내가 태어나던 해에 심으셨거든.
정인: 아버지도 여기서 일하셨어?
환유: 응. 여기서 돌아가셨고.
정인: …….
씬 43. 국문과 교수실.
정인, 꽃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전화 온다.
정인: 네, 국문과입니다. 나야, 환유씨. 수업? 조금 있다가 들어가려고.
씬 44. 수목원 환유 연구실.
사무실의 환유.
환유: 나 방금 생각이 났는데 말이야. 생일선물로 뭐 받고 싶어?
씬 45. 국문과 사무실.
통화하는 정인.
정인: 내 생일 때? 글쎄……. 아 있다. 편지.
씬 46. 수목원 환유 연구실.
통화하는 환유.
환유: 편지? 웬 편지?
씬 47. 국문과 사무실.
통화하는 정인.
정인: 어, 연애편지.
씬 48. 수목원 환유 연구실.
통화하는 환유.
환유: 나 편지 써 본적 한 번도 없는데? 국군 아저씨한테 위문편지 써 본적도 없다! 딴 거 하믄 안 돼?
씬 49. 국문과 사무실.
통화하는 정인.
정인: 싫어. 난 그거 받고 싶어. 우린 서로 편지 써볼 기회도 없었잖아.
여학생: (소리) 안녕하세요?
정인: 어, 잠깐만. 편지다! 알았지? (끊고) 어, 무슨 일이야?
씬 50. 관사 마당.
퇴근하고 대문을 들어서다가 우체통을 열어보는 정인.
거실로 들어선 정인, 불을 켜고 커튼을 연다.
창문을 활짝 열려는데, 갑자기 창가에서 들어서는 환유의 모습.
환유: 짠!
정인: 어머, 깜짝이야!
환유: 생일 축하해.
환유너머 정인, 꽃을 받으며.
정인: 고마워. 근데 편지는 어떻게 된 거야? 왜 안와?
환유: 여기 다 와있지.
정인 너머 환유.
환유: 눈 감아봐.
정인: 왜?
환유: 내가 읽어주려구.
정인: …….
환유: 눈!
눈감는 정인.
헛기침 한번하고 편지 읽는 환유.
환유: 정, 저인에게…….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정인의 얼굴.
정인: 그게 뭐야?
환유: 이게 어대서, 끝가지 들러봐, 눈!
정인: …….
정인 너머 환유의 얼굴.
환유: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환유너머 정인의 얼굴.
환유: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단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정인: 엉터리! 이게 무슨 편지라고. 볼래?
환유, 주머니서 시집 한권 꺼내준다.
환유: 이거 찾느라고 일주일 동안 헤맸는데? 자, 즐거운 편지!
정인이 시집,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을 펼쳐본다.
환유를 껴안은 정인.
정인: 그래, 고마워.
정인, 환유에게 뽀뽀하는…….
씬 51. 관사 거실.
환유가 거울 앞에서 옷을 입고 있고, 정인이 옆에 들러 서자.
환유: 학교 안가?
정인: 어제 종강했잖아.
환유: 좋겠다. 종강이라도 있으니.
정인: 환유씨, 근데……. 우리 돈 다 떨어졌다!
환유: …….
정인: …….
환유: 사전에서 '환장하다'가 무슨 뜻인지 좀 찾아볼래? 시계가 어디 있지?
정인: …….
씬 52. 관사.
정인, 주방에 서서 뭘 꽂고 있다.
정인: 흥, 환장하겠다 이거지?
환유: (소리) 이정인, 나 왔어.
씬 53. 관사 앞.
정인 현관 앞으로 들어서다 문득 멈칫하고 본다.
환유가 들어서더니 밖을 향해 손짓하며.
환유: 들어와.
명호: 안녕하세요.
환유: 들어오세요.
명호처: 오랜만이네요. 정인씨.
정인: 네, 어서 오세요.
환유: 뭐해. 손님들 오셨는데? 우리 식사 안했어.
명호: 걱정 마세요. 젓가락만 더 놔주시면 됩니다.
세 사람, 거실로 들어선다.
환유: 우리 이렇게 산다.
식탁을 본 환유와 명호, 놀란 표정.
환유는 다른 쪽을 본다.
식탁 위 반찬 그릇위에 가격 깃대가 꽂혀있다.
환유의 얼굴, 웃는 명호 부부.
집안의 눈에 띄는 물건들에 가격표가 걸려있다.
환유, 명호와 명호처를 보며.
환유: 내가 아침에 싫은 소리 한마디 했거든 종강했다더니 여유가 생겼나보네.
명호처: 재미있게 사시네요.
환유: 밥 한 그릇에 천 삼백 원이구나.
씬 54. 관사 거실.
네 사람, 둘러앉아 차와 과일 먹고 있다.
환유: 삼십오만 원, 이건 뭐야? 삼십오만 원 짜리가 뭐야?
명호: 암튼 재미있게 산다.
환유: 출판사 어때?
명호: 니가 안 도와주는데 잘 되겠니?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나. 정인씨!
정인: 예?
명호: 이 친구 대학 다닐 때 번역해가지고 학비대고 생활비 대면서 먹고 산 거 아십니까? 재벌이었죠. 이 길로 가자는데 영 말을 안 듣는 네요. (책 주며) 미안한대, 너 바쁜 건 알지만 좀 급하거든. 번역 좀 해주라. 좀 두껍지?
환유: 그래, 맞춰보자. 자, 이정인. 이건 알바 붙일까? 얼마야, 얼마.
씬 55. 관사 거실/마당.
환유는 번역을 하고 있다.
정인,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 노트를 집어 훌렁훌렁 부치며.
정인: 아, 더워.
환유: 좀 쉬었다 안할래?
정인: 쉬어.
환유: 혼자 뭐하구 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