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10월8일(목)■
(마태복음 5장)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묵상/마 5:27-32)
◆ 간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28)
간음이란 혼인외에 이루어지는 모든 성적인 관계를 통칭한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십계명에 포함된 것으로 유대인들은 간음죄를 큰 죄로 취급하였다. 인간의 본성에서 식욕 다음으로 강한 이 죄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자신의 욕망을 참고 참아서 간음하지 않은 것으로써 유대인들은 스스로 순결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간음하다 걸리면 돌에 맞는 분위기에서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더 깊은 뿌리를 지적하신다. 즉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매일 물건을 훔치고 싶어하고, 끊임없이 깜쪽같이 훔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데, 단지 감옥에 갇혀있다는 사실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와 감옥 밖에서 남의 것을 진짜 훔친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인간들은 오로지 드러난 행위만 보고 판단하지만,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둘을 똑같은 자로 취급하신다. 전자는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간음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음 속에서는 온통 음란함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자신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고 큰소리치며 자만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이런 죄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겸손해야 한다. 자기는 그런 죄에서 완전히 자유하다는 식으로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하고는 이어서 곧바로 주어를 바꾸어서 "우리는 간음하지 말자"라고 했다. (고전 10:7-8)
컵에서 공기를 빼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컵에 물을 넣는 것이다. 즉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방법은 음란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께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내 속에 주님을 향한 믿음이 생길 때 우리에게서 음란한 생각은 있을 곳을 못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죄가 미워지는 것이다. 성령충만하다고 성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령충만하면 아내나 남편이 더욱 사랑스럽게 보일 뿐이다.
◆ 죄에 대한 단호한 태도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29)
전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았다. 어떤 남자가 아무도 없는 광야를 여행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손이 바위 틈에 끼었다. 짓이겨진 손을 빼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며칠동안 손을 빼내려고 애를 쓰던 그는 마침내 칼로 자기 손을 잘라냈다. 말도 못한 고통이지만 그는 살고자 하는 욕망이 더 강했기에 참아냈다. 그리고 잘린 팔을 가지고 뛰어나가서 물부터 마셨다. 그는 살았다는 기쁨에 소리를 질렀다. 손은 잃었지만, 그는 살았다.
죄는 우리를 파멸시킨다. 죄는 사람을 영원한 지옥으로 몰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 손이 죄를 짓게하면 손을 잘라내고, 우리 눈이 죄를 짓게하면 눈을 뽑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는 것이 낫다. 이 말씀은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를 상기시키신 것이다.
과거에 이 말씀에 의해서 자신의 성기를 절단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다른 부분의 죄를 짓기 시작했고, 이단 교주로 인생을 마쳤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실제로 지체를 끊어내라는 것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지체를 끊어낸다면 우리 지체 중에 남아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죄에 대해 그만큼 단호한 태도를 취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기도원에 올라가서 열흘간 금식하고 난 후에 목을 매서 죽은 사람이 있다.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아서 사유를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친한 친구가 내게 자기 추측을 말해주었다. 최근에 그는 구원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아마도 열흘 금식한 후에 지금이 가장 깨끗한 상태니까 지금 죽으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아무도 알 수 없는 길이다. 그는 미혹된 것일 뿐이다.
아무튼 그리스도인에게 육신의 정욕은 평생 싸워야 할 대상이다. 지적인 논리와 방법이 정욕과의 싸움에서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큰 효과를 발휘하진 못한다. 오직 성령충만함과 믿음으로 사는 것만이 효과적일 뿐이다.
F.B. 마이어 목사처럼 20분마다 갈보리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사는 삶은 좋은 모본이다. 그의 성령충만한 삶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고 고백했다.
◆ 이혼에 대해서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31)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단지 성격이 안맞는다는 이유나, 경제적인 이유, 또는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이유로 이혼을 한다. 심지어 자존심 싸움이 번져서 이혼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우리 나라는 열 가구 중에 한 가구 정도가 이혼한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 해에 혼인 신고 대비 이혼율은 거의 절반에 가깝다고 한다. 점점 많아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우리에게 함부로 이혼하는 것을 금하셨다. 결혼은 종이 둘을 풀로 붙여놓은 것과 같다. 그리고 이혼은 그것을 강제로 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양쪽에 큰 손상이 생긴다.
만일 우리가 음행한 이유없이 배우자와 이혼한다면 그 이혼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될 수 없는 이혼이다. 아무리 세상 법정이 인정했다고 해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런 이혼 이후에 일어나는 결혼은 간음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랑하려고 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이혼해서 편하게 살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더욱 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삶에 몰두할 것을 권한다.
교회 내에서도 이혼한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음행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죄다. 그러나 간음이나 이혼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아니다. 이미 이혼하고 재혼하고 살고 있다면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죄에 너무 깊은 죄책감으로 신앙까지 위협받을 필요는 없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이제부터라도 잘 살려고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신다.(겔 33:10-11)
다윗은 비록 자기 신하의 아내와 간음하는 큰 죄를 저질렀지만, 그는 진정으로 회개하였고, 그가 용서받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여자가 낳은 아들을 사랑하셔서 '여디디야'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셨고(삼하 12:25), 위대한 왕이 되게 하셨다. 그가 바로 솔로몬이다.
주님, 이 악한 세대에서 음란함을 버리고, 주님을 믿는 믿음과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써 진실함과 깨끗함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