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향기
김명희
길을 걷다 익숙한 향이 바람에 실려 와 따라가 보니
아름드리 나무가 높다랗게 쌓여 있는 커다란 제재소가
보였다.
땀흘리며 일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 속에 땀방울 맺힌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었다.
언제나 챙있는 모자를 쓰시고 꾹 다문 입가에 여유 있는
비소를 지으셨다. 그런 아버지에게는 늘 그윽한 나무 향이
났다. 꽃향기보다 더 향내나는 나무 냄새가 배어 있었다.
퇴근을 하시고 집에 들어오실 때면 제일 먼저 나를
부르시는 목소리에서도 풋풋한 나무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어릴 적 10년 정도의 직업군인을 마치시고 평생을
제재소를 하시던 아버지는 나무와 함께한 시간이 많으셨다.
막내 딸인 나에게는 늘 커다란 나무가 되어 주셨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주시기도 했으며 폭풍우가 몰아칠
때면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 주셨다. 때론 지쳐 쓰러질 때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
언제나 내게 자상함으로 편한 쉼터가 되어 주시던 아버지.
어린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제재소에 들러
짜장면 한 그릇을 얻어먹고 놀곤 하였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돌아가는 톱니를 돌려 나무를 자르시며 톱밥이
튄다고 비키라고 하셨지만 나무 냄새가 싫지가 않았다.
친구들이 흙장난을 치며 놀 때 난 흙대신 톱밥을 가지고
놀았다. 때론 친구들과 나무 사이사이로 숨으며 숨바꼭질도
하며 뛰놀기도 했었다. 학년이 바뀔 때면 다듬어진 사랑의
매를 담임 선생님께 선물하시고 겨울이 오면 교실 난로에
불을 지필 때 쓰라고 톱밥이며 나무껍질을 한 자루씩 보내
오셨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제재소를 하시는 덕분에 난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친구들과 널뛰기를 할 단단한 나무를 늘 대기시켜 놓으셨기
때문이다.
제재소에는 여러 가지 나무가 참 많았다. 소나무, 참나무 등
이름을 다 알 수 없었지만 나무마다 독특한 향이 났다.
아버진 나무결만 보시고도 나무 이름과 어디에 쓰는지도
말씀해 주시기도 했다. 그럴 때의 모습 속엔 행복이 가득하다.
가끔씩 손을 잡고 산에 오르면 잘 자란 나무를 보시곤
흐뭇해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커다란 가슴은 나무를
닮으신 듯 나를 포근히 안아 주시던 아버지에게는 땀내음과
함께 나무 향이 났다. 소나무 향을 닮은 듯 깊고 깊은
솔내음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 향은 나를 늘 푸르고 바르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듯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소나무의 깊은
향내와 푸르름을 가장 좋아한다.
한참을 제재소 앞에서 그 분들의 일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께서 그곳 어딘가에 계실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쪽 귀 뒤에는 연필을 끼우신 채 주판알을 튕기시던
모습은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 나오며 일년전 병석에 누워 계시던
쓸쓸한 고목의 모습을 닮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무는 해가
더 할수록 하나, 둘 나이테가 늘어가지만 아버지의 모습엔
인생을 살아오신 만큼 깊고 진한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렇게
여러개의 나이테를 그려 놓으시고 계셨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많은 주위 분들은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손재주가 있으셔서 평소에 고마웠던 분들께 자연 그대로의
나무밑둥으로 커다란 탁자를 만들어 선물하셨기에 그 탁자를
보며 기억해 주시리라 믿는다. 내게도 작은 탁자를 하나
만들어 주셨는데 탁자를 볼때마다 정말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힘들고 쓸쓸할 때나 외로울 때 그 작은 탁자 앞에 앉는다.
그럴 때면 거칠고 투박하지만 나를 안아 주셨던 따뜻한
손길을 느껴 본다. 나무처럼 정직하고 바르게,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던 음성이 탁자 속의 나이테처럼
동그라미를 그리며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듯 하다.
이 다음에 내 딸아이에게 외할아버지의 정성과 깊고 진한
사랑을 들려주며 물려 줄 생각이다.
그런 내 생각을 아시는 듯 나무 액자 속의 아버지는 잔잔한
미소로 흐뭇하게 웃고 계신다.
아버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1998
첫댓글 내게도 작은 탁자를 하나 만들어 주셨는데 탁자를 볼 때마다 정말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힘들고 쓸쓸할 때나 외로울 때 그 작은 탁자 앞에 앉는다.
그럴 때면 거칠고 투박하지만 나를 안아 주셨던 따뜻한 손길을 느껴 본다. 나무처럼 정직하고 바르게,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던 음성이 탁자 속의 나이테처럼 동그라미를 그리며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듯 하다.
나무처럼 정직하고 바르게,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던 음성이 탁자 속의 나이테처럼
동그라미를 그리며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듯 하다.
이 다음에 내 딸아이에게 외할아버지의 정성과 깊고 진한
사랑을 들려주며 물려 줄 생각이다.
아버지의 향기
옛날 농촌에는 제재소 정미소 양조장을 운영하는 집안은 상류의 가정이었지
제재소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
판자가 나오면
마루판도 깔고
의자도 만들고
책상도 만들어 사용하던 그때 그시절
고향의 향기가 난다
힘들고 쓸쓸할 때나 외로울 때 그 작은 탁자 앞에 앉는다.
그럴 때면 거칠고 투박하지만 나를 안아 주셨던 따뜻한
손길을 느껴 본다. 나무처럼 정직하고 바르게,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던 음성이 탁자 속의 나이테처럼
동그라미를 그리며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