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본 것은 영화 <늑대의 유혹> 촬영이 한창이던 몇해전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큰 키에 잘 어울리는 교복을 입고 오토바이에 비스듬이 기대어 카메라를 지그시 보던 그를.
표지촬영을 하기 전에 보통의 경우는 영화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알고 촬영을 한다. 촬영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보거나 시사회에 가서 직접 영화를 보기도 한다. 그런데 촬영하기 전에 봤던 것들이 정작 촬영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촬영을 하다보면 어느새 미리 봤던 그 영화 속의 배우로 촬영하고 있는 나를 본다. 물론 배우란 촬영한 그 영화처럼 어느 기간은 생활한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씨네21의 표지까지 특정 영화 속의 배우로 보이는 것이 좋다고 보지 않는다. 인물이 좀 더 다른 모습으로 표지에 등장하길 나는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가끔은 모든 정보에서 귀를 닫는 경우가 있다. 이번의 경우가 그렇다. 이것이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보통의 씨네21 표지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촬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표지를 보고서 그 영화만이 연상된다면 그 사진은 생명력을 잃었다고 나는 믿는다. 표지사진을 보고 그 배우가 보이고 잔상으로 남아 계속해서 떠 오르길 나는 원한다. 그 만이 보이는 표지를 만들고 싶다. 배경이 화려하고 좋은 곳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배경과 어우러져 진한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그 인물이 가진 내면이 아주 조금이라도 보이는 그런 사진을 만들고 싶다.
다리가 마비될 정도로 홍대근처를 헤집고 다녔다. 촬영의 컨셉은 정해졌다. 배달되어 온 상자 안에 꿈꾸듯 누워있는 인형같은 배우. 흰 눈보다 더 흰. 그가 일어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서히 변한다. 허물을 벗어 던지듯.
상자를 주문하고 전신 거울 두장을 붙여 중간에 이음새를 만들어 열리게 한다. 주문과 함께 상자에 색칠을 주문했다. 비용이 상자를 만드는 것과 같단다. 사진팀 후배 서지형과 함께 칠하기로 한다. 네 개의 상자를 칠하고 나서 대담해진 나를 느낀다. 무서운 것도 없고 희망적이고 기분이 이상하다. 칠해놓은 상자가 너무나 이쁘게만 보인다. 알딸딸하니 기분도 죽인다. ......페인트에...... 취..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순조로운 듯 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전신 거울이 스튜디오 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스튜디오 문을 해체한다. 그래도 어렵다. 전신 거울도 해체한다. 겨우 들어오면서 모서리가 깨져나간다. 내 마음도 함께 깨져나간다. 욕이 목에 걸린다.
다시 조립한 거울을 닦으며 다시 주문을 왼다. 잘 할 수 있어. 잘 할 수 있어. 이렇게 몇 번을 되새긴다. 강동원이란 배우를 생각하면서 이유없이 하얗게 덮인 눈이 떠올랐다. 흰 눈에 이 배우를 눕히리라 마음 먹는다. 동대문시장에서 흰 솜 여섯 부대를 사서 끌면서 택시승강장까지 갔다. 빈 택시들이 내 앞을 그냥 지나간다. 세상의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입에서 신음이 샌다.
드디어 준비를 마친다. 이제 촬영만 하면 된다. 스튜디오 문이 열리며 키 크고 마른 잘 생긴 청년이 들어온다. 손가락이 멋지다. 나도 저런 손가락을 갖고 싶었는데. 장난기 어린 말투를 들으며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된다. 흰 솜에 파묻힌 강동원을 스튜디오 천장의 작은 구멍으로 본다. 이마엔 땀이 계속해서 흐른다. 스스로 흠칫 놀란다. 감겼던 눈이 스르르 풀리며 나를 본다. 하마터면 카메라를 놓칠 뻔 했다.
영화 <형사>의 '슬픈 눈'. 그의 슬픈 눈을 나는 보았다. 지금 다시 영화 촬영이 한창인 배우 강동원. 배우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만나면서 비로소 숨을 쉬고 씨네21의 사진은 독자와 만나야만 비로소 호흡을 시작한다. 관객들과 호흡하며 얘기하는 그를 기다린다.
그의 눈이 눈 속에 있다.
|
첫댓글 앗싸 일등이댜!!! ㅋㅋ
스모키 화장한 사진 넘 섹시하다규~~~~ㅠㅠ
손가락이 멋지다...손가락이 멋지다...손가락이 멋지다............ 어렸을 적 낫에 상처를 입어서 손이 못 생겨졌다는 바로 그.........................
저 상자 우리집으로 배달해주면 안되겠니..
ㅠ_ㅠ 역시 눈과 참치는 혼연일체냐규
엄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사진 작가 하고 싶다.....렌즈를 통해 눈이 마주치면 얼마나 떨릴까.......후.........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