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초가을에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경희야 ! 정득이가 수술실에 들어간데 어쩜 마지막일지도 모른데 얼굴볼려면
빨리 부산 고신의료원으로 가야돼 난 지금 준비 끝났어"
그 말을 듣고 직장생활하는 난 안절부절 하며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김해에서 송도 까지 자가운전은 자신이 없어 버스를 타고 어두운 초행길을 떠났다
친구들이 모여 수술을 지켜본 친구이야기에 숨죽여 귀 기울렸다
세상에 위암말기...
난 그자리에서 주저앉아 말문을 잃었다
결혼해서 5년까지는 친구들이 부러워 할정도로 잘살았는데 어느날 신랑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후 부터 소식을 끊어 가끔 들리는 소문이 울산에서 식당을 하며 두 자매를 키우며 살다가
3년전 재혼을 하여 그때부터 우린 재회를 하여 본격적인 모임을 구성하여
몇달만에 한번씩 얼굴보기로 했다
그 친구도 나처럼 잘 웃는데 왠지 그 웃음속에 그늘을 느껴게 한다
아주 어릴때 엄마를 잃어 참 슬퍼하는 모습을 종종보긴 해도 천사같은 마음을 지닌 친구였다
난 수술한 이후에는 내 사는게 바빠 못가본게 항상 가슴에 찡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가득했다
29일날 오후 다른친구 전화가 왔다 정득이가 내일 모임에 참석한다고 했다
음식은 죽 종류로 먹어야 된다며 그것도 호박죽이 몸에 제일 괜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고민에 빠졌다 집에 호박은 있는데 쌀가루가 없고 또 오늘 남편 생일이라 다른팀과
저녁식사 약속되어 일찍도 못갈것이고 어찌할까 고민하다 퇴근시간에 결국 못끊이는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약속장소로 갔다
다른 사람들과 웃고 즐기는 가운데 난 어딘가에 쫓기는 조바심을 느끼며 살짝 모임장소를
빠져 나와 방앗간을 찾아 쌀가루와 팥을 사가지고 차에 실어 놓고 남편의 생일장소에 합류했다
집에 돌아 오니 새벽 2시 만취가 된 남편 잠자리를 돌보고 그때부터 호박을 깎고 팥을 삶아
죽을 다 끊이고 나니 새벽5시였다
직장에서 친구에게 편지 한통을 쓰고 친구가 좋아하는 자그만한 화초를 하나 샀다
그리고 울산행 버스정류소에서 친구를 마중을 갔다 어둑어둑한 초저녁을 찬 기운 탓인지
난 마음이 서서히 경직되고 있다
항암치료를 받아 머리가 다 빠져 하얀모자를 씌고 반가워 어쩔줄 모르는 명량한 친구를 보며
눈물이 앞을 가려 혼났다 안 울려고 몇번이나 이를 깨물었는데
경희야~
"응" 난 태연한척 애를 써며 그래 많이 야윈네 응 함암치료가 참 독해" 하며
조잘거린다
함께 떠들며 놀다가 남편이 데리려 올시간이 되어 시청앞에서 아쉬움 작별을 하며
호박죽과 화초 그리고 편지를 건네니 왈깍 울면서 남편의 차에 몸을 실고 떠났다
늦은밤 목메인 목소리로 훌쩍 거리며 전화를 했다 천사같은 경희야 넌 아프지마
나 죽어도 이세상에서 너같은 친구 만난것 참 행복해 으 으으응 하며 전화를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날 바쁘다 는 핑계로 죽 을 못끊여 서면 난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생각하며 친구를 위해 그렇게라도 할수 있음이 참 행복했다
첫댓글 신년초에 가슴까지 스며오는 따끈한 차한잔 대접받고 갑니다
정말 인정이 많으신 찔레꽃님! 천사같은 친구가 천사같은 친구에게 그 바쁜 와중에도 호박죽 한그릇 차려 줄려는 마음의 행복은 너무나 값진 행복입니다^ 찔레님 정성에 감동허여 나도 눈물이 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