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의 재배 농장에서 생산되는 목화의 양은 전세계 공급량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게다가 목화 조면기(cotton
gin)의 발명 이후 남부에서 목화의 생산량은 담배를 능가하여 최고의 환금작물이 되었다.
목화
생산의 급격한 성장은 미국 남부와는 관계없는 사건에 의해 급격히 생겨난 국제적인 현상이었다. 목화에 대한 탐욕스러운 수요는 오늘날 우리에게
산업혁명으로 알려진 기술적, 사회적 변화에 의해 발생하였다. 18세기가 시작될 무렵 여러번의 발명을 통해 기계화된 방적 및 피륙 공장이 잉글랜드
북부에 세계 최초로 세워졌다. 이 공장들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면직물을 생산해면서 세계 경제에 혁명을
일으켰다.
같은 시기에 목화 조면기(cotton gin)가 발명되었다. 영국 방직업자들은 남부에서 생산되는 목화
전부를 사들일 의향이 있었다. 당시 생산 및 공급되던 목화의 양을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1830년에는 7십2만 포대가 생산되다가 1850년에는
2백 85만 포대로 증가했으며 1860년이 되면 거의 5백만 포대까지 늘어났다. 남북 전쟁이 시작되던 시기에 미국 수출품 중 60퍼센트를 목화가
차지했으며 총 수익이 1년에 거의 300만 달러에 달했다. 목화는 남부 경제의 중심이었고 국제적으로 중요한 생산품이었으므로 1858년에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상원의원 제임스 헨리 해먼드(James Henry Hammond)는 잘 알려진 호언장담을 남겼다.
"총을 쏘지 않고도, 칼을 뽑지 않고도, 저들이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오더라도 , 우리는 전세계를 우리의 발밑에 둘 수 있습니다. 목화가 3년 분량 정도의 재고밖에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영국
산업은 비틀대면서 곤두박질 칠 것이며 곧이어 문명화된 모든 국가들은 남부의 자비만을 바라게 될 겁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감히 목화에게 전쟁을
걸어 오지 못합니다. 지구상의 어떤 세력도 목화 생산지에 감히 전쟁을 시도하지 못합니다. 목화는 왕이니까요."(Cotton is
King)
남부인들은 자신들의 생존이 미 연방의 힘이 분열되기를 바라는 유럽 국가들의 공감대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유럽에게 목화는 필수품이므로 남북전쟁에 어떤식으로든 개입할 거라고 생각했다.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남부 동맹 국회는 유럽에 대한 목화 수출 허가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조치는 목화 외교를 통해 유럽을 참전하게 만들려는
속셈에서 나왔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으며 에이브러험 링컨(Abraham Lincoln)의 봉쇄 정책 때문에 남부는 수백만
포대에 달하는 목화를 운반하지도 못했다.
유럽 국가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도와 이집트 같은 나라들의 목화 생산량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래서 해상봉쇄를 뚫기 위해 철갑함인 메리멕호를 만들었다는군요... 그래서 일시적으로 남군이 해군에서 약간 우위를 차지하였으나, 곧 북군에서 비슷한 장갑함인 모니터호를 만들고, 이후에 메리멕 호가 자폭(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네요... 북군이 메리멕호 주둔지 부근에 진격하니깐 선장이 메리멕 호를 자폭시켰다고 기억이 납니다만...)함으로서 해상은 완전히 북군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당...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남부지역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한동안 미국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남북전쟁 직전에 남부지역에서 목화에 의존하는 정도가 극에 달하였는데, 전쟁이 일어남으로서 경제가 완전히 파탄나게 되었죠... 전쟁이 끝나고 백년 간 미국내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있다가, 요새 스노우벨트에서 선벨트로 산업이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딕시가 양키에게 이를 바득바득 갈만 하군요. [철도와 농장 파괴를 비롯한 초토화 전술+절대 고삐를 늦추지 않는 완전 해상봉쇠]로 내전기중 물자가 모자라 엄청 고생하고 전후에는 노예를 부리는 노동집약적 농장농업이 불가능해진 이후 남부가 한물 가기 시작 했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이정도로 철저하게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ㅂ-
얼마전에 기차여행에서 딥사우스지역에서 오신분들이랑 얘기를 나눈적이 있는데 그지역이 우리나라에서 어느지역하구 비교될수있느냐하면...대략 경북 북부내륙지역수준이라고 보시면 될듯합니다 많은 북부 미국인들은 아직도 딥사우스출신들을 무시하죠 더불어 딥사우스출신들도 북부에대한 증오감이 상당한...
CSS버지니아는 건조중인 것을 탈취한 것이 아니라 이미 건조하여 1855년에 취역했던 미합중국 프리깃함 USS 메리맥을 개조한 것입니다. 전쟁이 격화되고 USS메리맥이 남부의 수중에 들어갈 위기에 처하자 연방은 메리맥을 불태워서 자침시키지만, 나중에 남부가 이것을 다시 인양하여 최초의 케이스메이트 연안철갑함으로 개조하죠. 이것이 저 유명한 CSS버지니아입니다.
첫댓글 처음에는 겁주려고 했다가 강제로 봉쇄당하게 되었군요.
그래서 해상봉쇄를 뚫기 위해 철갑함인 메리멕호를 만들었다는군요... 그래서 일시적으로 남군이 해군에서 약간 우위를 차지하였으나, 곧 북군에서 비슷한 장갑함인 모니터호를 만들고, 이후에 메리멕 호가 자폭(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네요... 북군이 메리멕호 주둔지 부근에 진격하니깐 선장이 메리멕 호를 자폭시켰다고 기억이 납니다만...)함으로서 해상은 완전히 북군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당...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남부지역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한동안 미국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남북전쟁 직전에 남부지역에서 목화에 의존하는 정도가 극에 달하였는데, 전쟁이 일어남으로서 경제가 완전히 파탄나게 되었죠... 전쟁이 끝나고 백년 간 미국내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있다가, 요새 스노우벨트에서 선벨트로 산업이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딕시가 양키에게 이를 바득바득 갈만 하군요. [철도와 농장 파괴를 비롯한 초토화 전술+절대 고삐를 늦추지 않는 완전 해상봉쇠]로 내전기중 물자가 모자라 엄청 고생하고 전후에는 노예를 부리는 노동집약적 농장농업이 불가능해진 이후 남부가 한물 가기 시작 했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이정도로 철저하게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ㅂ-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부 사람의 이미지는 밀짚 모자 쓰고 멜빵바지 입고 다니면서 외부인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시골 촌뜨기(redneck)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죠.
셔먼이 지겹도록 강조했던 남부지우기전술(응?)의 힘은 정말;;; 전후 100년이 넘도록 후유증이 남아있는걸 보면...실제로 남부출신 미국분들 만나서 얘기나눠보시게되면 1960년쯤이 되서야 남부가 어느정도 개발되기시작했다는걸 아시게될겁니다 바람과함께 사라지다에서도 셔먼은 얼굴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남부인들에의해 아주 악마같은 인물로 묘사되죠...클라우제비츠나 셔먼이나 전쟁의 본질자체는 정확히 꿰뚫었던 사람들이란 생각이 다시한번드네요(비교적 전쟁외적으로는 온화했던 셔먼이 조금더 인간적이려나요 ㅡㅡ)
그나마 선벨트는 낫기나 하지 악착같이 싸웠던 딥사우스는 지금도 가난한 지역+꼴통으로 인식됩니다. 실제로도 그렇고요.
얼마전에 기차여행에서 딥사우스지역에서 오신분들이랑 얘기를 나눈적이 있는데 그지역이 우리나라에서 어느지역하구 비교될수있느냐하면...대략 경북 북부내륙지역수준이라고 보시면 될듯합니다 많은 북부 미국인들은 아직도 딥사우스출신들을 무시하죠 더불어 딥사우스출신들도 북부에대한 증오감이 상당한...
남부에서 프랑스와 영국에 줄을 대려고 했다가, 북군 해군에 걸려서 완전히 털리죠.. 이 때 일종의 국제법과 같았던 해양법을 북군이 어기는 바람에 한동안 영국과 북부에 전운이 감돌았으나 영국 측이 현명하게도 중립을 유지해 위기를 넘겼다는 이야기..^^;
매리맥호는 남부에서 독자적으로 만든게 아니라 원래 연방정부에서 건조중인 것을 남부가 탈퇴했을때 탈취한 것이죠. 그뒤 남부에서 버지니아호로 이름을 고쳤지만 그 이름은 별로 안알려지고 원래이름인 매리맥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입니다.
CSS버지니아는 건조중인 것을 탈취한 것이 아니라 이미 건조하여 1855년에 취역했던 미합중국 프리깃함 USS 메리맥을 개조한 것입니다. 전쟁이 격화되고 USS메리맥이 남부의 수중에 들어갈 위기에 처하자 연방은 메리맥을 불태워서 자침시키지만, 나중에 남부가 이것을 다시 인양하여 최초의 케이스메이트 연안철갑함으로 개조하죠. 이것이 저 유명한 CSS버지니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