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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Y9orDtOP0W0?si=ERISzzQjSgPFeiLo
능하신 하나님의 손 21:1~8
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
7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8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다툼과 고통을 보시는의로우신 분 21:9~14
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10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11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12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13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14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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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사람의 행위가 정직해 보여도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감찰하시며, 사람이 공의와 정의 행하는 것을 제사보다 기뻐하십니다.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며, 의로우신 이가 그를 환난에 던지십니다. 부지런하면 풍부해지나 조급하면 궁핍해집니다. 가난한 자를 외면하는 사람은 도움을 얻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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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하신 하나님의 손 21:1~8
사람이 노력하는 손보다 그의 길을 정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더 중요합니다. 왕은 최고 권력자이지만 그도 하나님의 손에서 봇물처럼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시며, 형식적 제사보다 공의와 정의 행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그분은 높은 눈, 교만한 마음, 악인의 형통을 싫어하십니다. 속이는 말로 모은 재물은 죽음을 부르는 것이요, 사라지는 안개와 같을 것입니다(6절). 죄는 인생길을 굽게 하고 망하게 합니다(8절). 한편 지혜는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있음을 알고 조급하게 행동하지 않게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부지런히 찾아 경영함으로 풍부함에 이릅니다(5절).
● 더 깊은 묵상
최고 권력자인 왕의 마음이 누구의 손에서 움직이나요?(1절)
나를 사랑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담대히 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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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과 고통을 보시는의로우신 분 21:9~14
다투는 여인과 큰 집에서 사느니 지붕 한 모퉁이에서 사는 것이 낫습니다. 악인은 남에게 재앙이 닥치길 바라고 이웃에게도 은혜를 베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집을 지켜보시고 그를 환난에 던지십니다. 벌받는 거만한 자를 보며 교훈을 얻고 지혜의 길로 나아와야 합니다. 가난한 이웃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는 자는 그 자신이 부르짖을 때 외면당할 것입니다. 한편 분노의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은밀한 선물과 뇌물은 사람의 분노를 가라앉힙니다. 그렇다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무엇으로 가라앉힐 수 있을까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제물 되신 예수님으로만 가능합니다(롬 5:10).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화평을 전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 더 깊은 묵상
가난한 자가 호소할 때 외면하는 사람은 어떤 대접을 받게 되나요?(13절)
내가 이웃을 긍휼히 여기고 화평을 추구하면서 받은 은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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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돌보는 사명
많은 사람이 내게 성공의 비결을 묻는다. 돌이켜 보면 내 사업 성공에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단지 그것은 ‘이웃의 삶을 향한 관심’에 닿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문구를 소개한다. “당신의 삶이 우리의 비즈니스다.” 이는 재화 판매나 서비스 차원에서 더 나아가 고객의 삶에 관심을 두고 그들을 섬기는 것을 사업의 핵심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즉 더 나은 삶을 살도록 고객을 돌보는 것을 사업의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고객을 계약 대상자로만 보지 않고, 진심으로 나 자신같이 사랑하겠다는 결단이 담겨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건물 설계 경쟁 입찰에서 우리 회사가 계약을 따냈는데, 경쟁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 회사 사장은 따로 만난 적도 없는데, 그가 하소연했다. “요즘 경기가 워낙 나빠서 직원 절반 이상을 해고했습니다. 이제 이 일까지 놓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합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그때 나는 “당신의 삶이 우리의 비즈니스다.”라는 문구를 떠올렸다. 나의 경영 철학을 경쟁 회사에까지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전에 미처 하지 못했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프로젝트 일부를 그 회사에 넘겨주었다. 사업상 경쟁 상대라 할지라도 그 또한 우리 이웃이며, 어려움에 놓인 이웃을 돌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웃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 자녀가 지향해야 할 삶의 본질이자 참된 성공의 비결이다.
W31 / 하형록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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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잠언 21장 3절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예배자의 바른 삶을 전제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던 다윗은 정의와 공의를 행했습니다(삼하 8:15). 하나님은 그분 백성에게 많은 제사보다 정의와 공의 행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예배 의식에 참석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며 불의한 삶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죄로 무너진 삶을 고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상의 자리에서 거룩한 삶의 예배자로 사는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에 잠기지 않으면 정욕, 탐심, 교만, 자기애와 같은 죄들이 우리를 휩쓸어 간다. -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정직하고 의로운 삶으로 왕이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모든 것을 살펴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거만하고 교만한 제 마음과 생각을 바꾸기 원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날때,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줄 알고 넉넉한 섬김과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465 주 믿는 나 남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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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름 문장 *
1.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끄시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정의와 공평을 지키며 사는 것을 더 반기시는 하나님(1~3v)
2. 악인의 길은 구부러졌지만, 의인의 길은 올바름(4~10v)
3. 주님께서 악인의 집을 주목하시고, 그를 재앙에 빠지게 하시고, 가난한 사람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으며, 그가 부르짖을 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심(11~14v)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고, 당신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가고, 정의와 공평을 지키며 살아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우리는 모두 주님의 손 안에 있는 자들이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그 인도하심 대로 나아가도록 노력하자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내 악한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억지를 부리지 말고, 주님께서 지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옳고, 그르게 행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형식적인 예배를 올려 드리기 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정의와 공평을 지키며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자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잠언, 인간의 삶의 형태에 대한 죄들, 그리고 재물에 대한 경고와 배우자, 이웃과의 관계, 뇌물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개별 잠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를 위하여 이 땅에 궁극적인 정의는 여호와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며, 높은 눈과 교만 그리고 악의 형통은 죄라고 지목하고, 불의의 재물은 멸망을 초래할 뿐이며, 인간관계의 윤리와 지혜로운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어 강물과 같이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 길을 돌리신다’라는 말입니다. 물은 힘을 갖고 있지만, 그 물이 흘러가는 방향은 물길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왕은 권력을 갖고 있지만, 그 힘의 근원은 여호와에게서 나오므로 그분께서 왕을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 ‘강도질과 같은 악한 짓은 필경 악인을 멸망시킬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들이 올바르게 살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입니다. 곧 악한 자의 나쁜 짓은 타인을 멸망시킬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자신을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 ‘거만한 사람이 벌을 받으면 우둔한 사람이 지혜로워지며 지혜로운 사람이 훈계를 받으면 지식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거만한 사람이 그 거만으로 인해 징계를 받으면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경고를 받게 되어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자에게는 교훈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그를 더욱더 지혜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 ‘남몰래 주는 선물은 화를 달래고 품에 감춘 뇌물은 큰 진노를 누그러뜨린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선물과 뇌물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비천한 사람에게는 은총을 베풀지 않으면서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는 잘 보이기 위해 예물을 바쳤던 당시의 악습을 꼬집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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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 의와 공의를 행하며 사는 것은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더 기뻐하신다’라는 말입니다. 공의는 하나님 성품중의 하나로, 공평한 것, 옳은 것, 의로운 것 등을 말합니다. 정의는 공의와 거의 같으나, 주로 공동체 내에의 척도나 기준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른 마음을 가리키며 진실된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런 공의와 정의 없는 제사는 결코 제사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원하시는 것들이 빠진 헛된 제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무리 주일날 예배를 드려도 그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위선적인 제사가 아니라 실천하는 공의와 정의가 더 제사답다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바르게 살지 않으면 교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탈무드에서도 그러한 일들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 회당에 나오는 품행이 나쁜 남자가 있었다. 랍비는 그에게 바른 행실을 갖도록 충고를 해주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자기는 매일 회당에 나오는 경건한 신자라고 대꾸했다. 랍비는 그에게 동물원에 매일 간다고 해서 사람이 동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바른 것을 배우는 것 보다는 바른 일을 행하는 것이 더욱 좋다는 말입니다. 행동은 말보다도 더 웅변적이기 때문이죠.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행위는 예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조주께 피조물로서 해 드릴 것이라고는 도무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사는 귀한 것으로, 문제는 그것이 그분의 성품에 맞게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겨운 제사가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속이고 예배를 드리면 거짓된 예배가 되며,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고 그것으로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을 기만하는 예물이 됩니다. 형제자매를 업신여기고, 험담하고, 뒷담화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행위는 축복보다는 오히려 저주받을 행위입니다. 더 나아가 해코지하고, 보복하고, 해치고 주일날 교회에 오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예배는 주일날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주일간의 삶이 곧 예배입니다. 삶으로 예배드리는 자만이 주일날 참다운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의 삶이 검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신령한 제사가 될 것입니다. 공의와 정의가 우리 삶의 기준입니다. 매사 바르고 진실되게 살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예배되게 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예배자로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1월21일 상동역과 청라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고양적편견, 과신편향, 확증편향 등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인지편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만큼 정직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잠21:2)
그래서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고 권고를 듣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12:15)
속에 불법이 가득하건 말건 겉만 옳게 보이면 된다고 여깁니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8)
그러나 스스로 옳다 하는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6:25)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보기에 옳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길을 가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신6:18~19)
오직 여호와께서는 심령을 감찰하십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16:2)
숨은 의도까지도 아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대상28:9)
마음에 숨긴 비밀도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시44:21)
그러므로 옳다 옳지 않다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따라서 세상이 다 옳지 않다 해도 주께서 옳다 하시면 옳은 것이고, 세상이 다 옳다 해도 주께서 옳지 않다 하시면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옳다 인정 받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10:18)
이미 주께서 우리를 옳게 여기셔서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살전2:4)
그러므로 오직 주께서 기뻐하시는 말씀의 일꾼 되기 원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여호와께서 살펴 보신다 (2절) ’
누구나 과거를 돌아보면 감추고 싶고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죄, 덮어 두었던 악하고 더러운 찌꺼기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순전하게 태어나, 죄를 완전히 차단하고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그런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로서도 끝까지 사랑하시고 존귀히 여김 받을만한 존재라고 끊임없는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은 오직 은혜, 그저 은혜입니다.
때론 우리는 하나님도 알아주지 않고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어리석게 생각하고 때론 그분의 눈을 피해 감추어 둘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깊이 숨겨둔 문제는 결국 곪아 터져 인생의 모든 부분에 악취를 풍기게 깊은 곳까지 상하게 하는 썩은 물이 되어 버립니다. 거만한 눈과 교만한 마음, 조급하고 거짓을 일삼거나 다투고 인색하게 살아가는 삶은 결국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생각, 자기중심적인 인생의 한계로 인한 죄의 열매들입니다.
하지만,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분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허락되고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와 절제의 풍성한 향기를 드러내게 됩니다. 오늘도 참 좋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놀라운 성화의 삶을 이뤄가는 하나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까?
➲ 정직함으로 살아가는 인생이어야 합니다(1~4절).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1절).. 왕의 권위는 이 땅에서는 절대적이지만 그 권위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물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물이 흘러가는 방향은 물길에 의해 결정이 되는 것처럼 막강한 권력을 지닌 왕이라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손에 이끌림을 당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모든 행위가 자기에게 옳게 여겨져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2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사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3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세 가지의 죄의 행동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4절)입니다. 이것이 ‘다 죄니라...’
세상의 눈은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하나님은 내 자신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아시고, 모든 행위를 아시고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신 분(시 139:1~4)이십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정직을 위해 에너지를 쏟을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정직함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위선적인 예배자의 삶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고, 실천하는 참된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은폐할 수 없으며, 주님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없음을 인정함으로 언제나 정직한 삶이 생활화 되어 있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성실함으로 살아가는 인생이어야 합니다(5~8절).
‘부지런한 자’와 ‘조급한 자’(5절)가 대조를 이루면서 그들의 운명이 갈리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조급한 자’는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 아니라 악한 계획을 가지고 불의의 재물을 모은 자를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은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고, 흩어지는 안개(6절)와 같습니다. 정의를 행하기를 싫어하는 악인 역시도 난폭하게 굴다가 멸망(7절)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임하기 때문(시 37:7~9)입니다.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8절).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의 삶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에 의해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직장이나 가정에서 그리고 모든 일상생활 가운데서 모든 맡겨진 일에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부끄러운 삶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곧 사라져 버리고 마는 안개와 같은 헛된 욕망을 붙잡으려고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행하면서 깨끗하고, 바르고, 성실함으로 의인의 길을 걷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결국엔 풍성한 열매로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내 인생이라고 하는 시간의 참 주인 되신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성실함으로 그 시간들을 채워가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11월21일 퇴근후 부평보건소 앞에서
➲ 사랑함으로 살아가는 인생이어야 합니다(9~14절).
진정한 행복은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앙하는 바탕에서 서로 간의 신뢰와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9절). 악인의 본성은 다른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범죄 할 궁리만 하다가 이웃까지 무자비하게 희생을 시킵니다(10절).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은 예외 없이 진행됩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집을 주목하셔서, 그 행위에 따라 결국엔 환난에 던지십니다(11~12절). 멸망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사람의 행위에 따라 보응 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으면, 자기가 부르질 때에 응답을 받지 못할 것...’(13절,쉬운성경)입니다. 자기가 행한 그대로 받게 된다는 지혜 문학의 원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밀한 선물...품 안의 뇌물...’(14절).. 똑같이 뇌물입니다. 뇌물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불의한 뇌물로 인하여 쉽게 얻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조건 없이 베푸는 친절과 사랑이 즉각적으로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결국에 사랑의 열매를 내 삶 가운데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가를 바라는 사랑의 실천이 아니라 내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경험한 자로써 마땅한 삶의 원리입니다. 혹 나의 무관심이 내 주변의 사람이 곤경에 처하거나 곤란을 겪고 있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악하고, 불의한 마음을 버리고,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수고와 섬김과 사랑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안개와 같이 곧 사라지고 마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과 수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잠 21:1~14절)...
1절 :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왕 같은 최고 권력자라 해도,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습니다. 농부가 물길을 내서 마음대로 물줄기를 이끄는 것처럼, 하나님도 자기 뜻대로 사람을 다스립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하고, 권력자 앞에 선 사람도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나의 모든 것을 통제하시는 주님께 모든 것 맡겨드리기 원합니다.
주님의 이끄심 따라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내 맘대로 살려고 했던 고집을 버리기 원합니다.
내 머리로, 나의 생각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 그냥 따라갈 수 있길 원합니다.
2절 :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사람들은 드러난 행동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행동의 동기까지 감찰하십니다. 그러니 행동만 바르게 하는 데 그치지 말고, 마음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게 가꿉시다. 특히 반복되고 익숙한 행동을 마음 없이 할 때가 있는데, 그때도 매 순간 새로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나의 생각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내 생각에 맞추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을 채우기 위한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서 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 뜻 구하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의 모든 생각을 아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도록 있는 그대로 드리기 원합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으켜 주실 주님을 의지합니다.
3,12절 :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공의와 정의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거창한 제사와 많은 헌금이 아니라(시 50:8-13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오늘 하루도 불의에 맞서 정의를 선택하고, 약자를 보듬으며 공평한 사회를 세우기 위해 노력합시다. 정의롭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공의와 정의라 하시네요.
제사드리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시네요.
의롭게 살고 공평을 행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일천 번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내 삶이 거짓, 미움, 증오, 불평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면 그 예배를 기쁘게 받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나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멀리하고 정의를 선택하며 살기 원합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늘 조심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담고 살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4-8절 :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성경은 악인의 교만과 형통을 '죄'라고 평가하고, 바르지 않은 소유를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의와 성실보다 재물이 주는 힘을 중시하며 죄와 허상을 자랑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나는 어떤 말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무엇을 부러워하는지 점검해보면, 어떤 소리를 따라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눈이 높은 것도 죄라고 하시네요.
자족하지 못하고 자꾸 탐하게 되기 때문이겠지요.
나에게 허락하신 오늘에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길 원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교만을 버리고 조급하지 않으며 속이는 말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구부러진 길을 가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더욱 의식하며 조심하겠습니다.
성령의 소리를 따라가도록 말씀에 민감하길 원합니다.
10.13절 :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악인의 특징 중 하나는 이기심입니다. 다른 이의 삶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심지어 누가 재앙을 당해도 자기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이웃과 사랑을 나누며 더불어 사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내가 위로하고 도와줄 사람을 떠올려봅시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같이 다른 사람의 잘 됨을 시기할 때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마음 안에 고소함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네요.
말로는 축하한다고 하면서 마음에서는 들끓는 시기와 미움이 있기도 했네요.
이웃의 어려움을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척했던 때도 많았네요.
나의 몸을 도사리고 알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 때도 많고요.
강도 만난 자를 불쌍하다고 여기면서도 손해가 올까 봐 그저 지나친 그들과 같이 행동하며 살기도 했답니다.
얼마나 주님 보시며 안타까우셨을까요?
부메랑 되어 돌아올 것을 생각하며 선을 심어야겠습니다.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진정으로 축하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내 마음 밭을 잘 가꾸어야겠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키워야겠습니다.
11절 :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거만한 사람은 벌을 받아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벌받는 것을 보고서야 깨닫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배움의 기회로 삼기에 쉽게 교훈을 받아들입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항상 옳고 바른 것을 배우려 노력합시다.
출처 : 매일성경 5/6월호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 넘어짐을 보면서 그런 죄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길 원합니다.
악의 모양은 너무도 다양하게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그들의 벌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똑같은 범죄가 얼마나 많이 반복되고 있는지요.
오히려 그걸 보고 배워 더 강도가 높아지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악행의 모습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인권이라는 포장으로 교육의 현장까지 파고드는 동성애의 문제도 점점 심각합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말씀만 따라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 풍조 아무리 바뀐다 해도 말씀은 불변입니다.
삶의 기준이 세상의 어떤 가치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되길 원합니다.
많은 사람이 간다고 옳은 길이 아님을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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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해설
오직 하나님 앞에서(21:1~7)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만,
스스로 높아진 마음은 온갖 죄악의 온상이 됩니다. 절대 권력자인 왕의 마음 역시
하나님 손안에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깨끗하고 의로운 듯해도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면
부족한 죄인임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성과와 업적에 도취되어 마음이 높아져서는 안 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삼상 15:22).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겸손한 자세로 부지런히 인생을 경영할 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부요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불법과 편법을 자행하지 마십시오.
성도는 하나님의 원칙과 정의를 고수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제사보다 공의와 정의 행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면 내 마음이 어떠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21:8~14)
이기적인 사람은 주위에 많은 불편과 고통을 주지만, 이타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가 됩니다. 자기 입장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최대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죄인의 길은 구불구불하지만 의인의 길은 곧게 뻗어 있습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다투기를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은 움막에서 혼자 지내는 것보다 못하고,
초가삼간이라도 현숙한 아내와 함께 있으면 행복합니다. 악인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기에 끊임없이 남을 험담하고 끌어내리려 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사회적 약자를 돕고 섬기며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려 애씁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응답하실 뿐 아니라 영원한 상급을 주십니다.
- 묵상 질문: 악인이 다른 사람과 연합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가난과 고통으로 부르짖는 사람들을 보고도 외면했다면, 이제 어떤 결단이 필요할까요?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미리 아시고 택하셔 그분의 자녀로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채우시는
주님의 그 십자가의 크신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분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그 지혜의 말씀과 계시의 영으로 채워주시고
변치 않는 그 신실함 안에서 평강으로 나아가도록 선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그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고 그 모든 필요와 간구에 넘치도록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길 잃은 백성들,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평안을 채워 주시고 전심으로 예배드리는 자유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그 사랑에 기쁨과 감사로 나아가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