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완주 여행] 정몽주의 문인 하연(河演).세가지 기이하다’는 뜻 삼기(三奇)정..........69
.
삼기정(三奇亭)
.
69. 정몽주의 문인 하연(河演).세가지 기이하다’는 뜻 삼기(三奇)정
.
이번에는 유랑자가 삼기정(三奇亭)을 찾았다. 삼기정은 완주군 고산읍 삼기리에 있는데. 1439년(세종 21)에 건립된
정자로 ‘고산읍지’에 율헌 최득지(栗軒 崔得之 1379-1455)가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데 관광지도에서만 보
았던 삼기정을 찾는데도 애를 먹었다.
.
인근 주민들 조차 잘 모랐던 정자, 세가지 기이하다’는 뜻을 가진 삼기(三奇)정!. 돌고돌다 어느 잔치집에 많은 사람
들이 몰려있어 다가가 물어 보았더니만 정자 이름은 잘 모르고 그곳에 가면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는 것만 듣고 겨
우 찾은곳이 삼기정이다.
..
.
율헌 유적지(栗軒 遺跡地) 와 율헌 최선생(栗軒 崔先生) 기적비
.
.
전북 완주군 삼기리(三寄里), 하삼(下三寄. 前三寄) 부분명-삼기정, 백현, 산머리 하삼기는 삼기정 마을을 위치에 따
라 상하 전후로 나눈 이름이고, 삼기정은 현감 최득지(崔得之)가 세운 정자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는데 그 정자 근
처의 경치가 좋기로 잘 알려졌다.
.
세종21년(1439)에 당시 현감이었던 최득지(崔得之 고려 우왕 5 1379~ 단종 3 1455)가 지었던 삼기정(三奇亭), 고산
현의 동쪽 6리에 있었던 정자다. 고산현은 전라북도 완주군에 속한 지역의 옛 이름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정몽주
(鄭夢周)의 문인으로 영의정 등을 지낸 경재(敬齋) 하연(河演· 우왕 2년 1376∼단종 1년 1453)이 쓴 기(.三奇亭記 輿
地勝覽)가 남아 있어 오래된 정자로 보이나 사라지고 없었다.
.
삼기정유허비(三奇亭遺墟碑)
.
.
.
.
삼기정은 오랜 세월동안 퇴락과 중수를 거듭해 오다가 1990년에 복원되었다. 정면 2칸․측면 2칸 규모의 정자는 골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으로 마루의 사방에 난간을 설치하였고, 처마에 단청을 입혔다. 정자 내부에는 한말의 의병장
이었던 신주 기우만(辛州 奇宇萬 1846-1916)이 1912년에 글씨를 쓴 하연(河演)의 ‘삼기정기(三奇亭記)’가 편액으로
걸려있다.
.
전면 부위에는 강암 송성용이 쓴 ‘三奇亭’이라는 현판이 외부에 걸려있다. 정자 옆으로는 최득지의 후손들이 1875
년(고종 12)에 세운 삼기정유허비(三奇亭遺墟碑)가 있다. 삼기정은 하연이 전라관찰사가 되어 관내를 순시하던 도
중에 고산읍에 들렀다가 소풍을 나간 것이 삼기리였다.
.
삼기정(三奇亭) 현판은 전라북도 김제 출신으로 한국서예의 독자적 경지를 이룬 서예가이자 유학자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1913∼1999)의 필체다.
.
삼기정기(三奇亭記)
.
삼기정내 상량에 '檀君紀元四千三百二十三年庚午重建世宗己未創建'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 1990년에 다시 중건한 것이다.
.
.
그는 이 곳의 냇물(水), 돌(石), 소나무(松)가 잘 어울리는 경치에 마음이 쏠려 삼기라 이름 지어 송판에 글씨를 써주
었으니 세 가지가 기이하다는 뜻이었다. 당시에 고산현감 최득지가 정자를 세우고 하연에게서 기문을 받아 정자에
거니 이것이 삼기정이다. 하연이 쓴 삼기정 기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고산현 동쪽 오리쯤에 자그마한 언덕이 있으니 절벽이 깍아 질렀고 그 아래에는 긴 내가 맑게 굽어 흐르고 위에
는 노송이 울창하여 푸르렀다. 그 서쪽에는 평평한 들이 펼쳐있다. 임인년(1422) 봄에 나는 고산읍에 간일이 있어
이 언덕에 오르게 되었다. 연하 초목이 모두 아름답게 내 눈앞에 깔려 있는데 수석과 송림이 더욱 기이하게 보였다.
이에 삼기라 이름하여 깍은 나무에 글씨를 써주었더니 이제 현감 최득지가 여기에 정자를 짓고 나에게 기문을 청하
니 내가 처음 이름을 지어 준 것으로써 그러한 뜻에서 사양할 수 없게 되었다.
.
.
좌로부터 운암산 동성산 안수산 구명산 까지 산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
.
.
생각하건데 사람의 마음은 물건을 보고 감동되는 것으로 눈을 달리하여 보게된 그 느낌은 더욱 간절했다. 맑은 물
을 보게되니 나의 천부의 본성을 더욱 맑게 하고 바위가 엄엄한 것을 보니 뽑아낼 수 없는 확고한 신념을 더욱 굳게
하며 소나무의 변하지 않는 푸르름을 보게 되어 곧고 굳은 절개를 더욱 높게 하니 이 언덕의 세 가지 물건이야 말로
어찌 경치가 아름답거나 찌는 더위에 재미있게 논다는 것 뿐 이리요.
.
내가 다른 사람과 소견을 달리하고 있는 것은 뒷날에 선비들이 이 언덕에 오르면 느끼고 뜻을 두게 될 것으로 생각
할진대 마음을 삼가고 뜻을 길러내는 기회가 족히 되어야 할지라. 또한 목욕을 하고 풍월을 하는 행락도 있을 것으
로 전날에 내가 이름을 지은 뜻 거의 이 같을 지다.”]
.
.
.
.
.
암튼 삼기정에 올라보면 마을과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시야가 시원스럽다. 이렇듯 선인들은 자연이 주는
풍취를 관조하며 여유와 너그러움을 배웠으며, 자연을 통하여 인간 본연의 본성을 더욱 맑게 하고, 확고한 신념을
더욱 곧게하며, 절개를 높게 하는 자기수양은 물론 교훈을 얻게 되고, 절제와 극기를 통한 인간완성의 모럴까지도
추구하려는 자연친화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
지금은 삼기정을 세운 언덕 아래로 푸르게 흘렀다는 냇가와 노송은 사라지고 옛 바위와 삼기정만이 한시대의 기억
을 간직한 채 외롭게 서 있다. 이는 현대화로 이어지는 댐 건설과 수로의 변화가 가져다준 결과 일것이다. “산천은
유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고 읊조리던 옛 시인의 싯귀가 아쉬움을 자아낸다.
.
.
완주 곶감이 이렇게 유명 한줄 내 미처 몰랐다. 완주에 가보니까 곶감 축제라는것고 있었으니...
.
.
.
겨울 주변 나무들은 단아하다. 그 어떤 장식도 가식도 없는 순수로 무장하고 있다. 낙엽을 털어버린 홀가분한 차림
또한 간결하다. 다소 을씨년스럽기는 하지만 호젓하게 한겨울의 정취를 맛보고 싶다면 이곳을 둘러볼 일이다. 어느
날 책을 읽다 말고, 저녁 무렵 산책을 하고 싶을 때 마음에 아무런 준비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
물론 혼자일 때 더욱 좋을 것 같다. 혼자일 때 자아를 회복하고 자신을 온전하게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혼자’는 주변에 아무도 없거나 자폐적인 삶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삶을 이끌어 가는 주체를 의미하
는 것이다.
.
.
완주 곶감이 이렇게 유명 한가요?
.
.
.
.
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LKz0/430
.
전북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451-1
(농가주택 뒤편 언덕위)
.
...
첫댓글 좋은 역사 공부하고 갑니다. 본가 근처에 정몽주선생님의 묘가 있어요. 충의 절개의 상징이셨던 선생.
처음에는 이성계와 함께 하다가 왕이 되려는 야심을 들어내자
끝내는 고려를 지키고자 하는 정몽주는 더는 한편이 될 수 없었지요
정몽주는 고려를 끝까지 지키고자 한 충신으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 입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고
살아서는 진천땅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땅이 좋다 라는 뜻으로 정몽주 선생도
용인에 묻혔지요,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