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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21세기 문명사회를 살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고등교육을 이수하고 석, 박사 과정을 마치거나 해외 유학을 다녀온 학력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 이런 고학력자들이 넘쳐 나고 경제적 성장의 여파로 다양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들을 비롯해서 선출직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중에는 국회의원도 있고 사법부 수장, 행정부의 장차관, 사법부의 판검사, 군장성들도 포함되어 있고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대기업 총수들과 유력 단체의 인사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인사들이 끊임없이 정권의 요직에 기용될 때마다 꾸준히 하마평에 오르곤 한다. 그러나 이들이 국회 청문회에 나와 발언하는 모습들을 지켜볼 때마다 답답함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들은 한결같이 위장 전입을 다반사로 하고, 탈세, 업무추진비는 영수증도 첨부하지 않고 수억 원씩 펑펑 쓰면서도 당당하다. 평생 호의호식하며 잘 먹고 잘 살아 온 사람들이 자신을 포함해 자녀들은 선택적 병역 기피(평생 멀쩡하다가 군대 갈 때만 되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그 시기를 넘나면 다시 멀쩡해 지는)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군대를 안 가고, 논문 표절, 허위 봉사 시간 기재 등 일반 시민이라면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범죄 행위와 망언까지 일일이 열거하기도 부끄러운 행적들이 공개 되지만 아무도 자진사퇴 하거나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뻔뻔하게 공직에 취임하고 시민들에게는 공정과 원칙을 부르짖으며 법대로를 외치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이 이 지경이고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는 돈과 권력이 있으면 있는 죄도 없어지고 돈과 권력이 없으면 법과 원칙대로 처벌한다는 소리가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괴감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80년대 한 인질범의 입을 통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유명한 일화가 사십 년이 넘도록 공감을 얻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뻔뻔하고 파렴치한 모습은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유전되어 인격 파탄 적인 행동을 벌이고 상습적인 음주 운전과 마약, 폭행을 저질러도 비싼 변호사를 선임해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OECD 국가들 중에서도 경제적인 성장만 이룬 삼류국가라는 놀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공직자든 재벌이든 기득권 세력이든 사회적 이슈가 되면 우선 변명하기 급급할 뿐만 아니라 불과 얼마 전에 자신의 입으로 한 말 조차도 손바닥 뒤집듯 뒤집으며 식언食言을 밥 먹듯 하는 공직자들을 보면서 ‘내로남불’과 ‘아전인수’가 판을 치고 진정한 사과와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더 당당하고 뻔뻔하게 국민들 앞에 나서서 자신의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눈과 귀는 닫고 달콤한 사과만 베어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서 안타깝게 죽어 간 청년들과 그 가족들은 물론, 그들을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상처와 배신감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리그를 만들기에 급급한 ‘쑈’를 벌이고 있다.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연탄을 주 연료로 난방을 하고 취사를 하며 살아 왔다. 이에 따라 태백 삼척 정선 등 백두대간을 축으로 하는 고장에는 탄광에서 일하려는 청년들이 전국에서 몰려 들었고, 실제로 광부들의 첫 월급은 당시 말단 공무원 월급의 두 배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사실 막장은 광부들이 탄을 캐려고 지하 수백 미터에 들어가서 더는 갈 곳이 없는 맨 끝부분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버팀목을 세우기 이전의 불완전한 구조로 되어 있고 한 두 사람이 겨우 기어 들어가서 일할 정도로 좁고 채굴 도중 무너질 위험이 가장 큰 곳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늘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반복되기도 했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광부들 뿐만 아니라 광산촌 사람들에게는 ‘막장’이란 말은 금기어로 되어 있었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고 광부를 지원하는 청년들이 많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직업이다. 그런데 세인들은 마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막장으로 흘러 들어가서 광부가 된다고 믿고 있었고, 광부들을 막장의 인부들이라고 천대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막장의 의미는 생명을 건 인부들의 생존권이 달린 이름이었지만 인생을 막 사는 사람들처럼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내명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런 막장의 시대가 21세기 포노사피엔스 시대에 소위 자칭 엘리트라고 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다는 사람들의 눈과 입을 통해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니 참으로 ‘개가 웃을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야만적 현상은 역이나 터미널 휴게소 등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중화장실이 있는 곳에 가면 분명하게 나타난다. 휴지를 둘둘 말아 버리고 가거나 다음 사람을 위해 청결하게 사용하기 보다는 내 집이 아니라는 이유로 멋대로 쓰고 쓰레기를 방치하고 오물을 묻히는 등 불결하고 기분이 상해서 들어가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 놓는 경우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공짜로 쓰면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청결하게 쓸 수는 없을까.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은 결국 사회적 불만으로 곳곳에서 노출되고 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현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성숙하지 못한 시민은 야만의 시대를 주도하는 권력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정치인이 말을 했던가, ‘민중은 개돼지라고’ 그런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민중이 먼저 깨어야 할 것이다.
시인 아동문학가
월간 ‘시문학’ 등단, 한국시문학문인회 회장
계간 ‘P.S’ 발행인, 문화앤피플 편집위원
시집: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 외 다수
kng2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