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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정치권에선 정권 찬양물을 빗대어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지나치게 정권을 옹호하는 홍보물이 나타나면 "또 용비어천가 쓴다.", 혹은 ''x비어천가(x는 주로 해당 인물의 성씨)"[20]라면서 까는 게 보편화되었다. 전제군주제인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민주주의 국가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무언가를 용비어천가와 비교한다면 '민주주의 사회를 역행한 전제군주정에서나 볼 수 있는 무언가'라는 뜻도 내포한다.
하지만 용비어천가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도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125조에는 경천근민(敬天勤民)[21]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제왕들과 태조 이성계를 비교하는 노래 2줄로 구성된 용비어천가는 110장~125장에서 결국 패왕적 위업을 달성하든 유교적 업적을 달성하든 본 목적이 무엇이었냐는 것을 묻고 경천애민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22] 끝나는데, 성경의 전도서와 매우 흡사한 면이 있다. "우리 조상님들이 이렇게 고생고생하시면서 집안을 보존하고 일으키셨으므로 오늘날의 왕업이 있게 되었으니 후세 왕들은 부디 선왕이 창업하실 때의 초심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에 가깝다.[23]
여느 조선에서 착안된 비유적 표현이나[24] 밈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정권 찬양물을 용비어천가에 빗대는 것은 용비어천가에 대한 실례일 수도 있다. 물론 용비어천가가 기본적으로 조선 왕조에 대한 찬양이 들어간 건 사실이니 딱히 할 말은 없겠지만 적어도 친정부 언론의 숱한 정권 찬양 기사들에 비하면야 점잖은 편에 속한다.
훈민정음이 창제 및 반포된 후 간행된 문헌이다 보니 한국어학뿐만 아니라 언어학적으로 매우 중요도가 높다. 중세 몽골어는 물론 여진어로 된 각종 인명과 고유명사가 한자 가차표기와 함께 당대의 발음으로 주석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을 뜻하는 '손'의 한글 문헌상 첫 용례가 이 문헌에 등장한다. 다만 범위를 넓히자면 더 이른 시기인 1103년에 집필된 계림유사라는 여행기에서 '客曰孫(손님은 손이라고 한다.)'라는 문구가 등장하여 용비어천가가 최초라고 볼 수는 없다.
영어로는 보통 Yongbieocheonga[25]라고 쓰며, Song of Dragons Flying in Heaven라고 번역된다. 제임스 호이트(James Hoyt)의 뿌리깊은 나무 번역은 "A tree with deep roots, Because the wind sways it not, Blossoms Abundantly And bears fruit. The water from a deep spring, Because a drought dries it not, Becomes a stream And flows to the sea."라고 한다. 2008년 경 삼성이 만든 영국의 한국 갤러리에 있는 용비어천가 현판에서는 Songs of Dragons라고 번역했으며 내용 중 일부가 "The deep-rooted tree Is not swayed by the wind... The deep-sprung well Is not dried by drought..."라고 번역되었다.
사극 뿌리 깊은 나무와 육룡이 나르샤의 제목이 이를 인용한 것이다. 각각 세종 치세와 여말선초가 배경인데 다음 구절인 샘이 깊은 물도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만들 예정이었으나 계획만 나온 채 몇 년째 소식이 없다.
한때 동의보감에서 유래한 "동의? 어 보감"을 응용하여 청소년들이 "용비? 어 천가"라는 은어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후 사장되었다.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에 EBS 연계 지문으로 출제되었다.
2019년 계명대도서관 소장본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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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 2장은 1만 원권 지폐 도안에도 사용되었는데 앞면의 일월오봉도 위에 있다.
고대 이집트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 로제타 석이 바로 그 것으로,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은덕을 기리는 내용이 적혀 있다.

[1] 훈민정음은 세종 28년(1446)에 반포됐다.[2] 두 번째는 부처의 은덕을 찬양하는 석보상절로 세종 28년(1446)에 편찬되었다.[3] 원문에는 한자만 적혀 있고 동국정운식 한자음은 기재되지 않았다.[M¹] 海:ᄒᆡ東도ᇰ六·륙龍료ᇰ·이ᄂᆞᄅᆞ·샤:일:마다天텬福·복·이시·니。[M²] 古:고聖셔ᇰ·이同또ᇰ符뿌·ᄒᆞ시·니[M³] 불·휘기·픈남·ᄀᆞᆫᄇᆞᄅᆞ·매아·니:뮐·ᄊᆡ。곶:됴·코여·름·하ᄂᆞ·니[M⁴] :ᄉᆡ·미기·픈·므·른·ᄀᆞᄆᆞ·래아·니그·츨·ᄊᆡ。:내·히이·러바·ᄅᆞ·래·가ᄂᆞ·니[8] "내ㅎ+ㅣ(주격조사) 일(이루어지다, 되다; '이루다'는 원래 일+우+다의 형태이다.)ㅓ"의 형태이므로 "내가 되다" 쪽이 "내를 이루어"보다 더 원문에 가까운 직역이다.[9] 전문은 위키문헌으로.[10] 다만 읽다보면 그저 단순히 비교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근히 세종 조상들이 더 낫다고 추켜세우고 있다.[11] 세종은 조선 4대 임금이다. 2대 정종과 3대 태종이 형제이므로 세종은 세대로는 겨우 3세대다.[12] 태조 위부터는 당연히 이성계가 왕이 된 뒤 추존되었다.[13] 다만 공식적으로는 태종이 정종의 양자로서 세자가 된 다음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6대조에 포함시켜도 아무 문제가 없긴 하다. 이렇게 되면 목조를 빼거나 7대조로 바꿔야 했겠지만 말이다. 물론 동북면으로 거점을 옮긴 사람이 목조인지라 목조를 제외시키기는 불가능했을 테고, 중원 왕조의 황제들도 6대조까지 추존하지 7대조까지 추존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14] 《훈몽자회(1527)》에서도 動(움직일 동)의 훈음을 '뮐 도ᇰ'으로 표기하고 있다.[15] 종성 자리에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ㆁ'만 쓸 수 있다는 중세 한국어의 표기 규범이다.[16] 반면에 당시 쓰이던 '좋다'는 '깨끗하다'라는 의미를 지녔다.[17] 계절 여름은 '녀름'이라고 표기하였다.[18] 현대 국어에서의 '하다'는 'ᄒᆞ다'로 표기되었다.[19] 현대 한국어로의 번역과는 다르다. 원문의 표현을 유지하되 표기 방식만 연철에서 분철로 바꾸는 것이다.[20] 예를 들면 문비어천가는 문재인 정부를 찬양하는 글을, 윤비어천가는 윤석열 정부를 찬양하는 글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를 찬양하는 글은 엠비어천가, 이재명 정부를 찬양하는 글은 명비어천가로 불렸다.[21]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함.[22] "님금하, 아ᄅᆞ쇼셔. 낙수(洛水)예 산ᄒᆡᇰ(山行) 가 이셔 하나빌 미드니ᅌᅵᆺ가(임금이여, 알아두소서. 낙수에 사냥 가 있으면서 할아버지만 믿고 있겠습니까.)" 이는 하나라 우왕의 손자인 태강왕처럼 정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23] 여담으로 중국의 유송도 시조인 유유가 이런 의미로 자신이 농사짓고 살던 시절에 쓰던 농기구들을 보존해 전시하였으나 불행히도 중국사에서도 탑급의 막장 왕조가 유송이라 아무 의미가 없었다(...)[24] 당장 선비, 유교 등이 현대 대한민국에서 어떤 식으로 자주 남용되는지 생각해 보자.[25] YongBiEoCheon-ga라고 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