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 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1:18~22)
일주일간 고난주간으로 지킵니다.
6일 동안 청년들이 주관하여 찬양도 부르고 고난주간을 지킨다고 하니 감동이 밀려옵니다.
청년들이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요?
목사님들은 절기 설교를 할 때가 있는데 매번 같은 주제로 설교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절기 설교는 성도들이 들어서 무엇을 말할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주시는 성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어제는 종려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지내시다가 아침 이른 시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오늘 이른 새벽에 배가 고팠다고 특별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먹어도 배부르지 못한 어떤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참고 기다리면서 제자들에게 시켜서 밥을 달라고 하셨던지, 아니면 기적을 베풀어서 해결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그동안 제자들을 먹이고 보살폈지만 정작 자신은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한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배가 고프다.’ 이는 16강에 올랐던 히딩크 감독이 한 말이었습니다.
그는 승리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배가 고프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에 대한 배고픔이었을까요?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기대했지만 열매를 맺지 않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시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앞 구절에 성전을 정화시키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성전에서 매매하는 행위를 보시고 상을 엎으시며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잎만 무성하다는 의미는 예배를 잘 드리는데 열매가 없는 우리를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열매가 없다면 열매 맺는 일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면 될 것입니다.
21절에서 22절까지 믿음의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기도하는 것에 대한 응답을 받게 되리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마가복음 11:21~22)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셨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성경의 진리인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사랑이 최고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이는 소망도 사랑도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믿음 위에서 출발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복음 14: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