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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b7pKKwucy0?si=f6ZhUPhU9kFZREjc
심판을 선언하신 하나님 1:1~6
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6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 1:7~13
7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
8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내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9 그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어문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제이 구역에서는 울음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11 막데스 주민들아 너희는 슬피 울라 가나안 백성이 다 패망하고 은을 거래하는 자들이 끊어졌음이라
12 그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13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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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유다 왕 요시야 때에 스바냐가 받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땅 위의 모든 것, 그분을 배반하고 따르지 않은 자들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기에 그분이 희생을 준비하시고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날에 포악과 거짓을 행한 자들의 집은 황폐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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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을 선언하신 하나님 1:1~6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4대손 왕족 출신으로, 요시야왕 초기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1절). 그가 선포한 하나님의 첫 음성은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2절)입니다. 심판의 범위와 대상이 ‘땅 위의 모든 것’이라는 점은 유다 백성의 죄가 얼마나 심각하며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3절). 하나님이 분노하신 원인은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손을 펴서’ 바알 신당, 바알 우상을 섬기는 그마림(제사장), 일월성신을 경배하는 자, 하나님과 말감에게 동시에 맹세하는 혼합주의자, 그리고 배교자 및 불신앙에 빠진 자를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4~6절). 하나님의 손은 구원의 손이자 심판의 손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심판의 범위와 대상으로 알 수 있는 유다의 죄악상은 어떠한가요?
‘돌이키라’는 하나님 음성을 무시하고 죄악의 길로 계속 행하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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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 1:7~13
스바냐는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7절)라고 선언합니다. 유다를 제물로 삼으실 날, 곧 하나님이 이방 민족들을 불러 유다를 침공하게 하실 ‘여호와의 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되면 참혹한 상황이 야기될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한 왕들의 아들, 이방 옷을 입은 자, 권력 남용으로 재물을 약탈한 자가 그날에 심판받을 것입니다(8~9절). 이방인들이 유다를 침략할 때 관문이 되는 어문과 제2구역 사람들이 통곡하고, 작은 산들은 무너질 것입니다(10절). 재물을 추구하던 막데스 주민들도 애곡할 것입니다(11절). 하나님은 등불을 켜 드시고, 영적 타락에 빠져 그분을 조롱한 자들을 찾아 심판하실 것입니다(12절). 하나님은 의인에게 복을, 죄인에게 화를 내리시는 살아 계신 참신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여호와의 날’에 유다에 벌어질 참혹상은 어떠한가요? 하나님을 향해 무감각해졌거나 신앙 열정이 식었다면, 이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입술로는 믿음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욕심을 좇아 세상 자랑만 앞세우는 저를 용서하소서. 무너진 경건을 회복하고 삶에 깊숙이 배인 죄의 흔적을 씻어 내길 원합니다. 진리를 가장한 세상 이치에 귀를 닫고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 심판을 면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179 주 예수의 강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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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해
스바냐는 요시야 통치 초기 종교혼합주의에 빠진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2, 3절). 그러나 심판의 초점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습니다(4~6절).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바알’과 ‘천체’와 ‘밀곰’을 섬겼습니다(4~5절). 그들은 하나님을 잡다한 신들 중 하나로 여기며 무시했습니다(6절). 하나님은 그들을 재판정에 세우시고 판결문을 낭독하십니다(7절). ‘피고’는 이방의 관습을 따르는 지도자들과 그들을 위해 폭력과 속임수로 강탈을 일삼는 종들입니다(7~9절). 심판은 무역과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물고기 문’과 ‘둘째 구역’에서 시작됩니다(10, 11절). 하나님은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던 자달을 샅샅이 뒤져 그들의 모든 소유를 거두어 가십니다(12, 13절).
하나님은 매순간 당신을 찾고, 당신께 여쭙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매순간 주님을 찾고, 매순간 주님께 먼저 여쭙는 삶이 되도록 하자
우리의 삶이 온전히 주님께로 향하고, 주님께만 모든 포커스가 맞춰지는 삶이 될 수 있도록 하자
우리의 모든 것을 바라 보시고, 우리와 더 깊은 사귐과 교제를 원하시는 그분께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자
<스바냐>
그는 히스기야의 후손으로 유다 왕국의 왕족이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귀족의 위치에 있었으나 왕족들의 죄를 책망하였다.
스바냐는 요시야 왕 집정 초기에 예언을 시작햐였다(기원 전641~610). 그 때는 나훔이 예언한지 50년이 지난 후 였다. 히스기야의 왕의 뒤를 이어 세 사람이나 왕위에 올랐다. 요시야 왕 앞의 두 왕은 악덕한 왕이요. 우상 숭배하는 하는 왕들이었다. 나라 안에는 온갖 악습이 행하여지고 사회적인 불의와 도덕적인 부패가 날로 성하여 부자는 가난한 자를 핍박하고 악랄하여 그들의 부를 쌓고 있었다. 요시야 왕이 16세의 젊은 나이로 종교 개혁을 일으켰을 때 나라 안의 형편은 그처럼 악랄할 수가 없었다. 요시야 왕은 유다 왕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왕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손에 도끼를 들고 우상 숭배의 산당들과 우상들을 쳐 부수었다. 그러한 때에 스바냐의 외치는 말이 그 얼마나 큰 힘을 개혁자들에게 주었을까?
스바냐는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 하였다.
이 책의 내용에는 무서운 책망, 위협 진노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의 처음 부분은 슬픔과 어두움으로서 가득 차 있으나 마지막 부분은 구약 성서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송가로서 끝나고 있다.
<개요>
1장 유다에 대한 탐문
1:1 저자의 시대적 배경
1:2~18 유다에 대한 심판
스바냐의 에언 가운데 “여호와의 날”이란 말이 일곱 번 나온다. 성서 가운데 나오는 이“날”이란 말은 곧 오늘날의 하루 를 말한다. 그러므로 그 “날” 앞에 “40” 이나 “3”자가 적혀 있다면 그것은 곧 24시간을 하루로 생각하는 40일과 3일 을 말한다. 그러나 앞에 아무 숫자 없이 “날”이라고 쓸 때는 한 “시기” 도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스바냐의 시대의 유대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징벌하시고 포로로 하실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앞으로 올 “주의 날”은 대 환란의 시기와 천년기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장차 어떤 특별한 심판이 있게 될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깨우침을 받았다.
1.명예로운 이름
1절에서는 스바냐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소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그분이 사용할 사람을 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바냐를 택하여 유다의 앞날에 대하여 예언케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말씀에서 눈여겨 보아야 하는 부분은 이 스바냐를 소개하면서 그가 누구의 자손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바냐의 경우는 4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그것은 그가 바로 유다의 위대한 왕 히스기야의 자손임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다윗 이후로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 선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살아가면서 우리의 자손들에게 내가 어떠한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스바냐에게 히스기야와 같이 우리의 자손들이 길이 기억할 수 있는 믿음의 명예로운 이름을 가지는 성도로 살기 위하여 힘써 노력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2.공의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스바냐에게 예언케 하는 것은 바로 유다의 멸망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유다를 다 쓸어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더 이상 유다는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을 소유하신 분이시지만 결코 무분별한 사랑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범죄에 대하여 공의로우심을 잃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공의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죄악된 자리에서 자신을 지키는 믿음의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공의의 하나님 앞에 부족함이 없는가?
3.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심판(4-6절)
스바냐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대상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바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임을 말합니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는 첫번째로 우상숭배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유다의 왕들이 이방신들에게 분향하도록 세운 그마림들과 제사장들과 일월성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바알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로 인함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그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신앙을 화석화 시켜 버린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앞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행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다른 우상들을 함께 섬기는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혼합주의에 빠진 이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안에 참된 신앙을 지키고 있는가?
4.불의에 대한 심판(7-13절)
스바냐는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음을 선언합니다. 스바냐는 주의 심판의 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용히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유다와 예루살렘을 희생제물로 준비하시고 심판할 자들을 구별해 놓으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들에 대하여 진노하셨는지 스바냐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바로 불의를 행하며 자신의 배를 불린 악한 자들로 인함입니다. 그들은 권력을 이용해서 백성들에게 악을 행하고 자신들의 부를 축적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자들이며 그들의 모든 것을 다 빼앗고 멸망케 하실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불의를 도구 삼아서 부를 축적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끝까지 심판하시고 모든 것을 무너뜨리시는 분이십니다.
묵상하기
나는 불의를 도구로 부를 축적하기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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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남 왕국 유다의 역사는 약 344년이고, 20명의 왕이 통치합니다. 그 중 17대 왕서부터는 열방의 침입을 받았고 결국 20대왕에 이르러서는 망하고 맙니다. 16대 선한 왕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국가의 부흥을 주도했건만, 종래 그 운명을 바꾸지 못합니다. 유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고질적인 불신앙 때문이며, 민간에 깊이 뿌리내린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심판을 면치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이미 예고된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비롯한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예고한 것입니다.
형이 동생에게 ‘너 그러면 맞는다!’ 라고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동생이 계속 까불면 결국 맞는 것처럼, 남 유다도 그렇게 맞습니다. 특별히 망하기 바로 직전 오르지 심판과 멸망을 예언한 선지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스바냐 선지자입니다. 그는 왕족 출신입니다. 하지만 그의 예언은 심판으로 점철됩니다. 곧 닥치는 하나님의 징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바냐의 예언은 심판에서 시작하고 심판으로 끝납니다. 그 후 그의 예언대로 유다는 이스라엘처럼 멸망의 길로 치닫고 맙니다.
주제와 내용
스바냐의 줄거리는 크게 네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곧 여호와 날의 선언, 여호와 날의 경고, 여호와 날의 심판, 여호와 날의 축복입니다. 따라서 이 예언서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것은 아모스 선지자 이래 이사야를 거쳐 심판에 관한 전통적인 예언이 됩니다. 유다 이외에도 블레셋, 모압, 암몬, 구스, 그리고 앗수르에 대한 심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 눈으로 보는 스바냐서
1:1~ 2:2 | 2:4 ~ 3:8 | 3:9 ~ 3:20 |
유다 심판 선포 | 열방과 예루살렘 심판 선포 | 구원과 회복 |
유다 심판 | 여호와의 날 |
줄거리와 본문이해
오늘 본문은 스바냐서의 개관입니다. 유다의 요시야 왕 시대에 선지자 스바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심판으로, 우상 숭배하며 거짓과 포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가해지는 징계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날로 재산과 집들이 무너질 것이며, 포도원을 가꾸어도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스바냐의 소개, 만물에 임할 심판,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 임박한 여호와의 날 등입니다.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쳐서 벌하고 바알의 흔적을 모조리 없애 버리겠다. 바알의 제사장인 '그마림'이란 명칭을 기억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그마림’이란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 왕실이나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이방 신을 숭배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 외에도 예루살렘 주변 산당에서 우상을 섬긴 제사장이나, 사마리아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제사장들에게도 붙여진 호칭입니다.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란 하늘의 일월성신을 섬기는 자란 말입니다. 즉, 해, 달, 그리고 별들을 신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소위 천체 숭배 사상으로 앗수르나 바빌론 등의 나라에서 널리 행해지던 종교 관행입니다. 신명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인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을 숭배하는 것에 대하여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이고, 남 왕국 유다도 행합니다. 므낫세 왕은 더 적극적으로 일월성신을 경배하니, 예루살렘 성전 안뜰과 바깥뜰에까지 단을 쌓아 숭배합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서 벗어나는 못된 일만 골라서 하는 가장 악독한 왕입니다.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 때가 이르면, 내가 등불을 켜 들고 예루살렘을 뒤져, 마음 속으로 '주는 복도 내리지 않고, 화도 내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술찌꺼기 같은 인간들을 찾아서 벌하겠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찌꺼기‘를 원어에 따라 직역하면, 술을 빚은 찌꺼기 위에 남아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을 바닥부터 썩게 만드는 자들로, 이는 죄를 죄로 알지 못하고 마냥 죄악에 빠져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의 실상을 고발한 것으로,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경과 묵상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 여호와를 섬기며 나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하면서도 말감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않는 자, 나를 찾지도 않고 나에게 구하지도 않는 자를 모조리 없애 버리겠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이방신에게도 제사들 드리는, 혼합주의 신앙에 대한 심판 선언입니다. ’말감‘ 혹은 ’몰렉‘은 암몬과 모압 족속들이 섬기던 신으로, 숭배자들은 인신 제사를 행합니다. 자식들 중 한 명을 택하여 몰렉에게 바치면 나머지 자식들에게 축복이 임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를 통틀어 인신제사를 드린 왕은 공식적으로 두 명입니다. 유다의 아하스왕과 므낫세입니다. 아하스는 므낫세의 할아버지 왕입니다. 므낫세는 할아버지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그 제사에 임합니다. 역대기하에 따르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 아들들을 불 가운데 지나게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들들’이란 복수로 나온 것을 보면, 그는 한 번만 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으며, 점치고 사술을 행하며, 여호와와 말감을 동시에 섬기는 등 혼합종교 정책을 펴 그것으로 인해 결국 유다가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의 16대 요시야 왕 때입니다. 요시야 왕은 유다에서 선한 왕 중의 왕이었지만 그 시대에 살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으니, 바로 므낫세의 악한 영향력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가 유다의 최장기집권을 한 왕이라는 점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를 통틀어 통치 최장수의 왕이 바로 므낫세입니다. 그는 무려 55년간을 유다와 예루살렘을 다스립니다. 불행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특심이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왕인 히스기야는 29년, 요시야 왕도 31년이었는데, 가장 악랄한 왕이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시대는 므낫세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거의 많은 백성은 우상숭배에 열심입니다. 55년간 내려온 사회 풍조로 말미암아 타락의 정도가 극심했던 것이지요. 그때 개인들이 하나님을 믿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회 분위기가 불경건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바냐 같은 왕족이 선지자로 부름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점점 더 어려운 세상입니다. 어떤 시대 어떤 나라라도 옛날 사람들은 신을 인정하며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아예 무시하는 경향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믿으면 미개인처럼 보는 세상입니다. 그런 현상은 더 잘 사는 나라, 후진국보다는 선진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단풍이 곱게 물든 주일날 아침 고속도로는 이른 새벽부터 몸살을 앓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관광지, 쇼핑센터 등등 사람이 차고 넘칩니다. 그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실감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소개하기에는 너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데요.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인 이스라엘에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대 놓고 일월 성신과 바알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동입니다. 아니 모욕하는 행위로, 오늘날의 현대인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기 전에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수많은 종들을 급파하신 것입니다. 급기야 예수님도 이 세상에 보내셨지요. 우리가 먼저 믿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 선지자적 사명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을 뻔히 알고 있기에 그렇고, 우리도 그런 사망의 자리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은혜 입은 자로서 은혜를 전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공통적인 사명입니다. 세상에 멸시를 받아도 선지자들처럼 핍박을 받아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전해야 할 것입니다.
잘 믿어야 합니다. 신앙이 있으면서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해서는 안 됩니다. 섞이는 것을 하나님은 매우 싫어하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불신한다면 그것처럼 큰 죄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그분에 대한 모욕이요, 배반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람들의 믿음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상황과 형편에 상관없이, 물질의 적고 많음에 그리고 일의 성사와 형통 더 나아가 행복과 불행에 개의치 않고 사람은 오직 그분을 경배하고 따라야 합니다. 창조주를 창조주로 알고, 성경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며, 선지자적 사명의 수행자라 그렇습니다.
므낫세와 요시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니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장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의미없이 롱런하는 것은 차라리 비참합니다. 어두운 시대에, 불신이 팽배하는 이 사회에 그리고 가정과 직장, 사업장에 하나님의 보내진 선지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곧 여호와께서 세상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습1:2~3)
또한 회의주의자 기독교인들도 벌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습1:12)
즉, 여호와를 부인하던 자들도, 시인했었으나 배반한 자들도 다 멸절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습1:6)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 죽게 되었을까요? 선이 사망이 되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7:13)
병이나 칼이나 전쟁으로만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들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라"(사22:2)
오직 그들이 죽음을 사랑하니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사망을 예배하니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사26:14)
단적인 예로 진화론이 무엇입니까? 사망을 예찬하는 것입니다 원생동물이 죽고 죽고 죽었더니 더 발전된 생명체로 진화하고, 더 사망하고 또 사망하고 수십억년 동안 사망을 거듭했더니 고도의 지적 생명체로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예찬하는 것은
"죽음의 세력 잡은 자 마귀"(히2:14)를 예배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길 가기 원합니다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렘21:8)
생명의 주 되신 우리 주님과 동행하다가 세상 멸절되는 날에 사망을 이기고 주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의 복락 누리기 원합니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호13:14)
‘완전히 쓸어버릴 것이다…멸하겠다(2~3절)’
구약시대 중요 지표가 되고 종교개혁의 기치를 올렸던 요시야 왕 때 ‘히스기야’의 4대손인 스바냐에게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만약 언급대로 그가 100여 년 전의 왕이었던 히스기야라고 한다면 그 또한 유다의 멸망을 늦추게 한 또 다른 변화를 일으켰던 인물이므로 스바냐도 왕족이 됩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구시’인 것은 이방인의 이름으로 여겨지므로 또한 특별한 인도하심으로 그 민족에게 남게 된 자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스바냐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멸의 선언, 곧 노아의 홍수 때보다 더 준엄하게 언급된 ‘아셉’(히브리어: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이 심지어 물고기까지 포함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결코 그들이 말씀으로만 경험했던 노아의 물심판에 머무르지 않고 더 철저한 마지막 때의 불심판의 종결로 이끌어 가실 것임을 미리 경고하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드러내도록 택함 받은 장자였습니다. 그들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모든 은혜를 그들에게 저주로 변화되는 것처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거룩한 통로 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어느 누구도 그 진리와 공의 앞에 버텨내지 못할 것임을 두렵고 떨림 가운데 기억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호와께서 희생제물을 준비하시고 그분의 손님을 거룩하게 하셨다(7절)’
그분 앞에 바르지 못한 신앙의 모습들은 뿌리 깊은 바알을 따르는 신앙(4절), 이색적으로 여겨지는 하늘의 태양과 별을 숭배하는 신앙(5절), 여호와와 이방 신을 동시에 자신의 축복의 도구 삼는 혼합적 기복 신앙(5절)과 여호와를 배반하고 그분을 찾지도 않는 불신앙(6절) 임을 스바냐의 입술을 통해 지적합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듯, 죄가 없는 심판과 징계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끊임없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통일 왕국, 강한 메시아가 자신들에게 이끌어줄 것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정하고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앞을 다투어 ‘그날’에 대한 주장과 이론들을 떠들어 대었지만 거짓된 이스라엘인들의 신앙의 모습들로 말미암아 심판의 날로서의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라고 그들의 입을 잠잠토록 명하시고(7절) 오히려 그들 자신이 화목 제물이 되어 여호와의 공의와 열방의 길 잃은 백성들을 위한 연결고리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과거 블레셋의 다곤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힘없이 그 문턱에 엎어졌을 때 그들이 그 문턱을 밟지 않고 뛰어넘듯 우상 섬기는 자들과 다를 바 없었고(9절) 폭력과 기만으로 신전을 채우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는 그들의 불순종이 이방인들보다 오히려 더 악하게 되었으므로 그 진노는 결국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막데스’는 예루 살렘 성전에서 재물만을 추구하려는 자들이 거하던 제2구역(10절), 곧 물고기문을 포함하는 곳의 중심지(역대하 33:14절)이고 그들이 ‘남은 자’로 안심하고 붙들고 있는 그 맘몬의 우상이 오히려 재앙이 될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술에 취한 자들이 모인 곳이었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부요함을 약탈 당하고 결국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게 될 것(13절) 임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인자하심으로 그 마지막 심판까지 기다리시는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을 끝까지 붙드는 거룩한 사람들로 매 순간 거듭나는 삶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3절 창조세계를 심판하십니다. 사람과 짐승, 새와 물고기의 순서는 창조의 역순입니다. 따라서 심판은 창조 자체의 무효이고, 창조 이전의 혼돈과 공허(창세기 1장 2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타락한 온 세상을 쓸어버리실 것입니다. 이미 세상은 창조 이전의 세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4~6절 자기 백성이라 해서 심판에 예외를 두지 않으십니다. 보편적인 창조세계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으로 초점을 좁히십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이방신을 겸하여 섬기거나, 아예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기에 심판받을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모든 창조세계가 심판받았다면, 유다의 죄로 이제 세상이 멸절합니다. 복의 근원(창세기 12장 3절)이 되어야 할 그들이 그릇된 선민 사상과 거짓된 확신 속에서 재앙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7~9절 여호와의 날이 다가옵니다. 여호와의 날은 그분의 원수를 무찌르고 고통받는 백성을 구원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나 이방종교의 풍습에 빠져 그들의 옷을 입고, 폭력과 속임수로 부를 쌓는 이들은 이스라엘이라도 하나님의 원수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희생제물로 준비하실 것입니다. 내게 하나님의 날은 어떤 날입니까? 두려운 날입니까, 아니면 구원의 기쁜 날입니까? 아주 빠르게 우리 곁에 다가오는 그날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0~13절 그날에 우리 죄를 샅샅이 찾아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슬피 우는 소리가 온 천지에 진동할 것입니다. 언급된 곳은 대개 상업 지역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 복과 화를 내린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돈 때문에 하나님에게 무관심하고, 남의 재물을 탈취하여 집을 건축하며 포도원을 가꾸는 데 급급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한 가지 죄라도 행여 놓칠세라 등불을 들고 온 집을 샅샅이 살피듯 모조리 밝히실 것입니다. 돈을 의지하면 화가 올 것이고, 하나님을 찾으면 복이 달려올 것입니다.
스바냐 1장. 마지막 날을 준비하며 오늘을 살아라.
1. 선지자 스바냐는 유다 말기 요시야 왕(주전 640~609년) 때 하나님 말씀을 전했는데, 특별히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말씀을 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종교개혁도 그 아들 므낫세와 손자 아몬 왕 때에 모두 무너져버렸고, 요시야 왕이 통치를 시작하였을 때에는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어 16세에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20세에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선지자 스바냐는 히스기야 왕의 현손(4대손)으로 왕손이었습니다(1:1). 그렇다면 그는 요시야 왕의 조카뻘이 되는데, 아마도 그는 왕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자연히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많은 영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요시야 왕에게 준 메시지는 한 마디로 이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날은 심판의 날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기쁨의 날이 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스바냐에게 주신 메시지는, 모든 생물을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들과 함께 진멸하시겠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2~3). 노아에게 주셨던 메시지를 연상하게 하는 이 메시지는, 먼저 유다에게 적용되는데 유다의 범죄와 그에 대한 심판의 예고입니다(4~18).
3. 먼저 하나님께서 멸절하실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설명합니다(4~6). 바알 숭배의 남은 자취들, 바알의 제사장들(그마림은 바알 제사장에 대한 명예로운 칭호였다), 하나님과 더불어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 소극적으로 무관심한 자들(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을 다 멸하실 것입니다.
4. 비유적으로 ‘여호와께서 희생(제물)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고 한 구절에서, ‘희생’은 유다의 범죄한 백성들이고, ‘청할 자’는 바벨론 군대입니다(7). 특별히 ‘희생’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 즉 이방 종교에 물든 왕족과 귀족들을 말합니다(8). 또 ‘문턱을 뛰어 넘는다’는 말은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 신전의 문턱을 밟지 않고 뛰어넘어 들어가서 우상 신을 섬기는 풍속을 빗댄 말인데, 유다 백성 중에서 다곤을 섬긴 자들이 있음을 가리킵니다(9).
5. 그 날에는 예루살렘에 부르짖고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10). 막데스는 ‘저지대’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상가들이 밀집해있는 번화한 거리를 가리키는 말로 보입니다(11). 거기도 큰 울음이 가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등불로 샅샅이 찾아내시는데, 가장 깊고 낮은 곳에 숨어서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에게도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12~13).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복도 화도 내리지 않는다고 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전해져도, 하나님이 자기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웃으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심판은 여지없이 내려질 것입니다. 선지자나 어떤 인간도 찾아낼 수 없도록 숨어있는 자도 하나님의 등불은 찾아내어 심판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유다 왕 요시야 때에 스바냐가 받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땅 위의 모든 것,
그분을 배반하고 바알과 별과 말감을 섬기는 자들, 포악과 거짓을 행한 자들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기에 그분이 희생을 준비하시고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심판의 예고(1:1~6)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면 피조 세계까지도 재앙을 받지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면 모두가 생명과 복을 누립니다. 스바냐는 요시야 왕 때 활동한 선지자로,
그의 예언은 므낫세의 악정으로 인해 죄악에 깊이 물든 유다 백성을 향한 심판의 선포입니다.
유다 백성은 풍요의 신 바알을 숭배하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며, 여호와와 말감을
동시에 섬기기도 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이 믿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가증스러운
우상을 선택하며 여호와께 관심조차 없기에 하나님은 노아 홍수 때보다 더 철저하게 심판하겠다고
예고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것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그분을 찾고 그분께 구할 때, 자신과 모두에게 미래와 소망이 있습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 백성의 우상 숭배가 피조 세계 전체에 재앙을 초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신앙의 연수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자라고 있나요?
현재 믿음 생활에서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요?
여호와의 날의 도래(1:7~13)
하나님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사람은 안전지대에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청할 자’(심판 도구)를 불러 ‘희생’(유다)을 제사로 드리는 것에 비유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유다를 제물로 받으심과 동시에 그들을 정결하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날에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높은 자리에서 악을 행하는 이들, 이방인의 옷을 입고
이방 관습에 젖어 있는 이들, 이교 신전의 문턱을 뛰어넘어 우상 숭배하는 이들이
모두 희생 제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찌꺼기같이 가라앉아’ 그분의 엄위하신 주권을 무시하는 자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평안과 부요를 누립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무감각한 이들의 결국은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믿음이 ‘찌꺼기같이 가라앉아’ 우울하고 낙심될 때,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베푸신 큰 언약을 함부로 여기면서도 ‘잘될 것’만 바라는 악함이 없는지 돌아봅니다.
말씀으로 저 자신을 비추어 보며
지금 이곳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도와주소서.
스바냐 1:1~13 예루살렘아, 잠잠할지어다.
유다 왕 요시아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1)
스바냐는 히스기야 왕의 현손(4대)이므로 왕족 이였다.
시작하면서 부터 무서운 말씀으로 부터 시작한다.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2)
(I will sweep...내가 쓸어 버리겠다고 하신다)
사람과 짐승을 쓸고,
공중의 새, 바다의 고기, 거치게하는 것, 악인들(3)을
멸절 시키겠다. (쓸어버리겠다)고 하신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것(창1)들을
노아의 홍수 때 처럼 (창6) 쓸어버리시겠단다.
왜냐하면
첫째는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고
둘째는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바알)을 가르켜 맹세하며 (두 마음을 품으며)(5)
세째는 여호와를 배반하고 쫒지 아니하며
넷째는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하므로(6)
하나님이 쓸어 버리시겠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잠잠할찌어다(7)라고
선지자는 하나님 심판의 임박함을 경고하신다.
계속해서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3종류의 사람들을 벌하시겠다고 하신다.
첫째는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의 의복을 입은 자를 벌하며(8)
둘째는 문턱을 뛰어 넘어서 강포와 궤휼로 자기 주인의 집을 채운자들을(9)
세째는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고
화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는 자들을 벌하시겠다고(12) 하신다.
요즘 현대어로 좀 바꾸어 본다면
이방의 풍습이나 옷의 유행(사치와 외모)을 따르는자 들과
이방 종교 의식을 따라서 행 하는 자들과
하나님은 아무것도 안한다는 무신론자와 같은 자들을 벌하시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날(7), 여호와의 희생의 날(8)에는
어문에서는 곡성이
제이 구역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10)
작은 산은 무너지는 소리가
막데스 거민에게는 애곡이
가나안 백성이 다 패망하고(11)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무 할 것이며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게 된다.(13)
이러한 날이 임하기 전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경고하시는 말씀과 같이
주님 앞에서 잠잠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하여 게획되었고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 지음 받았고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지음 받으신 그 목적되로
사용되어지는 그릇이 되길 원한다.
세상의 유행과 이방의 어떤 종교의 풍습이라도
호기심 일지라도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경배하며 예배하며 여호와의 그 날을
기쁨으로 맞이하도록 준비하며 기다리자.
아버지.
우상을 섬기는 자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자와
우상을 버리지 못하는 자들을
철저히 쓸어 버리시겠다고 경고 하셨으니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만을 경배하길 원합니다.
하나님만 존귀히 여기며 하나님을 위해
부름 받았사오니 그 부르심의 목적에 맞게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해결할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죄악과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으시고 대속하셨고
그 부활의 새 생명을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를 통해 허락하셨음을 겸손히 고백합니다.
날마다 오직 은혜로, 그 택하심 받은 족속으로
여호와의 뜻에 합당하게 걸어가는
성령의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과 아프리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배하지
못하는 곳곳마다 말씀과 찬양으로 채워지는
놀라운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겸손과 순종으로 엎으리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