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6일 밤 떠났던 중앙아시아 기행을 마치고 어제 낮에 돌아왔다. 몇 년 전 남미 기행에 이어서 두 번째로 한 달 간의 여행에서 돌아와 <신정일의 서가> 문을 여는 순간, 문득 집이 낯설다는 것을 느꼈다. 무슨 연유일까? 왜 내 집이 낯선 것일까? 누군가 내 허락도 없이 내 집을 변모시킨 것도 아닌데, 질서정연하게 꽂힌 책들, 그 책들조차 낯선 것은 내가 집을 비운 시간이 너무 길어서였을까?
“여행이란 귀와 눈(이목耳目)을 열고 영혼을 창서暢敍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중국의 여행작가인 명료자의 글인데, 내 영혼이 낯 선 풍경, 낯선 사물들에게 너무 경도 되었거나 익숙해져서 지난날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알베르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는 그의 산문집 <섬> 중 “행운의 섬‘에서 오랜 여행 중에 느낀 감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가 있다.
“언제나 어떤 완전한 힘이 결여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일상의 삶 속에 그대로 잠들어 있는 여러 가지 감성들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자극제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럴 때 한 달이고 일 년이고 몇 가지 진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 감각들이 우리에게서 저 내면의 노래를 흘러나오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 내면의 노래가 없다면 우리가 느끼는 그 어떤 것도 아무런 값어치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그런 여행이었다. 평생을 길 위에서 보냈으면서도 가장 어린애처럼, 처음으로 여행에 나선 것처럼 낯설었고, 서툴렀고, 그래서 내가 모르는 나를 더 절실하게 깨달은 여정이 이번 여정이었다.
“나는 여행자의 숨은 슬픔을 안다.
봄의 방랑자는 요란스럽게 재재거린다.
꽃들은 풍성하고
앵무새의 지저귐은 너무 크다.”
가끔씩 두보의 <절구만흥絶句漫興>을 떠올리며 걸었던 풍경, 비가 내려 산사태가 나서 어쩔 수 없이 그 초라하기 그지 없는 파키스탄의 오지 파출소에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하룻밤 보냈던 시간도, 카라쿰 사막을 달리던 시간도, 훈자의 그 세상과 동떨어진 풍경도, 부하라와 히바의 아라비안 로렌스와 같던 풍경도, 이제 추억이 되었고, 나는 가끔씩 그 풍경들을 떠올리며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이다.
파키스탄에서부터 시작되어 중국 신장을 거쳐, 키르기스스탄, 우주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타에 이르는카라코람과 실크로드를 스마일 로드의 고명환대표, 이광주 부대표와 함께 중앙아시아 기행에 함께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