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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장영봉대표님제공]
*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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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 (Alphonse Gabriel
Al Capone
/1899~1947) - 그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시카고를 주 무대로 밀주 매매, 매춘 그리고 살인을 일삼는 갱단인
시카고 '아웃 핏 (Chicago Outfit)'의 두목이 된 후,
미국 서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밤의 대통령' 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다.
1927년엔 '한 해 총수입이 1억 달러인 세계 최고의 시민' 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한 거부가 되었다.
또한 그 시절
알 카포네는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함께 시카고의 젊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알 카포네는
이지 에디 (Easy Eddie)란 애칭으로 불리던 아이랜드 출신의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었는데, 그는 해박한 법률 지식으로 악랄한 범죄자인 알 카포네를
변호해 그가 감옥에 가는 걸 막아주곤 했다.
알 카포네는 그 의리에 보답하고자
에디 변호사에게
큰 돈을 지불했다.
직접적인 수고비 뿐만 아니라 사업 배당금 조로 하인까지 딸린 성채 같은 맨션에서 식구 전체가 호의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저택은 시카고의 거리 한 블록을 몽땅 차지할 정도로 컸다.
그런 에디 변호사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평생 모든 면에서 최고를 누리며 살게 할 수 있는 경제적 부를 쌓아놓은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자기처럼
돈의 노예가 되어 악독한 범죄에 연루된 더러운 삶을 살지 않고,
깨끗한 양심으로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일깨워줘야 할, 아버지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강하게
생긴 것이다.
깨끗하고 빛나는 가문의 이름과
모범이 되는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 후,
에디 변호사는 고심 끝에 아주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당국에 알 카포네의 흉악한 범죄 사실을 모조리 고발하고, 여태까지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자백함으로써
더러운 이름을 깨끗하게 씻어버려야 하겠다는 결단이었다.
마피아 두목을 고발할 경우 치뤄야 할 대가가 어떤 것인지 잘 알면서도,
결국 에디 변호사는 오로지 자신의 죄과를 회개함으로써 이름을 깨끗하게 하고, 아들에게 정의감을 알려주기 위해,
사법 당국을 찾아가
알 카포네의 끔찍한 범죄 사실을 낱낱이 폭로했다.
에디 변호사의 증언과 증거 자료 덕분에
사법 당국은 오랜 기간 잡지 못했던 범죄 조직의 두목을 탈세 혐의로 구속할 수 있었다.
시카고는 드디어
알 카포네 일당의 악행에서 벗어나 안전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가 끝나기 전에, 에디 변호사는 시 외곽의 한 외딴 거리에서 온 몸에
총알 세례를 받고
삶을 마감했다.
그는 인생의 가장 큰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아들에게 위대한 ‘정의’의 선물을 남길 수 있었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경찰은 몇 가지 물건을 발견한다.
에디 변호사의 주머니 속에는 묵주와 십자가, 등과 함께 잡지에서 오려낸 어떤 시 구절이 있었다.
“ 인생의 시계는
한 번 밖에 감을 수
없다.
아무에게도
이 시계를
언제 멈추라고
할 능력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소유한
유일한 시간이다.
살고 사랑하고
힘써 일하라.
인생은 어느덧
끝나 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믿음은
갈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
2)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다.
부치 오헤어(Butch O’Hare) 중위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서, 남태평양의 렉싱턴 항공모함에 배치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속한 비행 중대가 임무수행 명령을 받았다.
전투기의 이륙 직후, 오헤어 중위는 연
료 계기판을 보고 정비사가 연료 탱크를 꽉 채우지 않은 것을 알았다.
임무를 마치고 모함으로 돌아올 연료가 충분하지 않아, 오헤어는 이를 편대장에게 보고했고,
결국 오헤어는 항공모함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혼자 모함으로 돌아가고 있던 중 오헤어는 뭔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적국인 일본의 대규모 비행편대가
모함을 공격하러 저고도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군 전투기들은 모조리 출격해 남아있는 게 없으니 모함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소속 편대에 연락해 돌아가 함대를 구하도록 할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모함 함대에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경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오헤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ㅡ 어떻게든 모함 함대로 향하는 일본 비행편대의 기수를 돌리게 하는 것 뿐이었다.
그는 주저할 틈도 없이 일본 비행편대를 향해 하강해, 날개에 탑재한 50인치 기관포를
내뿜었다.
기습에 놀란 적기를 한 대씩 차례로 공격했다. 적의 무너진 진형 사이를 누비며
탄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될 수 있는 한 많은 적기에 총탄를 퍼부었다.
오헤어는 필사적으로 일본 비행편대가 미군 함대에 이르지 못 하도록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마침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일본 비행편대는 기수를 돌렸다.
오헤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누더기가 된 그의 전투기와 함께 항공모함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오헤어가 탄 비행기에 탑재된 카메라의 필름이 사건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었다.
오헤어 중위 혼자 모함과 거기에 승선해 있던 장병 2,800명을 구해낸 것이다.
적기 9대를 혼자서 물리치고 항모에 착함한 오헤어의 와일드 캣 주위로 온 장병들이 몰려들어 환호했다.
오헤어가 몰았던 F-15호기는 좌측 날개에 총알구멍 하나만 있을 뿐, 기체가 멀쩡했던 것이다.
오헤어는 이 공로로 전쟁 영웅으로 인정받아
최고 무공훈장인 의회명예훈장(Congressional medal of honor) 등 여러 개의 훈장을 받고,
중위에서 단숨에 2계급을 특진, 소령으로 진급했다.
1945년 6월 22일, 영웅 오헤어 소령을 기리기 위해 새로 건조된 구축함
(Gearing-class destroyer) 에
USS 오헤어
(USS O'Hare)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덩치가 워낙 커 ‘Butch’ O’Hare‘ 란 별칭으로 불린 이 조종사의 정식 이름은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 Edward Henry O’Hare (1914~1943)였다.
부치 오헤어는 훈장을 받고 1년 뒤,
한 공중 전투에서
분투 끝에
장렬히 산화한다.
오헤어의 고향인 시카고 시민들은 2차 대전의 가장 위대했던 영웅 중 한 명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1949년 9월 19일에,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인 시카고 (Chicago)의
오차드 디포트 공항 (Orchard Depot Airport)을
'오헤어 국제공항
(O'Hare International Airport)'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알카포네 조직의 변호사였던 '이지 에디'의 정식 이름은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 (Edward Joseph O'Hare /1893~1939) 였고, 부치 오헤어 소령은 바로 그가 목숨을 걸고 정의감을 일깨워주려 했던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ㅡ정의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이들 부자(父子)의 삶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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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좋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검]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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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종류의 감사 >●
우리가 사용하는 감사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만약(if)의 감사이다.
이것은 ‘무엇을 이루어 주시면 드리겠다’는 조건부 감사이다.
‘만일 주님께서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식의 조건부 감사이다.
두 번째는 ‘때문에(because of)의 감사이다.
‘무엇을 이루었기에 드리는 감사’이다.
‘취직이 되어서 감사합니다.’, ‘병을 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식의 감사이다.
즉, 과거에 근거해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감사를 고백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면 자신이 잘해서 그런 것으로 착각하기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의 감사’이다.
이것은 상황에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드리는 감사’이다.
‘내가 실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병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사를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나의 감사 조건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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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언제해도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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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지금의 후진국 몽골이라는 나라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한
위인(偉人)으로 손꼽을수 있는
몽골의 칭기즈칸,
그의 원명은 태무진이였는데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위대한 지도자로 추대되어(1206년)
1227년 65세를 일기로 사망합니다.
파란 만장(波瀾萬丈)한
생애(生涯)를 살았던 그에게도
큰 뉘우침을 준 사건 하나가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 일화(逸話)가 있었습니다
칭기즈칸은 사냥을 무척
좋아했다고 알려집니다.
사냥을 나갈 때면 항상 같이 다니는
사냥용으로 기르면서 함께 생활하던
매를 데리고 다녔고
매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며
마치 식구 처럼 여기며 함께 생활했습니다.
하루는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어깨 위에 앉아있던 매를
잠시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자신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았습니다.
가뭄으로 개울물은 말랐으나
바위틈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석간수(石間水)를 발견 했습니다.
그가 바위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잔에 받아 마시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바람 소리와 함께
자신의 매가 손살같이 날아와
그의 손을 쳐서 물잔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하기를 세차례나
물 마시기를 매가 방해하자
칭기즈칸은 몹시 화가 났지만,
식구나 다름아닌 매가 하는 짓이니 화를 참고는 다시 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물을 마시려는
순간 매가 날아와서는
칭키즈칸이 마실려는 물잔을 엎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칭키즈칸을 참다 못해
재빨리 차고 있던 칼을 휘둘러
매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곤 그는 죽은 매를 치우면서
물이 흘러 내려오는
바위 위를 쳐다 보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죽은 큰 독사 한마리가
샘물 안에서 썩고 있었습니다.
만약 칭기즈칸이
그 물을 마셨더라면 뱀의 독으로 인해 칭기즈칸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는데 매는 그것을 미리 알고
칭기즈칸의 물잔을 계속
엎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칭기즈칸은
금(金)으로 사랑하는 매의 동상을 만들어 양 날개에 각각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겼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분노(憤怒)로 저지른 일은
실패(失敗)하기 마련이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벗은 여전히 벗이다.’'
우리는 일상(日常)에서
큰 일도 아닌 일에 화(火)를 낸 후에 후회에 빠지거나,
순간적인 분노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되는 걸 보면 분노의 결과는
부정적인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따라서 화(火)가 났을 때는
조급(早急)하게
판단(判斷) 하지 말고,
상대방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침착하게 한번 쯤 생각해 보는 짧은,
잠깐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이,
아니면
아들이나 딸이,
친구가,
직장동료가,
이웃이
나에게
선의(善意)를 베풀었는데
그릇된 판단을 하고,
오히려 정죄(定罪)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중대(重大)한 실수(失手)는
조급(早急)함 때문에 일어난다.'' 고
말을 한 Michael D. Murdock 의 경고의
말을 다시한번 되씹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어떠한 사안(事案)에 대해
무작정 단정(斷定)하기에 앞서서
한번쯤 멈추고 자신을 살펴 보는 게
꼭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화를 내고 난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고 있음을
뒤 늦게 깨닫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분노(憤怒)로 저지른 일들은
대부분이 실패(失敗)한 것들임을
누구나 다 알면서도
이를 자제(自制) 못하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좋은 글 하나 골라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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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지혜(智慧)가 주는 인생길
보기:
https://m.blog.daum.net/jme5381/1002?category=906840
☘ 오늘도 건강하시고
후회(後悔)없는 하루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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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소천하신 최영섭 대령님
(최재형 전 감사원장 부친)의 2018년 6월 25일 간증 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이사 가야지."
"예수 믿으면 사는게 편안해, 죽는 건 더 편안해."
"하나님이 세우신 대한민국이야."
"이 대한민국이 어떻게 건국되었는지 자녀에게 전하라.
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우리 책임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해 잘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31일 미리 작성하신 유언장을 가족들에게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최선규 아나운서가 3장짜리 유언장을 압축 요약해서 읽어주었는데요..
오늘 하나님의 그윽하신 사랑으로 우리 식구들 정겹게 만나니 기쁘기 그지없다.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90 평생 길고 긴 인생 항로에 마지막 항구가 저 앞에 보인다.
내 남은 인생은 세월이 아니라 시간이다.
지난 세월 너희들에게 아비구실 제대로 못했지만 너희들 모두 하나님 은혜로 자기 몫을 다하고 자기 앞가림을 다해 서로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기쁘다.
특히 며느리들, 명희, 서연, 숙희, 정은이 역할이 컸다.
지금 나는 너희들의 지극한 사랑과 효성으로 보람있는 여생을 보내고 있다.
애썼다. 고생했다. 고맙다.
인생은 길고 긴 항해다. 항로를 정하고 돛을 달고 힘껏 저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바람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 바람은 하늘에서 불어온다.
이 세상 살아가는데 내 힘, 자력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하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길이 성경에 있다.
감사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내가 대접받으려면 남을 먼저 대접하라. 이타정신이다.
인생의 마지막 물음에 대한 답은 신앙, 예수 신앙이다.
행복의 원천은 아픔있는 사랑이다.
사랑에는 눈물, 땀, 아픔이 스며있다.
이 아픔, 즉 고통있는 사랑의 싹이 행복의 원천이다.
애썼다. 고맙다. 사랑한다.
아픔 있는 사랑으로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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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사랑도 사람도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오래도록
머물었으면 좋겠습니다.
🌺🌺
첫 만남처럼
심장이 콩닥거리고
홍조 띤 얼굴은
아니더라도
🌺🌺
아주 작은 설렘만으로
곁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웅다웅
싸우고 토라져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그냥 눈 감아 주세요.
🌺🌺
이것 저것 따져봐야
이익보다 손해가 크고
상처가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우리잖아요.
🌺🌺
행여,
허물이 있더라도
덮어줄 수 있는
아량을 베풀어
서로 다독여 주고
예치해 놓은 칭찬으로
변하지 않는 처음
그 마음처럼~💕💕💕
🎯화면을 위로 올리면서 감상~~💥👽🤩💙💕
💚★금상첨화 ★💚
[♡錦上添花♡]
chuye.cloud7.com.cn/6233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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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야화🐕黃狗(황구)
옥색 한산 세모시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며 허우대 멀쑥한 젊은이가 강둑을 건너다 걸음을 멈췄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늘에 남정네들 여러명이 모여 가마솥을 걸어 놓고,
한무리가 땔나무를 모아오고 나머지는 밧줄을 버드나무가지에 매달아 달고
줄을 당기는데 밧줄 끝이 황구 목에 걸렸다.황구는 마지막 목숨을 부지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가지에 걸린 밧줄을 두 남정네가 힘껏 잡아 당기자 황구는 깨갱~케캑~질질 끄려 오르다 마침내 죽음이 코앞에 닥쳤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저항도 포기한채 슬픈 눈으로 강둑 위의 선비를 쳐다보는 것이다.
''여...여보시오!"
선비가 소리치며 버드나무 밑으로 갔다. '그 개를 살려 주시오."
내가 넉넉하게 값을 치르리다.
남정네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선비를 쳐다봤다.선비가 허리춤에 찬 전대를 풀어 삼십냥을 꺼내 개목줄을 끌던 남정네의 손바닥 위에 놓았다.
남정네는 크게 눈을 떴다.
삼십냥이면 황구 세마리 값이다.
황구는 눈물을 흘리듯 촉촉한 눈망울로 선비를 쳐다본다.
선비는 황구를 몰고 가다가 개목줄을 풀어 줬다.
황구는 도망은 커녕 선비의 도포자락에 붙어서 선비와 보조를 맞추어 걸었다.
얼마나 걸었나 나룻터에 닿았을 땐 오뉴월 기나긴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 으스름이 내려 앉았다.
선비는 나루터 주막으로 들어갔다.
''나으리, 어서 오셔유.
주모가 반갑게 맞았다.
선비는 두루마기를 객방에 걸어두고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안마당 평상위에 나와 앉았다. ''주모, 황구 먹을 것도 좀 챙겨 주시오. 하자 주모는
''생선 대가리와 잔반이 있으니 걱정 마시우. 하면서 평상 아래 앉은 황구를 자세히 본다.
''사냥개도 아니고 족보있는 놈 같지도 않은데 어인일로 선비님과 어울리지 않게 저런 똥개를 끌고 다니십니까? 선비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구료"그때 안방문이 열리고 우람한 덩치의 남자가 나와 짚신을 동여 매며 부엌의 주모를 보고,
내 다녀오리다. 발인을 보고 올테니 집 잘 보시오.하자 주모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대문 밖까지 나갔다 왔다. 선비는 초롱불 아래 평상에 앉아 국밥을 먹고 황구는 평상 아래서 개죽을 먹었다.
그사이 안방에서 나온 주모는 머리에 동백기름을 얼굴엔 박가분을 하얗게 바르고 자주색 저고리로 바꿔 입고 나와 색기 흐르는 미소를 날렸다.
''선비 나으리, 우리집 청주 한 잔 들어 보시지요.이번 술은 잘 빚어졌습니다. 선비도 이런 분위기를 내팽개 칠 위인이 아니다.
배 진사, 그는 여덟번째 과거에 낙방하고 주색잡기에 빠져 그 많은 문전옥답을 다 날리고 이제는 노름판에 기웃대거나 과부들이나 후리는 파락호가 되었다.
전날밤에는 끗발이 밤새도록 이어져 전대가 두둑하던 차에 버드나무 아래 황구의 슬픈 눈과 마주친 것이다.
꼬리를 흔드는 주모를 자세히 보아하니 삼십대 중반에 얼굴은 밉지 않고 허리끈을 바짝 동여 매어 쪼개진 수밀도 엉덩이가 터질듯 했다. 배 진사가 묻지도 않는데 주모는,''바깥양반은 당숙이 하직해 삼십리 떨어진 상가에 갔다가 닷새후에 돌아 올 겁니다요.
청주 한 호리병을 주모와 나눠 마시고 객방으로 들어가자 주모도 따라 들어 오더니 후~호롱불을 껐다. 서로 열이 올라 옷을 벗는데 낑낑~황구가 쪽마루에 올라와 두발로 문풍지를 뜯으며 컹컹 짖는 것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배 진사가 저고리를 걸치고 뛰쳐나가 몽둥이를 들자 황구는 도망을 쳤다.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또다시 문을 뜯는 황구에 열받아 도망치는 녀석을 따라 얼마나 갔을까. 한참만에 발걸음을 돌려 주막집 안으로 들어 오다가
배 진사는 깜짝 놀랐다.
문상 갔다던 바깥양반이 돌아와 발가벗은 주모를 마당에 끌어내놓고 매타작을 하는 것이다.
덩치가 산만한 바깥양반이 배 진사를 보더니,''선비 나으리, 음탕한 이년의 유혹을 뿌리치시고...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황구가 배 진사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 후로 배 진사와 황구는 단짝이 되어 언제나 붙어 다녔다
황구가 배 진사의 두루마기 자락을 물고 당기는 걸 뿌리치고 노름판에 들어가면 몽땅 털리고,
황구가 살살 꼬리치는 걸 보고 들어가면 그날밤은 끗발이 서 판을 쓸어 버리는 것이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목숨을 구해준 걸 알고 은혜를 갚네요.
그래서 나쁜놈들을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했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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