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치욕이 담긴 욕※
우리는 욕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욕은 주로 나쁜 경우에 하지만 좋다는 뜻으로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욕의
어원을 모르고 사용하여 조국의 치욕이 되새겨지고 조상을 욕하는 경우가 되기에 이런 욕은 하지 말아 주시라고 긴 글을 올리오니 끝까지 보시고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3국을 통일하면서 백제 의자왕,
고구려 보장왕을 비롯한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당나라의 수도로 끌려가는 수난을 당하였고
고려 때는 7차례의 몽고침입으로 또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몽고로 끌려가고
조선시대에 들어 왜국의 침입으로 10만 명의 백성들이
왜국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고도 계속하여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천시하며 탁상공론(卓上空論)을 일삼고 국방을 소홀이 하면서 명나라를
섬기며 명나라에만 의지하는 외교의 미숙으로
병자호란(1636. 12~1637. 1)때는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적고(150만:30만)
무기의 발달도 훨씬 뒤진 청나라에게 대패하여 소현세자, 봉림대군은 물론 거의 부녀인 수십 만 명의 백성들이 청나라 심양으로 포로라는 명목에
끌려갔습니다(50만 또는 60만 명이 끌려갔단 기술도 있습니다).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심양의 노예시장에서 돈을
주고 속환(贖還)을 해 왔는데 속환에는 은, 면포, 지속(紙屬), 담배를 통화로 사용하였습니다. 청나라군은 우리백성들을 전리품으로 보고
속가(贖價)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종실, 양반의 부녀자들을 되도록 많이 잡아가려 하였으나 대부분의 잡혀간 이들은 속가를 마련할 수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속가는 싼 경우 1인당 25~30냥이었고 150~250냥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신분에 따라서
비싼 경우 1,500냥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인조실록에 속가 1,500백 냥을 낸 사람은 좌의정 이성구로 이때부터 속가가 비싸졌답니다. 속가를
마련치 못하여 많은 백성들이 속환되지 못하였으며 인조실록에 인조 15년에 780명 16년에 66명 이었다는 기록이니 속가가 없어서 아예 포기하고
여러 가족이 끌려간 경우는 일부만 속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활한 청인들은 조선 사람들은 죽고 없는 부모의 신주도 산
사람이 상으로 모신다는 효심을 알고 끌려와서 죽은 사람까지도 한 사람의 몫으로 흥정을 벌려 도리를 우선하는 선비들은 먼저 어머니의 신주를 택한
다음 산 사람을 택하였으니 속가가 없는 귀환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은 청군에게 몸을 더럽힌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렵게 국가에서 속환을 하였더라도 부녀자들의 절개를 강조하던 시절이라 부녀자의 시부모나 남편 또는 가족들은 며느리나 아내 또는
딸들이 오랑케들에게 몸을 더럽혔다는 사실을 가문의 수치라고 여겨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몸을 보존한 경우가 있어도 사람들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심지어 “오랑케에게 항거하다가 죽었다”고 조정에 거짓으로 보고하여 열녀문을 받은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집일수록 속환된 여인을 더욱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부녀들을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뜻의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렀습니다. 남편들이 이들을 받지 않아 친정에 있거나 자살을 하기도 하여 큰 사회문제가 되었는데 드디어 조정어서 죄 없는
이들에게 “홍제천(弘濟川)에서 목욕을 하고 도성으로 들어오면 그 죄를 묻지 않고 차후에 환향녀들의 정조문제를 거론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 하겠다”는 조치를 하였으나 이들에 대한 멸시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환향녀들은 가족과 동네사람들의 멸시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아가 자신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술과 몸을 팔며 연명했고 그 후 “환향녀”라는 말이 변하여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여자를
“환냥년”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환향녀들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자식들을 하나, 둘씩 달고
왔는데 이들도 “오랑케에게 몸을 더렵혀 낳은 자식”이라 하여 오랑케호(胡)에 포로(虜)를 써서 “호로자식(胡虜子息)”이라 불렀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머니인 환향녀들이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되니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도둑질을 하거나 다른 아이들의 멸시에 싸우기 일쑤였으며 “환냥년의
자식이라 어쩔 수 없다…”고 괄시를 받았습니다.
환향녀와 호로자식은 같은 국민이었고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인데 힘이 약하여 외세의 침입을 물리치지 못한 조국이
잘못한 것이고 그들은 우리의 선조입니다. 앞으로 꼭 욕을 하려면 어원을 알았으므로 조국의 치욕을 되새기는 환냥년, 호로자식은 사용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도 치욕입니다. 여기까지 보세요↓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이런 욕을 하는 분께 욕의 유래를 설명하여 주세요.
좋은 정보네요 어원을 떠나 욕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없겠죠 최대한 자제를...
선생님께서 현명하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국민이 언어순화가 이루어지면 천국의 기분일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가정에 건강과 즐거움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