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준플레이오프 1차전 1회말 두산 공격, 선두타자 정수빈은 선발투수 양훈을 상대로 풀카운트 접전 끝에 중견수 방면에 홈런성 타구를 만들어낸다.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좋은 기회. 그러나 이 타구는 펜스 바로 앞에서 중견수 이택근에게 잡히고 만다. 실점 위기를 넘긴 양훈은 5.1이닝 동안 1실점의 호투를 펼치며 두산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는다.
#2 준플레이오프 2차전 7회초 넥센 공격, 선두타자 김민성은 바뀐 투수 노경은을 상대로 좌측에 큼지막한 타구를 만들어낸다. 넘어간다면 동점이 되는 상황. 그러나 ‘김잠실’은 이번에도 홈런을 허락하지 않았다. 높이 날아가던 타구는 펜스 바로 앞에서 좌익수 장민석에게 잡히고 만다. 위기를 넘긴 노경은은 7회를 무사히 삼자범퇴로 막아낸다.
두 장면은 우리나라 최고의 투수친화구장인 잠실구장의 위엄을 보여준다. 좌우 펜스 100m, 좌우중간 120m, 중앙 펜스 125m의 잠실구장은 메이저리그 구장들과 비교해도 손꼽히게 큰 구장이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 투수친화구장인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카우프먼 스타디움과 비슷하다.
이 때문인지 다른 구장이었으면 충분히 홈런이 되었을 타구가 워닝트랙 앞에서 잡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타구들로 인한 아쉬움, 그리고 박병호, 박경수, 정의윤, 최준석 등 잠실구장을 떠난 이후 좋은 성적을 내는 타자들이 나타나면서 일각에서는 잠실구장의 펜스를 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펜스를 당겼을 때 잠실을 쓰는 두 팀의 손익은 어떻게 나올까? 야수와 투수의 성향에 따라 LG와 두산의 손익계산을 해보았다.
뜬공형 타자들이 많은 LG, 잠실에 최적화된 팀 구성에 성공한 두산
잠실구장과 비슷한 크기의 구장인 카우프먼 스타디움을 쓰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넓은 구장을 이용할 수 있는 수비력 좋고 발 빠른 야수들로 팀을 구성하여 좋은 성적을 올린다. 두산과 LG의 야수 구성은 어떨까? 잠실구장에 최적화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을까?
잠실구장은 장타툴을 가지고 플라이볼을 만들어내는 타자에게 불리하다. 현재 KBO 홈페이지에서는 타자의 땅볼아웃(GO), 뜬공아웃(AO) 개수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땅볼아웃에 비해 뜬공아웃이 많은 타자는 잠실에서 불리한 스타일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팀의 GO/AO 비율을 통해 이러한 스타일의 선수를 많이 보유한 팀(선수들)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2015시즌 각 팀의 GO/AO 비율은 다음과 같다.
뜬공아웃 개수는 외야 넓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목동구장이라는 경기장 특성에 맞게 뜬공을 만들어내는 타자들로 팀을 구성하는데 성공한 넥센 히어로즈 같은 예외도 있지만 유난히 외야가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LG와 두산에서 뜬공아웃 개수가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같은 홈구장을 쓰는 두 팀 간의 비교를 통해 어느 팀이 잠실에 더 최적화된 선수 구성을 하고 있는지는 파악 가능하다.
아래 표를 통해 보았을 때, LG보다는 두산이 잠실에 최적화된 야수를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200타석 이상 출전한 야수 중 LG는 GO/AO가 1보다 작은 야수가 8명, 두산은 5명이었다.
최근 5년을 보더라도 LG는 두산에 비해 잠실에서 약한 스타일의 타자가 많았다. 비즈볼 프로젝트의 이전 칼럼 ‘잠실에서 "타자의 불리함"이 "투수의 유리함"으로 상쇄될 수 없는 이유’ [링크]에 의하면 2011-2015 시즌 동안 전체 1000타석 이상, 잠실구장 250타석 이상 들어선 두산 타자는 9명인데, 대부분 잠실 상성 순위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잠실OPS - 비잠실OPS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때 이원석 1위, 김재호 10위, 김현수 13위, 홍성흔 14위, 양의지 16위, 오재원 22위, 허경민 24위, 정수빈이 28위다. 민병헌만 41위로 상성이 나쁜 쪽에 속한다. 반면 LG 트윈스의 경우 조건에 해당하는 7명 중 이진영, 박용택을 제외하면 상성 순위에서 모두 하위권이다. 팀을 떠난 선수까지 포함한다면 조인성, 정의윤, 박경수, 이택근, 박병호 역시 하위권에 위치했다.
좌측에 위치할수록 잠실에서 약함을, 원의 크기는 OPS의 절댓값을 나타낸다
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두산은 잠실구장에서 더 좋은 생산력을 보여줬던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반면, LG는 잠실에서 오히려 더 약한 선수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잠실구장의 펜스를 당길 때 이득을 볼 선수들은 LG에 더 많다는 것이다.
땅볼 유도형 투수가 많은 LG, 플라이볼 유도형 투수가 많은 두산
‘김잠실’ 때문에 타자는 홈런에서 손해를 볼 수 있지만, 넓은 잠실구장 덕에 투수는 피홈런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득의 정도는 타자와 마찬가지로 투수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플라이볼을 유도하는 유형의 투수는 넓은 잠실구장의 도움을 받아 홈런을 아웃으로 바꾼 횟수가 많을 것이다. 이런 유형의 투수는 잠실구장에서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 반면 땅볼을 유도하는 유형의 투수는 긴 비거리의 타구를 허용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에 넓은 구장으로 인해 얻는 이익이 적다.
카스포인트닷컴(Casspoint.com)에서 제공하는 땅볼타(GB), 뜬공타(FB)를 활용해 각 팀의 땅볼타, 뜬공타 총합을 계산해보았다. 올 시즌 10개 구단 땅볼타, 뜬공타, GB/FB는 다음과 같다.
표를 통해 볼 수 있듯이 LG는 리그에서 뜬공에 비해 땅볼이 가장 많은 팀이다. 즉, 투수진에 땅볼을 유도하는 유형의 투수들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두산은 GB/FB가 리그 평균보다 조금 높을 뿐, LG보다는 땅볼 유도형 투수들이 적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LG는 잠실구장의 넓은 외야를 활용할 수 있는 투수가 적고, 두산은 LG에 비해 많다는 뜻이다.
선수 개개인의 GB/FB를 봐도 두산과 LG는 차이가 난다. LG는 20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 중 GB/FB가 1.1을 넘어 땅볼이 뜬공에 비해 10% 이상 많은 투수가 6명이다. (루카스, 우규민, 류제국, 진해수, 윤지웅, 김선규) 반면에 두산은 단 2명에 불과했다. (허준혁, 진야곱) 이들은 외야로 가는 타구가 적기 때문에 잠실구장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손해를 적게 보는 투수들이다.
땅볼 유도에 능한 투수들이 많은 LG는 잠실구장 펜스를 당겨도 피홈런이 늘어날 여지가 적은 편이다. 두산 역시 리그 평균 이상의 땅볼 유도를 하는 팀이지만, LG에 비해서는 피홈런이 늘어나는 정도가 클 것이다.
‘X존’ 부활 시 LG는 이득, 두산은 물음표
잠실구장, 줄일 것인가?
투수와 타자의 구성을 통해 보았을 때 LG는 잠실구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팀을 만들었고, 반대로 두산은 잠실구장을 이용할 수 있는 팀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수비 면에서도 두산은 발 빠르고 수비가 좋은 외야수를 배치하여 투수들을 도울 수 있도록 했고, 반면 LG는 수비력이 떨어지는 외야수들이 오랫동안 넓은 잠실 외야를 맡아왔다.
그렇다면 LG는 이제 잠실을 이용할 수 있는 선수들을 뽑아 팀 구성을 바꿔야 할까? 그것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선수층이 두텁고 트레이드가 활발한 메이저리그와는 달리 KBO 리그는 팀의 입맛에 맞으면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 자체가 적다. 또한 트레이드 역시 경직된 편이라 선수 구성을 잠실구장에 맞게 바꾸는 것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잠실구장의 펜스를 당기는 것은 당장 내년부터 실행 가능한 방법이다.
그러나 두산이 동의할지는 알 수 없다. 두산은 이미 잠실구장에 최적화된 팀 구성을 해놓은 상태고, 펜스를 당겼을 때 보는 손해 역시 LG보다 크다. 하지만 잠실구장 자체가 리그의 다른 구장에 비해 특출하게 투수친화적이기 때문에 잠실구장에 최적화된 팀 구성으로는 보통의 구장을 쓰는 나머지 8개 구단 원정 경기에서 손해를 볼 여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실구장을 당기는 것이 두 팀에게 모두 바람직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투수와 타자의 유형을 통해 잠실구장 펜스를 당겼을 때 ‘한 지붕 두 가족’의 손익을 계산해보았다. 그러나 땅볼과 뜬공의 비율로는 잠실구장 바로 앞에서 잡히는 타구가 몇 개나 되는지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하편에서는 타구 위치 데이터를 통해 ‘김잠실’이 막아낸 홈런 개수를 파악함으로써 두산과 LG의 손익을 직접적으로 계산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