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노예로 있는 백성은 그 습성이 3대(代) 간다' 통일되면 남북이 당장 함께 살아서는 절대 안 됨을 미리 경험하게 한 장소-탈북자 카톡방 방장으로 고심이 많겠다는 지인들에게 답 드린 내용 이민복(대북풍선단장)
저는 방을 너무 잘 만들었다고 기뻐합니다. 많은 것을 통일 전에 깨닫고 체험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사실 북한에 있을 때 줄곧 대학과 과학원에 있다 왔기에 그 외 주민들이 어떤지를 실감있게 깊이 체험하지 못하고 탈북하였지요. 첫 탈북자를 만난 것은 모스크바에서인데 - 마침 내가 있던 과학원 연구소 곁인 평남도 은산군 성산리에 있다 러시아 건설공으로 온 분입니다. 이분 이름은 리진호인데 세 번 탈출, 네 번 만에 여자 문제로 잡혀 처형됨. 그때 24시간 하루에 5개월간 진짜 북한 주민을 처음 체험 - 그와 함께 아파트에 있었는데 주정이 어찌나 심한지 신고당할 뻔하였습니다. 하여 1950년대 말 모스크바 유학 반북 망명 인사 허진 선생 별장에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여기서 또한 가만있지 않고 주변 개를 잡아먹겠다고 하고 물건 훔치고 주색하고 등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바늘방석. 그러다 잡히면 너는 물론 다 잡혀 죽는다고 지적해도 안하무인 - 종래 그는 전 여자의 고발로 네 번째 만에 잡혔는데 북한 당국은 비행기 표가 아깝다고 으슥한 곳에 끌고 가 비밀 처형 그 후 저는 모스크바에서 탈북자 한국 행 인권 보장을 위해 조직을 결성하고, 월간조선(조갑제, 황성준)과 탈북자 문제 첫 특종을 냄으로서 유엔 난민 보호 기구 UNHCR의 보호를 받게하여 남한 행을 연 결정적 역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덕에 함께 남한에 들어 온 탈북자들임에도 그 중 감사하게 생각하는 탈북자는 한 명도 못 봤습니다. 오히려 남한에 들어와서까지 질투하고 무례하게 굽니다. 입국하여 조사 기관 때부터입니다. 북한 과학원 출신으로서 인터뷰가 많을 수밖에 없는 나를 시기하며 밥을 집어던지며, 나보다 나이 어리면서도 반말하고 질투시기가 말이 아닙니다. 사회 나와서도 여전합니다. 통일을 위해 대북풍선을 첫 개발하여 날리는 저를 향해 북한의 독침 테러 시도가 있게 되자 국민보호 차원에서 경호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탈북자 동호회 책임자라는 이는 왜 자기들은 경호하지 않느냐는 억지 주장과 질투심에 술 잔뜩 먹고 밤 1시 저희 집에 찾아와 발로 문짝을 차고 난리 피웁니다. 옆집 탈북자는 온 가족이 말 같지 않은 생트집을 잡고 주거 무단 침입 즉 우리 집 아파트 벽을 뚫고 나온 향수 냄새가 나서 못 살겠다며 고함 지르고 주변 탈북자들까지 동원하여 위협을 가하고 등. 남한에 와서도 저는 다니던 대학원을 졸업 2과목 앞두고 포기할 정도로 시종일관 탈북자 인권과 권익을 위해 희생적인 투쟁하느라 눈, 코 뜰새 없었습니다. 이런 개인주의 사회에서 바쁘게 서로 살다 나니 탈북자들과 깊이 있는 지내봄과 긴 대화를 못해 보아 그 속내 끝까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탈북자 카톡방을 통해서 정말 감사하게도 그 깊은 세계를 알게 됩니다. 인류 역사의 산전 수전을 다 기록한 성경에 답을 주기를- 북한 같은 우상의 노예로 있는 백성은 그 습성이 3대 간다고 합니다. 분계선 장벽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속의 장벽이 얼마나 큰지 예견될 것입니다. 1세대는 거의 개조가 안되고 그래도 2세가 대화가 좀 될 것이고 3세쯤 가야 완전 대화가 되고 어울려 함께 사는 정상으로 될 것이라 봅니다. 따라서 통행과 통상의 자유가 보장된 통일을 시작하여 완전 통일은 50년 후가 될까 생각되네요. 그걸 하루라도 당기는 것이 큰 통일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탈북자 1세와 북한 주민은 카톡방에서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처럼 무법천지, 막말, 무례, 배은망덕 등 습성이 개조되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따라서 남북이 그 수준끼리 살다가 2세, 3세를 바라보고 통일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적 실례 하나 듭니다. 저 때문에 탈북자 단체장 두 번이나 한 탈북자 한**이 있습니다. 그는 제 눈 제가 찌르듯 제 잘못으로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걸 꺼내오고 그가 망가뜨린 조직을 혼자서 살려낸 은인이 저임에도 - 최근 저를 보고 대북 전단 사기꾼, 5명의 여자의 배를 노 젓고 다닌다는 등 반복하여 반년 가까이 공시합니다. 그 카톡방은 그가 끌어드린 무리들과 막말 소동으로 할 수 없이 이전하고 남긴 <자유북한방>입니다. 한**은 남한에 온 지 30년 되었음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어쩌면 탈북자 1세 또는 북한 주민 속성입니다. 이들과 어떻게 분계선이 개방되도 함께 당장 살 수 있을까요. 따라서 남북이 수준 따로 살다가 2세, 3세쯤 가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고 봅니다. 탈북자 카톡방에서 방장인 저뿐 아니라 실향민 1세, 2세 분들도 함께 겪어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박현 사장을 비롯해서 남한인들은 통일되서 함께 살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합니다. 그 아드님은 통일을 반대… 80을 넘긴 실향 대선배로서 의견 주어도 듣기는커녕 오히려 반발하고… 이를 보다 못해 오죽했으면 인간 쓰레기들이라고 하고 나가셨겠나요. 그간 분단의 후과는 똑같은 민족을 타 국민보다 못한 차이로 만들었음을 북한을 방문해보시고 또 이 탈북자 카톡방에서 경험하시고 말씀합니다. 동족이지만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고 심지어 체형도 난쟁이화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질투와 증오의 공산 주체사상에 쩌든 저들이 잘 살고 신사적인 남한인들과 어울리면 - 배가 아파 부글거리는 시기심과 열듬감에 민노총 같은 자들이 불을 지르면 폭발하여 타도하자고 덤벼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른 남한의 <참수리호>를 격침시키고 6명 장병을 희생시킨 북한 도발도 이런 질투와 열등감의 발현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당겨진 통일처럼 경험하게 해준 이 탈북자 카톡방이 정말 소중한 통일 연구소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무튼 한**과 그가 끌어들인 ***들 참 감사해요. 저는 열 내는 것이 아니라 통일에 엄청 흥미를 가진 자로서 너무너무 소중한 경험을 주셔 감사 또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계속 속성대로 나서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가끔씩 여러분의 속성이 드러나게 유도하는 것은 이해를 충분히 해주셔요. 저는 대놓고 속심을 말씀드립니다. 그래야 통일에 관한 세상을 잘 알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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