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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우주에서 악당의 무리가 나타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죽이고 지구를 멸망시키겠다고 겁박한다. 매 순간 악당의 무리들은 파괴를 자행해 빌딩이 무너지고, 차량이 불타고, 도로가 파괴돼 마침내 지구방위대가 나서서 막으려고 나선다. 지구방위대가 비행 편대를 동원하고, 미사일을 발사해도 악당들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 악을 멸하려던 정의의 사람들은 힘없이 당하고 만다. 이에 악의 무리들은 도로 더 기고만장해져서 더 큰 목소리로 엄포를 놓게 된다.
그때 지구를 지키기 위해 슈퍼맨이 등장하고, 아이언맨이나 원더우먼이나 독수리 5형제가 등장한다. 무협지나 영화나 대부분 악의 기승과 선의 패배가 이어지고, 선한 무리에서 주인공이 등장해 마침내 악당들을 쳐부수고, 물리친다. 모든 사람들은 악의 멸망에 박수치고 선의 승리에 환호한다.
1,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007 제임스 본드 같은 시리즈물은 수십 년에 걸쳐 선풍적인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이소룡에 이어 성룡의 박진감 넘치는 무술 솜씨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록키라는 권투 영화 한편으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실베스타 스탤론 같은 경우는 람보시리즈로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성숙한 연기를 선보였다. 지구 멸망의 주제에 인간과 사이보그, 인간과 기계의 대립각을 보여주며 지구 최후의 날을 그렸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이제 먼 영화 얘기만 아닌 현실과 상당히 맞닿아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보듯 이제 전쟁은 사람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드론이나 무인기가 사람 대신 적을 물리치는 임무를 수행한다. 터미네이터에서 사이보그로 나왔던 아놀드 슈왈제네거 같은 로봇이 전쟁에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이야기다.
어느 나라 영화를 막론하고 권선징악은 거의 모든 영화의 공통적인 주제이다. 악이 흥하는 것 같고, 악당이 형통한 것 같지만 낫이 한번 스쳐 지나가면 마른 풀이 베어지듯 순식간에 쓰러지는 것이 악당의 처지이다. 인류의 역사 또한 악의 무리들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이 진리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사위를 둘러보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언어보다 죽이겠다는 사어가 더 판을 친다. 적잖이 걱정이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그때가 거의 정점이 아닌가 싶었는데 극한 대립양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 교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지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정의를 외치던 5년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갈등이 더 극심해진 이유는 뭔가.
그다음에 이어진 대선에서 1천600만표라는 지지를 등에 업고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다. 곧 반환점을 맞을 터이다. 지난 정권에 앞서 탄핵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대선을 통해 다시 자신들의 손에 권력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이를 쟁취하지 못했으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만도 하다. 그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곳인 국회에서 탄핵이라는 말은 일상 용어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저주의 굿판 언어가 됐다.
조직폭력배들은 주먹 세상에서도 낭만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그곳에 어느 순간 낭만이 사라진 것은 칼잡이가 등장하고 부터라고 한다. 주먹이 빠른 사람이 최고라는 폭력배 세계의 불문율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까닭이다. 정치 세계에서 극한 대립이 없었던 적은 없다. 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예의는 있었고, 중간 지대의 접점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칼잡이 같은 거친 언어가 언론 방송에 교묘히 스며들고, 집단 지성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사람들을 세뇌시키더니 이제는 아예 순순히 목숨을 내놓고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라고 한다. 자고로 정의는 신의 저울에서 계량돼야 하며 평가되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정의가 아니다. 신의 법정에서 공의롭게 언도돼야 한다. 그에 반해 신의는 서로 간에 믿는다는 눈빛 교환이다. 이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척박한 우리의 현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