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주인 A씨의 허락없이 B씨가 살고 있는 진해구 한 단독주택 모습. 안채쪽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위성욱 기자
경남 창원시에 사는 A씨(50대)는 지난해 10월 말쯤 본인 소유의 집 근처를 우연히 지나가다 급히 차를 돌렸다. 집을 산 2017년 6월부터 딱 한 번 임대를 준 후로는 비어있던 단독주택에 불이 켜진 것 같아서다. A씨는 “집 보러온 사람이 왔을 때 불을 안 끄고 나왔나?” 하는 생각에 급히 집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집이 가까워질수록 “분명히 누군가 우리 집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A씨 집은 안채와 바깥채로 나누어진 단층 단독주택이다. 밖에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안채 쪽에 불이 켜진 것을 알아채기 힘든 구조다. 잠시 집앞을 서성이던 A씨는 담을 넘어 불이 켜진 안채 쪽으로 다가가 뒷문을 발로 찼다. 이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누구야”라는 고성과 함께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불쑥 튀어나왔다.
A씨는 그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2개월 전쯤 A씨 집을 보러왔던 B씨(40대)여서다. A씨는 놀란 마음에 “당신이 왜 여기 있냐”고 물었다. B씨의 태도는 더욱 황당했단다. “안 그래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일이 넘 바빠서 연락을 못 했다.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여서다.
이후 집안에 들어선 A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B씨가 마치 자신의 집처럼 냉장고 4대와 컴퓨터를 설치하고, 버젓이 서재까지 꾸민 채 살고 있어서다. A씨는 “40평 정도에 들어갈 만한 살림살이를 우리 집에 옮겨놓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A씨는 그날은 밤이 늦어 일단 집을 나왔다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B씨에게 “수도세와 전기세 그리고 약간의 임대비용 등을 지불하고 짐을 빼라”는 취지로 말했다. B씨는 그때마다 “곧 이사를 갈 거다. 죄송하다”며 차일피일 나가는 날짜를 미뤘다고 한다. A씨는 “조만간 나가겠지라는 생각에 집에서 나가기만 하면 형사상 책임 등을 묻지 않을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A씨 소유의 진해구 여좌동 단독주택 모습. 위성욱 기자
하지만 B씨는 해를 넘겨 지난 2월까지도 집을 비워주지 않았다. 화가난 A씨는 2차례 112에 신고도 했으나 강제로 B씨를 몰아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경찰이 출동할 때마다 B씨가 자리에 없었고, 집 안은 마치 이사를 들어온 것처럼 많은 살림살이를 풀어놓아 경찰도 단순 주거 침입으로 단정할 수만은 없어서였다.
A씨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 등의 말을 듣곤 더욱 기가 막혔다. 경찰이 “임대·매매 등에 대한 명확한 확인 절차가 끝나기 전에는 A씨가 집에 들어가거나 물건을 옮길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해서다. 그렇게 A씨는 자신의 집인데도 맘대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A씨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B씨는 “확인서를 쓰고 5월 9일까지 집을 비우겠다”고 약속했다. 확인서에서 B씨는 ‘2020년 10월 5일 A씨의 승낙 없이 A씨 소유의 집으로 이사해 2021년 4월 27일 현재까지 살고 있다. 5월 9일까지 사용료 400만원과 전기세와 수도세 등을 납부하지 않고, 이사를 하지 않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고 쓰고 서명도 했다. 이후 B씨는 지난 5월 9일 이전에 자신의 어머니 이름으로 A씨 통장에 300만원을 입금했지만 이사는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참다못한 A씨는 결국 며칠 뒤 진해경찰서에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했다. “A씨가 사용료 일부는 지급했으나 여전히 자신의 집에서 나가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다. 이에 B씨는 경찰에서 “A씨 집에 2020년 4~7월까지 자신이 다녔던 업체가 임대해 사용한 적이 있는데 업체 측에서 우리가 임대했으니 집에 머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사를 오게 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당초 B씨가 A씨에게 써준 확인서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으나, 경찰 조사에서 전혀 다른 말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업체 측에서 A씨 집에 머물며 사용했던 복사키를 받아 사용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덧붙였다.
하지만 B씨가 지목한 업체 대표는 이를 부인했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B씨에게 그렇게 말한 사실이 없다. B씨가 정식으로 임대계약을 한 것처럼 말해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A씨는 “업체와는 지난해 4~7월까지 임대계약을 했고, B씨는 8월쯤에 집을 보러 온 것처럼 왔는데 그때도 그 업체 소속 직원이라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며 “지금까지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가 경찰 조사를 받으러 오니 저런 식으로 발뺌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 소유의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의 한 단독주택 모습. 이 집에는 A씨 모르게 지난해 10월부터 B씨가 들어와 살고 있다. 위성욱 기자
B씨는 사실관계를 묻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찰에 진술한대로 처음에는 그런 사정으로 들어갔지만 뒤에 집주인을 만난 후에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고, 결과만 놓고 보며 제가 잘못한 것이다”며 “하지만 처음 집주인을 만났을 때나 확인서에 집에 이사오게 된 배경을 남기지 않았던 것은 당시에는 빨리 돈을 주고 이사를 나가는 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건데 여러가지 사정이 생겨 아직 못나가고 있지만 조만간 이사를 나갈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두 사람에 대한 1차 사전 조사는 한 상태”라며 “B씨가 자신의 진술과는 달리 무단으로 A씨 집에 이사를 가 산 것으로 확인되면 무단 가택 침입 등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