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개들이 인간 마을에 다가와 또 다른 인간이 되었다면, 그것은 호기심이 그리움으로 변하여 구석기부터 쌓여 왔을 것이다 개나 소나 말들 그리고 낙타들을 보라 그리움에 겨운 인간을 향한 원초적 그리움을, 늑대들은 인간의 비정함에 지레 겁을 먹고 아직도 마을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다시는 개를 사랑하지 않으련다 간절히 젖어있는 눈망울을 보지 않으련다 나를 향한 그리움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그들의 그리움을 외면하는 것은 나의 그리움을 외면한 것과 같기에 그리움이여!
배신하지 않기 위해 그리워하지 말자 사랑이여! 배신하지 않기 위해 사랑하지 말자 황야에서 우리 다시 만나 포옹 한번하고 천년 동굴 속 그리움의 발바닥이나 핥으며 또 한 생을 지나자꾸나!
<시작노트>
이 시에서 화자는 "개나 소나 말들 그리고 낙타들"이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고, "늑대들"도 겁을 먹고 있긴 하지만 마을 주위를 서성이는 것을 보면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인간을 좋아하는 동물은 개라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개가 인간을 향해 "간절히 젖어있는 눈망울"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을 향한 개의 "그리움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 "개를 사랑하지 않으"려고 결심한다. 여기에서 "개들의 그리움을 외면하는 것은 나의 그리움을 외면한 것과 같"다는 표현은 화자가 개의 그리움을 자신의 그리움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화자는 "그리움에 겨운 인간"이고 개는 그러한 화자를 향한 "원초적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움이나 사랑을 느끼게 하는 존재를 곁에 두지 않으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최현순
1952년 춘천 출생으로 2002년 계간 『창조문학』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예총 문화예술공로상을 수상했으며, 춘천 문인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김유정문학상 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 『두미리 가는 길』 『아버지의 만보기』 『감정리』 『개의 그리움에 대하여』(시산맥사) 등, 산문집 『내 영혼의 풀무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