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우리에 대해 떠올리는 밤
베개에 엎드려 과거를 들춰보는 이는 누구일까?
책장에 올라가 웅크린 고양이, 문밖에서 우는 아이
어쩌면 이 모든 장면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캐물을수록 모든 게 잘못 같아
우리란 말은 어쩐지 참 비현실적이고
그저 그물망처럼 생긴 걸 우리라고 한다면
너는 아무 생각 없이 그물에 걸려든 걸 테고, 나는 그물을 머리에 자꾸 처박고 있느라 목이 빠질 것 같고, 그물 바깥으로 촘촘히 벌레들이 달라붙은 게 보여
미궁에 빠져들기 딱 좋지
너와 나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종족이고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이나 떨어진 채 자라온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던 것일까?
차라리 바닥에 부딪혀 머리를 팡 터뜨리고 말지
새끼 거미들처럼 바글거리며 생겨나는 세포들
그게 하나씩 몸뚱이가 자라나면서 꼴을 갖추고
우리를 만든다
씩씩대거나 찡그리거나 기어가는 아이들 속에서 내가 보이니?
놀란 눈의 O야, 아니 너는 게으른 X구나, 아니면 무심한 F야, B는 그만 좀 고개 돌려, J는 노래를 부르고, R은 정신과 선생처럼 깐깐하게 굴고, Q는 뚱한 얼굴로 울어, 얘네 중에서 차라리 마음에 맞는 널 만들어낼까?
나 곧 죽을 것 같아
이런 말에도 꼼짝하지 않는 너 대신
주전자에 찻잎이라도 넣고 끓여줄 S를 원해
한 베개에 머리를 맞대고 무한 증식하는 아이들아
이제 좀 우리는 우리 같아 보이겠지
우리는 조금은 신이 나서 떠들어댄다
눈 내리는 날에 얼어붙은 시체를 발견했어,
하수구에서 움직이는 머리채를 집어 올렸어,
지붕 아래 말벌집에선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메말라가는 토마토 화분을 뒤집었더니 피가 났어,
목줄을 채운 개가 유기견을 물고 달아났어,
그런데 A야, 사실은 내가 아는 S는
사과하고 싶어했어
너를 절벽에서 밀친 건 고의가 아니었다고
쥐구멍을 만들어놓고 숨어버리면
있던 게 없어지기도 하잖아
근데 뭘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걸까?
나는 그만 꺼지라고 말한 것뿐인데
진짜로 그 밤에 나는 죽어버렸고
그 밤에 죽임을 당했는데
물에 빠졌나 불에 타버렸나 다시 살았나
기억나지 않는 밤
상처나 잘못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잔해만 남아 꺼끌꺼끌한 표면이 만져지기도 해
광활한 모래벌판이 되기도 하고 얼어붙은 입술이기도 한
시시때때로 변모해나가는 그것을 어찌해야 할까
S이거나 F이거나 상관없이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공책을 펼쳐
태어났을 때부터 저지른 죄에 대해 써나가는 거지
우리는 말이야
이불을 뒤집어쓴 채
증오했던 그 밤을 지운다
성별이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 조그만 벌레들처럼 날개를 비비거나 꽁무니를 들이대거나 주둥이를 오물거리며 그게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우리는
기꺼이 죗값 보존의 법칙을 배운다
가는 풀을 이어 세 가닥 머리 땋기를 하거나
길바닥에 풍뎅이 무늬를 촘촘하게 그려가거나
수백 번 골목길을 돌고 돌며 헤매다가 보니
너는 얼마나 많이 잘못한 거니?
오늘도 잘못하지 않은 이들이 한꺼번에 죽음을 건넜는데
잘못은 도대체 누가 한 것이니?
이런 질문을 조용히 넘기고 넘기면
F는 S를 꽉 끌어안으며 숨죽여
물지 않으려 애를 써
발밑이 이렇게 뜨겁고 축축한데 말이야
피는 용케 발바닥을 부여잡고 있어
팁트리와 애트우드와 오츠 같은 이야기꾼은
잘못한 이야기가 잘한 이야기를 이끌고 가도록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먼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목격해냈다
그래서 오래 살아남은 이야기에는 틀린 말이 없고
그러니 S야, 이 밤은 너에게 꼭 되돌려주고 싶어
내가 빼곡하게 써내려간 밤이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욕심이 한껏 과해져 도통 결말이 보이지 않는 밤을
새벽이 밝아오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흔적을
이제 다 끝냈어
머리맡에 둔 자리끼를 한 컵 따라 찬찬히 마신다
지난밤에 내가 한 말에 대해 추궁하는 일을, 후회하는 일을, 비난하는 일을, 모욕하는 일을, 인간이어서 하는 말 따위를 어렵게 삼키고 나면
반듯하게 펴놓은 이부자리 위
한데 몰려 잠든
무수한 내가 있고
네가 있다
전혀 영문을 모르는
우리가 있다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 신해경 옮김, 엘리, 2022. -
- 희귀종 눈물귀신버섯, 문학동네시인선 1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