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속의 요정
베틀에 앉아 베를 짜던 14살짜리 소녀는
곱게 베도 잘 짠다는 시댁어른들의 칭찬을 들으면서
시집 가게 될 날짜를 잡는다.
하지만 아직은 어린 소녀에 불과하기에
엄마랑 같이 살거라며 시집가기 싫다고 떼를 쓴다.
"너 시집 안가면 왜 놈들이 잡아다 기름짠다고"
단단히 겁을 주어 결국 소녀는 왜 놈들에게
기름 짜는게 무서워 경성에서 사범학교 다니던
자신보다 2살 많은 16세 소년과 결혼을 하게된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0년경 였으리라.
그 무시무시한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던
일제 식민지 우리네 딸가진 농촌의 풍경이다.
결혼 첫날밤
14살 짜리 소녀보다
더 긴장하여 원삼 쪽두리 벗기던
손이 덜덜덜 떨던 2살위 신랑은
아랫목에서 자고
여차하면 도망 칠거라고 맘속으로 다짐하던
소녀는 윗목에서 쪼그리고 밤을 지샌다.
당시 풍습대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녀는 시댁에 들어가지 않고
친정에 그대로 남고
신랑은 서울로 다시 공부하러간다.
방학때마다 내려오는 소녀의 신랑은 글을 모르는
그녀에게 글도 가르쳐주며 자상하게 대해주어
알게모르게 소녀의 가슴에는 사랑이 싹트게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엄니에게 자신도 경성에
있는 신랑한테 가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뭐시어 시집 가기 싫다고 울고 짜고 하던 뇬이!"
염병(장티푸스)이 돌 던 그 해 여름
염병에 걸린 시댁 어른들 약 지어가지고
병 문안 가셨던 그녀의 아버지마져 염병에 걸려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친정아버지까지 염병으로
떼 죽음을 당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다고 남들은 만세를 부르고
노래하고 춤도 추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들은
애고애고 목 놓아 울어야했으니
그리고 해방과 더불어 그녀의 신랑이 한 일은
천석꾼 부자는 아니였지만
자신의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토지를
그 동안 농사를 짓던 소작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실험장으로 대리전을 치루었던
1950년 6월25일 민족동란때 그녀의 신랑은 마을에
위원장이 되어 지주들과 그 식솔들을
인민군으로 부터 구해 주는 일을 전적으로 해 냈지만
빨갱이란 누명은 그녀의 신랑을 마을로부터 떠나게 만든다.
인민군 부역자들에 대한 피에 숙청은
차라리 남편이 마을에 없는게 오히려
더 잘 된 일이라고 눈물로 자신을 위로하지만
어느날 그녀의 남편은 피에 젖은 몸으로 돌아온다.
살아 서 돌아 왔다는 것 만으로도
가슴 절이게 반가운 일이지만
들키지않는 일이 바로 생사를 주관하는 일이기에
그녀의 남편은 집 지을때 집이 비틀어진 것을
바로 잡기위해 빈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던 빈 벽속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보물같은 딸아이가 생긴다.
순하고 덕스럽게 살라고 순덕이란 이름의 딸아이는
엄마가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행상을 나가면
벽속에 있는 요정 '스타카치'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한다.
내 소중한 이웃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있는 일을
성의껏 한 죄 밖에는 없지만 빨갱이로 몰리어
죽음의 시간을 보내던 남편을 보듬어안아 위로하면서
호구지책으로 행상을 하며 갖은 고생을 하던
혼란의 시대 어머니 그녀에게도 작은 희망에 빛이 들어온다.
벽 속에 숨어있던 그녀의 남편이 맘도 다스릴겸하여
그녀가 짜던 베틀에 앉게 된다.
손톱이 유난히 가늘어 베짜기에도 좋은 그녀의 남편은
그녀보다 훨씬 고운 베를 짜낸다.
그리고 그들은 장사꾼으로 성공한 자신의 옛소작인 도움으로
읍내에 자그마한 포목점을 열게된다.
읍내에 있는 포목점으로 이사가던 날 밤
그녀의 신랑은 장모의 옷을 입고 장모로 변장하여
칠흙같이 어두운 산길을 그녀의 손을 잡고 간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손을 꼭 잡은 신랑이
그렇게 듬직하고 좋을수가 없었다고 그녀는 오랫만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자랑한다.
머리에 뿔이 달리고 얼굴이 빨간 빨갱이를
반공포스터로 그렸던 순덕이는 반 친구로부터
너네 아버지가 빨갱이라고 구박을 받게된다.
울며불며 집에 돌아 온 순덕이는 벽속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 스타가치 요정에게
정말 아버지가 빨갱이였냐며 따지고 든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사망신고를 반대했지만
교대를 나와 선생님이 되는 순덕이를 위해
순덕이 아버지는 사망신고를 끝까지 고집하고야만다.
천막을 치고 일꾼들에게 줄 밥과 고기를 굽다가
천막에 불이 붙어 모두가 우왕좌왕 정신이 없는 와중에
천막을 풀어 화재를 진압하는 재기를 보였던
박선생과 순덕이는 결혼을 한다.
만병통치약 세월의 약은 드디어 부역자들에게
사면복구까지 이어지게된다.
이미 사망신고까지 끝나버린
벽 속에 그녀의 남편도 40여년만에 밝은 세상을 보게된다.
예순칠곱의 할아버지가 된 그녀의 남편은
난생처음 밟아보는 꺼먼땅 아스팔트를
그녀의 사위와 그녀의 부축임을 받으며 읍내로향한다.
예수꾼이길 바라는 그녀의 남편에게
죽음이 다가오자 그녀는 목사님을 부른다.
"형제님 하나님을 받아들이세요
하나님을 믿으시죠?"
"나는 인간의 사랑을 믿습니다.
그 뿐입니다.
인간의 사랑에 하느님의 사랑이 나타난거예요"
그녀의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목사님께 이야기한다.
목사님이 가시자 그녀는 남편에게 울면서 따진다.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마지막에마지막까지 꼬였어. 배배꼬였어"
그녀의 남편은 이야기합니다.
"나는 하느님한테 용서를 구하지않아.
사람들...당신한테 용서를 구할 뿐이지...
용서해 줘..."
'김성녀'씨의 뮤지컬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을 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주일날 보았다.
'스페인 내란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후쿠다 요시유키'가 쓴
원작을 한국동란에 맞춰 극작가 배삼식씨가 재 구성하고
손진책씨가 연출한 극단 미추의 벽속의 요정.'
물론 재주가 뛰어나게 많은 김성녀씨였기에
열네살 소녀부터 네살짜리 순덕이, 계란장사, 육순의 어머니
열여섯의 신랑, 읍내 파나마건달꾼, 언챙이 소작인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너무도 그럴듯하게 소화 해 낸다.
특히나 소녀처럼 고운 목소리와 깜찍 발랄하게 때론 섹시하게
추는 춤까지 과연 열정이 가슴에 가득 찬 여배우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연극을 보면서 시종일관하게되었다.
55살에 처음 시작한 '벽속의 요정'을 5년이나 공연했고
앞으로도 5년을 더 채울 예정이라고 김성녀씨는 공연이 끝난 다음
관객들에게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나이 육순에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으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여배우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살아 있다는 것은...아름다운 것!"이라고
마지막까지 진솔하게 외침은
어쩌면 나이 육순에 여배우였기에
더욱 더 가슴에 절절이 와 닿을 수 밖에 없었다.
살 만큼 살았다고 자위하며
삶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09.9.21
NaMu
첫댓글아..벽속의 요정이 나무님의 감성에 걸려들었네..ㅎㅎ.. 난 그거 보고 많이 울었어요(박정자씬 19 그리고 80을 해마다 해요..지난봄에 집에 왔을때 그러대요..80까지 하고 싶은데 될가 싶다고요..그래서 내가 해보라 했어요.. 당신한테서 지금은 아직 80의 무르익은 연기는 안나오지만 정말 80이 됬을땐 아마 멋있는 모습을 볼수 있지 않겠냐고..........그연극을.두번을 봤었는데..박정자씨는 실물이 주는 느낌이 훨씬 좋습니다...........단아하니 깨끗한..)
초대권을 주셨던 순맘언니께 ...이루 말 할수 없이 감사할 따름이예요... 카리스마가 여배우중에 최고라고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인 박정자씨도 하셨군요...모노드라마에 뮤지컬까지 함께 볼 수 있어서요....넘넘 행복했는데요... 왠만한 배우들은 감히 생각조차 못해 볼 것 같아요... 여러가지로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순맘언니^^ 담에는 같이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하구여
우~와 따님이 연극을 전공하시는군여....담에 연극 보실 기회가 있음 저도 붙여주세유^^ 보고 싶은 맘이야 하늘 만하지만...그게 맘 만큼 행동을 옮겨 지질않아서요....특히나 시간이라는게 주일밖에 없거든요.... 천만다행 순맘언니 덕분에 넘넘 좋은 공연을 볼수 있어서요..을마나 감사한지요....못 보신 님들을 위해.....어설픈글을 함 올려봤어유
혼을 실은 연기로 감동을 선사한 김성녀씨의 삶을 통한 인생의 아름다움도 가슴에 와 닿지만 드라마 마지막 부분(남편)의 대사에 마음이 더 꽂히는군요.."나는 하느님에게 용서를 구하지않아--사람들... 당신에게 용서를 구할 뿐이지.....용서해 줘" 나무님 글에 매료되어 저도 한 번 꼭 보러가야 되겠네요.ㅎㅎ^^^
동북아 변방에 있는 작은 나라....외세 침략과 내 손으로도 해방이 되지 못한 나라...그러기에 강대국의 밥이 된거져.....혼란의 시대 어머니 그녀는 강하고 대견했어요. (김원일씨의 불의 제전하고 느낌이 많이 비슷했구여)...특히나 아이부터 츠녀 노인에 이르기까지 노래하고 춤추고 김성녀씨의 매력이 물씬물씬 풍겼거든요...시간 나실때 꼬~옥 가보세요...제 글이야 넘 어설프지만...'아~ 보길 잘 했어' 그런 생각은 분명 드실거예유 ^^
첫댓글 아..벽속의 요정이 나무님의 감성에 걸려들었네..ㅎㅎ.. 난 그거 보고 많이 울었어요(박정자씬 19 그리고 80을 해마다 해요..지난봄에 집에 왔을때 그러대요..80까지 하고 싶은데 될가 싶다고요..그래서 내가 해보라 했어요.. 당신한테서 지금은 아직 80의 무르익은 연기는 안나오지만 정말 80이 됬을땐 아마 멋있는 모습을 볼수 있지 않겠냐고..........그연극을.두번을 봤었는데..박정자씨는 실물이 주는 느낌이 훨씬 좋습니다...........단아하니 깨끗한..)
초대권을 주셨던 순맘언니께 ...이루 말 할수 없이 감사할 따름이예요... 카리스마가 여배우중에 최고라고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인 박정자씨도 하셨군요...모노드라마에 뮤지컬까지 함께 볼 수 있어서요....넘넘 행복했는데요... 왠만한 배우들은 감히 생각조차 못해 볼 것 같아요... 여러가지로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순맘언니^^ 담에는 같이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하구여
가만 앉아서 연극한편 잘보고갑니다 박정자씨나 김성녀씨나 두분다 최고의 배우이지요 ㅎ 연극 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울딸이 연극 전공이다보니 앞으로 볼 기회가 많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ㅎ ^^*
우~와 따님이 연극을 전공하시는군여....담에 연극 보실 기회가 있음 저도 붙여주세유^^ 보고 싶은 맘이야 하늘 만하지만...그게 맘 만큼 행동을 옮겨 지질않아서요....특히나 시간이라는게 주일밖에 없거든요.... 천만다행 순맘언니 덕분에 넘넘 좋은 공연을 볼수 있어서요..을마나 감사한지요....못 보신 님들을 위해.....어설픈글을 함 올려봤어유
너울은 나무님 글 읽을땐 천천이 읽는다오
넘 길긴 길죠... 그렇지만 2시간짜리 연극였거든여^^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압축해서 잘보고갑니다.. 김성녀,손진택씨 부부아닌가요?~~두분다 유명한 분들인데~~ㅎ
몇년만에 연극을 봤는데요... 그것도 모노드라마에 뮤지컬였으니....행운이 덩쿨채로 들어 온 거쥬... 옙^^ 두분은 부부죠...손진택씨는 극단 미추 대표이기도 하시데요....
가을은 자연뿐만 아니라 문예행사도 풍성한 계절인것 같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좋은 행사들이 유혹하는.... ^^* 좋은 작품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풍성한 가을맞아여^^ 시간 나실때 함 가보세요.... 모노드라마와 뮤지컬의 진수를 볼 수가 있었거든유....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
혼을 실은 연기로 감동을 선사한 김성녀씨의 삶을 통한 인생의 아름다움도 가슴에 와 닿지만 드라마 마지막 부분(남편)의 대사에 마음이 더 꽂히는군요.."나는 하느님에게 용서를 구하지않아--사람들... 당신에게 용서를 구할 뿐이지.....용서해 줘" 나무님 글에 매료되어 저도 한 번 꼭 보러가야 되겠네요.ㅎㅎ^^^
동북아 변방에 있는 작은 나라....외세 침략과 내 손으로도 해방이 되지 못한 나라...그러기에 강대국의 밥이 된거져.....혼란의 시대 어머니 그녀는 강하고 대견했어요. (김원일씨의 불의 제전하고 느낌이 많이 비슷했구여)...특히나 아이부터 츠녀 노인에 이르기까지 노래하고 춤추고 김성녀씨의 매력이 물씬물씬 풍겼거든요...시간 나실때 꼬~옥 가보세요...제 글이야 넘 어설프지만...'아~ 보길 잘 했어' 그런 생각은 분명 드실거예유 ^^
아흐....나의 일대기를 그린 것 같군요...감동적이지요? ㅎㅎㅎ
증말루여? 만일에말예요....그시절에 태어났담 ....겪어 봄직한 이야기져^^
똑같이 연극을 보았어도 이렇게 예쁜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자리에 내가 앉아 있었던 것처럼 표현을 너무 잘 해 주셔서 감상 잘 했답니다.
우~와 heeya님도 보셨군여~~ 김성녀씨 정말 재주가 많은 배우였져....어쩜 그렇게 잘 할 수 있는지유...노래며 춤이며 성격묘사까지요..
나무님..나한테 그연극 노래 담은 시디 있는데..가지고 싶다면 줄게요
나무님 전 못 봤어요..ㅎㅎ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잘 표현 해 주셨다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