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 10대시절을 보냈던 경험을 토대로 얘기하자면, 지금으로 치면 거의 박태환 급의 인기였다고 생각하면 딱 맞다고 생각하셈..
그리고 82년 프로야구가 생기기 이전에 야구하면 8월의 봉황대기, 고연전(혹은 연고전), 실업야구, 그리고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미 대학야구라고 7,8월즘에 열리던 한국과 미국의 대학선발팀이 동대문구장에서 7차전을 치뤘는데 컬러티비가 생기기 전 흑백시대였을때 7차전 전부 생중계를 했더랩니다..
위에 얘기했던 봉황기,고연전, 한미대학야구, 실업야구(아마추어롯데, 농협,한국전력,군팀였던 경리단, 한국화장품 등이 참가)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기를 모았던 사람이 다름아닌 최동원씨였고, 동네야구에서 너나 할것 없이 11번을 선호해서 하얀색 난닝구 뒤에 매직펜으로 11번을 그려놓고는, 눈도 좋은 애들이 엄마 졸라서 금테안경을 사서 쓰고는 최동원씨 특유의 폼을 따라 던지다가 중심을 잘못 잡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었어도 좋다고 계속 따라 했더이다...
물론 기록만으로 따지면 선동열 선수야 넘사벽였고, 대학생들 학사경고 먹고 그러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선동열 방어율 먹었다고 했을 정도지만, 최동원씨는 한마디로 기록을 넘어서 뭔가 사람에게 기억되는 그런 선수였음..
첫댓글 아 왜 지동원으로 봤지...
코시 4승은 정말 대단한기록 ㄷㄷ
엄청 야위셨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