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태어나 열네 살까지 살았던 집터(안쪽에 보이는 집)다. 들어가는 입구 다리 이름은 만령교(萬齡橋). 오래 살으라고 만령교, 라고?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만령골 이라고 부르다가 발음이 뭉그러져 '망령골'로 부른다. 참, 그 좋은 뜻의 이름을 무심히...
엄닌 이곳에서 태어나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이웃 마을(알펜시아리조트가 들어선 용산리, 마을 사람들은 큰터 라고 부름)에 사는 열일곱 살 울 아버지와 혼례를 올리고 꽃가마를 타고 시집가셨다고. 당시 관례(습)인 혼례 당사자의 생각보단 어른들의 약속으로, 이를 테면 정략(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결혼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버지가 사주를 가지고 첫선을 보러 외가에 왔는데, 안방에서 아버지와 마주 앉은 외할아버지가 윗방에서 방망이질 하는 가슴을 누르고 있는 엄마에게 "얘야, 좀 내려와 보거라" 하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엄닌 안방에 내려와서도 부끄러워 아버지 앞에서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한 마디 인사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아버지가 외할아버지를 따라 소 여물을 썰러 나가길래, 그 틈을 타 엄마는 부엌에 나가서 외할머니를 도와 저녁을 준비하는 척하며 몰래 부엌 뒤에 숨어서 보았다고 했다. 엄마가 들려주는 그 말을 듣곤 내가 "엄마 그때 느낌이 어땠어?" 하고 물으니 " 키가 미출(당시 평균키보다 상당히 컸다고)하니 괜찮더라. " 하셔서 얼마나 웃었는지. 어린 나이에도 낭군이 어떤 모습인지 맞선 자리에서는 떨리는 가슴에 바로 보지 못하고는 그 궁금함이 하늘을 찔렀든지, 엄닌 부엌으로 나와 부엌 뒤켠으로 돌아가 훔쳐보았다고...그러니 그때 엄마의 가슴은 얼마나 두근대며 고동쳤을까.ㅎㅎ
엄니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터는 지금 비어 있다. 그동안 어떤 목적으로 집터가 이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집터를 비우기 전엔 목재로 커다랗게(지금 사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쪽) 건물을 지어 농기구를 수리했던 곳이다. 지금도 농기구를 수리한 흔적들이 일부 남아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소나무도 보기와는 다르게 나이가 제법 된 소나무다. 찾아갈 때마다 안아주고 온다.^^
팥배나무다. 어린 시절 산골에서 자라 팥배나무를 많이 봤지만, 이렇게 큰 팥배나무는 처음 봤다. 아직도 팥배가 달린다. 밑동이 한 아름 넘는 크기다. 엄마 어린 시절에 가을이면 이 나무에 올라가 팥배를 따 먹었지 싶다. 처음 이렇게 큰 팥배나무를 보곤 너무 놀랐다.
찾아갈 때마다 인사를 나누며 엄니가 즐겨 드셨던 호박엿(청우식품)을 하나 까서 나무에게 주고 안아준다. 다시 봐도 이렇게 큰 팥배나무는 처음이다. 엄니가 이미 태어난 지 100년이 훌쩍 지났으니 나무의 나이는 말해 무엇하랴! 평창군에서 보호수로 관리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싶다.
엄니 어린 시절 고향 마을로 들어서는 마을길. 대형 사슴벌레 안내 표지판이 반긴다. 행정구역으로는 평창군 대관령면 차항 1리다. 이름하여 [대관령 눈꽃마을]이다. 사진에서 보는 길로 30여 미터 가면 좌측으로 작은 다리를 건너 가면 눈썰매장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서녘골 이라고 부른다.
쑥부쟁이 꽃이다. 개화한 지 좀 지나 꽃잎이 낙화를 준비한다. 울 엄니와 마지막 전국 일주 여행하며 이곳(길옆)에서 엄니 머리에 꽂아준 꽃이 바로 사진 속 꽃이다. 당시 꽃을 꺽어 머리에 꽂아준 그 자리에서 핀 그 꽃(다년생 국화과임)이다. 꽃은 어김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피어 반기는데, 엄닌 하늘로 떠나고... 이 곳에 들러 이 꽃을 볼 때마다 그리움에 눈물이 난다.ㅠㅠ
만령교에서 바라본 개울 물... 엄니가 어린 시절 삼촌들을 따라 이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았다고 했다. 개울을 따라 내려 가면 횡계를 지나 용평리조트 앞 수하의 평창강까지 이어진다. 엄니가 살아오며 조금이라도 발자취를 남긴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찾아가고 있다.^^
'이효석문화마을' 둘레길을 걷다가 새로 생긴 전시관을 잠시 둘러보며... 추모의 꽃이다.
평창 읍내 강변에서 열린 백일홍축제장 둘례길을 걷다가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연서를 써서 매달아 놓고ᆢ언젠가는 하늘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ᆢㅠㅠ
첫댓글 (26.06.24) 다운 저장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