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지켜낸 항명
자칫하면 소실될 번했던 국보. 이 국보는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인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제52호)과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고려대장경판(국보 제32호)을 이름이다.
이 국보가 민족상잔의 비극 6.25전쟁 당시 소실되어 영영사라질 번한 것이다. 1951년8월17일부터 9월18일까지 해인사를 포함한 지리산 일대에 대한 공비토벌작전이 한창일 때다. 공군 제1전투비행단 제10 전투비행전대장 김영환 대령(31)에게 ‘지리산 토벌대에 쫓겨 가야산에 숨어든 인민군 900여명을 소탕하기 위해 폭격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자신의 편대를 이끌고 출격한 김영환 대령은 폭탄투하지점이 바로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해인사라는 점을 알게 되자 ‘빨치산 몇 명 죽이기 위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불태울 수 없다’며 항명한 채 폭격하지 않고 기수를 돌렸다.
한걸음 더 나가 자신의 허락 없이는 해인사지역을 폭격하지 못하도록 금지함으로써 국보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해인사 경내외의 허다한 문화유산을 지켜내게 됐다.
당시 출격한 전투기 마다 230kg짜리 폭탄 2개, 로켓탄 6개, 기관총 1800발씩을 장착하고 편대장은 250kg짜리 네이팜탄까지 무장했었다니 만약 그대로 폭격이 이루어졌다면 팔만대장경은 순간 잿더미가 됐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던 일이다.
그러나 김 대령의 항명은 이적행위로 간주돼 현장에서 처형될 수 있는 전시.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폭격을 거부한 채 비행전대를 이끌고 기지로 돌아간 김 대령은 상부의 불같은 호출명령을 받았다.
그는 당당하게 ‘영국 사람들은 세익스피어는 인도와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해인사 대장경은 세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빨치산 잡겠다고 이것을 태울 수는 없었다.’고 소명했다. 이러한 그의 소명은 다행히 받아들여졌다.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은 1948년 공군을 창설한 일곱 명 중의 한 명이다. 그는 6.25당시 T-6훈련기를 조정해 저공비행으로써 적 전차와 차량에 폭탄과 수류탄을 던지는 등 필사적인 공격을 감행,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6.25발발 나흘 뒤인 6월29일 일본으로 건너가 F-51 무스탕 전투기를 인수해와 첫 출격을 감행한 자랑스러운 전투조종사 10명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1953년 공군 초대 제10전투비행단장에 취임, 휴전할 때까지 공군의 최 일선 지휘관으로 F-51 무스탕출격작전을 지휘했으며 전투조종사 양성 등 공군전력향상에 헌신했다.
1954년 3월5일 F-51 무스탕 전투기를 조종해 사천에서 강릉기지로 향하던 중 악천후로 추락, 준장으로 진급한지 두 달 뒤인 34세에 순직한 빛나던 아까운 별이었다.
김 장군은 강릉전지기지 사령관 시절 공군 최초로 빨간 마후라를 착용함으로써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빨간 마후라가 공군조종사의 상징이 되게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9년 11월14일 오전 합천해인사에서는 종단 관계자와 공군유공자회 회원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 김영환 장군의 추모비건립과 그를 기리는 호국추모제가 있었다. (2012. 2. 16.)
*공군역사자료발굴위원회 발간 보고서와 정진홍의 사람공부 참조*
첫댓글 위대한 장군님이시여 천국에서 평안하소서
위대한 유산뒤에는 그를 지켜낸 헌신적인 공로자가 있음을 본다 삼가 김영환 장군님께 경의를 표한다
김영환 장군님, 나라를 위하여 그렇게 큰 공헌을 하시고 꽃다운 나이에 순국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