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첨 가입 했습니다.
나의생각이 늘 이러하던중 대자유인이라는 칼럼싸이트에 방문하였다가
뜻이 통하고 내용이 좋기에 칼럼 주인의 동의를 얻어 현제 종교인들이
자각하여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펀글을 올려드립니다.
부디 끝까지 읽어시고 자각하시옵길 바라면서...........
제75호> 무엇으로 국민의식을 하나로 결집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누가 해야 하나? 2002년 05월 10일
우리는 故(고) 박정희 대통령 하면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슬로건 아래
찢어지게 가난하던 우리들 살림을 오늘 처럼 윤택하게 만든 동기가 된
새마을 운동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5.16 혁명을 일으킨 고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하면서 국민에게 두 가지 정신적 방향을 제시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故(고) 박대통령은 文武(문무)의 양대 지주를 설정 제시함으로서 그 당시
국민들이 바라보고 걸어 갈 구체적 방향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武(무)로서는 忠武公(충무공)을 표상으로 하여 아산 현충사를 성역화 하였고,
文(문)으로서는 퇴계를 표상으로 하여 도산서원을 성역화 하였습니다.
그 분들의 행적을 통하여 국가관을 설정하고 삶의 사표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무슨 마음에서인지 우리의 년호인 檀紀(단기)를 폐지하고
西紀(서기)로 통일시킴으로서 국가원수로서의 행적에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 국민들이 알게 모르게 모든 삶의 가치기준을
기독교문화적 사고에 바탕 하여 생활하도록 하는 일그러진 사회상으로 이끄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우리 역사의 출발점은 잊어져버린 채,
모든 시간적 개념이 예수의 탄생시점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기원전이란 말은 예수 탄생이전을 거슬러 말 할 때 쓰이고
기원 후란 말은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그 이후의 시간을 말 할 때 쓰이는 말로써
모두가 서구의 기독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후로 역대 대통령들은 여러 가지 국정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었지만,
국론을 하나로 결집하면서 국민들이 쉽게 알아듣고 실천 할 수 있는
구체적 방향제시가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스스로 부패하거나 무능하거나
자식들 내지는 가족들 문제로 인하여
불행한 마침을 거듭 보여 줌으로서 국민들의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국가지도자들의 어리석은 짓거리에도 불구하고
알게 모르게 국민들 스스로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어나는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마음이 있어
우리의 생활 주변 곳곳에서 다시 우리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아름다움을 우리는 반갑게 찾아볼 수 있어 얼마나 흐뭇한 일이 되고있는지 모릅니다.
모든 것은 밑에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곳곳에 하늘의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의 심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돌탑을 자꾸 쌓아가고 있어
여행을 하다보면 늘어나는 돌탑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불편한 한복을 간편하게 개량하여 즐겨 입고 다니는 모습에서부터,
가난했던 시절 밤을 밝혀주던 호롱불을 받쳐주던 등잔을 귀한 보물처럼 간직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통 찻집들에 장식되어 있는 옛 물건들은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장식물이 되었고
그것들은 일상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오행문화를 대변이나 하듯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은
이제 쉽게 만날 수 있는 여행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 굿거리 장단을 비롯한 숨겨졌던 전통음악이 자랑스럽게 불려지고
사물놀이는 세계무대에서 우리전통가락을 유감 없이 자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신토불이의 뜻을 우리는 먹거리에서 몸으로 확실하게 느끼고 있고,
우리 강산에 널려있는 물과 공기와 풍광이 진정 아름답고 보배로운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렸던 역사들도 하나 둘 되찾아져 가고 있습니다.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 한 자기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졌고,
자기의 본성들을 찾고자하는 마음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있습니다.
이제 어느 때 보다도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하여
안으로는 나라가 편안하고 밖으로는 이웃 국가들과 선린의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 민족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21세기를 도모할 그러한 장이 펼쳐져야 할 시간입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가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예를 들겠습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산 13 - 7 번지에 가면 산림으로 둘러싸인 채 정갈하지만
조그마한 건물 한 채가 天眞殿(천진전)이라는 이름으로 있습니다.
그 곳의 정식명칭은 "國祖檀君聖殿(국조단군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1966년에 대구 達成公園(달성공원)에 모셔져있던 단군영정을
뚜렷한 이유없는 대구시의 철거계획에따라 할 수 없이
이 곳으로 옮겨 모신 후
뜻 있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 국조전이 옮겨진 데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숨어 있습니다.
원래 이 성전은 사적 62호로 지정된 고조선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넓이 66,116평방 미터의 土城(토성)이 있는 대구 달성공원 내에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우리의 전통적 정신을 말살하고 역사를 허물고 왜곡하기 위해
달성공원 안에 있던 우리의 국조를 모신 천진전을
현 대구시 대명동 어딘가에 당시 일본 주재소와 화장터가 있던 곳으로 쫓아버리고
그 곳에 일본의 "신사"를 세웠었습니다.
치욕의 역사가 흐른 후,
그러니까 1945년 해방직후 초대문교부 장관이었던 안호상 박사 등은
달성공원 내에 있던 일본 신사자리에 다시 단군 영정을 모셨었습니다.
그 것으로 잃었던 역사는 사실상 자랑스럽게 복원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1969년 8월 1일,
대구시는 달성공원을 개원하면서 겨우 자기 자리를 찾았던 國祖殿(국조전)을 강제로 공원 밖으로 내 몰고 이듬해 동물원을 개장하는 등
수입사업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에게 빼앗겼던 국조전은 그 터를 겨우 되찾아 복원되었으나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이번에는 오히려
우리의 손으로 그것도 나라 살림을 맡아보는 관청에 의해 쫓겨남으로써
우리 역사가 엄청난 자중지란을 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구시의 누구에 의해 지시되었던 일인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 후 달성공원은 2000년 4월 1일부터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습니다.
달성공원의 각종 기록에는 단군성전을 대구시에 의해 무슨 이유로 달성공원 밖으로
내 몰았는지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흔적조차도 찾아 볼길 없습니다.
최근 대구시는 시민의 이름으로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세웠습니다.
대구시는 그 곳에 커다란 종각을 세우고 각종 전통행사를 통해 관광자원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광복운동을 펼쳤던 근세사는 대단하고
나라를 처음 열었던 건국 국조에 대해서는 나는 모른다 해도 되는 것이
대구시의 논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보편적 상식을 동원해서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하여도 결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과연 이런 모습으로 국론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오히려 마음은 더 혼란스러워지기만 합니다.
지금 단군전이 모셔져 있는 두산동은,
그 옆에 수성관광호텔이 있고 그 아래 수성 못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놀러오는 유원지입니다.
국조를 모실 만큼 그렇게 聖(성)스럽다고는 결코 말 할 수 없는 먹고 놀고 마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시민 아무도 쉽게 그 곳에 국조 단군 성조께서 모셔져 있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뜻 있는 몇몇 만이 알고 있을 뿐입니다.
대구 앞산에 세워진 번듯한 충혼탑 보기가 오히려 민망스러울 뿐입니다.
어느 나라도 개국의 시조에 대해 이런 대접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대구시는 대덕산 아래에 월드 컵 경기장을 만들었습니다.
대구시는 월드 컵 경기가 끝나면 경기장을 중심으로 500만평의 각종 테마가 어울려지는
대규모공원을 건립할 계획을 수년 전부터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그 곳에 사파리 공원까지 계획되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번 기회에 대구시에 꼭 한가지 건의 삼아 제안하려 합니다.
대덕공원을 계획한 이상 현재의 달성공원의 기능은 모두 대덕공원으로 옮기고,
현 달성공원 자리에는 국조전을 다시 복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인동에 건립한 국채보상공원과 함께 나라의 정신을 바로 알리는
양대 기둥을 세우는 격이 될 것입니다.
그 두 기둥이 서게 되면 대구는 역사 앞에 떳떳한 모습이 될 것이고
시민정신은 바로 그리고 제대로 살아 날 것입니다.
몇 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달성공원 자리에는,
시대는 미상이나 연구에 따라서는 고조선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토성이 있어
사적 62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이 곳에는 지방문화재 자료 제3호로 지정된 고색이 창연한 觀風樓(관풍루)가 있고,
옛 경상감영의 유적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고장의 향토역사와 문화유산을 전시하는 현대식 건물인 문화관이 있고,
그리고 시민들이 아끼는 각종 교목류, 관목류를 비롯한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입니다.
각종 비석만도 여럿 있어,
이상화 시비를 비롯하여 죽농 서동균 선생 예술비등 9종의 비가 세워져있어
시민들에게는 정신적 가르침이 높은 곳입니다.
이곳에는 전통 활쏘기터도 있었습니다.
사랑 받던 국궁장 관덕정은 지금은 대구 앞산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달성공원은 총면적 38,289평(126,576평방미터)의 아름다운 공원입니다.
관리가 부실해져 가는 달성공원 앞에 서면 마치
서울의 탑골공원 앞에 서 있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산만한 곳이 되어있습니다.
동물원이 핵심시설이 되도록 놓아두기에는 너무도 아깝고 귀한 땅입니다.
그런 곳이기에 언제부터인지 그 기록을 알 수 없으나 우리의 국조이신 단군성조의 영정을 모신
옛 어른들의 마음을 읽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남의 나라도 아닌 우리 손으로 그 곳에 모셨던 국조의 영정을 밖으로 내 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국조전은 종교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조전은 자랑스런 우리 역사의 상징입니다.
이제 그 어른의 자리를 다시 본디 자리로 정성스럽게 모셔야 합니다.
조상을 알고 그 유덕을 기림은 우리 민족이 자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미풍이요 양속입니다.
그렇게 할 줄 아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첫 걸음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비단 이것이 어찌 대구시 만 의 일이겠습니까?
전국적으로 찾아보면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 할 것입니다.
찢어 진 역사를 바로 세워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통일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첫 일인 것입니다.
국민의식을 하나로 결집하는 일은 일견 지도자의 몫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하지 못할 때는 그 주인인 우리 국민들이 앞장서서 해내야 합니다.
모든 시민운동단체들은 마음을 모아 이 운동에 앞장서 주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시급한 이 시대의 과제는 "역사바로세우기"입니다.
그런 연후라야 우리는 떳떳이 세계평화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