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초반의 중풍환자.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15년 전 부터 우리 병원과 근처 한방병원을 전전하던 환자였는데,
5년 정도 우리 병원 외래를 열심히 통원하다가 갑자기 소식이 끊어진 지 수개월 후 뇌경색이 발생하여 입원하였었다.
그후 우리 병원에 열심히 다니다가 더 이상 병원엘 오지 않았었고,
만 2년 전 우리 병원에 다시 왔을 때는,
그간에 중풍이 한번 더 와서 말과 거동을 못하고 누워서만 지내는 상태에서
욕창과 요로감염증 등으로 입원하였고,
그때가 내가 이 환자를 처음 본 시기였다.
만 2개월간 나의 환자로 치료를 받던 환자는 다시 소식이 끊어졌고,
다섯달 전 다시 세번째로 뇌경색이 왔으며,
또 한방병원으로 먼저 갔었으나,
워낙 경색의 정도가 심하고, 합병증으로 흡인성 폐렴까지 생겨
지방 큰 병원으로 옮겨 기관지절개술을 받고 기계호흡을 하는 상태에서
서울 등 더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받았으나, 경제적 이유로 이곳으로 왔었다.
기계호흡도 어렵게 유지되고, 엉치 부분은 심한 욕창으로 엉망이었다.
여늬 환자가 이 정도였으면,
가족들은 벌써 포기한 상태에서 마음이 이미 떠났을 것 같았는 데,
환자의 부인과 20대의 젊은 아들의 표정과 마음씀은 전혀 그렇지가 않고,
실낱같은 희망에라도 매달리겠다는 심정을 표하였고,
그러면서도 의사에게 부담감 주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몇번 정도의 고열 등 위기 상황도 있었지만,
중환자실에서의 경과는 비교적 순탄하였고, 호흡기계를 무난히 떼내고 자기 호흡을 할 수 있게 되고,
합병증인 폐렴과 욕창은 거의 완치되다시피 하였고,
만 2개월을 조금 넘어서 환자는 퇴원을 하였다.
음식은 튜브로 공급하고 대소변은 받아내야 했지만,
그렇게 심하던 당뇨병은 어떤 귀신(천사?)이 잡아갔는 지 혈당이 항상 아무런 처방없이 정상으로 유지되고,
손과 발에 약간의 힘만 줄 수 있고 주위 사람을 조금 알아보는 듯 마는 듯한 점 외에는 완전히 식물인간 상태였다.
그래도 사실 퇴원할 때에는 나는 별로 희망을 갖지 않았었다.
수삼개월 이내에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세상을 하직하시리라...
가족들은 보름에 한번씩 열심히 약을 처방받아갔고,
한달에 한번 구급차를 이용해서 환자를 실고 와서 코와 비뇨기의 튜브를 갈아주고,
자주 해야하는 관장은 가족들에게 익숙하게 되었다.
오늘 또 튜브를 갈러 온 환자를 만났다.
나를 알아보는 시늉을 눈깜박임으로 표시하는, 그리고 “긴지아닌지” 판별 어려운 미소!.
환자는 놀랍도록 "인간"이 되어 있었다. ㅡ 식물에서...
남편의, 아버지의 간병을 이렇게 열심히 장기간 성실히 하는 가족은 처음 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어릴 때 격언 목록 중에서 이 글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아마도 'Heaven'을 '하늘'로 직역한 탓에,
기독교적 문화에 젖지 못한 이유도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