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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데 없는 도련님은 쓸모 없는 길을 가야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후에 이웃 나라 일본을 보는 마음이 착잡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손꼽히는 강대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이죠.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꼼수에 장단을 맞추며 군사 대국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합니다. 거품 경제의 후과로 발생한 장기 불황은 20년 넘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죠. 이런 상황을 앞장서 극복해야 할 일본의 정치는 그 자체로 제거해야 할 적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진짜 힘이었던 풀뿌리 시민 사회마저 급속히 활력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100년 전과 겹칩니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 때 발 빠르게 서구를 좇으며 일본 자체를 '개조'하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유산, 대중의 권리, 개인의 욕망은 철저하게 억압되었죠. 하지만 이런 개조는 정작 엉뚱한 결과로 귀결되었습니다. 러일 전쟁(1904년), 한일 병탄(1910년)을 거치며 일본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죠.
다니구치 지로와 세키카와 나쓰오의 <도련님의 시대>는 바로 이 시대를 다룬 독특한 만화입니다. 일본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의 창작 과정을 모티프로 한 이 만화는 '괴물'이 아닌 다른 일본을 꿈꿨던 그 시대 일본 '도련님'들의 고뇌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뇌는 지금 일본의 현실과 맞닿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의 현재를 성찰하도록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도련님'들은 무슨 고민을 하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할까요?
< 프레시안>은 이 <도련님의 시대>를 같이 읽자고 제안하며, 먼저 읽은 몇 분의 독후감을 소개합니다. 문학평론가 박슬기 한림대학교 교수의 바통을 만화평론가 백정숙 씨가 받았습니다. (☞관련 기사 : 슬픈 진실…"어차피 도련님은 못 이겨!")
나의 착각
<도련님의 시대> 1권을 본 지 1년이 넘었다. 2권이 궁금해서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어 버렸다. 과연 다니구치 지로가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해 하며 한껏 달떠서 읽었다.
그렇게 나는 대단히 큰 착각을 했다. <도련님의 시대>가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원작으로 하여 다니구치 지로가 새로 각색한 작품인 줄 알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다니구치 지로는 소설 원작을 만화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 준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나의 착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5권으로 번역 출판된 책을 보면서 처음엔 많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1년 동안 왜 이런 착각을 했는지 궁금해졌고 작가들(다니구치 지로와 세키카와 나쓰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자료를 이런 식으로 풀어내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한국 만화사를 연구하다 보면 식민지 시절의 만화 작가가 당대 지식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지식인들과 어떤 식으로든 두터운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의 생각들을 추적해 왔다. 당연히 일본 근대의 변화 과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만화와 드라마 등에서 많이 다루어진 사카모토 료마와 신선조의 이야기를 통해 막부의 몰락 과정을 살펴보며 역사책을 찾아보고 있었다. 아직 메이지 시대를 탐구하지 못했는데 <도련님의 시대>가 그 시절을 다루고 있어서 꼼꼼히 탐독할 수밖에 없었다.
< 도련님의 시대> 한 권을 읽는 데 어지간한 인문 서적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각주에 인물 소개가 있어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아서 의외였다. 그리고 당시 조선의 상황까지 찾아보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일본의 근대 과정은 당시 조선의 상황과 밀접하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작품 속 시대 묘사가 조선의 입장과 상반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꼼꼼히 살필 수밖에 없었다. 보통 만화는 그림과 글이 함께 있어서 쉽고 빠르게 정확한 정보 전달을 한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쉽지도 않았고 빠르게 읽히지도 않았다.
일본 근대를 다룬 다른 만화들을 보면 일본 만화답게 빠르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다케다 데츠야가 글을 쓰고 고야마 유우가 그림을 그린 <어~이! 료마>나 노부히로 와츠키의 <바람의 검심> 등은 <도련님의 시대>의 배경이 되는 시대 바로 직전을 다루고 있어서 <도련님의 시대>와 함께 보면 시대에 대한 이해가 더 풍부해 질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많은 사건들이 나오지만 <도련님의 시대>처럼 느리게 읽히진 않는다. 왜냐하면 특정 주인공을 중심으로 구성된 드라마기 때문이다.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여 영웅이 되어 승승장구하거나 몰락하거나 하는 과정을 쉽게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도련님의 시대>는 그렇지 않다. 다섯 권은 매 권마다 중심이 되는 인물이 다르다. 어떤 상황과 사건들은 인물의 중요도를 달리하여 반복해서 제시되기도 한다. 일본 메이지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특정인에 주목하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지식인들의 지도를 그리듯 인물들을 소개해 나간다. 하지만 메이지 지식인들이 갖는 일본 근대의 정신이나 정치적 맥락은 가급적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히려 메이지 지식인들의 소소하다 못해 지질한 일상들을 부각시킨다.
화혼양재의 모순과 부조리
<도련님의 시대>에 등장하는 많은 지식인들은 메이지 시대의 캐치프레이즈였던 '화혼양재(和魂洋材)', 즉 일본의 정신적 가치는 지키되 서양의 이로운 선진 문물은 수용하겠다는 일본 근대화 구호로 인해 겪는 극심한 혼란과 좌절을 드러낸다. 일본의 정신적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서양의 이로운 선진 문물이 무엇인지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진 않지만 일본의 전통적 가치관이 서양에서 들어온 가치관과 상당한 충돌을 일으켰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2권 '무희' 편에서 모리 오가이가 유학 시절 만난 독일 여성 엘리스와의 혼인이 불가능한 이유도 그러한 모순에서 기인한다. 그래도 이 사건은 이해할 수 있다. 3권에서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궁핍한 생활과 대비되는 낭비벽은 단지 개인의 의지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자본화와 노동자 계급의 등장 등, 당시 사회 토대의 변화 속에서 부르주아도 노동자도 아닌, 부유(浮遊)하는 존재로서 지식인의 모순을 다쿠보쿠 한 개인이 올곧게 짊어지고 있다. 어쩌면 나쓰메 소세키의 유학 시절 생긴 신경증과 위장병도 이 모순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너무나 자잘한 일상의 묘사는 러일 전쟁 이후 강화되고 있는 일본의 패권주의와 상반되는 존재의 비루함을 부각시킨다. 이를 통해 다니구치 지로와 세키카와 나쓰오는 '도련님들의 시대' 때문에 '도련님'들이 잃어버리지 않은 게 무엇인지 말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1권 '나쓰메 소세키' 편에는 소세키가 교직을 그만두고 소설 쓰기에 전념하려는 선택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같이 유럽 유학을 다녀온 이쥬인 경시와는 대비되는 행보이다. 이쥬인은 메이지 시대 권력자로 거듭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으로 변화하지만 나쓰메 소세키는 "무용(無用)한 사람은 무용의 길을 가야지"라며 메이지인에게 부여된 껍질을 벗어 던진다. 이 장면으로 다니구치 지로와 세키카와 나쓰오 두 작가는 당대 지식인들이 나아갈 길과 가치를 제시한다.
서양의 흑선(페리호)에 의해 반강제로 개항해야 했던 일본은 근대화의 시작이 비자발적이었으나 그 주체를 자신들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거대한 시대의 큰 파도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어쩌면 당시엔 '무용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어떤 인물도 추종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당대 고민과 감정, 그리고 욕망을 현실적으로 끌어내고자 한다. 서양을 배우면서도 서양에 거리를 두는 지식인이자 일본인으로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일본인이길 거부해야 했던 지식인들의 내면은 고도의 갈등과 쓸쓸함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담담하게 보는 메이지 도련님들
<도련님의 시대>는 '혹독한 근대 및 생기 넘치는 메이지인'이라는 부제와 다르게 메이지 시대의 나른함을 다룬다. 어떤 상황에도 감정 이입하여 감정의 파고를 느끼지 못하도록 다섯 권 전체가 모두 담담하게 그려진다.
사랑을 배반한 모리 오가이에게 애틋함을 느끼거나 가난한 이시카와 다쿠보쿠에게 연민을 느끼거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문구를 처음 고안한 고토쿠 슈스이나, 여성 혁명가 간노 스가코의 격정에 쉽게 뜨거워지지 않도록 독자들의 감정을 묶어 놓는다.
두 작가가 12년 동안 만들었다지만 1권부터 5권까지 그림체에 큰 변화가 없다. 작업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그 사이 만화가들의 그림체에 선의 변화나 인물 또는 배경의 변화가 흔히 나타나지만, 다니구치 지로의 <도련님의 시대>에서는 12년이라는 시간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호흡이 일정하다. 다니구치 지로의 필력에 극심한 절제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장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배치하고 의미를 구성했다. 너무나 성실하고 튀지 않으려는 노력이 작품을 보는 이에게 작품 자체를 관조하게 하고 메이지 시대를 조망하게 만든다.
방대한 자료를 담금질하며 만들어 낸 메이지 시대의 초상은 비단 일본의 근대 상황만 보여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련님의 시대>를 보는 내내 당시 조선 지식인들 면면이 떠오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한국 만화가들이 그려냈던 우리의 근대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이희재 작가와 많이 닮아 있다는 걸 느낀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시대에 대한 통찰력, 현재의 우리를 성찰하게 하는 것까지 그렇다. 월북 작가들의 단편 소설과 박경리의 <토지>를 만화로 그려 낸 오세영 작가는 또 어떤가? 그의 작품 속 질박한 옛 모습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두호 작가의 조선 말기 풍경들과 민초들의 모습은 또 어떤 생활의 태도로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백성민 작가의 형형한 눈빛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역동적인 인물들은 지금은 왜 안 보이는 걸까?
한국은 현재 웹툰이 대세다. 웹툰은 빨리 넘겨서 빨리 보고 빨리 날려 버리는 특성이 있다. 21세기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보호막도 없이 벌판에 내던져진 불안감에 급변하는 매일 매일을 치르고 있다. 웹툰은 그러한 현재 상황에 딱 맞춤형 만화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티며 살 수 있을까?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근원적으로 되돌아봐야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급변하던 시대를 살았던 근대인들의 생각과 욕망과 희망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이는 다니구치 지로의 <도련님의 시대>가 내게 높은 산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한국의 근대는 아직까진 평면적이다.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도 그렇고 현재 우리에게도 그렇다. 한국의 근대가 <도련님의 시대>처럼 입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엮을 만큼 자료가 방대하지 못하다는 한계, 여전히 우리의 것으로 곱씹을 수 없는 정치적 상황, 식민지 현실이 주는 모멸감으로 인한 아픔들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한국의 근대를 다시 보고, 일본의 근대를 생각하고 아시아의 근대를 보는 것이 급변하는 21세기 초반에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우리에게 일말의 이정표 정도는 주지 않을까? 한국 근대의 '도련님'들을 만나고 싶다.
(만화평론가 백정숙 씨는 만화 잡지 <보고>의 편집위원장입니다.)
<도련님의 시대> 주요 등장인물
나쓰메 소세키 : 일본 문학사에서 최고의 국민 작가로 칭송되는 소설가.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풀베개>, <산시로>, <마음>, <그 후> 등을 남겼다. 도쿄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 후 국비 유학생으로 런던에서 2년간 유학했다. 귀국 후 제일고등학교, 도쿄 대학에서 강의했다. 서른여덟 살에 쓴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호응을 얻으면서 전업 소설가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교직을 떠나 아사히신문사에 소설 기자로 입사해 잇달아 작품을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지위를 굳혔다. 영문학자이면서 서구를 싫어했고 문학적 야심보다는 유학 시절 얻은 신경증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설을 창작했다. 지병인 위궤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후타바테이 시메이 : 도쿄 외국어 대학 러시아학과를 중퇴했다. 언문일치체를 처음으로 시도한 소설 <뜬구름>을 썼으며 러시아 문학에 경도되어 투르게네프의 소설을 번역하는 등 근대 일본 문학을 선도했다. 아사히신문사 특파원으로 러시아에 갔다가 폐병이 심해져서 귀국 도중 병사했다. <그 모습> <평범(平凡)>의 소설을 썼고 <짝사랑> <광인일기> 등을 번역했다. 후타바테이의 장례식으로 시작되는 <도련님의 시대> 2권에서 그의 청년 시절, 모리 오가이와 독일 여인 엘리스 바이게르트와의 인연 등이 다뤄진다.
모리 오가이 : 군의관으로 육군성의 명을 받아 독일에서 유학했으며 귀국해 육군대학 교관을 거쳐 군의총감, 의무국장을 지냈다. 유학 시절 독일 여성과의 연애담을 바탕으로 <무희>를 썼으며 <기러기>, <아베 일족>, <산쇼다유>, 등의 소설을 남겼다. <도련님의 시대> 2권의 주인공으로, 국가와 가문에 대한 의무와 독일 유학 시절 만난 엘리스 바이게르트와의 사랑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시카와 다쿠보쿠 : 생활 감정을 살린 서정적인 작품을 남겨 일본의 국민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중학교를 중퇴했지만 독서로 다양한 문학을 섭렵했다. 1905년에 첫 시집 <동경(あこがれ)>을 발표했고 도쿄에 정착한 후에는 아사히신문 교정사원 겸 편집자로 생계를 유지했다. 낭비벽이 심해 생활이 늘 곤궁했는데 로마자로 쓴 일기에 당시 생활상과 복잡한 감개가 잘 기록되어 있다. 일본 고유시 형태인 단카의 거장으로 1910년 처녀 단카집 <한 줌의 모래>를 냈다. 소설도 썼지만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 대역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면서 급속히 사회주의 사상으로 기울었다. 가난으로 고생하다가 스물여섯에 병으로 요절했는데 사후에 단카집 <슬픈 장난감>(1912년)이 출판되었다. <도련님의 시대> 3권에서 그의 낭비벽과 불안정하고 박약한 자아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고토쿠 슈스이 :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 천황 암살 모의 사건인 '대역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간노 스가코를 포함한 다른 11명의 사회주의자와 함께 처형당했다. 10대부터 자유 민권 사상에 관심을 갖고 나카에 조민의 제자가 되었고 만조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중 러일전쟁 비전론을 주장하며 퇴사하여 동료들과 주간 <평민신문>을 창간했다. <공산당 선언>을 최초로 일본어로 번역하여 동아시아에 보급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크로포트킨의 사성적 영향과 반년 간의 미국 생활을 통해 무정부주의로 변모했으며 직접 행동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안중근을 존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도련님의 시대> 4권에는 안중근의 휘호가 담긴 부채를 유품으로 남기는 모습이 등장한다.
간노 스가코 : 타고난 미인은 아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남자들을 굴복시키는 팜므파탈로 그려진다. 대역 사건으로 처형당한 12명의 사회주의자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계모의 책략으로 강간당하는 등의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신문 기자가 되어 모루신보에서 만난 연하의 사회주의자 아라하타 간손과 결혼했다. 적기 사건에 연루되어 가혹한 심문을 받고 투옥되었으며 풀려난 후에는 고토쿠 슈스이와 <자유사상>을 창간하여 적기 사건을 규탄하고자 했다. 간손이 수감된 동안 부인이 있는 고토쿠 슈스이와 연인 관계가 되어 비난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