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에 감사하라 / 창립 63주년 기념주일/추수감사주일
시편 133:1-3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이며, 한남교회 창립 63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먼저, 1955년 11월 한남교회가 세워진 이후 지금까지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실 때에 동역자로 부름 받아 헌신하게 하셔서 오늘 63주년 창립기념 주일을 갖기까지 헌신하신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드리는 것은 62주년에서 63주년을 맞이하기까지 지난 일 년간 부족한 저와 함께 한남교회를 섬기시며 헌신하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해 62주년을 맞이하면서 함께 나누었던 말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때 제가 드린 말씀은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요, 복 받는 곳이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해나가려면 ‘기쁨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 해 동안, 진전이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한 해 동안 서울북노회에 속한 50개 교회의 통계를 보면 대략 280명 정도의 교인 수가 감소했습니다. 한 해에 평균 300명씩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장교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개신교 전반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교회가 빛과 소금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63주년을 기념하고 64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한남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 부흥하길 바랍니다. 이 교회를 제대로 세워가야 저를 포함한 여러분이 “잘했다!” 칭찬받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 먼저, 회개하라!
지난주에는 저와 함께 총회에서 근무했다가 저처럼 현장교회에서 목회하고 계신 목사님께서 탄식처럼 전한 말씀을 읽고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목사님은 카라바조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그림을 제시하면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요란하게 떠들고 소리칠 때가 아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뭐라 해도 신뢰하지 않는다. 참담하지만 이게 사실이다. 사탕이나 물휴지 줘도 안 받는다. 동네에 봉사해도 교회가 하면 순수하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교회 끌어가려는 목적으로 한다고 곱지 않게 본다.
우리가 어찌 이렇게 되었나? 이제 우리는 정말 하나님과 자신 앞에서 침잠하며 끝없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해야 한다. 더는 스스로 한국교회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무릎 꿇고 회개하는 퍼포먼스나 회초리로 종아리 때리는 것을 백번 해도 사회는 감동하지 않는다. 이미 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지 마라. 지금은 전도보다 우리 자신의 참회가 더 시급한 상황이다. 우리가 충분히 하나님 앞에서 참회하고 정말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빛을 가리는 욕망 덩어리를 어느 정도라도 닦아낸 다음에야 전도해야 한다.”
이 말씀을 부정할 수 없음에 마음 많이 아팠습니다. 저는 ‘한남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매우 무거웠습니다.
■ 인식이 곧 위로라는 것
‘나도 목사님과 동감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분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위로가 된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아픈 현실이지만, 위로를 받았습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문학 작품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려면, 그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스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앎’으로 위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앎’으로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인간의 한계 때문에 쉽지 않아, 평생 달려가야 할 길이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고자 함으로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슬퍼하시는 하나님을 위로하는 일, 그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고, ‘공부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공부’란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공부나 학문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 당신을 인식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요? 그 열쇠는 감사입니다.
■ 그림자 노동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주부들의 가사노동이나 노동자들이 출퇴근하는 시간, 소비자들이 셀프서비스하는 것 등의 무급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지칭했습니다. 기업이나 사람들은 ‘그림자 노동’으로 이익을 얻으면서도. ‘그림자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자 노동’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어머니의 ‘그림자 노동’인데, 그것을 인식하는 자녀만이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자녀를 당연히 사랑하기에 한 일이지만. 자녀가 그것을 알아줄 때 힘을 얻고, 기쁨을 얻게 됩니다.
가을빛이 좋은 날,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 문화원에 들렀다가 평생 그곳을 일군 홍갑표 원장과 짧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저의 말에 홍갑표 원장은 “목사님처럼 말씀해 주시는 분 때문에 저는 힘을 얻습니다.” 합니다. 저는 그곳을 방문하기까지 중남미문화원의 존재도, 홍갑표 원장이라는 분도 몰랐습니다. ‘그림자 노동’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할 때에도 그분은 중남미문화원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아름다운 정원에서 중남미문화를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 끝에, 저의 모든 삶은 ‘그림자 노동’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인식을 하든 하지 못하든 지금 나를 살아가게 하는 ‘그림자 노동’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한남교회가 오늘 63주년 창립기념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수고한 ‘그림자 노동’이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지난 63년간 한남교회를 지켜오신 모든 분이 ‘그림자 노동’의 주체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함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역시도 ‘그림자 노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이어가시는 분들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짐자 노동’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64주년에는 한남교회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욱 아름다운 교회로 부흥하는 길이 열리길 바랍니다.
■ 감사를 아는 사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늘 선한 것을 주시는 분임을 알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니,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아픔 속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나를 둘러싼 모든 ‘그림자 노동’에 대해서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에 대한 ‘인식’,‘제대로 앎’을 통해서 나를 돕는 이를 위로할 수 있으며, 우리를 돕는 이들의 ‘그림자 노동’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감사는 감사를 낳고, 이것이 충만한 공동체는 행복한 공동체가 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지옥의 차이는 ‘감사’의 차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똑같은데, 천국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고, 지옥은 ‘불평하는 마음’으로 받는다고 합니다. 유명한 예화를 잘 아실 것입니다. 똑같은 상이 차려져 있는데 상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려면 긴 젓가락을 이용해야만 합니다. 천국에서는 서로 먹여줌으로써 상에 차려진 음식을 먹지만, 지옥은 자기 젓가락으로 먹으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감사할 것’이 넘친다는 고백, 그 고백을 위한 인식 혹은 발견, 이것이 우리를 감사하는 삶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에 이 감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의 부족한 것, 단점만 보면 그것이 커 보이고, 장점을 보려고 하면 좋은 점이 커 보이는 법입니다. 물론, 고쳐야 할 것에 대해 무심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고치라고 조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단점이 있는데 결별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그것을 보완하는 파트너로 나를 보내주셨다고 받아들이십시오. 이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 한남교회 63주년을 맞이하며
이제 한남교회는 64주년을 향해 걸어갈 것입니다. 내년 이맘때에는 또 우리가 큰 진전을 이루어 하나님 보실 때에 오늘보다 더 아름답고 건강한 공동체로 서 있길 소망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나하고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내 신앙관과 다르다고, 나는 이렇게 하는데 왜 당신은 그렇게 하느냐고 하지 마십시오. 각자가 온 힘을 다해서 한남교회를 섬기는 것이요, 적절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하시게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불완전한 죄인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그림자 노동’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마음 깊이 새길 때 ‘감사를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그렇습니다.
‘그림자 노동’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내가 ‘그림자 노동’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각자 자기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것이 연합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세계요 질서입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내가 잘나서, 나 혼자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존 스토트 목사는 <제자도>에서 의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짐이 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갈라디이서 6장 2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