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사귄다고 소문이 파다하긴 했어요.
좋은 공연 있으면 예매해서 같이 보러 다니고,
일요일 아침, 텔레비전에서 맛있는 밥집 소개되면
바로 전화해서 같이 찾아가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가 사귀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린 정말 아니었거든요.
뭐 솔직히..어쩔 땐 가끔...
우리가 하는 일들이 데이트가 아닐까,
하고 생각된 적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곰곰이 따져보면 사귀는 건 절대 아니었어요.
몇 년 동안 같이 다녀도 손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는데..
그건 사귀는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냥 친한 친구일 뿐이죠.
그런데 며칠 전...
진짜 연인 같은 일이 일어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녀가,
그날도 전화를 해서는,
강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녀를 태우고 달리다 보니
춘천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간 김에 그녀가 좋아하는 닭갈비도 먹고, 번데기도 사 먹고,
안장이 두 개 달린 자전거도 타고..
거리의 화가에게 인물화도 그리고..재밌게 놀았습니다.
저녁 무렵 춘천을 출발해서 그녀의 집 앞까지 갔더니,
시간이 꽤 됐더라구요.
근데 그녀가 자기 집 앞에 있는 꼬치구이 집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하고 가라는 거예요.
고마움의 표시로 자기가 대리비까지 책임지겠다면서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술자리가
결국 새벽 두 시를 넘겨버렸습니다.
물론 우리 둘 다 취했구요.
근데 갑자기 노란 백열등 밑에 그녀가..예뻐 보였어요.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가 예뻐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녀의 볼에다 뽀뽀를 해 버렸어요.
근데..기분이 이상하더라구요.
친구 사이라서..그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신기하게도..심장이 막 뛰었어요.
그래서 그녀의 손을 제 심장에 가져다 대며 말했어요.
"심장이..뛰어..만져 봐"
그녀는 어쩔 줄 몰라했고, 퉁명 스럽게
"심장이 왜 뛰는데?"
하곤 모르는 척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삼일 째 우린 서로 전화를 회피하고 있어요.
제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날 분위기상 잠깐 그녀가 그렇게 보인건지,
아니면 진짜 그녀를 여자로 느끼게 된 건지...
왜 심장이 콩닥거리며 뛰었던 건지..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이미 당신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과정이 쑥스러워
피하고만 싶은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