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선한 양심과 내적 평화/ 고린도후서 10: 12-18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AD 49-52) 중에 고린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여기서 그는 약 1년 반을 머물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에 새로 생긴 교회 안에는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와 후서를 쓰기도하고 3차례나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바울은 거짓 전도자들의 비방을 많이 받았습니다. “바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직접 대할 때에는, 그는 약하고,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다.”(고후10:10)라는 주장에 대하여, 바울은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사는 장사꾼”(2:17)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고후 2:17)
그 사람의 깊은 속마음이 진심인지 그리고 얼마나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울은 “참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사람입니다.”(10:18)라고 말합니다.
600여 년 전 네덜란드 “새로운 경건”운동이 있는데, Modern Devotion(오늘의 헌신)입니다. 그때 나온 책이 <그리스도를 본받아>입니다. 이 책은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내적 평화의 커다란 적은 슬픔과 분노라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 감정의 근원에는 유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면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유혹은 어디서 오는가하면 욕망에서 옵니다. 결국 욕망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은 내면의 평화를 누릴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역경과 시련에 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놀랍게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자기과시를 위해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수고한 것임을 차분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10:17)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사는 동안에 시험과 유혹과 시련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아켐피스는 이런 것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겸손과 인내로써 대적할 수 있도록 내면적으로 강해져야”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영적 판단은 유혹이나 시험이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피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그 뿌리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모든 유혹과 시험의 뿌리는 자기의 욕망이고, 그 때문에 시련을 겪는다는 것을 안다면, 내면의 평화는 자신과의 끝없는 투쟁으로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과 투쟁하는 삶을 사는지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게 합니다. 그래서 환란을 당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혼란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돕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가 얼마나 자기 판단에 사로잡혀 있는지 느끼게 해주어서 하나님의 눈으로 사물을 보도록 도와줍니다. 예를 들면, 타인이 나에게 한 행동에 예민하게 구는 것 보다, 나 때문에 혹시라도 타인이 고통당하거나 어려움을 겪거나, 섭섭하지 않을까 마음을 쓰는 것이 선한 양심입니다. 저는 여기서 내적 평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 7월 14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