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신이 있다면 신은 존재하는가? † ○ 최사장 : 제 주위에는 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저를 볼 때마다 교회에 나가자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저는 신이 있다는 것을 쉽게 믿을 수가 없어요. 죄송합니다. 제게는 하느님도 하나님도 아닌 신입니다. 박 교수님은 신의 존재를 어떻게 믿습니까? † 박교수 : 최 사장님이 신을 믿을 수 없다는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 최사장 : 신을 누가 보았습니까? † 박교수 : 꼭 보아야 믿는다고들 하는데, 최사장님! 이순신 장군을 보았습니까? ○ 최사장 : 세상을 떠난 지가 오래되었는데 어떻게 그분을 봅니까? † 박교수 : 그럼 이순신 장군은 없었던 존재인가요? ○ 최사장 : 그것은 아니지요. 역사에 기록이 있고 그의 업적도 있는데… † 박교수 : 신이 만든 업적도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데요? ○ 최사장 : ? † 박교수 : 하늘의 무수한 별들, 그리고 바다에 있는 무수히 많은 물고기들…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생각해 봅시다. 이 큰 땅덩어리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움직이는 모든 것은 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 지구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입니까? 시계가 돌아가려면 태엽이나 배터리가 있어야 하고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엔진과 배기량, 이것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인 휘발유가 있어야 되지요. 그러면 이 땅덩어리는 어떤 동력으로 그렇게 빨리 거의 매시간 1천 킬로미터 이상으로 돌고 있습니까?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구의 원동력이 곧 신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 최사장 : 그건 모두 자연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 박교수 : 그런 자연 현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 최사장 : ? † 박교수 : 죄송합니다만 사장님의 5대 할아버지를 보았습니까? ○ 최사장 : 제가 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할아버지를 어떻게 보았겠습니까? † 박교수 : 그럼 최사장님은 5대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으니 5대 할아버지는 없네요! ○ 최사장 : 웬 그런 말씀을? † 박교수 : 최사장님은 휴대전화가 있습니까? ○ 최사장 : 예, 여기 있습니다. 어디 전화하실 데가 있습니까? † 박교수 : 그게 아니고요. 요즈음 웬만한 사람은 거의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전화선도 없습니다. 그런데 통화가 됩니다. 어떤 원리로 전화가 통화되는 것입니까? ○ 최사장 : 그건 간단한 이론 아닙니까? 전파를 타고 소리가 전달되는 것이지요. † 박교수 : 무선 전화기에 들어오는 전파가 보입니까? ○ 최사장: 안 보이지요. † 박교수 : 그럼 전파가 없는 겁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전파가 안 보이니까 천만 다행이지, 그 모든 전파가 눈에 보인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모두 정신병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 현상 안에서도 보이는 것이 있고 안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신이 눈에 보인다면 모양이 있을 테고 어떤 색깔이 있을 텐데 그런 불완전한 신을 사람들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보이지는 않습니다. 냄새는 코로 맡지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눈으로 저기 산 높이를 측정할 수 있습니까? 실제 산 높이와 우리 눈이 측정하는 높이 사이에는 너무나 차이가 많습니다. 우리 눈이 진리의 기준도 가치의 기준도 아닙니다. 우리 눈으로는 한우인치 수입고기인지도 몰라요! 눈으로 보아야 알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다면 눈 감으면 세상은 아무 것도 없겠네요. 아무 것도 안 보이니까? (따르릉 ... ) 전화 왔네요. 받으세요. ○ 최사장 : 죄송합니다. † 박교수 :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지요? ○ 최사장 : 갑자기 회사 경리과장이 급한 결제 건이 있다고 보자고 하네요. † 박교수 : 전화하신 분이 경리과장인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 최사장 : 같은 회사에 있는 부하 직원인데 목소리만 들어도 알지요! † 박교수 : 그 경리과장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알아요? 보아야 안다고 하셨는데…? ○ 최사장 : 교수님! 너무 그러지 맙시다. † 박교수 : 신을 보아야 믿겠다고 하지만 보지 않고도 아는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으로 알 수도 있고 이것과 저것을 비교해서도 알 수 있지요. 죄송합니다만 최 사장님은 부부 금실이 좋습니까? ○ 최사장 : 그리 나쁜 편은 아니고 그래도 괜찮은 편입니다. † 박교수 : 그런데 최 사장님은 사랑하는 부인이 주는 사랑이 눈에 보입니까? 부인의 사랑! 눈으로 보입니까? ○ 최사장 : 사랑은 안 보이지요! † 박교수 : 그럼 부인이 사장님을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최사장 : 사랑하는 행동이나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 박교수 :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의 어떤 행동, 다시 말해서 거기서 나오는 행동을 보고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인과율'이라고 합니다. 결과를 보고서 원인을 아는 것입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고 결과는 반드시 어떤 원인을 전제로 합니다. 작품을 보고서 작가를 평가하는 법입니다. 이 우주의 위대한 작품을 앞에 놓고 이 작품의 작가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톨스토이가 있었기 때문에 톨스토이의 문학작품이 있는 것입니다. ○ 최사장 : 교수님은 대자연의 작품을 이야기하시는데 이 대자연은 저절로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겠습니까? † 박교수 : 너무나 어이가 없습니다. '저절로'라는 말은 엄격하게 비합리적인 단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저절로'라는 말을 씁니다. 예컨대 "저 집이 저절로 무너졌어", "산에서 돌이 저절로 흘러 내렸어" 하지요. 그러니까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적당히 '저절로'라는 말을 씁니다. 집이 왜 무너지겠어요? 분명히 그 집은 기등이 허술했거나 어떤 문제가 있었으니까 무너진 것입니다. 최 사장님 말에 따르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도 저절로 생겼다는 말씀인데 그렇게도 큰 태양이, 이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 태양이 저절로 생긴다면 작은 촛불 하나쯤이야 얼마든지 저절로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 최사장 : .... † 박교수 : 저절로' 라는 말은 원인 없는 결과가 생긴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최 사장님은 날마다 회사에 출근할 필요가 없겠네요. ○ 최사장 : 아닙니다. 요새 약간 어렵습니다. † 박교수 : 허허. 하늘의 별도 달도 저절로 생기는데 최사장님에게 필요한 생활비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저절로 생길 텐데요! 저절로 된다면 사람들은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 최사장 : ? (고개를 끄덕인다.) † 박교수 : 사람들이 힘들게 일을 해야 먹을 것이 생기고,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농부들이 여름에 땀 흘려 일을 해야 가을에 수확이 많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치가 아닙니까? 우리 인간에게하느님에 대한 지혜를 가르치는 성경 지혜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을 모르는 자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어리석어서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보고도 존재하시는 분을 알아 보지 못하였고 업적을 보고도 그것을 이룩하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 그렇지만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 만일 그들이 세계를 탐지할 수 있는 지식을 쌓을 능력이 있다면 어찌하여 세상을 만드신 분을 일찍이 찾아내지 못했는가." (지혜서 13장 1절-9절) † 정말 신이 있다면 - 인간 능력의 한계는? † † 박교수 : 그리고 인간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최 사장님!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 키를 1센티미터 더 크게 할 수 있습니까? ○ 최사장 : 사실은 제가 체구가 작아서 언제나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는데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충격이 오네요. 사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 박교수 : 언젠가 설악산에 간 적이 있습니다. 어떤 호텔에서 점잖은 부부를 만났습니다. 우연히 같이 맥주를 마시게 되었는데 그 사람들이 약간 흥분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수님! 저희 부부가 육십 평생을 살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딸만 다섯이 있습니다. 아들을 낳아 보겠다고 계속 애들을 낳았는데 결국 아들은 나오지 않고 딸만 나왔어요. 그래서 저희는 서로 처다보면서 말했지요. '우리가 애들을 낳는데 왜 우리 마음대로 안 되지?' 역시 인간은 자기 뜻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없고, 이 세상을 거느리는 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겸손하고 훌륭한 노부부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딸 다섯을 낳고 신의 존재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 최사장 : 사실 인간이 제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 박교수 : 수억짜리 비행기를 만드는 공장이 있고 수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은 있지만 천 원짜리 오징어를 만드는 공장은 없어요. 우리는 장미꽃 한 송이도 만들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통감해야 합니다. 생명의 신비 앞에는 무릎을 꿇어야 하지요. 인간의 무지와 무능력을 솔직히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신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지요. 그리고 신 앞에 무릎을 꿇는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인간이야말로 진실로 진리에 접근하게 되고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깨달아야 자기의 모습을 알게 되고 겸손해지는 법입니다. ○ 최사장 :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 교만하면 스스로 자신을 망칠 수 있지요. † 박교수 :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 신을 찾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더더구나 인생살이에서 급박한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으레 신의 힘을 빌리려고 하지요. 예로부터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임금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들이 돼지 머리를 앞에 놓고 절을 하며 기우제를 지내곤 했습니다. 비를 간절히 원하는 소망을 하늘에 전하는 것이 겠지요. 언젠가 산에 올라갔는데, 새로 산 자동차 옆에서 어떤 부부가 돼지 머리를 차려 놓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21세기 첨단 과학 시대를 살아가면서 케케묵은 미신 행위를 해야 하는 그 안타까운 모습을 최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최사장 : 참 한심스럽지요. 역시 우주의 주인인 신을 찾아서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된다는 말씀인가요? † 박교수 : 인류의 역사를 볼 것 같으면 어느 때나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신에 대한 경신 행위를 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인간을 '종교적인 동물' 이라고 합니다. ○ 최사장 :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질문이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어떤 신입니까? † 정말 신이 있다면 - 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신인가? † ○ 최사장 :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신인지 궁금합니다. 박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신이 만물의 원인이었다면 신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서 신은 누가 만들었지요? '저절로'는 없다고 했는데 신은 저절로 태어났습니까? † 박교수 : 좋은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인데, 철학적인 표현으로 '자존자(自存者)' 라고 합니다. ○ 최사장 : 못 알아듣겠는데요! † 박교수 : 그렇지요. 쉽게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결과는 신이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주 만물을 만드신 그 분은 만들어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 최사장 : 교수님이 조금 전에 스스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요? † 박교수 : 스스로'와 '저절로'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인과율을 무시하는 듯한 '저절로' 가 아니고 자기 '스스로' 능력과 힘을 가진 것으로 구분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원인과 결과가 계속 무한히 연결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있게 한 원인은 자기 스스로 존재해야 합니다. 모든 존재의 최초 발단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기차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객차 열 량이 끌려갑니다. 제일 뒤에 있는 객차는 앞 객차에 의해서 끌려가지요. 끝에서 두 번째 객차는 어떻게 갑니까? ○ 최사장 : 끝에서 세 번째 객차에 끌려가지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객차는 앞 객차에 의해서 끌려가는데, 맨 앞에 있는 기관차는 어디에 끌려갑니까? ○ 최사장 : 그것은 스스로 엔진의 힘으로 가지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신은 바로 전 우주를 이끌어가는 마지막 엔진입니다. '기관차가 아무 객차에도 붙지 않고 어떻게 가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은 그 기관차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지요. ○ 최사장 : 그렇지요. 그것은 스스로 힘을 내어서 많은 객차를 끌고 가니까 말입니다. † 박교수 : 바로 그런 원리입니다. 우주와 모든 것은 신으로부터 나왔고 그 신은 우주 만상을 끌고 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기관차가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많은 객차를 끌고 가듯이 신은 스스로 존재하면서 모든 만물에게 존재를 준 것입니다. ○ 최사장 : 좀 어려운 이야기인데 약간 이해는 가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철학적이네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신의 존재 자체가 초월적인 것이기에 생각을 깊이 해야 합니다. 하나 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서울 장안에 이상한 이야기가 떠돌았어요. "지리산에 어떤 도사가 나타났는데 그 사람은 죽은 지 한 달 되는 사람을 모두 살릴 수 있대요." ○ 최사장 : 허무맹랑한 소리네요. † 박교수 : 그렇지요. 이런 거짓말이 서울 장안에 퍼졌습니다. 자! 어떤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너 그런 소리를 누구한테서 들었느냐?"고 물으면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김모씨한테 들었다" 하고, 그 다음 사무실 김모씨를 찾아서 "당신은 누구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까?" 하면 그는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 이웃집 아줌마한테 들었지요." 그 다음 이웃집 아줌마를 찾아가서 "아줌마는 그런 소문을 누구한테서 들었습니까?" 하면 그 아줌마는 또 다른 사람을 댈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추적을 하면 누가 나올 것 같습니까? ○ 최사장 : 계속 연결하면 마지막에는 그런 거짓말을 한 사람이 나오겠지요. † 박교수 : 바로 그렇습니다. 그 말을 발설한 사람이 없이 계속 영원히 추적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말을 한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저기서 나왔고 저것은 또 저기에서 나왔고 계속 따라 올라가면 모든 것의 원인이 밝혀집니다. 이것이 곧 '신'입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신을 '자존자' 또는 '존재 자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은 영원한 존재자이고 '필연유(必然有)'라고도 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어려운 진리가 아닙니다. ○ 최사장 : 역시 박사 교수님이시네요. 어떻게 그런 공부까지 하셨습니까? 저는 이런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어 봅니다. 신은 분명히 있어야 되고 그리고 신이 있어야 우주의 모든 질서가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 박교수 :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이 있고 끝이 있듯이 우주의 시작과 끝도 있어야 합니다. ○ 최사장 :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신과 우주의 관계라고 할까 ... 구체적으로 그 분이 우주를 어떻게 다스리고 있습니까? † 박교수 : 신은 이 우주의 모든 질서를 주신 분이고, 그 질서에 따라 우주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 최사장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 박교수 : 지구는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지요. ○ 최사장 : 그것은 기본적인 과학 상식이 아닙니까? † 박교수 : 하루가 정확히 24시간, 일 년이 365일이고,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것이 바로 그 분의 능력이요 다스림입니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들며, 동물들이 움직이는 이 모든 질서의 주관자가 곧 신입니다. ○ 최사장 : 신이 없다면 또는 신의 능력이 없다면 이 자연은 질서가 없다는 말이네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철학자들은 '신은 질서의 설정자요. 질서를 주관하시는 분' 이라고 합니다. ○ 최사장 : 신이 만든 질서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박교수 : 질서는 자연 질서와 윤리 질서, 형이상학적인 질서가 있습니다. ○ 최사장 : 자연 질서와 윤리 질서는 알 듯한데 형이상학적인 질서는 무엇입니까? † 박교수 : 그것은 철학적인 내용이니까 몰라도 괜찮으니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말씀드리지요. ○ 최사장 : 그럼 신은 자연 질서와 윤리 질서를 주신 분이고 그것을 주관하시는 분이란 뜻이군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 최사장 : 그런데 신이 만든 자연 질서에는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 박교수 : 어떤 문제가요? ○ 최사장 : 자연 질서는 변덕이 심해요. 어떤 때는 홍수가 났다가 어떤 때는 가뭄이 들었다가 또 난데없이 태풍이 와서 농작물을 못쓰게 하고 말입니다. 뭔가 신이 잘못 만든 것이 아닙니까?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인간이 지켜야 하는 윤리 질서가 있는데 왜 세상은 이렇게 엉망입니까? 살인, 강도, 자살, 사기, 절도 ... 신이 있고 오늘도 이 질서를 주관하고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 박교수 : 좋은 질문입니다. 우선 중요한 결론부터 내린다면, 오늘날 이 우주와 인간은 본래 신이 창조한 이상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중간에 인간의 죄'가 덮쳐서 자연과 인간 사회에는 큰 금이 갔습니다. 이 죄를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죄(原罪)'라고 합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자연 질서와 인간 윤리 질서는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 금이 갔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부조리와 모든 윤리적인 죄악과 불행이 온 것입니다. ○ 최사장 : 원죄요? † 박교수 : 원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 입문에서 공부하기로 하고 간단히 말씀 드리면, 원죄는 신과 인간 사이의 생명의 관계, 사랑의 관계를 끊어 버린 불상사입니다. 앞으로 최 사장님이 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더 깊이 연구하실 때 원죄 문제는 밝혀질 것입니다. ○ 최사장 : 그럼 그것은 다음 과제로 넘기고, 자연의 무서운 재앙과 신의 존재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 박교수 : 신은 인간과 자연을 창조해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면서 살 수 있도록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대자연 속에서 소위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자연의 재앙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 질서를 악용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재앙에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습니다. ○ 최사장 : 그런데 이 세상을 보면, 같은 세상인데도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는 잘살고 아프리카는 못살고 불행한데 이러한 것은 어떻게 설명이 되어야 합니까? † 박교수 : 아프리카를 선진 문화 민족과 비교하면서 불행한 나라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행복의 기준이 무엇 입니까? ○ 최사장 : 행복이라는 것은 물질이 풍요하여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박교수 : 천만에요! 돈이 많다고만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최 사장님은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 최사장 : 아직 그곳은 가보지 않았습니다. † 박교수 : 저는 아프리카에 세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특히 가장 어렵다고들 하는 중앙 아프리카를 다녀왔습니다. 정말 사는 것이 어렵고 비참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결코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길거리에 다니는 아줌마들이나 아이들을 보면 입고 있는 옷이 거의 누더기 같아요. 하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춤추면서 다닙니다. 아주 행복합니다. 행복을 절대로 물질적인 풍요에다 기준을 둘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은 항상 낙관주의자들입니다. 인생을 비관하고 자살하는 예는 오히려 서구 문명국가에서 주로 일어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 가운데 세상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연에 적응하고, 가난하면서도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윤리 질서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 최사장 : 그렇습니까? † 박교수 : 사실입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요. 우리 주위에 돈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 최사장 : 교수님 말씀이 정말 맞습니다. 옛날에 가난하게 살 때는 행복했던 사랑이 돈을 벌면서 가정이 파괴되고 자신의 건강도 버리고 불행한 꼴을 당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박교수 : 사실입니다. 돈이 인간 행복의 기준은 아닙니다. 물이 중요하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홍수가 되고 불이 중요하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화재의 원인이 되듯이 인간이 돈 관리를 잘못하면 돈이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최 사장님은 이 세상 문제를 놓고 행복이니 불행이니 말씀하셨는데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는 영원한 생명 문제를 다루면서 영원한 행복에 희망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부귀영화는 잠시 지나가는 사탕발림일뿐임을 알기에,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믿고 있습니다. ○ 최사장 : 그것이 뭡니까? † 정말 신이 있다면 - 신은 생명의 주관자 † † 박교수 :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그 창조의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창조 이념을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 최사장 : 교수님! 당돌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의 인간 창조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관점이 있지 않습니까? 아메바라는 생명체가 진화되어 원숭이가 되고 드디어 인간으로 진화되었다는 진화론도 있지 않습니까? † 박교수 : 하하! 웃음이 나옵니다. 최 사장님 조상은 원숭이란 말인데... 그것은 19세기 다윈이 주장한 가설입니다. 요즘에도 과학책에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그 당시 흥미거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 최사장 : 그래도 무슨 근거가 있어야지 진화론이 부정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박교수 : 진화론은 크게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같은 종(種)에서 종으로 진화하는 것, 예컨대 같은 종류의 식물이 더운 지방에서는 잎이 더 크고 얇다든지, 같은 동물의 종이 기후에 따라 변화되어 가는 진화입니다. 이를 상대적인 진화라고 하는데 이것은 긍정적으로 인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종에서 다른 종으로 옮겨가는 진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예컨대 미꾸라지 종류에서 거북이 종류로 진화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절대적인 진화론이라고 하는데 학문적인 근거도 증명도 없습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다면 원숭이도 인간도 아닌 중간 동물이 존재했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화석이 있지만 이런 종류는 발견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지요. 백년 후에는 사람으로 진화되고 또 50년 후에는 사람으로 진화될 수 있는, 원숭이도 사람도 아닌 중간치가 있습니까? ○ 최사장 : 그렇긴 한데 사람들은 아직도 진화론을 거론하고 있지 않습니까? † 박교수 : 그런 케케묵은 19세기 이야기는 그만두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인간은 신을 닮은 고귀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조설에 의하면 성경에 신이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창세기 1장 26절) ○ 최사장 : 그리고 또 하나 당돌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성경 이야기를 하시는데 성경 말씀을 다 믿을 수 있습니까? 어떤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까? † 박교수 : 최 사장님! 날마다 신문을 읽고 있지요? ○ 최사장 : 예. † 박교수 : 그 신문 내용을 다 믿습니까? 그리고 역사에 기록된 내용을 믿습니까? ○ 최사장 : 기본적으로 믿어야지요. † 박교수 : 인간이 기록한 모든 서적의 내용을 믿고 있다면 신의 감도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왜 못 믿습니까? ○ 최사장 : 성경 내용은 상식적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많으니까요. † 박교수 : 인간이 일반 상식으로 우주의 신비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최 사장님 말씀대로 성경 내용이 허무맹랑한 것이라면, 다시 말씀 드려서 그것이 거짓말 책이라고 한다면 그 거짓 책이 왜 이 세상에 가득 차 있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많은 인쇄 부수를 자랑하는 책이 성경책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왜 거짓말 책을 읽어야 합니까? 성경이 거짓말 책이었다면 벌써 인류 역사에서 사라져야 했습니다. 동양에도 도덕경이나 명심보감이나 주역이나 노자 공자의 말씀이 인류의 교훈으로 남아 있듯이 성경 내용은 전 인류의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최 사장님은 너무나 의심증이 심한 것 같습니다. 최 사장님이 미국에 간다면 미국행 비행기를 믿고 타야지요. 미국행 비행기를 앞에 놓고 이 비행기가 미국으로 간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한다면 항공기 회사 직원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를 믿으시오." 이 말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믿지 않고는 미국에도 못 갑니다. 더더구나 우리가 말하는 영원한 하늘나라로 간다고 했을 때 우리의 지식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인간에게 믿음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 최사장 : 죄송합니다. † 박교수 : 인간은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 고등동물입니다. 인간의 삶은 중요합니다. 신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인생의 종말도 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이 인간에게 귀한 생명을 주셨기에 그 생명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 최사장 : 어떻게 책임을 집니까? † 정말 신이 있다면 - 부활신앙이란? † † 박교수 : 신은 인간의 귀한 생명을 그냥 버려 두지 않고 영원한 당신의 나라로 불러들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죽음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 최사장 : 그건 또 이상한 말이네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말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신은 인간의 죽음을 해결하신다는 뜻입니다. ○ 최사장 : 인간 부활 신앙을 말하는 것인가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죽음을 해결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모두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고린토 전서 15장 21절-22절)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듯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에페소 2장 5절) 인간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고등동물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소는 죽어서 불고기 감을 주는데 인간의 귀한 생명이 죽어서 그렇게 죽음을 통해서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 최사장 : 사실 인간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 박교수 : 그런 욕망과 본성이 있다는 것은 그런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만드신 그분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부활 신앙'이라고 합니다. ○ 최사장 : 글쎄요. 그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 박교수 : 자! 부활 신앙을 이렇게 분석해 봅시다. 최사장님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없다고 믿지요? ○ 최사장 : 그렇습니다. † 박교수 : 그런데 저는 그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죽어봐야 알 수 있는데 전혀 모르는 상황이니까 최사장님은 그것이 없다고 부정적으로 믿고 저는 그것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믿습니다. 최사장님이 믿는 그 믿음의 가능성은 몇 퍼센트나 되겠습니까? ○ 최사장 : 글쎄요.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반반 되네요. 약 50 퍼센트! † 박교수 : 맞아요. 죽은 다음 부활이 없다고 믿는 것도 50퍼센트이고, 있다고 믿는 것도 50퍼센트입니다. 그렇지요? ○ 최사장 : 그렇습니다. † 박교수 : 그런데 그 내용을 두고 최사장님은 부활과 천국이 없다고 믿고 저는 있다고 믿습니다. 그 가능성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최사장님의 부정적인 믿음은 너무나 허무합니다. 인생은 절망적입니다. 그런데 저의 긍정적인 믿음은 영원한 희망을 줍니다. 50퍼센트의 가능성은 믿을 만하지 않습니까? ○ 최사장 : ? † 박교수 : 똑 같은 믿음인데 하나는 절망적이고 하나는 희망적인 것입니다. 한번 믿어 보세요. 손해 볼 것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분석은 바로 파스칼의 이론입니다. 막연히 "내 생각에는 없을 것 같아"하는 최사장님의 태도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성서의 가르침이 있고 성인들의 가르침이 있고 거기에 따르는 기적들도 있고 학문적인 근거도 있습니다. ○ 최사장 : '부활 신앙'에 대한 학문적인 근거는 무엇입니까? † 박교수 : 신학적인 결론이지요. 신학은 성경에 근거를 둔 학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자연과학과는 전혀 다른 분야이지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이성적으로 한번 분석해 봅시다. 최사장님!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합니까? ○ 최사장 : 정비 공장으로 가서 수리하지요. † 박교수 : 같은 이론으로 인간이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최사장 : 인간 고장이 뭡니까? † 박교수 : 사람이 죽었습니다. 말도 못하고 인간 행위가 끊어졌습니다. 그 인간 고장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처리합니까? ○ 최사장 : 공동묘지로 가지 않습니까? † 박교수 : 그렇습니다. 그런데 고장난 자동차는 정비공장에 가면 새 차가 됩니다. 죽은 인간 생명도 '생명 정비 공장'으로 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최사장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박교수 : 이론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고장난 자동차는 자동차 메이커의 손에 가면 쉽게 수리됩니다. 인간의 생명도 죽어서 고장이 났을 때 생명의 메이커이신 신의 손에 가면 거뜬히 수리될 수 있습니다. 없었던 자동차를 만드는 메이커가 고장난 자동차를 쉽게 수리할 수 있듯이, 없었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생명의 메이커는 죽은 인간을 간단히 살릴 수 있습니다. 요즈음 말대로 한다면 에프터 서비스가 된다는 말입니다. ○ 최사장 : ? 그러면 신은 생명의 메이커라는 뜻이군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인간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오징어 한 마리도 못 만든다고 했지요. 장미꽃 한 송이, 파리 모기 한 마리도 못 만듭니다. 요즈음 무슨 동물 복제니 생명 유전 과학이니 하는 것은, 있었던 생명으로 장난하는 것이지요. ○ 최사장 : 그건 그런 것 같습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은 있어도 오징어를 만드는 공장은 없으니까요. † 박교수 :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특히 그리스도교는 생명을 창조하신 신과의 생명의 관계입니다. 죽음과 삶을 거는 중요한 인생 최대의 관심사가 되는 것입니다. ○ 최사장 : 그런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부활한 사실이 있습니까? † 박교수 : 좋은 질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죽어서 묘지로 갑니다. 육체는 부패합니다. 그런데 생명의 메이커이신 신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요한복음 11장 25절-27절) 이렇게 자신이 바로 생명을 주관함을 선언하셨는데, 이것은 과학도 학문도 아닙니다. 이는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너 이것을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삶의 영원한 희망이 주어지고 이것을 믿지 않으면 인생은 허무하고 절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 최사장 : 그럼 죽은 사람은 언제 부활합니까? † 박교수 : 성경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내 말에 놀라지 말라. 죽은 이들이 모두 그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나올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8절-29절) 그러니까 창조주의 모든 사업이 끝나는 날, 다시 말해서 우주의 종말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 최사장 : "부활 신앙을 믿으면 삶에는 영원한 희망이 있고 그것을 믿지 않으면 절망적인 인생이다." 옳은 말씀입니다. † 박교수 : 또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의 중요성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 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한복음 3장 16절-19절)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둠을 택한 인생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최사장 : 사실 그렇겠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사는 일이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 박교수 : 그렇지요. 신은 인간을 창조해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버려 두지 않습니다. 씨앗을 뿌렸으면 그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씨앗은 좋은 땅에 떨어져야 백 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돌 위에나 가시덤불에 떨어지면 말라 죽고 맙니다. 우리가 신으로부터 받은 귀한 생명을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 최사장 :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꾸어야 합니까? † 박교수 : 농부가 땅에 씨앗을 뿌려 놓고는 계속 물을 주고 김을 매듯이 우리도 생명을 신의 뜻대로 잘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윤리 도덕적인 생활을 말합니다. 비도덕적인 인간은 버림을 받고 도덕적인 인간은 결실을 맺는 영원한 행복을 얻게 됩니다. ○ 최사장 : 그런데 인간 사회의 윤리 도덕 문제는 너무한 것 같아요. 왜 비행기 납치범이 생기고 무기를 만들어 사람을 죽이고 죽고 하는지, 인간의 부조리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전능하신 신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복지사회를 만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박교수 : 좋은 질문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 최사장 : 그것이 무엇입니까? † 정말 신이 있다면 - 신은 윤리의 주관자? † † 박교수 : 좋은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야 많은 결실을 맺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이론에 따라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영원한 행복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윤리 도덕 문제는 우리 인생에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선 인간은 자기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인격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 최사장 : 인격체라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말씀해 세요. † 박교수 : 동물은 인격체가 아닙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인격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인간은 매사에 생각을 하고 어떤 의미를 깨닫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간의 지능 활동이라고 합니다. 지능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의미를 깨달았으면 행동을 합니다. 이것을 인간의 의지 행위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기쁘다', '보람있다', '슬프다'는 등의 감정이 생깁니다. 이것을 인간의 정서 활동이라고 합니다. ○ 최사장 : 그러니까 인간은 지능 의지 정서 활동을 한다는 말씀지요. † 박교수 : 예! 그렇습니다. 좀도 철학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면 인간 지능은 진리를 추구하고 인간의 의지는 선을 추구하고 인간 정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인격체 인간은 궁극적으로 진선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 최사장 : 교수님한테 오늘 많은 것을 배웁니다. † 박교수 : 그래서 인간은 아무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을 지능 작용이 있고 아무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을 의지 행위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생각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러한 이성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인격체'라고 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인간은 자기의 고유한 생각에서 비롯된 자기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 최사장 : 그건 당연한 이론이지요. † 박교수 :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원죄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신은 인간이 원죄를 범할 것을 알았고 또 범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인데 왜 그것을 허락했으며, 또 원죄를 범한 다음 구원을 준다고 하셨는데 결국 병 주고 약 주는 행위가 아니냐고 합니다. ○ 최사장 : 저도 그런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왜 인간에게 죄를 허락해서 불행하게 만들었느냐 하는 문제지요. † 박교수 :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입니다. 인간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건강 관리를 잘하지 못해 놓고 병들면 자기가 약을 먹고 치료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병을 얻고 약을 쓰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 최사장 : 그러나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인간 윤리 도덕 생활에 간섭을 해야지요. † 박교수 : 그럼 구체적으로 이야기합시다.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죄도 범할 수 없도록 했으면 좋겠지요. ○ 최사장 : 예, 바로 그것입니다. † 박교수 : 그렇다면 인간이 아닙니다. 그건 본능의 법칙대로 사는 동물에 불과합니다. 죄를 못 짓는 인간은 선행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상'을 달라고 외칠 수 있겠습니까?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도덕 행위에 대해서 말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원수인 친구를 권총으로 쏜다고 가정해 봅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죄가 되니까 그 순간 권총에서 총알이 나오지 않고 신의 자비로 물이 줄줄 흐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최사장 : ? 교수님 질문이 기상천외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 된다는 뜻이지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원죄를 범한 것도 그리고 자신이 범한 모든 윤리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이 인격체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 속담에 '잘된 것은 자기 탓이고 잘못된 것은' 누구 탓이라고 합니까? ○ 최사장 : '조상 탓'이라고 하지요. † 박교수 : 신이 우리에게 귀한 생명을 주셨고 이 생명이 성숙될 수 있는 자연의 오곡백과를 주셨고 윤리 도덕의 기본 양심의 질서도 주셨으니, 우리는 옳은 생각과 바른 행동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최사장 : 그런데 인간의 책임 문제를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 박교수 : 책임 소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세상 이야기를 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절도죄를 범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 최사장 : 당연히 사법처리 되어야지요. 재판에 회부되고 그 판결에 따라 벌을 받아야지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최사장님.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 인간이 범한 모든 선행과 악행에 대해서 우리는 신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 정말 신이 있다면 - 신은 인간을 심판한다? † ○ 최사장 : 옛말에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그의미가 떠오르네요. † 박교수 : 신의 심판이 없다면 인간의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죄를 피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윤리 도덕은 알맹이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신의 심판이 없다면 우리가 왜 양심을 지키고 도덕 생활을 해야 합니까? 교통 질서를 단속하는 경찰이 없다면 누가 교통 질서를 지키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버리지요. ○ 최사장 : 옳은 말씀입니다. 법의 심판이 없다면 이 세상은 완전히 생지옥이 되어 버리겠지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신은 착한 이에게는 천국의 상급을 주고 악한 이에게는 지옥 벌을 주는 엄격한 정의의 심판관이십니다. ○ 최사장 : 신의 심판은 언제 이루어지며 또 신의 심판인 천국과 지옥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까? † 박교수 : 인간의 죽음은 이 지상 생활의 끝장입니다. 인간은 이성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존재이며 동시에 불멸의 존재입니다. 인간의 불멸성을 종교적인 용어로는 '영혼'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인간 인격체의 기본입니다. 인간은 죽은 다음 인간의 실체인 영혼은 신의 심판을 받습니다. 신의 심판에 대해서는 철학자 칸트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신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천이성비판'에서 인간 윤리와 도덕적인 관점에서는 신의 심판이 없으면 윤리 도덕의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 신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선과 악을 심판하는 신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착하게 양심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윤리 도덕은 무엇입니까? 알맹이 없는 껍데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 꼴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철학자 칸트는 윤리 도덕이 살기 위해서는 신의 존재는 꼭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 최사장 : 인간 종말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 박교수 : 그러면 그리스도교 교리와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오늘은 근본적인 신의 문제가 핵심이니까 그런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인간 종말과 신의 심판에 대해서 성경 구절을 몇 가지 인용하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죄인에게 말합니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 (마태오 복음 25장 41절) "그 날이 오면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남을 죄짓게 하는 자들과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모조리 자기 나라에서 추려내어 불구덩이에 처넣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마태오 복음 13장 41절-43절) ○ 최사장 : 무섭고 두려운 말씀이네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이 말을 알아들어야지요. 세상에서 권력으로 부정 축재를 하고 양심을 속여 치부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는 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 부귀영화가 얼마나 가겠습니까? '인생 일장춘몽'이라고 했습니다. 잠시 지나가는 세상에서 웃고 즐기던 불의한 사람들은 잠시 후에 지옥에서 영원히 통곡할 날이 올 것입니다. 신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세상에서 버림받고 못살고 가난하게 살던 사람들은 신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최사장님,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최사장 :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전에는 너무나 옹졸하고 교만하게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요즘 하는 말에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고 하는데 저의 고집스런 생각을 버리고 새출발하여 새로운 미래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 박교수 : 고맙습니다. 최사장님의 겸손한 자세 앞에 진정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본래 범죄자들에게 생활 회개를 하라는 뜻으로 시작되었만 저는 이것을 철학적인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고정관점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발전이 없고 따라서 사는 기쁨도 보람도 없습니다. 자기의 고정관념을 한번 바꿔 봅다. 다시 말해서 가치관을 한번 바꿔 보면 새로운 희망의 미래가 열립니다. ○ 최사장 : 가치관을 바꾸라고 하셨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정말 신이 있다면 - 신앙인의 가치관? † † 박교수 : 우선 '가치관'이라고 하는 어려운 말을 설명해야겠네요. ○ 최사장 : 어렴풋이 알 듯도 하지만 그 말의 확실한 내용이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 박교수 : 예, 쉽게 말씀 드리지요. 여기에 사탕 한 개와 만 원짜리지폐 한 장을 두고 두 살 된 어린이보고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어느 것을 집겠습니까? ○ 최사장 : 그야 사탕을 집겠지요. † 박교수 : 그런데 최사장님은 어느 것을 집겠습니까? ○ 최사장 : 당연히 만 원짜리지요. † 박교수 : 왜 그래요? ○ 최사장 : 당연히 사탕 한 개의 가치보다는 만 원의 가치가 더 크니까요. † 박교수 : 바로 그것이 가치관의 판단입니다. 두살배기 아기는 만 원의 가치를 모릅니다. 그래서 우선 달콤한 사탕을 선택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일 귀중한 것이 무엇이고 두 번째로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속주의에 절어 있는 사람은 오로지 세상 부귀영화에만 모든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법이지요. 그것보다는 생명의 귀중함을 알고 그 생명이 다시 소생될 수 있다는 영원한 세계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 최사장 : 정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돈 벌고 권력 잡아서 이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려고만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박교수 : 몰론 돈도 중요합니다. 잘 먹고 잘 입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삶의 궁극 목표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 최사장 :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귀한 가치를 알아야 된다는 말씀이지요? † 박교수 : 그렇습니다. 아기들은 아직도 정신적인 개발이 덜 되었기 때문에 판단 기준도 퍽 약합니다. 그래서 만 원짜리 돈보다는 우선 달콤한 사탕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어른들은 만 원짜리의 가치를 알지요. ○ 최사장 : 그것이 곧 가치관의 차이라는 말씀이군요. † 박교수 : 최사장님,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잠시 지나가는 부귀영화 세속주의는 '사탕발림'으로 보입니다. 보십시오. 그렇게 권력을 잡고 큰 소리치던 대통령도 감옥으로 가는 것을 봤지요. 그렇게도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웠던 재벌 총수들이 이국땅에서 전전긍긍하면서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보아 왔습니다. 권력을 잡을 때는 좋았고 돈벌이할 때는 좋았지만 지나고 보면 그것이 사탕발림이었고, 시간이 지나 단맛은 없어진 셈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잠시 지나가는 세상살이는 일장춘몽입니다. ○ 최사장 : 그런데 박교수님은 이 세상을 너무나 비판적으로만 보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