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에 스크랩해 둔 석창우 화백의 기사를 함께 나눔니다..
뛸 듯이 기쁜 일이 있어도 뛰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땅이 꺼질 듯 슬픈 일이 있어도 땅이 꺼질 만큼 한 숨을 쉬지 않게 되었다. 이렇듯 좀 덕이 되는 일이 있어도, 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 것을 나는 마침내 '성숙'이라고 치부하게
되었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엄정한 판관으로 이름난 청백리 포청천(包靑天)보다도 더욱 공평한 판관이 시간이다. 아무리 교묘한 속임수를 가진다고 해도 시간을 속일 수는
없다. 바른 것은 바르게, 그릇된 것은 그릇되었음을 드러내어준다. 지금 당장 기쁜 일이 기뻐할 일인지, 지금 당장 억울한 일이 억울한 일인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시간이 가려줄 뿐이다.
원래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중소기업 전기실에 근무하던 전기기사였다. 어느 날 자신의 몫이 아닌 일을 솔선해 고장 난 고압차단장치를 수리하다가 2만2900V의 고압전기에 노출됐다. 1984년의 그 특별고압 전기는 양팔과 왼발가락 2개를 앗아갔다. 목숨은 건졌지만 재활을 위해 1년 6개월을 병원에서 지냈다. 퇴원 후에도 물 한 모금조차 부인이 먹여주어야 하는 절망의 상황이 계속됐다.
그 그림을 보고 아들도 놀라고, 부인도 놀랐다. 본인도 마침내 할일이 생겼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길로 남편을 대신해 일을 해야 했던 부인은 일조차 접고 남편이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조했다. 7년간 석 화백을 태우고 스승를 찾아 붓을 잡게 했다.
중견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본인은 아직도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한다. 밥을 먹는 것을 훈련하기보다 붓을 잡는 훈련이 먼저였고 갈고리조차 밥숟가락을 잡기 위함이 아니라 붓을 잡기 좋도록 조정했기 때문이다.
가을볕이 따가운 날이었다. 실내에 들어온 뒤 잘 차려입었던 외투를 벗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양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손목과 척골 부위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위팔뼈의 일부만 남은 상태였다. 그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거반 어깨뼈의 힘을 빌려야 했다. 그가 의수화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좌절이 있었을지는 어깨에 매달린 의수가 증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지된 모습이 아니라 움직임에 몰두하는지를 짐작할 만했다. 누구나 잃고 보면 없어진 것이 그리워지고 불가능해진 것이 있으면 그 불가능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지는 그 마음 말이다.
팔이 없는 현재의 의수화가 석창우가 더욱 행복하다고 답했다. 전기에 감전되고 양팔과 발가락을 잘린 상태로 회복실에서 마취에 깨어났을 때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 석화백의 호는 유빙(流氷, 성엣장)이다. "누가 지어준 호입니까?" 저는 녹아서 자신을 버리고 흔적 없이 강물에 동화되어가는 그
성엣장의 모습이 좋아요." 시간은 두 팔을 잃은 불운의 전기기사를 지복을 고백하는 화가로 만들고 그 행복한 화가도 언젠가는 유빙처럼 존재를 짐작조차할 수 없는 강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석창우 화백 바로가기' http://www.cwsuk.com http://blog.joinsmsn.com/cwsuk http://cafe.daum.net/cwsuk |
첫댓글 포기하지 말고 방법을 달리하면 지금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목표를 향한 끈기와 도전정신...
마음먹기에 따라 인상이 달라집니다~~~
사지가 멀쩡한데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연구노력으로 실천해야게씁니다@!
반성 많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