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물물(頭頭物物)>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확립자라는 백장(百丈懷海, 749~814) 선사의
어록 <백장록(百丈錄)>은 조사선(祖師禪)의 백미라 한다.
여기에는 이 우주에 가득 찬 삼라만상 자체가 부처라고 했다.
유정무정 모두에게 불성인 생명이 있어서 일거수일투족이 불타행이며,
‘중생이 바로 부처[衆生是佛]’라고 했다.
그리고 중국 송나라시대의 선사 원오(圓悟克勤, 1063~1135) 선사가
그 <백장록>을 해설한 <백장록 강설>에
‘두두물물(頭頭物物)’이란 말이 나온다.
‘두두물물’이란 삼라만상을 일컫는 말인데,
그 이후 ‘두두물물’은 선가에 회자되는 선어가 됐다.
‘삼라만상 두두물물(森羅萬象 頭頭物物)’은 세상 모든 것을 의미하며,
낱낱의 개체마다 모두 진리가 들어 있다는 뜻에서 쓰이는 말이다.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비로화장세계(毘盧華藏世界)라,
그래서 온 우주가 한 생명이고 한 몸이라고 하는
그런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리하여 낱낱의 돌멩이나 한 포기의 풀이나 하늘에 반짝이는
저 수많은 별들 하나하나, 나무 잎, 벌레,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모두,
귀로 들을 수 있는 것 모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모두,
일체 삼라만상 두두물물 낱낱이 그 나름대로
하나의 진리요 공안이라는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화장세계라 하는데,
연화장 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의 줄인 말이다.
이는 비로자나(毘盧遮那如)여래가 과거에 세운 서원과
수행에 의해 깨끗하게 꾸며진 세계이고,
십불(十佛-일체불)이 교화를 베푸는 경계라고 한다.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 화엄경〉 권8의
「연화장세계품」에 따르면, 세계의 맨 아래에 풍륜(風輪)이라고 하는
거대한 축이 있고, 그 위에 향수해(香水海)라는 바다가 있는데,
그 바다 속에 하나의 커다란 연꽃이 있다.
이 대연화(大蓮華)에 함장돼 있으므로 연화장세계라고 한다.
이 세계는 티끌 수보다 많은 세계가 20중으로 중첩된
중앙세계(中央世界)를 중심으로 해서 111개의 세계가
그물과 같이 둘려서 세계망(世界網)을 구성하고 있으며,
부처가 거기서 출현하시며, 중생도 그 가운데에 충만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삼라만상을 볼 때에,
그것을 눈으로 보면 그에 꺼들려서 집착심을 낸다든지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그 듣는 소리로 인해서 벌써 경계에 꺼들려 망상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정말 귀로 들을 수 있는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
새 우는 소리 하나하나가 전부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공안으로 봐야 한다.
깨달은 분상(입장)에는 그 자체, 그것 전부가 진여(眞如)요,
비로자나 법신이요, 진리요, 깨달음의 경계인 것이다.
두두물물이 진리 아님이 없고, 법신 아님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두두물물(頭頭物物)과 관련된
선가에 전하는 말들을 살펴보자.
•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도(道)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라는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도(道) 그 자체라는 것이다.
선사들은 구체적인 존재의 사물(頭頭物物) 하나하나에서
진리의 본질을 본다는 말이다.
두두물물 진로현신(頭頭物物 眞露現身)과 같은 뜻이다.
• 두두물물 진로현신(頭頭物物 眞露現身) ―
이 세상의 모든 일이나 만물이 모두 다 그대로 부처(법신불)의
나타남이란 뜻으로, 사사물물(事事物物)에서 언제나 진리를 느끼고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처처불상(處處佛像)과 같은 맥락이다.
• 두두물물 처처불상 사사불공(頭頭物物 處處佛像 事事佛供) -
삼라만상 하나하나, 물건 하나하나가 모두 부쳐요,
곳곳마다 부처가 아니 계신 곳이 없고,
하는 일마다 불공이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다.
• 두두물물 화화초초(頭頭物物 花花草草) -
<화엄경>에 두두물물 화화초초가 비로자나 진법신이라 했다.
꽃 하나 풀 한 포기, 그 하나하나가 다 부처님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은 만유가 다 불성뿐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불성, 그것은 그저 존재의 근원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다.
눈에 안 보이는 원자의 힘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듯이,
그보다 더 미세하고 보다 더 근원적인 불성의 힘은
한도 끝도 없는 무한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 두두물물 진진찰찰(頭頭物物 塵塵刹刹)---두두물물은 세상 모든 것,
‘진진찰찰’에서 진(塵)은 티끌이란 말인데,
진진(塵塵)은 많고 많은 티끌처럼 많고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찰(刹)은 땅, 육지란 뜻이다.
그래서 찰해(刹海)란 바다와 육지라는 뜻으로,
광활한 육지와 바다처럼 널리 퍼져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찰찰(刹刹)은 온 나라의 땅, 우주란 말이고, 곳곳마다란 말이다.
그러니 두두물물 진진찰찰은 낱낱, 모든 존재, 티끌 하나하나,
끝도 없이 많은 존재, 삼라만상 모든 것, 그리고 온 우주 방방곡곡,
그 자체가 불, 불신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두두물물 모두가 진리 아님이 없고, 온 세상 곳곳에
부처 아니 계신 곳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화엄경>에서 ‘두두물물 화장찰해’라,
사람만 부처님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다 진리요,
모든 곳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그런 입장임을 밝히고 있다.
•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촉촉(化化觸觸)---
삼라만상이 생하고 일어남을 말한다. 그런데 원래 이 말은,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이니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요, 화화촉촉(化化觸觸)이 불심이라!」,
이렇게 이어지는 문장 속의 한 구절이다.
이 세상에는 부처 아닌 것이 없고 불공 아닌 일이 없다.
어느 것 하나 진리와 무관하게 작용하는 것이 없으니,
이 세상 삼라만상이 부처 아님, 불공 아님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화(化)는 생생화화(生生化化)란 말이다.
즉, 만유생육(萬物生育)의 조화(造化)를 말한다.
싹이 나와 천만 개의 가지와 잎사귀가 되는 것과 같으니
그 생생화화(生生化化)가 끝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상응해 도(道)가 나타난다.
만물이 생생화화의 변화를 지니고 있다면
도(道)도 그러한 변화에 따라서 나타날 것이다.
만물이 능히 생생화화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촉(觸)’은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동물적 감각,
마음이 외물을 따라 일어나는 마음작용이란 말이다.
따라서 ‘두두물물 화화촉촉’은 삼라만상이 생하고
마음이 일어남이 곧 불도(佛道)임을 말하고 있다.
<화엄경>의 입장에서는 두두물물(頭頭物物) 사사물물(事事物物),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은 그대로 진리라고 본다.
그것이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어느 것은 진리이고, 어느 것은 진리가 아니다."
이렇게 취사선택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대로 전부 존엄성과
그 가치를 가지고 있다. 또 존엄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부가 다 불생불멸의 영원한 존재이다.
깨달음의 세계에 있고 진리 법계에 있다고 하는 입장으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이해했을 때
어떤 것은 배척하고 어떤 것은 받아들여서 좋다 나쁘다
그렇게 분별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하늘과 땅이 있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의해서 천지만물이 창조되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화엄경>의 핵심이다.
마음 하나 일으켜 신ㆍ구ㆍ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만들고,
마음으로 이 우주법계 모든 세상을 만들어 내며,
마음으로 삼독심(三毒心)을 일으키고 마음으로 삼학(三學)을 닦아간다.
마음으로 번뇌와 집착을 일으켜 육도를 윤회하게 되고,
마음으로 집착을 끊고 해탈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자리 깨치면 텅 빈 충만이며,
여여(如如)하고 적적(寂寂)한 부처요, 깨치지 못하면,
두두물물(頭頭物物)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천차만별로 벌어지는 중생세계이다.
그러나 중생이든 부처든 그 근본 성품은 하나이다.
법계의 성품을 관(觀)하라는 말은 바로 나의 근본을 살피고
나의 참 성품, 즉 불성을 체득하라는 말이다.
법계의 성품이 바로 나의 성품이고, 법계의 근본이 나의 근본이다.
『<80권 화엄경> 중 어느 품이라도 손에 잡히는 대로 마냥 읽어보라.
<화엄경>이 부담되면 <화엄경 약찬게>라도 늘 독송하시라.
읽다 보면 사사물물(事事物物), 두두물물(頭頭物物)을
다 보살로, 부처로 보는 안목으로 깨어날 때가 있을 것이다.
세상이 확 달라져 보일 것이다.
그러면 이 비어있는 허공 하나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안개 속을 지나오면 어느 새 우리들의 옷자락에 습기가 배여 있듯이
마냥 읽다 보면 <화엄경>의 도리가 어느 새 내 곁에 달려와 있을 것이다.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지만 전에 봤던 세상과는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 무비스님
그래서 청화 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우리 마음이 우리의 주인공이고, 또는 태양이나 달이나 별이나
사바세계의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가 다 그 근본성품은 바로 마음인 것이다.
그렇기에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마음이 바로 부처라,
그 마음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성(空間性)이 없으며,
공간성이 없기 때문에 시간성(時間性)도 없다.
우주에 끝도 갓도 없이 무량무변하게 가득 찬 생명 자체,
이것이 바로 마음인 동시에 바로 부처님인 것이다.』
두두(頭頭)가 비로(毘盧)요, 물물(物物)이 화장(華藏)이라는 말이 있다.
그 낱낱 비로자나부처님과 화장장엄세계가
또 낱낱 작은 먼지 속에 다 들어있다.
그야말로 일미진중에 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다.
하나의 작은 먼지 속에 하늘이 있고 구름이 있고 바람이 있고
비가 있고 태풍이 있다. 사람과 온갖 생명체들이 다 있다.
시방세계가 그대로 하나의 작은 먼지이자, 진리요, 부처이다.
어두운 하늘에 생각이라는 별이 명멸(明滅)해 번뇌 망상이
죽 끓듯 하다가 무심의 밝은 광명은 두두물물(頭頭物物)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사물들을 완연하게 드러나게 하느니
광명은 모든 존재를 살려 더불어 공존하는 성품이 있다.
그러니 산하대지(山河大地) 두두물물 그대로가
관세음보살의 법신(法身)이고 관세음보살의 형상이고
그 모습이고 설법이고 그 음성들이다.
온 세상이 부처 아님이 없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