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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록열전 • 2
馬鹿列傳 (第二)
서 기 원
이십여 년 전 한강 인도교가 끊어지기 직전
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도망쳤다. 그렇게 하지 못한 굉장히 많
은 사람들 가운데 마가(馬哥)의 경우를 비
상징적으로 소개함도 반드시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열전2를 적는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난을 해야 할 사람과 피난을 안해도 괜찮을 사람으로 확연하게 갈라질 수 있다고 믿었던 서울 시민은 아주 적었을 것이다. 어느 사립대학 정치과에 다니는 마록샵(馬鹿三)도 그 아주 적은 부류 속에 마땅히 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 건 공산주의라는 것이 그저 싫다는 한 가지의 사유밖엔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공산주의가 싫은 까닭도 학생 동맹하던 치들 노는 꼴이 애초부티 마음에 안 든 때문이었고, 무슨 독서회를 갖는다, 서클을 만든다 하며 이리지리 몰려다니거나 해괴한 좌익 용어를 남발하고 횟대를 올리는 일종의 유행이 역겨운 정도였다. 그렇다고 철학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학교 공부를 경멸하는 그런 족속도 아니었고 또 무술이나 운동에 열중하는 어깨형도 아니어서 대개 그만 나이의 학생들을 분류하는 몇 가지 틀 속에 집어넣기가 곤란한 위인이었다. 졸업 성적은 중하(中下)였지만, 그런대로 꽤 경쟁율이 센 대학을 택했던 것을 보면 은근한 자신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하여간 공산주의란 괴물이 쳐들어온 이상, 남쪽으로 빠져가지 않을 수 없다고 결심한 마록삼은, 유월 이십구일 대낮에 하숙방을 뛰쳐나왔다. 전차길 로티리엔 인민군 탱크가 저의 집 앞뜰처럼 행세하고 있었고, 요소요소 건물마다 ‘만도린’총을 멘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말하자면 저 패들이 공산주의잔가? 마록삼은 그런 풍경만 봐서는 도무지 공산주의를 실감할 수가 없어서 좀 기대에 어긋난 기분으로 인도교 쪽으로 향했다. 인도교는 간밤에 끊어졌다고 하니 천상 헤엄을 칠 도리밖에 없었다. 사내대장부가 1킬로도 채 못 되는 강물이 무서워서 탈출을 못한 대서야 될 말이냐고 거듭 마음읕 다져먹었다. 중학교 때 인천 송도에서 2마일 원영(遠泳) 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그 같은 용기를 북돋아 주었음은 물론이다.
용산 우체국 광장에서 남쪽으로 포를 겨냥하고 있는 탱크 둘레를, 동네 조무래기들이 떼지어 몰려 있는데, 무기에 대한 동경심이란 어른애 가릴 것 없이 사람의 본능과 같은 것인 듯했다. 구경판에 한몫 든 마록삼의 눈엔 탱크 뚜껑 위 걸터앉은 병사의 얼굴이, 좌익운동하던 치들과는 생판 다르게 비쳤다. 훨씬 인상 좋게 말이다. 조무래기들이 뭐라고 질문하니까, 그녀석은 약간 수줍어하면서 으시대고 있었다. 전쟁치고는 참 이상한 전쟁이었다.
인도교 어귀와 양컨 강둑으로, 인민군 보병부대가 진을 지고 있었고, 가끔 대안(對岸)에 대고 기관총을 갈기고 있었다. 건너편에서도 심심치 않게 응사했지만, 한강의 천연스런 표정이, 그런 전투 장면읕 아무짝에 소용이 닿지 않는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처럼 싱거운 전쟁터라면 마포 나루터 중간쯤 해서 어딘가 구멍이 뚫려 있음직도 했다. 마록삼은 둑 아래 행길을 돌아 터벅터벅 걸어갔다.
붉은 헝겁 조각을 핸들에 리봉처럼 맨 자건거가 서너 대, 진짜 빨갱이는 아니지만 빨갱이 하는 일에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주인의 의사를 증명 하면서 느릿느릿 지나갔다. 초여름 석 양의 역 광 속에서 강물이 눈부시게 넘실거리고, 사진(砂塵)을 몰고 오는 강바람이 코에 매웠다. 물가에 매어둔 쪽배라도 간수하러 가는 어부처럼 그는 겁 없이 걸음을 옮겼다. 셔츠와 바지를 벗어던지고 물 속으로 지벅저벅 들어갔다. 물은 차겁고 흐름은 세찼다. 흐름을 타며 하류 켠을 향했다. 이따금 고개를 틀어 강변을 살폈는데 다행히 아무 변화도 없었다.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마록삼은 무중력 비슷한 상태에 둥둥 떠 있었다. 몽뚱이의 저항과 공포감이 말끔히 가셔버리고,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헤엄 지고 있는 착각이었는데, 그련 상태가 되도록 오래 지속됐으면 싶은 느낌 이었다. 그러나 차츰 걍기슭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그런 단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일단의 병사들이 물가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상륙한 마록삼은 두 팔을 높이 쳐들고 총구 앞에 섰다.
“학생입니다. 서울을 탈출했읍니다.” 그러나 지휘자로 뵈는 젊은 장교는 장하다는 환영의 말 대신 “빨갱이 간첩이로군.” 하며 물방울이 떨어지는 마록삽의 이마에 권총읕 바짝 겨누었다. “빨갱이가 싫어서 헤엄쳐 나온 나한테 간첩이란 무슨 소립니까. 당장 실언을 취소하시지요.” “학생증 있나?” “아차, 강 건너 벗어버린 바지호주머니 속에 있는데.”
흥분한 병사가 M1 개머리판으로 마록삼을 내려치려고 했다. 장교는 그걸 제지하고, 마록삼을 사령부로 데리고 가도록 일렀다. 팬티만 걸친 간큰용의자가 영등포역을 차지한 임시사령 부에 도착한 것은 어슬어슬 땅거미가 깔릴 즈음이었다. 그는 정보장교 앞에 끌려나가 심문을 받았다. 걍둑에 포진한 인민군의 상황을 캐고 싶은 눈치였는데 웬 지나가던 장교가 “너 마록삼이 아니냐.” 손목을 덥썩 붙잡는 것이 아닌가. “오?” 이거야말로 에누리없는 구세주가 아닐 수 없었다. 중학 동창인데, 못된 짓만 골라 하다가, 퇴학을 맞자, 홧김에 군대에 뛰어들었던 놈이었다. 덕분으로 마록삼은 시체에서 벗긴 물건 같은 작업복과 전투모를 얻어 입을 수 있었다. 서울에 그중 늦게까지 남아 있었고 백주 단신 도강읕 했다는 사실이 경황이 없는 후퇴의 진중에서도 마록삼으로 하여금 소영웅 대접을 받게 했던 것이다. 장교들하고 함께 밥을 먹고 잠자리도 그 친구와 같이했다. 이튿날 밤 노량진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사령부가 수원 방면으로 이동하게 되자 그를 심문하던 정보장교가 “어때 우리하고 종군 않겠소.” 했던 것이고, 수중 무일푼인 마록삼도 쾌히 승낙하게 되어 정식 발령은 나중 내기로 하고 일단 위관(尉官) 대우 군속의 몸이 됐던 것이다.
사령부는 수원서 이틀을 묵고, 대전까지 단숨에 내려가 버렸다. 미 지상군(美地上軍)이 참전하게 되었다는 소식으로 패주심리(敗走心理)에 짓눌렸던 분위기는 다소 밝아졌지만, 마록삼으로서는 일단 고향에 내려가서 가족과 상면한 다음 가부간 처신의 방도를 강구해야겠기에 사령부와 작별하기로 했다.
하지만 차마, 부모님 뵈러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동창생에게만 귀뜸을 하고는 군속 증명서를 소중하게 간직 한 채 슬그머니 부대를 이탈했던 것이다.
그의 집은 정감록에서 피난지지(避難之地)로 이름난 계룡산 도내(都內) 근처 마을이었다. 정감록을 믿지 않는 그는 우리 식구도 대구나 부산으로 피난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늙은 부모야 그럴 법하시다 해도, 일본 유학까지 한 맏형도 덩덜아 피난지지를 고짐하는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두 아들 가운데 장정인 록삼이만은 타향으로 피신을 시키는 편이 안천할지 모른다고 판단했는지 약간의 돈과 떡 그리고 미싯가루름 싸주며 “부산 가면 이곳에 찾아가거라. 소시적 친군데 네가 신세를 좀 져도 상관이 없을 분이다.” 하며 붓글씨로 쓴 봉투를 전하는 것이었다.
부산까지 내려오는 동안 예의 신분증 신세를 단단히 첬다. 초량에 있는 주소를
찾아가자 한성 건수학교(專修學校) 동창이란 아버지의 친구는 아버지의 함자를 외우고 있었지만, 오만상을 찌푸리며 “젊은 사람이 군대에도 안 들어가고, 뭘 할라고 찾아왔노.” 대뜸 기피자 취급을 하는 것이었다. “군대에 들어가게 되면 들어가겠읍니다. 아뭏든 용돈이 얼마 안 남아서 불안하니 돈 좀 취해 주십시오.” 마록삼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말했다. 노인은 굵은 안경테 너머로 짓궂게 처다보고는 “취해달라꼬?” “예, 늦어도 전쟁이 끝나면 갚겠읍니다.” “일본으로 밀항할라는 거 아잉가?” 그럴 의심도 얼마든지 받을 만큼 밀항자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마록삼으로서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그처럼 골 한구석이 비어 있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조차 느꼈던 것이다.
“아뇰씨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그런 마음 가져본 적 없읍니다.” “그렇다면 빨랑빨랑 취직이라도 해야지.” 돈 얘기는 묵살해 버린 노인은 창고로 쓰고 있는 뜰 아래 골방을 거처로 정해 주었다. 공밥을 먹기가 미안해서 가끔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기도 했다. 신병 모집 아닌 장정 사냥이 한창인 거리를, 군속증 한 장만 믿고, 일없이 쏘다니는 짓에도 지쳐 버렸고, 군대가 뭣하다면 양키 부대에라도 들어가 있어야 할 판국이었다. 허지만 이모저모 아무리 따져봐도, 양키 부대에 취직하기 위해서 한강을 돌파했던 자기는 아닌 성싶었다. 그러자니 국민방위군은 끔찍스러웠고, 소모품 소위도 달갑지 않았는데 기왕이면 창창한 장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병과를 고른다는 것이 마침 벽보에 나붙은 통역장교 후보생 모집에 응시하기로 작정 했다. 실토하자면 장래문제 이전에 생명의 안전도를 계산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해군이나 공군의 행정 요원 정도가 가장 안전하다는 사정을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한 점만은 역시 평소의 마록삼다운 일이었다.
장교 후보생 시험이라는 것도 엉터리였다. 어느 국민학교 교정에 지원자를 집합시켰는데 마록삼의 눈대중으론 이천 명이 넘어 보였다. 기십 명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천 명이나 이천 명이나 마찬가지라고 단념했던 마록삼의 합격은 틀림 없이 채점이 잘못됐거나 명단이 틀렸거나 했을 기적이었다. 허긴 응시 자격부터가 대단히 관용스러운 것이긴 했다. 대학 졸업 또는 동등 이상의 학력 소유자여서, 말하자면 영어 마디나 지껄일 줄 알면 된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그만이었지만, 필기시험과 신체검사에 뽑힌 다음, 영어 회화 테스트에 거뜬히 붙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단어(單語) 나열주의로 마구 엮어낸 뱃심의 소치였을 것이다.
훈련이라야 동래에 있는 천막 훈련소에서 꼭 4주 동안 기초 군사훈련을 시늉만 내다 말고 대뜸 육군 중위로 임관되었다. 처음으로 배속된 부대는 제 8사단 본부였다. 이 사단은 낙동걍 중류에서 적의 도하작전을 방어하고 있었다. 마록삼 중위는 사물(私物)이 든 가쁜한 곤포 하나를 들쳐메고 나섰다. 정기 (定期) 수송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참 중위의 부임을 위해 차를 내줄 턱도 없으므로 트럭이건 드리쿼터건 되는 대로 주워 타야 했다. 한나절을 걸려 세 번 갈아타고 사단본부에 도착하자, 우선 인사참모가 신고를 받는다고 한다. “귀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네.” 인사참모는 빙글빙글 웃으며 다소 야유조로 말했다. 산 너머 북쪽 하늘에서 천둥소린지 포성인지 분간할 수 없는 굉음이 울려왔다. “네, 열심히 하겠읍니다.” “그럼 이거 번역해 볼까?” 그러면서 국민학교 아동용 책상 위에 함부로 뒹굴고 있는 문서 한 장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공중에 뜬 종잇장이 책상 아래로 춤추며 떨어지는 것을 허겁지겁 낚아챈 동작만은 심술궂은 인사참모의 비위를 맞출 수 있었던 모양이다. 방 한쪽 당번석 비슷한 자리에 앉아, 공문을 대충 훑어보니 초면인 단어가 너무도 많았다. 체면상 안 됐지만, 곤포를 풀처, 부산 국제시장에서 구입한 콘사이스 사전을 빼냈다. 협동작전을 벌이고 있는 미 해병사단에서 보내온 것으로, 보급품 처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군사 영어란 특수한 것읕 제외하고는 대개 구문(構文) 이 간단한 법이다. 한 시간쯤 걸려 번역한 것을 다시 정서해서 갖다줬더니, 신문의 제목만 보듯 훑어내리고는 “됐군. 본부 연락장교로 일하게.” “육군 중위 마록삼은 모월 모일부로 사단본부 연락……” 감격한 마 중위가 부동자세를 취하며 신고조로 목청을 높이자 “웬 신고는 또 하나. 이따 사단장한테나 하면 되는 거야.”
“알았읍니다.”
이렇게 해서 마 중위의 장교 생활은 비교적 순조롭게 막이 오른 셈이었는데, 그놈의 여름밤 모기떼가 대거 습격하는 것 같은 야전 전화통의 앵앵거리는 소리만 없었더라면 제법 실력 좋은 통역으로서 이름을 떨치게 될 수가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핼로, 한국군 8사단 본부입니까?” 이건 귓속에 척 들어왔다. “예스, 마 중위입니다.” “아무개 대령이 당신네 참모장과 얘기하고 싶답니다.” 여기까지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면 그렇지 이따위 전화 한통 제대로 주고받지 못한대서야 대한민국 국군 전체의 명예에 관한 문제가 아니겠느냐 싶어지고, 벌떡 벌떡 뛰는 가슴을 달래면서 “오 예스. 잠깐만 기다리시오.” 고함을 내지르듯 대꾸해 놓고는 참모장을 불렀다. 뜻밖에 참모장은 그냥 네가 받으라는 눈치인 것이다. 야단났군. “참모장이 여기 오셨읍니다. 내가 통역을 맡을 테니 얘기를 계속하십시오.” 전화를 바꾼 상대는 입 속에 잔뜩 먹을 것을 넣은 채 우물거리고 있는 음성으로 괄괄괄괄 내쏟기 시작한다. 이마에 진땀이 흐르는 것은 둘째지고, 물에 빠진 자 지푸라기를 잡듯, 알아들을 수 있는 토막 단어를 어림으로 꿰맞추려고 필사적이었던 것이지만 도통 쇠귀에 경읽기였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한번 더 천천히 되풀이 해 주실 수 없겠읍니까?” 교과서에서 매운 최대급의 존대문을 읊조렸지만, “뭐야? 지옥으로 빠져라!” 그 유명한 옥지거리만은 또렷하게 울린다.
딱한 표정인 참모장이 수화기를 뺏고 “나 참모장이올씨다.” 이쯤 익숙한 말솜씨로 시작하여 간간이 맞장구를 치는 폼이 과연 알아들었는지 어쩐지는 분명치 않았지만, 무엇보다 속 시원스러워 보여 여간 부럽지 않았다.
“참모장께서 그렇게 잘하실 줄은 정말 몰랐읍니다.” 마 중위는 아첨조로 애매하게 웃었는데, 참모장도 히히 웃고는 “괜티않아 괜티않아, 그 새끼들 영어란 우리네 평안도 사투리 같은 거야. 못 알아듣는 게 보통이디.” 순간 눈물이 핑 도는 마 중위였다. 변비증이 생긴 것은 이때부티의 일이었다. 설마 이때의 긴장과 감격이 온통 그의 오장을 뒤범벅으로 만들어 놓은 셈은 아니었겠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밖엔 뒤가 마렵지가 않으니 먹은 것이 다 어떻게 되었는지 마중위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는데 그렇다고 얼굴빛이 노랗게 변하거나, 밥맛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항상 뱃속에 오물덩어리가 응고해 있는 인체 해부도를 코 앞에 걸고 다니는 기분으로 영 유쾌할 수가 없었다. 그런 우울한 표정이 어쩌면 학병 출신들이 곧잘 빠지는 심각한 고민, 가령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에 대한 회의라든가, 군대 조직 속에서 짓눌린 저항의 몸부림이라든가, 하는 증상을 뜻하는 것인지는 매우 의문이었다.
사춘기 이후에도 ‘노이로제’ 등속과는 인연이 먼 마 중위이긴 했지만, 계속 뒤가 마렵지 않은 생리(生理)에는 두 손을 들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군의관한테 찾아가 하소연을 했더니 “공포심 때문이로군.” 모욕적인 진단을 내리고는 하얀 알약 세 개를 주는 것이었다. 그걸 먹은 날 밤중에 마 중위는 아흡 차례나 변소를 출입했던 것이다. 여름날 목판 위 팔다 남은 엿가락처럼 뻗어 버린 그는 사병을 군의관한테 보내어 설사약을 달라고 했다. 잠자코 있기엔 부아가 끓어 ‘약주고 병주고, 병주고 약주지 마시기를 무방(務望) 하나이다’라고 적은 쪽지도 전했는데 ‘구와니찡’인가 하는 알약과 함께 회담한 글귀란 ‘수술을 못 받아 죽어가는 병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오?’
물론 마중위도 잘 알고 있다. 사단본부에서 최전방까지 이십 리 남짓, 그만해도 주음과는 어지간한 거리지만, 하루에도 수십 명씩 의무대대 막사로 들것에 실려 오는 중상자들을 노상 목격하고 있다. 그지 타인의 불행으로 여길 만큼 뻔뻔스러운 그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한 사람의 아픈 것까지 덩달아 더 아파도 상관없다는 식의 감정은 이지에 맞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마중위는 이 문제를 가지고 군의관과 논쟁을 벌일 기회를 노렸지만 전국(戰局)에 일대 변동이 생기는 바람에 그럴 여유가 없어졌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으로 나간 뒤에는 하루에 삼사십 킬로씩 북상했다. 인민군 포로들이 주체할 수 없이 불어났다. 미 해병 사단에서 포로 심문관을 파견해 달라는 요청이 왔는데 마 중위가 적임자로 뽑혔음은 당연한 노릇이었지만 명령을 받은 날부터 그놈의 변비증이 도진 것도 인력(人力)으로는 못 막을 일이었다. 말이 안 통한다면, ‘리포트’를 정확하게 작성해야겠거니 하여 평소 과히 좋아하지 않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미군부대 영내로 들어 갔던 것이다.
첫번째 걸린 놈은 머리통이 유난히 단단하게 생긴 스물 댓 가량의 하사관이었는데, 껍데기만 빨간 사과가 아닌 진짜 토마토인 모양으로, “날 죽여라 죽여.” 하며 악을 썼다. 이런 독종을 설득해서 쓸 반한 정보를 캐내자니 앞길이 캄캄 절벽 같았다. 보통 방법으론 어림도 없을 것이라 단정하고 곰곰 생각 끝에 “네가 미군한테 잡히긴 했지만, 그 사람네들은 너하고 싸우러 온 것 아니야. 우리도 마찬가지, 너하고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야. 공산주의란 귀신하고 싸우고 있는 거야. 네가 죽긴 왜 죽어. 쓸데없는 고집 피우지 말고 아는 대로 나한테 말하라구.” 우정이 넘치는 정감으로 타일렀던 것이다. “공산주의가 귀신이라구? 헷. 미 제국주의는 우리 조선인민의 적이요.” 콧방귀를 뀌며 마 중위를 가련하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글쎄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래두. 하여간 네가 입을 열지 않으면 십중필구 총살을 당하고 말 거야.” 마치 어릴적 친구를 태하는 말투였는데, “당장 총살하라고 일러 바쳐라!” 표독스럽게 내지르는 것이었다. “이 밥통아, 그렇게 말해도 못 알아듣겠니 ? 임마.” 마 중위는 놈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곁에 섰던 미군 소령은 놈이 아닌 마 중위에게 “짐승의 자식!” 하며 뜯어말리고 나서 이 포로도 너희와 동족인데 왜 그렇게 비인도적으로 다루느냐고 호통을 지는 것이다. 자신의 심정을 미국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혀가 짧은 마 중위였지만 설사 우리말처럼 유창하게 지껄일 수 있다손 지더라도, 그 당장은 유구무언이었을 것이다.
결국 첫번째 놈은 다른 심문관에게 넘겼는데 다음 차례에서 정통으로 걸리고 말았다. 이 번엔 늙수구레한 인민군 대위였다. 억지 웃음을 비굴하게 지으며 한술 더 뜨다시피 술술 불어 놓는 것이었다. 창자가 뒤틀린 마 중위는 참다못해 발길질을 시작했다. “개자식! 이놈아 너도 조선사람이면 좀 체면을 차려라. 코쟁이 앞에서 챵피하지 않아, 엉! 이 쓸개빠진 놈아.”
이때도 역시 미군장교가 대들어 말렸는데, 비인도적이라는 설교 대신 포로를 심문할 자격이 없다는 한마디와 함께 원대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성격만 포악하고 이유 없이 포로를 학대한다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그러저러한 소문은 그가 돌아오기 전에 이미 사단 전체에 다소 유리하게 퍼져있었다. 라고 하는 것은, 어찌 된 영문인지 미군 소령을 직사하게 패주어 수지 맞는 자리를 쫓겨났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얼마간의 윤색(潤色)이 불가피했다.
“아 그놈의 자식이 순한 체하면서 슬슬 역정보를 흘린단 말입니다. 그래 화가나서 몇 번 따귀를 갈겼더니 스미슨가 하는 소령이 비신사적 행동이라는 겁니다. 이 소리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읍니까. 한 대 먹였는데 거참 싱겁게 나가떨어지더군요.” 포로를 심문할 때 느낀 복잡하고도 격한 심정을 남에게 이해시킬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긴 했지만 제법 으쓱대고 싶은 허풍끼도 없지 않았고 또 정말 자신이 미군소령을 때려 눕혔던 것 같은 착각이 오락가락했으니 묘한 일이었다.
“군법회의에 안 걸린 게 다행이군.” 인사참모도 과히 나쁜 기분은 아닌 눈치였다.
“안 되겠어, 해병대 말구 딴데 가서 양키들하고 좀 지내보도록 하지. 이 참엔 얌전히 있어야 돼.” 영어 회화 미숙한 것이 말썽의 씨가 될 수도 있는 만큼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좀더 공부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마 중위는 아뭇소리 못하고 그 자리에서 헌 내복과 콘사이스가 든 곤포를 도로 들쳐메는 것이었다. “어디 가나?” “양키 부대로 가겠읍니다.” “아아니 이런 사람 봤나. 갈 곳도. 결정 안 됐는데 어딜 가겠다논 건가?” “참 그렇군요.”
“며칠 기다려 봐.” “이럴 바엔 차라리 보병으로 전과시켜 주십시오.” 마 중위의 볼메인 소리가 하도 커서 베니어로 칸을 막은 옆방의 참모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는 “인재(人材)야 인재.” 하는 것이었다.
마 중위의 파견 근무건은 38선을 넘어 평양 남방에 진격했을 즈음에 인접부대인 미7사단으로 낙착되었다. 그래서 마 중위는 사단장부관의 지프차 뒷면에 앉아 상기 초연(硝煙)이 가시지 않은 평양 시내로 들어갔다. 살 만한 물건이라곤 눈에 띄지 않았지만, 특히 술값이 터무니없이 싼 데는 놀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교환율을 따지지 않고 환화(園貨)가 그대로 통용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몇십 배의 값어치로 평가가 절상된 꼴이었다.
덕택에 마 중위는 위스키잔이나 얻어마신 신세를 갚는다고 하룻밤 미군 장교들을 요리집으로 초대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풀 수가 있었다.
어느새 서울 청진동 골목 못지않게 더덕더덕 칠한 작부들이 득실거리고 있으니 희한한 노릇이었다.
“원래 평양 기생은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네. 그러므로,” 어찌구 마구 지껄여대는 서슬이란 평소 더듬거리던 헛바닥과는 딴판인 청산유수격이었다. 취하면 줄줄 나오는 버릇이 연제부터 생겼는지 자신도 잘 모르겠으나 그렇다 해서 근무 시간 중에 계속 퍼마실 수도 없다는 것이 지명적인 약점이라고 할 만했다.
코쟁이들에게 생색도 내고, 오랜만에 찌프득한 몸도 푼 다음날 아침, 한결 경쾌한 기분으로 막 식당을 들어갈 참인데, 사단장의 호출이라는 긴급전령이었다. 뛰어가 보니 지리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태원 위수 사령관(衛戍司令官)이 한방에 있지 않은가. 거리를 순시하논 길에 들렀다는 것이어서, 즉석 통역을 맡으라는 것이다.
“나두 좀 하긴 하지만 체면을 세워야 하니까.”
김 준장은 합동순찰에 관한 얘기부티 시작했다. 대단지 않은 내용인데, 머리속의 작문 기계가 고장난 셈인지 “에에, 김 장군이 말하기를……” 당최 되지를 않는다. 간신히 문장을 만들긴 했지만 사단장이 자꾸만 되묻는다. 이번엔 사단장의 말을 선뜻 옮기지 못해 야단이 난 것이다.
“네가 무슨 통역장교야! ” 울화통이 터진 김 준장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기합이었다. “아임쏘오리.” 씩씩거리며 한마디 해 놓고는 “너 같은 놈은 헌병대로나 가!” 아마 사단장이 없었더라면, 지휘봉으로 냅다 후려쳤을 것이다. “무슨 일이오?” 사단장이 불쾌한 낯으로 묻자 마 중위는 부동자세를 취하면서 “김 장군이 나보고 헌병대로 가라고 말합니다.” 되려 착 가라앉아서 답변했던 것이다. 그러자 김 준장이 와핫핫핫! 항우(項羽)처럼 호탕하게 웃어제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사단장과 악수를 청하면서 “하여간에 고맙소이다. 우리 서로 잘 해봅시다.”
우리 말로 하니까, 저편에서도 “오 예스.”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문밖으로 손님을 전송하는 것이었다.
별끼리는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모양인가 싶어진 마 중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김 준장이 차 타는 데까지 꽁무늬를 쫓아갔다. 아까와는 정반대로 부드럽게, 그러나 놀리듯이 “너 어느 대학이냐? 양키를 팼다는 놈이 너로구나. 통역으론 고통스럽겠다. 한번 헌병대로 가서 실력발휘 좀 해봐.”
설마 했었는데 사흘 후에 발령이 내린 것이다. 빌어먹을! 계제에 잘 됐다 싶
은 생각과 분한 마음이 뒤범벅돼서 막사 뒤 공터에 나가 벽에다 대고 권총을 난사했다. 마 중위의 소속은 제8사단인만큼 위수사령관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짐작컨대 지리산 호랑이가, 마 중위를 달라고 억지를 썼을 것 이고, 사단측에서도 마지못해 시늉만은 냈을 것이다.
경위가 어찌됐건간에 군인은 명령에 따라야 한다. 김 준장에게 신고를 하자, “내 인사 방침은 첫째가 적재적소(通材通所) 주의야.” 하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반년만 미군하고 지내면 자신있읍니다.” 마 중위는 이렇게 불만을 토했다. “자아식, 반년을 어떻게 기다려, 잔말 말고 어서 가봐!” 그러면서 마 중위의 어깨를 떠밀었다. 호랑이로서는 친밀감의 표시인 모양이었다. “어디로 갑니까? ” “글쎄 네가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데니까 안심하라우.”
인사처장을 통해 내려온 명령은 평양서 서남쪽으로 이십 킬로쯤 떨어진 포로 임시 수용소의 소장자리였다. 이참엔 지프차를 내주었다.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어안이 벙벙하다. 나지막한 야산 밑에, 일제시 ‘마루보시’ 창고로 보이는 낡은 건물이 세 채, 시멘트담 위로 철조망을 처놓긴 했으나, 전쟁영화에서 흔히 보는 포로수용소와는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어, 사방 네 모퉁이에 감시대도 없고, 물론 조명등도 없다.
전임자는 사무 인계를 안 한 채 전방으로 날아버렸고, 바늘로 찔러도 피한 빙울 안 나올 상싶은 삼십 안팎의 일등상사가 관상장이 눈으로 신임 소장을 맞았다. “총인원이 몇 명인가?” “포로 맡씀이십니까? 한 삼백 명 됩니다.” “뭐야? 한 삼백 명이라니, 정확한 인원이 몇 명이냐 말이다.” “하도 들락날락이 심해서…… 오늘 현재 삼백 명으로 알고 있읍니다.” 이런 경우란 대체로 능구렁이 하사관이 신참장교를 떠보는 수작인 것이다. “자알들 논다. 내일 아침 점호때 확실한 인원을 보고하라구. 헌데 부대원은 몇 명이냐?” “이십오 명입니다.” 마 중위의 실망하논는 눈치를 놓칠 리가 없다. “하지만 기관총이 석 대가 있으니까요.”
“포로 쏴죽이라고 기관총 준 거 아니야. 지금부터 순시할 테니 앞장서라구.”
자기의 태도가 어쩐지 호랑이 닮아가는 것 같아 실소(失笑)하는 마 중위였다. 무슨 소리야, 지휘관이 됐으면 자기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야지. 해서 앞가슴을 퍼고 천천히 걸었다. 창고 문을 열어 놓자, 후덥지근한 온기가 고린내와 함께 화끈한다. 바닥에 깔린 새까만 윤곽은 가축 아닌 사람들이었는데, 차츰 어둠에 익숙해지자, 무수한 안광(眼光) 이 이편을 쏘고 있다.
괴이한 긴박감에 압도된 마 중위는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느닷없이 “형님!” 하는 고함이 날아왔다.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의 임자가 나 아무개예요, 아무개, 했을 때, “오!” 마 중위는 덥석 손을 잡았다. 그뿐인가. 잇달아 “록삼이, 나야 나.” 한 녀석은 중학교 후배였고 또 하나는 학교는 다르지만, 야 자 하는 사이였다. 둘 다 의용군으로 끌려나왔다가 이꼴이 됐다는 것이었다. “이 밥통들아, 빨갱이도 못 되는 자식들이 의용군엔 왜 끌려갔어!” 마 중위의 호통이었는데, 음성의 부자연스러움이야 덮어두더라도,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인 것이다.
진짜 빨갱이가 아니니까 의용군에 끌려갔던 게 아니냐 말이다. 더구나 그들이 빨갱이인지 아닌지는 마 중위가 판단할 일이 못 되는 데도. 말이다. 허지만 형님, 동생, 이 어쩌구 하자, 뜨거운 정이 확 달라붙으면서도 도통 잘못 말려든 친구들이란 생각에 꼼짝없이 사로잡혔던 것이다.
꼭같은 일이 두째번 창고에서 세 명, 모두 다섯이 나타났다. 그중 하나는 형님 소리 한번 들어 보지 못한 놈이었지만, 수십 년 만에 상봉하는 친동생처럼 절실했다. 세째번 창고문 앞에서 이 상사가 실쭉 웃고 말했다. “여긴 여자들입니다.” “머 여자? 왜 그걸 이제 말하는 건가?” “포로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건 마 중위의 판정패였다. 문이 열리자 역시 냄새부티 달랐다. 무어라고 가려낼 수는 없지만 흉악하게 동물적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남자들은 적의에 찬 눈초리로 도사리고 있었는데 어렵소, 이번엔 우루루 몰려들었다. 인민군 여군복, 미군 작업복 같은 것, 검은 지마에 흰 저고리 등등 형형색색의 누더기 차림이었다. 눈에 번쩍 띈 것은 헤벌어진 앞가슴에 반쯤 가린 괭괭한 젖통이다. 미친년처럼 헝클어진 머리로 한쪽 눈을 덮었다. 나머지 한쪽은 채이고 채이면서도 끝내 남자를 단념 못하는 바로 그 눈 같다. 아니, 당장에 어떻게 해달라는 애원이다. 점점 숨이 막혀온다. 마 중위 편이 차라리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가련하다. “장교님, 미남이셔.” 사방에저 킬킬댄다. 한 년은 야전잠바 어깨의 밥풀딱지를 슬쩍 만져본다. 상체를 비비틀며 “장교님은 학도병 같으신데 어느 대학이에요?” “이년들아, 닥치지 못해!” 빽 내지 내지른 것은 아까부터 심술을 참아 온 상사였다. “놔뒤라. 놔둬.” 마 중위는 낯을 붉히며 말했다. 화가 난 때문이 아니고, 좀 쑥스러웠던 것이다. “그래 너희들도 학생이냐?” 그러자 무슨 대학 무슨 여자대학, 무슨 과(科) 몇 학년까지 곁들인다. 대부분이 간호원으로 징발됐다는 것이다. 서울선 까불고, 건방지고, 새침하고, 남자 대학생을 흉만 보고 다니던 계집애들이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도발적으로 암내를 물씬거리고 있으니 그동안 모조리 당할 대로 당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자란 본시가 그럴 수가 있는 까닭인지, 여자 경험이 빈약한 마 중위의 두뇌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야 너 이리 나와!” 적당히 골라잡아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는 것이고, 또 아랫놈이 몰래 상부에 밀고한다손 치더라도 설마 군법회의감까지야 되랴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기란 한강읕 가로지른 용기와는 별반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지러나 말 같은 계집애들을 축사 속에 가둬놓고 푹푹 썩히고 있는 것이 몹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 중위의 싱숭생숭한 속을 횐히 들여다보고 있는지 이 상사란 놈이, 제가 알아서 주선해 줄 용의가 있다는 눈치를 비치기도 했던 것이다.
사흘 동안, 수용 인원에 큰 변동이 없었다. 지녁 때 평양까지 보급품을 타러 갔던 트럭이 돌아오고, 오랜만에 소주 배급이 있었다. 마 중위는 소장실에서 혼자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변비증에는 소주가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상사의 벌건 낯이 같지 않은 아양을 떨며 “소장님, 지 오늘 외박 좀 시켜 주십시오.” “어디 존 데 있는 모양이군.” 마 중위도 빙그레 웃었다. “저희들이야 머 별수 있겠읍니까. 나가서 기분 좀 내자논 거죠.” “그래 그래 재미 많이 봐라.” 했더니 이 상사는 차렷자세를 취하고는 신병처럼 경례를 붙이는 것이었다.
마 중위는 시계를 보았다. 당번병을 불러 부식(副食)운빈용 자루를 대여섯 장을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뭣에 쓰시려구요?” “넌 몰라도 돼! 그리고 드리쿼터 운전병을 대기시켜라.” 마 중위의 눈에선 야릇한 광채가 흐르고 있었다. 초겨울의 냉한 야기(夜氣)가 가뜩이나 긴장된 그의 몸뚱이를 진저리치게 했다. “창고 열쇠를 가지고 날 따라와! ”
“근무중 이상 없읍니다.” 글자로 적자면 이렇게 되지만, 실제로는 “왁왁왁!”
산짐승이 짖어대는 것 같은 보초의 목소리였다. “수고한다. 문 열어라.” 쇠문이 열리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주위의 적막을 찢는다. 마 중위는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은 나오라. 아무개, 아무개.” 쪽지를 읽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머리속에 정확하게 들어 있던 이름임이 분명하다. “이놈들한테 자루를 뒤집어씌우고 묶어라.” 무엇 때문에 그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빈문하기엔 마 중위의 서슬이 너무도 등등했다.
두번째 창고에서는 세 명. 모두 다섯 명을 짐짝처럼 차에 실었다. 운전수 옆에 탄 마 중위는 “넌 따라올 것 없어. 이놈들은 빨갱이치고도 악질이야.” 여기서 목소리를 낮추어 “내 오늘 내 손으로 처치한다.” 대낮, 인민군의 기관총 사격 속을 뚫고 한강을 나왔으며, 미군 고급장교를 묵사발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지리산 호랑이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이젠 퍼질 대로 퍼져 있는 것 이다. 술 취한 김에 포로― 너댓 명을 자기 손으로 처치하겠다고 나설 법도 한 노릇이었다.
차는 북쪽을 향해서 이십 분쯤 달렸다. 네거리엔 검문소가 있다. 같은 헌병들이지만 소속은 다르다. “수고들 하네˚ 급한 볼일로 본부에 가는 길이야. 아, 저건 포로들한테서 압수한 물건이야.” 검문소를 통과한 차는 사잇길로 꺾여 다시 남쪽으로 시간 남짓 달려 어느 가파른 고갯 마루에서 멎었다˚ “내려서 한 줄로 서!” 기관단총을 겨누면서 마 중위가 명령했다. “차례차례 앞으로 가!” 억눌린 음성이 토막토박 말했다. 이놈들은 알겠지. 내가 왜 여기까지 끌고 나왔는가를 얄겠지, 밥통이 아니라면 알 수 있겠지. 그러면서도, 처치하러 간다고 했던 소리를 곧이듣고 있는지도 모를 것 같은 불안감이 가셔지지 않았다. “운전병, 밧줄을 풀어주고 자루를 벗겨라.” “괜찮으시겠읍니까?”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넌 차를 지키고 있어.” 그들은 묵묵히 비탈길을 내려갔다. 매운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괴괴한 달빛 속을 물줄기가 바위애 부서지고 있었다.
“난 이 이상 책임 못 진다. 재간껏 뛰라. 서울서 만나자.”
“형님!” “록삽이!” “듣기 싫다. 시간 없어. 뛰어. 배고파도 참아라.”
그들 그림자가 사라지자, 마 중위는 허공에 대고 탄창이 완전히 비기까지 기관단총을 갈겼다. 퍼뜩 세번째 창고 속의 여자들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갑자기 뒤가 마려워첬다. 마 중위는 허리띠를 풀고 엉덩이를 떨구었다.
부하들이 알고 있었으므로 취도새도 모르게는 아니었지만, 별탈은 없을거라고 스스로 낙관했던 마 중위였는데, 한 달쯤 지나 대동강이 얼었다는 소식을 전후로 해서 일이 시끄럽게 된 것이다.
본부에서 당장 올라오라는 호출이었다. 사령부 영문 앞을 들어서니까, 헌병 두 놈이 달려들어 수갑을 채웠다.
“이놈들이 환장을 했나, 누구한테 수갑이야!” “대장님의 명령입니다.” 그렇다면 별수 없는 노릇이다. 밀고한 놈은 역시 이 상사일까? 이렇게 의심한 것이야말로, 그런 어머어마한 짓을 지질러 놓고도, 도무지 죄를 진 기분이 못 되는 그의 나사빠진 머리통을 입증하는 셈이었다.
“포로를 고의로 도망시킨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귀관은 아나?” 하고 헌병대장이 말했다. “사형이겠지요.” “알긴 아누만. 왜 그랬어?” “그놈들은 빨갱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귀관이 어떻게 아나? 심사도 하기 전에 귀관이 무슨 권리가 있나?” “저는 압니다, 걔들은 빨갱이가 아닙니다.” “친구들이라며?” “……예.” “순순히 실토를 하니 다행이군. 곧 군법회의를 열 테니까. 변호사하고 잘 해보라구.”
“변호사는 필요없읍니다.” “여전하구나. 여전해.”
다음날, 검찰관에게 넘기기 위한 일건 서류가 작성되어 결재를 받으러 올라가자 지리산 호랑이는 “마 중위를 데려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호령했다. 직결 처분으로 악명을 떨친 호랑이기도 했다. “저어, 일단 재핀은 열긴 열어야지요.” “넌 눈치가 빨라서 못 써.” 영문도 모르는 헌병대장이 한 대 맞은 셈이다.
마 중위가 짐작보다 멀건 낯으로 들어서서 경례를 붙이자, “자아식!” 한마디
내뱉고는 입을 다문 호랑이였다. 넓은 마루 위를 지벅거리며 왔다갔다 하더니 “헌병대장!” “네.” “관둬라, 관둬. 이런 자식 죽여봐야 그렇고, 집어쳐! 재판이고 뭐고 귀찮아.” 그런 다음, 마 중위한테 바싹 다가서서 “자식, 그렇게 안 생겼는데 사고뭉치란 말이야.”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듯 한참 들여다보고 있더니, 문득 기발한 착상이라도 떠오른 듯 씩 웃고 말했다. “이 자식을 발가벗겨서 기합을 좀 넣어!” “네?” “대동강을 건느라고 하란 말이야.” “강물이 얼었읍니다.” “철교가 있잖아 철교가!” “네, 알겠읍니다.” “나도 입회한다. 지금 나가자.” 호랑이는 실실 소리 없이 웃으며 앞장을 섰다. 태관절 그런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호랑이의 돌대가리에서 어떻게 솟아나올 수 있었단 말인가.
며칠 전부터 통행이 허용된 철교 입구는 경비가 삼엄했다. 사령관의 출동이라, 경비병들은 제자리에 막대기처럼 얼어붙는다. “자 시작해.” 호랑이가 담배에 붙을 붙이고 말했다. 마 중위는 제 손으로 하나하나 벗었다. 보통 추위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마침내 ‘팬츠’ 하나가 됐다. 초소 앞에 늘어서 있던 헌병 몇 놈이 얼굴을 가리고 킬킬댔다. “웃지 말아, 이놈들아!” 고함을 지른 건 호랑이가 아니고 마 중위였다. “곧죽어도 큰소리 한번 치누만.” 호랑이의 촌평 (寸評). 두툼한 파카를 입은 사람들은 강바람이 살을 에는 것 같았지만 벌거숭이 마 중위에겐 좀 선선한 정도였을 것이다. 맨발이 철판을 밟자 이상스레 뜨거운 통증이, 두 다리를 마비시켰다.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뛰기 시작했다. 폭격으로 끊어진 간격을 널빤지로 땜질하고 있었다. 그 위를 지날 때, 탕탕탕, 북치는 소리가 났다. 호랑이가 허리를 잡으며 웃고 있었고, 다리 위 저만치서 민간인의 일단이 진풍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중엔 젊은 여자도 끼어 있었다. 빌어먹을! 남북의 양대걍(兩大江)을 벌거벗고 건너야 할 팔자라니! 마 중위의 뜀박질은 더욱 빨라졌다. 그런대로 다행스러운 것은, 다리목에 도착한 장면이 ‘테이프’를 끊는 단거리 선수처럼 보인 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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