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에즈 운하
수에즈 운하Suez Canal는 지중해와 홍해를 왕래하는 수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인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서쪽에 건설된 세계 최대의 운하로 지중해의 포트사이드 항구와 홍해의 수에즈 항구를 연결하고 있다. 이스마일리아가 두 곳 가운데 지점에 있다. 운하의 서쪽에는 저지대인 나일 강 삼각주가 있고, 동쪽에는 지대가 높고 지형이 험난한 불모지인 시나이 반도가 자리 잡고 있다. 수에즈 운하는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하지 않고 곧바로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되는 통로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869년 11월 17일에 개통되었다. 군함을 포함하여 세계 어떤 나라의 선박도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다. 이러한 운하는 전쟁 동안에도 자유로운 통행이 보장되며, 어떤 경우에도 폐쇄되지 않는다. 또한 운하의 양쪽 출입항으로부터 4.8㎞ 이내의 구역에서는 어떠한 적대 행위도 금지되어 있으며, 시설물 일체는 불가침 구역이다.
지중해보다 홍해의 수위가 7m 높다. 그래서 홍해에서 바닷물이 들어와 지중해로 나간다. 수에즈 운하에는 갑문이 없다. 바닷물이 양쪽 바다에서 운하 가운데의 이스말리아 그레이트 비터 호수로 자유로이 흘러 들어와서 호수를 통과하여 수에즈 만과 지중해를 잇는다. 이 운하를 건너 시나이 반도로 들어가는 연결 지점은 4곳의 나루터와 2개의 교량과 1개의 해저터널이 있다. 해저터널은 진입로를 포함하여 총 연장 4.5Km다. 지하터널만의 길이는 1.6Km다. 하루에 운하를 지나갈 수 있는 선박 수는 106척이다. 운하 길이는 195km, 수면의 너비는 365m, 평균수심 약 20m다. 전 세계 물동량의 14%가 이 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운하를 통과하는 속도는 시속 15km로 11~16시간 정도 걸린다. 느린 속도로 움직여 운하 양안이 배가 일으키는 파동으로 침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군함 15만 톤의 선박도 지나갈 수 있다. 선박이 바닥에서 물이 잠기는 수면까지 수직 길이가 20m까지 허용된다. 만적상태의 24만 톤 탱크도 통과할 수 있다. 수에즈 운하는 평탄한 지형 때문에 갑문이 없으며, 운하 양 끝 두 바다 사이의 해수면 차이도 미미하다. 운하에 세 척의 호송선이 순찰한다. 두 척은 남행이고 한 척은 북행이다. 첫 번째 남행 호송선은 매일 아침 시간에 운하로 진입해서 그레이트 비터 호수로 가는데, 여기서 길을 막지 않도록 통행 항로를 벗어나 정박하며 북행 호송선이 통과하길 기다린다. 북행 호송선은 인근 우회로에 정박한 두 번째 남행 호송선을 지나간다. 통과비용은 1척당 평균 1회에 1억~2억 원이다.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에서 1년에 60억 달러~40억 달러의 통행료 수입을 얻는다. 적어도 5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이다.
이집트는 이 운하를 만들기 위해 12년이 걸렸고, 프랑스의 차관에 의존해서 엄청난 빚을 지게 됐다. 그래서 영국이 1876년 이집트를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영국은 1914년에 이집트를 정식으로 식민지로 삼으려 했으나, 이집트인들의 막강한 저항에 밀렸다. 이집트는 1922년 왕국의 이름으로 독립하였다. 수에즈 운하를 제외하고는 모두 완전 독립을 한 것이다. 얼마 뒤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면서 완전히 반환되었다. 수에즈 운하는 프랑스와 영국이 60%, 이집트가 40% 투자하여 건설했다. 영국 돈까지 빌려다가 건설해서 영국 지분도 많아져 영국 권한이 컸다. 이집트에서 갚지 못하자 그 지불 대용으로 이집트의 유물을 많이 가져갔고, 현재 대영박물관에 보존하고 있다. 1952년 이집트 나세르 왕이 수에즈 운하의 권한을 찾았다. 그리고는 그해 7월 23일에 공화정을 선포했다. 현재 이집트 정부의 수에즈 운하 당국에서 관할한다.
운하는 기원전 2100년에 계획되었다. 지중해와 연결 공사를 시작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중단하였고 그 후 기원전 500년경 홍해와 대염 호수를 거쳐 나일강과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아랍의 상인들이 이집트의 농산물을 실어 가는데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백여 년 동안 사용 되다가 회교 내분으로 수로를 이용한 곡물 운반이 중단 되자 운하는 폐쇄 되었다. 1798년 나폴레옹도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공사를 시작했으나 중단되었다. 카이로 주재 프랑스 영사에 의해 1859년 공사가 재개 되어 후인 1869년 운하가 개통 되었다. 이집트의 국가 숙원사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당시 이집트는 오스만트루크의 식민지였다. 무하마드 알리는 운하의 필요성은 인정하였지만 이것을 이용한 터키 침공의 발판이 될 것 같아 거부했으나, 국제적 여론이 워낙 드세어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 기술진에 이 공사를 주게 된 것이다. 개통 후 운하의 역사는 프랑스, 영국, 이집트로 이어지는 지배권의 변화와 함께 제1, 2차 세계대전과 2차, 3차 그리고 4차 중동전쟁 때 오랜 기간 폐쇄되는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계속적인 운하 폭과 깊이 확장공사를 하였다.
수에즈시에 들어서서 두 군데에서 운하를 보았다. 첫 번째는 해변공원 옆에서 철조망 사이로 보았다. 운하를 지키는 총을 멘 군인이 다가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로 건너의 운하를 목마르게 보고 나오니 공원 근처에서 이곳 주민 남자가 고운 꽃 두 묶음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수에즈 운하만큼 넉넉한 시민의식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조금 이동하여 두 번째는 운하 가까이 바짝 다가가서 보았다. 그곳에서는 바로 눈앞에 운하의 바닷물이 있었다. 시민들이 나와 운하의 둑에 앉아있다. 파란 물이 한가득 처연하다. 어찌 보면 참 아픈 운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고통과 역경 속에서 탄생되었기에 인간의 사랑을 받고, 전 세계의 배들이 행복하게 홍해와 지중해를 오가고 있으니 바로 이것이 수에즈 운하의 위대한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대목이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