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이쁘게 화장하시고 환한 삼베 옷 입으시고 검둥 고무신 빌뱅이 언덕 댓돌 위에 놓아두고 예쁜 꽃버선 갈아 신고 선생님 훨훨 떠나시네요 1년만 벗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그 옆구리 평생의 오줌보 벗어 던지시고 처음으로 가벼운 몸이 되어 선생님 떠나시네요.
그래도 선생님 너무 하시네요 어찌 그리 황망히 가신답니까 아무리 다음 세상이 기다려진다해도 아무리 더 건강한 남자로 태어난다 해도 스물 다섯 남자로 스물 셋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 해도 그렇다고 그렇게 바삐 떠나십니까 무덤덤 일만 하시지만 너무도 가슴 아픈 정 신부님 출판사 차리면 글 써 주신다고 약속하신 우리 상학이 찾아오지 말라고 박절하게 말씀해도 우물쭈물 찾아들던 그 많은 친구들 생각지도 않고 그렇게 떠나십니까?
가난하여 베풀 수 있었던 당신의 삶 삶이 고단하여 맑을 수 있었던 당신의 삶 닮고 싶어서 찾아가고 배우고 싶어서 찾아 들었지만 살아 생전 잘 모시지 못한 채 선생님 떠나보내고 남은 우리 죄인이 되어 가슴을 칩니다 가족은 가족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당신의 고독과 고통에 힘되지 못한 죄밑으로 통곡을 하고 가슴을 칩니다.
그러나 선생님 이제 선생님 가시는 그 나라에는 그립고 그립던 어머니 계시겠지요 먼저가신 이오덕, 전우익 선생님 계시겠지요. 전쟁도 없고 병든 이도 없고 굶는 아이도 없겠지요 자동차 부릉부릉 타고 환경운동한다고 애타하던 그런 사람 없겠지요 가난한 자 외면하고 제 욕심만 차리는 나쁜 경영인 정치인 없겠지요 골프장 만들어 내 동네 더럽히는 그런 사람 없겠지요. 선생님 가시는 그 나라에는 평화와 사랑이 넘치겠지요 남쪽 아이 북쪽 아이 어울려 덩실 덩실 통일의 춤 추겠지요 아이들의 웃음과 노래가 꽃비 되어 내리겠지요 아! 선생님의 웃음 같은 착한 어른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겠지요
세상에 온 듯 그렇게 아무 것도 갖지 않고 강아지 똥처럼 온 몸을 녹여 우리들 가슴 속에 스며든 환한 5월, 눈이 부셔 우리는 웁니다 선생님 가시는 그 민들레 길이 눈이 부셔 우리는 마냥 웁니다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 편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