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별리고(愛別離苦)... 송이 관련 인연과 추억
송이는 옛날 부산에서 서울로 영구적 이사할때 첫동네였던
청계7-8가옆 지금은 왕십리 뉴타운이란 재개발로 흔적도 없는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살때 만난 아이로
나이 차는 무려 약 20살 정도다.
어린 아이들 좋아하다보니 살면서 무수한 아이들과
같이 놀고 어울리고 등등의 인연이 많은데 그것으로 인해
무슨 큰 사건으로 비화하여 자칫 경찰 신고까지 당할뻔한
경우는 송이가 처음이였고 지금까지도 유일하다.
다행이 송이네 집과 이모집이 옆집이라 할 정도로 가깝고
송이 외할머니와 이모가 잘 아는 사이라
신고까지 안가고 해결 가능했고
나아가 송이와 더 가까와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훗날 송이 외할머니, 나의 외할머니 및 나의 어머니가
서울의 친지 결혼식날 같이 한자리서 식사하는 장면을 찍어
송이엄마에게 여러장 전해 주기도 했고
같은 사진을 지금도 집에 보관중이다.
그때 송이를 왜 특별하게 보았냐면,
살면서 자식에 대한 욕심(?)이나
자식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 거의 없었지만
송이 만날때마다
"아 나도 저런 자식 있었으면....
저런 자식 얻을 수만 있으면 결혼도....." 하는 등의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였고
지금까지도 송이의 경우가 거의 유일하다.
내 생각에 송이가 날 가까이한건 나라는 존재보다
송이 입장에서는 어렸을때 부모이혼하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이렇게만 살다보니
아버지뻘 성인 남자에 대한 무슨 그런게 영향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보통의 경우에 일가친척도 아닌 남 사이에서
가까워지려면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데
이상하게 나와 송이는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몇번 보고 급격히 가까와졌다.
하지만 얼마후 송이네는 송이엄마의 미용실 가게는 그대로 두고
구로구 온수동으로 이사가게 됐다.
송이집 이삿날 송이는 학교 가고
송이엄마는 집에서 가까운 미용실로 일하러 가고
송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트럭 기사, 나...
이렇게 4명이서 이사했는데
난 손님이니 짐 싸 준것만 트럭에 실고
온수동 이사집까지 가서 이사짐 풀어 주고 귀가했다.
귀가할때 송이가 다닐 것으로 생각되는
온수초등학교를 일부러 가로 질러 왔다.
그날인가 그 다음날 송이 생각에
이사 간 송이네 빈집에 가 보니
이런저런 쓸만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이 제법 되어 모두 모아
몇박스를 송이엄마 미용실 가서 전해 주었는데,
송이엄마는 그중에 커다란 옛 바둑판하고 꽃병 갖은걸
내게 주었다.
그런데 그때 송이엄마에게 주지 않는 물건이 있었는데
그동안의 경험상 당장에는 쓸모없지만 훗날을 생각해서
추억할만한 물건을 따로 보관하는 사람들은 드문지라
송이집안 어른들이 소홀하거나 버리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과
송이를 추억하고자 하는 내 사심
그리고 훗날 송이가 좀 더 커서 어린시절 돌아봐서 그리워할
정도가 됐을때 보는게 좋다는 판단이 같이 작용해
송이가 인근 동명초등학교 다닐때 쓴 3권(일기장1권+탐구생활2권)은
주지 않고 지금까지 보관중이다.
또한 송이엄마가 미용업 하다보니 그 업계 통하면
어렵지 않게 송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 및
그때 줘도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훗날 송이엄마가 미용실 접고 떠났을때
왕십리 어느 미용기구점에서 우연히 송이엄마 만난 적도 있었다.
아무튼 송이네 이사가고 1달후쯤 여름방학 맞아
송이가 옛동네 찾아왔는데
아직 그 동네에서 엄마가 미용실 하고 있었고
친한 친구도 있어 놀러 온 것이였다.
오래전 일이라 틀릴 수도 있지만 지금 기억으로는
송이가 내 사는 옥탑방까지 친구와 찾아왔고,
이후 미용실로 가서 송이엄마의 허락받고
송이, 송이친구, 나 이렇게 셋이서
노래방도 가고 버커킹 같은 햄버거집 가는 등
즐거운 시간 보냈다.
이후 동네에 있는 송이엄마 미용실도 완전히 문 닫아 떠나고
이모와 가까웠던 송이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나니
송이와 연락할 수 있는 길이 끊어지고 말았다.
* 이 <넋두리 & 일기장>게시판 맨 처음의 1번에서 3번까지
송이와 관련된 옛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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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에게 보내는 편지
송아
아저씨는 너가 초등학교 4학년때 개명한 **이란 두글자 이름보다
너의 첫 이름인 "송"이란 외자가 더...
내가 부산에서 서울 와 살던 초기,
같은 동네 살기에 처음 만났고
이상하게 금방 친해졌고 잘 놀기도 했었지..
그로인해 이런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는데
한번은 내가 일 마치고 귀가해 씻으려니
너의 엄마가 내 사는 옥탑방까지 찾아와
송이 어딨냐?며 집안 구석구석 뒤집고 간 일도 있었단다.
이후에 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로부터
모르는 사람 만나지 말며 등등의 훈계와
많이 혼났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충분히 이해하며 입장 바꿔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또한 나 때문에 너가 그런 일 겪을거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했고 마음 아팠고 괴롭기까지 했다.
후에 너의 외할머니와 아저씨의 이모가 잘 아는 사이라
오해같은게 풀어져 너의집 이사때도 가고
이사후 너도 여름방학때 날 찾아와 엄마 허락받고
친구랑 셋이서 노래방도 가는 등 즐거운 시간 보내다 헤어졌는데
그날이 너와의 마지막 될 줄이야....
송아
그렇게 더는 못보고 끝났을때
아저씨는 참 많은걸 생각하고 느끼고
너 생각도 많이 했단다.
너 생각날때마다
너의 모습이 담긴 많은 사진들과 너가 내게 준 물건들 봄과
너가 성야노래방에서 불렀던 테이프도 수십번은 들으며
눈물도 많이 흘렸단다.
이후에는 거의 듣지 않았는데
혹시나 너무 많이 들어 테이프에 문제 생기면 어떻하나? 하는
우려 때문이란다.
송아
그날 이후 우리가 헤어진지 벌써 어느덧 25년이란 세월이...
세월 흘러 너도 이제는 30중반 되었을 나이.
결혼했다면 자식도 있겠지.
너를 만나면 꼭 전해주고 싶은 물건있단다.
그건 위에 쓴거처럼
옛날 너가 하왕십리동 살때 이사후 너의 엄마께 전해주지 않은
너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때 3권과,
너의 친구 **이하고 성야노래방에서
노래부를때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다.
참고로 카세트 테이프 체로 계속 듣기 보다는
다른 파일로 전환해 듣기를 권한다.
그래야 테이프도 보존하고 계속 반복해 들어도 문제 없으니까...
문제는 아저씨가 잘 보관한다고 했지만은
오랜세월 흐르다보니 테이프가 원형을 유지했을지는 미지수다.
송아
할 말 많지만 어찌 다 할 수 있으랴
이 고해(苦海)의 살기 힘들고 험난한 세상
부디 언제까지나 건강하기를
부디 언제까지나 안녕하기를
부디 언제까지나 행복하기를
빌고 또 빈다.
송이, 송이 친구, 나 이렇게 세명이서 노래갔을때 녹음한 테이프
송이엄마가 송이집 이사후 오래된 바둑판과 같이 준
꽃병 같은것으로 이런저런 필기구 꽂이로 사용중
송이네집 이사 가기 전 송이와 놀때 송이 모습
송이집 이사후 송이가 여름방학 맞아 찾아왔을때
노래방에 가서 열창하는 모습으로 많은 사진있으나 몇장만
노래방 갈때 전후로 포즈 취해주는 송이
노래방도 가고 햄버거집도 가고 헤어질때 송이가 내게 준 기념품들
훗날 송이 사진 및 내게 준거 모아 방안에서 촬영
사진날짜는 1996년 12월 6일
송이 만나면 줄 송이의 옛 물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