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마피아의 전형을 보여준 전설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
마피아 하면 먼저 '알 카포네'가 떠오른다. '마피아=알 카포네'라고나 할까. 영화 <대부>의 실제모델이기도 한 그는 '타고난' 조폭이었다. 10대 초반에 '파이브 포인트 갱단'에 들어가 범죄를 저질렀고, 젊은 시절에는 매춘굴에서도 일했다. 매춘굴에서 벌어진 싸움 때문에 왼쪽 뺨에 세줄의 길고 깊은 상처가 남았는데 그 때문에 그는 스카페이스(Scarface)로 더 알려졌다.
그후 시카고의 이탈리아계 갱단의 두목이 되어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돈을 긁어 모았다. 하지만 그의 공식명함은 마피아 두목이 아니라 '중고가구 매매상'이었다. 1920년 금주법이 발효되자 그는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밀주 도박 매춘 등을 '사업'으로 벌였고, 벌어들인 돈(1927년에만 1억 달러-현재의 달러가치로는 약 60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으로 시카고의 상류사회, 경찰까지도 모두 매수해 밤의 황제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알 카포네는 힙 플라스크를 최초로 고안했다.
하지만 알 카포네의 말년은 비참했다. 탈세 혐의로 1931년 애틀란타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곧 매독이 악화되고 뇌 손상이 심해져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신경매독은 치매를 일으킨다) 악행+방탕의 종말이 무엇인지 본보기로 보여주듯 제대로 사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피폐해진 심신을 끌고 다니다 1947년 플로리다에서 눈을 감았다. 한때 1000명의 조직원을 이끌며 '끝장'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그도 매독과 싸워 이기지는 못했다.
항생제이자 매독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페니실린이 상용화된 것이 1940년 이후니 그는 참 운이 없었던 셈이다. 영국의 세균학제 플래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했던 것은 1928년이었지만 분리 정제가 힘들어 더 이상 연구를 진행시키지 못하다, 12년이 지나서야 임상 실험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 자신의 전 재산을 페니실린 정제 기술 개발에 투자했을 것이고 기막히게 돈 냄새를 잘 맡았던 그의 탁월한 사업수완이라면 화이자나 노바티스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를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제약회사를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냥 엉뚱한 상상 한 번 해봤다.
알 카포네의 사업수완이 잘 드러나는 물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힙 플라스크'. 술에 관심이 없는, 주당이라도 아웃도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관심있는 물건이 아니겠지만 자연에서 한잔 술의 여유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거나 구입 예정 목록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힙 플라스크는 말 그대로 뒷주머니에 쏙 넣어다닐 수 있는 술병을 말한다. 알 카포네는 엉덩이 곡선에 맞춰 몸통이 휘어진 '얍실한' 이 술병을 1920년대 금주법 시대에 몰래 주조한 위스키를 팔기 위해 만들었다. 술병을 들고 다니는 것조차 불법인 시대를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매출을 극대화하겠다는 마피아 두목의 사업 수완이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서 알 카포네의 사업철학 한마디 들어보자.
"친절한 말 한마디에 총을 곁들이면 좀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1년 매출만 1억불... 기업형 마피아의 원조 '알 카포네'
미샤 글레니의 <맥마피아>
"그래 인터넷으로 조직원을 모은다더라 세상은 눈깔 튀어나오게 팍팍 돌아가는데 넌 언제까지 재떨이 타령만 할거야~ 너 인터넷이 뭔줄이나 알어?"
영화 <넘버3>의 조폭 두목으로 나왔던 강도식(안석환 분)이 무조건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재철(박상면 분)에게 던진 말이다. 맞는 말이다. 조직을 꾸리려면 주먹만 휘두르는 폭력배만 있어선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뭔가 돈이 될만한 사업을 벌여야 하고 '합법'의 껍데기를 뒤집어 쓸 수 있는 것이면 더욱 좋다.
요즘 마피아들은 인터넷으로 조직원을 모으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국경같은건 아예 무시하고 무기 밀매, 인신 매매, 돈 세탁, 마약 밀매, 불법 노동자 파견, 사이버 범죄 등을 '업'으로 삼는다. 계속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전화 피싱 사기도 배후에는 중국 마피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놀면서 조직을 프랜차이즈화 하고 있는 통 큰 마피아 조직들을 BBC 특파원이었던 미샤 글레니가 직접 취재해 쓴 책이 <맥마피아(McMAFIA)>. 이 책을 보면 최근 국제 마피아들의 최신 트렌드를 한눈에 꿰뚷을 수 있다.
<맥마피아>는 국경․종교․인종을 뛰어넘어 '체인화'된 마피아들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러시아, 동유럽, 발칸, 유고,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두바이, 인도, 남아프리카, 일본, 중국 등 수많은 나라의 마피아들과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취재하고 인터뷰했다. <가디언>과 BBC에서 바탕을 다진 저자의 끈질긴 집중력과 취재능력이 정말 부럽다.
마피아들은 폭력을 사업을 유지시키는데 '필요악'으로 생각한다. 신속하고 합법적으로 최소한의 '물리력'만 동원하는 것이 원칙이다. 돈이 있으면 자연스레 문제는 해결되니 사업의 판을 키우고 뒷배를 봐줄만한 사람들을 매수하는 편이 일이 훨씬 수월하다. "과도한 폭력은 사업 수행에도 좋지 않다. 그건 경찰의 추적을 유발하고, 일반 대중과 미디어로부터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상대방의 보복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맥 마피아> 482쪽)에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가장 낮은 수로 본다.
아예 마피아가 도시전체의 질서를 확립하고 폭력을 막는 역할을 하고 정부와 시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면서 지하경제를 주물렀던 마피아 두목도 있다. 소련이 붕괴된 후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 오데사는 마피아 두목 카라바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인신매매와 조직들 사이의 '상업적' 분쟁을 해결해주고 그는 돈을 벌었다. 그가 도시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최소한 폭력과 마약의 확산을 막았기 때문이다. 대신 도시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익을 얻는 것에는 철저했다.
"그는 갱스터로서 폭력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를 아브토리테(대부)라고 생각했어요. 그와 함게 일하지 않았던 나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원칙 때문에 오데사의 폭력 수준은 다른 우크라이나 도시 혹은 러시아 도시들보다 낮았습니다."-<맥 마피아> 148쪽
하지만 카라바스는 새로운 사업 영역 앞에서 무력했다. 오데사를 거쳐가는 러시아와 주변국의 '석유'를 놓고 방관하는 사이 러시아 세력을 등에 업은 새로운 범죄 조직이 카라바스를 제거하고 오데사의 차지한다. 사업 영역을 확대하지 못하고 지키는 것만 능숙했던 마피아의 최후는 결국 '망'하는 것이다.
폭력은 최후의 수단... 사업 확장과 프랜차이즈가 조직관리 핵심
금융감독원이 만든 보이스피싱 피해방지 포스터
마피아의 사업 영역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다양하다. 법 없이도 살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마피아의 검은 손이 영향이 미치진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스 피싱(Voice Pishing, 전화 금융 사기)에 사기당해 자신의 통장에서 돈이 인출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6년부터 2008년가지 보이스 피싱 발생건수는 1만315건이나 되고, 그 피해액도 1017억원이다. 특히 올해 8월까지 보이스 피싱 발생 건수는 4870건, 피해액도 478억원으로 이미 작년 피해금액 433억원을 넘었다. 갈수록 피해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일반 시민들에겐 피해액이지만 보이스 피싱을 사업 수단으로 삼고 있는 마피아에겐 '매출액'이다.
초기 보이스 피싱은 관공서를 사칭하거나 단순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였지만 최근에는 국내 유명사이트의 개인 정보 해킹된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사기를 친다. 우체국 직원을 사칭하여 돈을 뜯어내거나 통신사 직원, 카드사 직원을 사칭 하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 검사라고 사기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을 상대로 한 보이스 피싱의 배후에는 중국과 대만의 마피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국내에서 검거된 보이스 피싱관련 용의자 가운데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으로는 중국과 대만인이 가장 많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2006년 이후 전화금융사기로 검거된 인원을 국적별로 살펴보면,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이 4,377명으로 전체 6,502명중 4,377명으로 67%이며 다음으로는 중국 894명, 대만 354명으로 타국적을 가진 사람중 이들 두 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이 98%를 차지했다." - 2008년 국정감사 결과
보이스 피싱이나 사이버범죄는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paymentprocessing.cc)
보이스 피싱 뿐 아니라 사이버 범죄는 마피아들의 새로운 사업 영역이다. 인터넷 사용이 늘어나면서 사이버 범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고 시민 개개인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 이것 뿐이랴 국가의 세금을 노리는(예를 들면 높은 세금이 부과되는 물품을 수입해 낮은 품목으로 신고하고 그 차액을 남기는) 범죄는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진 유럽에서 비일비재하게 늘어나고 있다. EU는 이런 '회전목마 사기'라고 불리는 마피아들의 범죄 때문에 연간 1000억 달러의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 금융 시장의 자유화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금융 범죄에 마피아가 개입하는 일은 갈수록 늘고 있다. 마피아가 돈을 벌면 벌수록 더 조직화 프랜차이즈화되어 전세계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알게 모르게 일반 시민들도 주머니의 돈을 털리고 있는 것이다. <맥마피아>의 저자 미샤 글레니는 마피아와 범죄조직이 주무르는 지하 경제의 규모가 전세계 GDP의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주머니 속 1000원 중 200원은 맥마피아가 주무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샤 글레니가 제시하는 맥마피아를 단속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방 정부들이 국제 범죄 조직의 현금 세탁을 어렵게 만들고 현금의 흐름을 차단해 돈줄을 죄는 것이다. 하지만 공세가 강할수록 막는 이도 처절해지는 법이니 맥마피아가 그대로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국가간의 경계가 무너질수록 맥마피아는 새로운 돈벌이를 위해 합법을 가장한 온갖 불법 행위를 저지를 것은 뻔한 일이다. 맥마피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그저 자기 주머니를 단단히 지키는 수밖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2008. 12.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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