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건은 정작 닉슨이 다시 백악관의 주인이 되던 전후부터 심각해졌다. <워싱턴포스트> 말고도 <뉴욕타임스>, <로스앤젤리스타임스> 등이 경쟁적으로 워터게이트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 중에는 법무장관 존 미첼이 민주당 관련 정보 수집을 총지휘했다는 것, 도널드 새그레티라는 변호사가 전국을 다니며 닉슨 재선을 위해 불법도청을 비롯한 정치공작을 벌여왔으며 워터게이트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사법부 쪽에서도 닉슨을 몰아붙였다. 다섯 명의 침입자들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존 시리카 판사는 관련 사실을 털어놓는 대가로 그들의 형량을 줄여 주는 거래를 했고, 그에 따라 충격적인 증언이 잇달았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닉슨은 애초의 “백악관은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뒤집고 “대통령은 까맣게 몰랐으며, 아랫사람들이 제 멋대로 저지른 일”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보좌관 밥 홀드먼과 존 엘리히먼을 해직시키며 사과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사태는 악화일로를 치달았고, 닉슨은 취임 첫해인 1973년을 온통 워터게이트 문제로 소비해 버렸다. 집무 중의 모든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가 있음이 알려지면서, 그 테이프를 놓고 1973년 5월부터 상원 주최 워터게이트 청문회가 열렸다. 닉슨은 국가 기밀 사항이 있다는 이유로 테이프 공개를 거부했고, 끝내는 전체의 백분의 일에 불과한 40시간 분량만을 공개했다(테이프가 완전히 공개된 것은 1996년이었다). 이를 통해 법무장관 존 미첼,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등이 온갖 도청 활동과 문서 위조, 매수 등의 부정행위와 연관되어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닉슨이 거액의 탈세를 했다는 사실, 또한 선거 과정에서 걸프 오일을 비롯한 미국의 대기업들의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