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비(三田渡碑)의 소감
임병식 rbs1144@daum.net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비석하나와 마주쳤다. 원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인데 통상적으로 삼전도비(三田渡碑)라고 일컫는 비다. 이것은 당초 서울 송파구 삼전도에 있던 것을 석촌호수 부근에 옮겨놓았다. 사적 제101호로 관리하고 있다.
비신은 대단히 커서 높이가 무려 395Cm에 이르며 너비는 140Cm이다. 그만큼 비신을 떠받치고 있는 귀두가 웅장하며 이수 또한 거대하다. 비석은 조선 인조 때 청 태종 홍타이지가 군사 5만명을 이끌고 쳐들어와 남한산성에 피신해 있던 왕의 항복을 받아내고서 승전기념으로 세웠다.
인조는 3개월동안 항전하다 자진 항복을 하였다. 그해가 1636년 12월. 왕은 세자 소현세자와 함께 삼전도에 나아가 주둔해 있던 홍타이지 앞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올렸다.
고두례는 삼배를 올리고 땅바닥에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 사람들은 흔히 세 번 절하고 연이어서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집례자가 ‘궤(跪)’를 외치면 꿇어앉은 상태에서 한차례 깊숙히 절을 하고 땅바닥에 이마를 세번 조아리게 된다.
그러고 나서 다시 ‘기(起’라고 외치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연속 세 차례 반복하는 것이 삼배고두례이다. 그런데 인조는 그 과정에서 이마가 뭉개지도록 땅에 찧어서 피를 낭자하게 흘렸다. 해가 질 무렵에야 귀경을 허락하여 돌아왔다. 당시 나룻터에는 배가 두 척이 떠있었는데 백관들이 서로 먼저 타려고 인조의 옷깃을 잡아 당겼다고 한다. 왕의 체통이 땅에 떨어진 상황을 보여준다.
청의 오만함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누구를 위한 승전이며 무슨 은혜를 베푼 것이라고 공덕비를 세우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치욕스런 일인가.
청나라는 조선을 굴복시켜놓고 백성을 50만 명이나 끌고 갔다. 이는 임진왜란시 일본이 7년 전쟁 동안 10만 명을 잡아간 것에 비하면 무려 다섯 배에 이른다. 당시 조선 인구가 500만 명이었으니 거의 1/10에 해당한 숫자였다.
조선은 그 후유증으로 거의 재기 불능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물러나면서 군비확장을 엄격히 금하였다. 뿐만 아니라 성곽보수도 일체 허용하지 않아서 훗날을 도모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들은 조선의 국부인 은을 수만 냥이나 징발해갔으며 끌려간 백성을 환국시키면서 엄청난 국고를 탕진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실로 나라는 이때 결단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비문을 새기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분노가 치솟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비문을 준비한 것도 아니고, ‘너희들이 써라’며 조선으로 하여금 비문을 준비하도록 했다. 이를 두고 조정에서는 왈가왈부가 많았다. 섣불리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에 김류가 나섰다.
“크게 손해 보지 않고 생색을 낼 수 있으니 그들의 청을 들어줌이 가한 줄로 사료됩니다.”
그리하여 여러 문사들을 검토한 끝에 이경석이 낙점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임금님, 저희글은 기억나지 않습니다”하거나, 억지로 조잡한 글을 지어 올렸다. 그러기는 이경석의 글도 소삽하였으나 결국 그의 글이 채택되었다.
아마도 글을 쓰는 선비로서 글을 쓴다는 것이 고통으로 느껴지고 부끄럽게 생각되는 일은, 그 때의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이경석이 쓴 비문을 청국에 보내게 되었는데 곧바로 수정할 곳을 짚는 글이 돌아왔다. 범문진이 메모해 보내기를 “황제께서 화호(和好)를 바랐는데 오히려 깨닫지 못하고 손수 대병을 호생의 마음으로 이끌고 왔으나 헤아리지 못하여 모년모월모일 정토(征討)하실 것을 알려주었으니 어찌 기꺼이 밝히는 의리의 가르침이 아닌가.”하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이경석은 곧대로 쓸 수는 없고 사실과 일치하지도 않음으로 사기(師期 -군사를 일으키는 일)를 애매한 말로 바꿔버렸다. 그의 고심을 짐작할 만하다.
청국은 이 승전비를 세우는 일로 계속 조선을 압박하였다. 책사로 용골대와 마부대를 직접 보내 확인한 것은 물론, 다른 사신들도 조선에 들어오면 비석이 세워진 곳을 답사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 치욕은 얼마나 지속된 것인가. 더하여 조정에서는 이 비를 지키는 데에 심혈을 기우리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만약에 훼손이라도 되는 날에는 어떤 보복이 가해질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비는 그동안 수차례 부침을 거듭했다. 백성들의 손에 넘어뜨려지기도 하고 매립이 되었다가 다시 꺼내져서 세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한자리에 자리를 잡고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
여기에는 좀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이 비석은 88올림픽을 앞두고 석촌호수 주변을 정비할 때 전두환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했다. 비석을 본 그는,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니 잘 보존토록 하시오” 했던 것이다. 그 말이 맞기는 하나, 국민을 압살하고 집권한 그가 그런 말을 했고, 그래서 잘 보존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뜨악한 불편함이 있는 것이다.
이 비석을 생각하면 당시 임금과 조정대신들의 무능함에 치를 떨게 된다. 당시 상황이 어떠했던가. 북방에서 힘을 키운 청국은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으며, 명나라는 국세가 기울고 있었다. 이 틈에 광해군은 적절하게 청국와 명나라사이에서 적절하게 등거리 외교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광해군을 몰아낸 선인세력은 인조를 옹립하고 친명배청 정책을 일관되게 고수하였다. 그런 와중에 청국에서 명나라와의 외교단절과 명을 치기위한 병력을 요청하자, 외골수에 빠져버렸다. 일방적으로 청을 멀리하고 명을 두둔한 것이다.
범문진이 비문의 보충을 요구한 것은 바로 청태종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황제가 명나라와 가까이 하려들고, 경고를 했음에도 말을 듣지 않아 정벌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피해는 얼마였던가. 수많은 백성이 끌려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산천은 그야말로 먹을 것이 없는 피폐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당파를 지키고 광해군을 몰아낸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 백성들의 삶을 내팽긴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불편하지만 산전도비는 우리에게 크나큰 울림을 주고 있다. 위정자가 나라를 잘 경영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고 그 후유증은 수백년이 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그 비석을 바라보는 마음은 불편하다. 앞으로도 그 찜찜함은 계속될 것이다. (2025)
첫댓글 삼전도비가 치욕의 비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토록 처참하였다고는 대부분 국민들이 모를 것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왕이 三拜叩頭를 통하여 치욕과 고통을 당했으니 이것은 온 백성이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거울입니다. 이러한 비극의 역사를 재연하지 않도록 온 국민이 애족 애국하는 마음을 길러야 하겠는데,
청석님의 글을 통하여 온 국민들이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힘이 약하면 어떠한 수난이 올지 모르니 有備無患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작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교훈 삼아 우리나라도 反面敎師로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 이런 나라는 虎視眈眈 우리를 지금도 노려 보고 있습니다.
과거 윤석열과 같이 中• 蘇를 무시하고 美親외교에 빠질 때 우리 안보는 물가의 아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의 시국을 돌아 보아도 삼전도비는 비록 치욕의 징표이기는 하지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한번씩 돓아보고 국가의 앞날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니, 우리가 나태하여 안일에 빠질때 어느 나라가 우리를 노리고
침범해올지 모름니다.
역사를 직시하고 유비무환의 대비를 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명 사대주의에 함몰한 작자들은 중립외교를 꾀해온 광해군을 몰아내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했지요 당시 조정이 정세를 오판하지는 않았을 터인데도 워낙 명나라에 치우친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못한 어리석음 탓에 지울 수 없는 치욕을 당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나마 청국이 조선을 멸하지 않은 까닭은 아마도 조선의 의리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싶습니다 치욕을 교훈 삼아야 함은 지당한 일인데 과연 오늘날 우리는 삼전도의 치욕에서 무슨 교훈을 얻은 것일까요 역사는 반복되고 우리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현명한 대처는 국론 합치에서 나오는 법이니 온국민이 정부를 믿고 뜻을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삼전도의 굴욕을 되세겨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위정자가 정신을 못차리고 여론이 분열하면 나라는 언제라도 구렁텅이에
빠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나라를 경영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