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환의 풀어 쓴 한자 이야기 - 44. 신용(信用)
스위스 용병을 라이슬로이퍼(Reislaufer)라 한다.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진 독일어이다. 이 용어는‘당장의 이득보다 장래의 신용을 소중히 여기는 스위스인’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험준한 산악국가 국민의 절박한 생존 경쟁이 녹아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지금은 1인당 소득 10만 달러의 부국인데도 스위스인들은 자국에서조차 치열하게 경쟁한다. 나태와 의존은 나라를 좀먹는 죄악으로 본다.
1793년 프랑스혁명 때, 루이 16세의 경호를 맡았던 스위스 용병 786명은 왕궁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왕이 탈출하라고 했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용병 계약을 저버리면 우리 후손들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거절했고, 왕과 함께 모두 전사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16세기 독일의 신성로마제국이 바티칸 교황청을 침공했을 때, 교황을 지키던 병사 대부분이 달아났지만, 스위스 근위대는 끝까지 남아서 침략군과 용감히 맞서다가 죽었다. 그 후 오늘날까지 교황청은 오직 스위스인만 교황 근위병으로 선발한다. 오늘날 개인과 개인은 물론이고 개인과 공직자 사이에도 신용은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 되고 있다. 이에 필자는 2026년 병오년(丙午年) 두 번째 칼럼으로 신용(信用: 사람이나 사물이 틀림없다고 믿어 의심하지 아니함. 또는 그런 믿음성의 정도)을 이루고 있는 한자를 들여다본다.
믿을 신(信)은 사람 인(人)에 말씀 언(言)이 더해진 글자다. 사람 인(人)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태아기, 조금 성장한 유아, 아동기를 거쳐 손과 발의 발육이 완벽해진 성인기에 이른 원숙한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모습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이미 두 발로 온전하게 서서 각종 행위를 온전하게 행하기 때문에 사람과 관련된 한자를 파생시켰고, ‘사람’,‘인품’, ‘남’의 뜻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하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소전체(小篆體)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인간(人間: 사람), 인품(人品: 사람의 됨됨이), 인아(人我: 남과 나)가 좋은 용례이고, 人자의 변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말씀 언(言)은 바늘의 모양을 본떠 곧음을 나타내는 매울 신(亖=辛의 변형)과 사람의 입 모양을 본뜬 입 구(口)가 결합 된 한자이다. 스스로 생각한 바를 입으로 바르게 말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덧붙여 言자의 갑골문을 보면 口자 위로 나팔 혹은 생황과 같은 모양의 악기가 그려져 있다. 곧 입으로 나팔이나 생황을 불 때, 입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하겠다. 현대에 와서 인터넷 통신에서 사용되는 표시, 전파가 퍼져나가는 와이파이 아이콘 모양이라 할 수 있다. 言자는 이렇게 입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부수로 쓰일 때는‘말하다’와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언급(言及: 하는 말이 그것에까지 미침), 언명(言明: 말로 의사를 똑똑히 밝힘)이 좋은 용례이다. 믿을 신(信)을 종합적으로 해설해 보면, 온전히 성숙한 사람이 하는 말에는 믿음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쓸 용(用)은 점 복(卜)에 가운데 중(中)을 어울린 글자다. 점 복(卜)은 옛날 거북이 등과 소의 허벅지 뼈를 달군 쇠꼬챙이로 지져 거기에 나타난 금이나 무늬를 보고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따라서 卜은 그 균열의 모양에서 따온 글자이다.
가운데 중(中)은 사물을 가리키는 ㅁ자에 위아래로 통할 곤(丨)을 꿰뚫어 놓은 글자로 사물의 한가운데를 꿰뚫은 모양을 나타내어 가운데의 뜻이 되었다. 즉 쓸 용(用)은 옛날에 점을 쳐서 맞으면 반드시 시행했으므로‘쓰다’의 뜻이 되었다. 용도(用途: 쓰이는 곳), 용무(用務: 볼 일), 용의(用意: 마음을 씀)가 좋은 용례이다.
경상남도 의령군이 고향인 항일애국지사, 백산(白山) 안희제 선생과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백범(白凡) 김구, 두 분의 깊은 신용(信用)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백범 김구 선생님이 백산 안희제 선생님의 손을 잡으시면서‘양백지간 만인가활(兩白之間 萬人可活 : 백 씨 두 사람이 만인을 살린다)이라 하면서, 그 양백(兩白)이 바로 자네와 나일 것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일화로 백산이 임시정부에 보낸 독립(獨立)자금이 총 50만원(현시세 150억원)이었는데, 백산이 자금을 요청하면 백산상회 사장인 최준(崔浚)이 자금을 마련해 주었다. 최준은 내심 독립자금으로 준 돈 가운데 얼마간은 백산이 개인적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방 후 국내로 귀국한 백범이 당시 집무실로 사용하는 경교장에서 최준과 면담하면서, 백산이 보낸 독립자금의 명세를 자세히 적은 수첩을 최준에게 보여줬는데 거기에는 백산상회에서 보낸 독립자금이 단 1원도 틀리지 않게 기재돼 있었다. 당시 최준은 독립자금 중 동지 백산이 상해 임시정부에 조달해 준 총금액 중 잘해야 5~6할 정도 전달되었을 것으로 여겨 왔는데, 백범과의 환담에서 거의 모든 돈이 오롯이 독립자금으로 전달된 것을 알고, 최준이 조금이나마 백산을 의심한 것에 자책감을 느껴 의령 땅이 있는 곳으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임시정부의 자금 중 60%를 백산 안희제(安熙濟) 선생이 조달했다고 한다.
| 信 | = | 人 | + | 言 |
| 믿을 신 |
| 사람 인 |
| 말씀 언 |
| 用 | = | 卜 | + | 中 |
| 쓸 용 |
| 점 복 |
| 가운데 중 |
2026. 1. 28.(수) 뉴스경남 문화면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