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마진거래 사이트에서 2억4000만원을 잃은 A씨는 지난해 8월 한 피해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도움을 구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러자 자신을 같은 투자 사기 피해자라고 소개한 B씨가 “컴퓨터를 잘 다룬다”면서 “코인거래소 사이트의 정보를 빼내 디도스 공격을 해 피해 금액을 되돌려 줄 수 있다”고 A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피해 금액이 커 이를 복구하고자 하는 생각이 컸던 A씨는 B씨에게 진행비용 명목으로 약 1주일에 걸쳐 총 9150만원을 입금했다. 그러나 입금을 하고 난 뒤 시간이 흘렀음에도 B씨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사실 B씨는 상습적으로 코인 사기 피해자들에게 피해 복구를 해주겠다며 금품을 가로채는 코인 2차 사기꾼이었다.
B씨의 사기 수법은 다양했다. 그는 오픈채팅방이나 온라인 카페 등에 있는 코인 투자 피해자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A씨에게 접근한 지 채 1주일도 지나지 않아 B씨는 오픈채팅방을 통해 다른 피해자 C씨에게 “코인 투자 사기로 인해 정지된 은행계좌를 회복시켜주겠다”며 신용카드 번호를 받아내 온라인 결제대행 사이트에서 7회에 걸쳐 총 312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구매했다. 그 외에도 B씨는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비트코인 투자를 통해 잃은 금액보다 더 큰 수익을 내 주겠다’ ‘채권추심을 도와주겠다’ ‘코인 사기 피해금을 대신 받아주겠다’며 16명의 피해자에게 총 7억4000여만원을 뜯어냈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상자산 유사수신 피해액은 2020년 2136억원에서 지난해 3조1282억원으로 약 15배 증가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사이버사기와 사이버금융범죄 집중단속을 벌인 결과 총 1만207명이 검거됐다. 사이버 사기 피의자의 65.9%가 디지털에 익숙한 10~30대였다. 사기 피해자들이 늘어나자 피해금을 복구하려는 투자자들도 늘어나 2차 사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차 사기는 당초 전형적인 코인 사기와는 달리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조직적으로 발전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신분증, 신문 기사, 피해복구 사례 등을 올려놓고 신뢰감을 심어준 뒤 돈만 받아내고 잠적하는 방식으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 2차 사기를 저지르는 범인 중에는 자신이 피해를 입어 그 피해 금액을 복구하기 위해 사기꾼으로 전락하기도 해 악순환이 이어지기도 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를 한 번 당한 사람은 잃어버린 금품에 대한 욕구가 간절해져 피해를 만회할 수 있다는 속임수에도 쉽게 기대는 현상”이라며 “코인 사기에 넘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 급하거나 본인의 노력을 통해서 큰 이익을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기를 당해 돈을 잃었다’는 사실보다는 ‘잃은 돈을 되찾아야 한다’는 심리가 더욱 강하다. 불안한 심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혹적 접근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사기 신고를 해도 피해를 보상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B씨는 경찰에 붙잡혀 사기와 사기미수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B씨가 편취한 금액은 대부분 변제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행 금융법상 유사 수신은 벌칙 조항만 있고, 가상화폐 관련해서는 특금법을 제외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은행에서 계좌를 동결해야 지급 정지가 가능해지고 피해금액 일부라도 되찾을 수 있다. 현재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피싱·스미싱 등의 사기일 경우에만 지급정지가 가능하지만, 투자사기 등은 피싱·스미싱에 해당하지 않아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도 신속한 대응을 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2019년부터 2차 피해 사례가 등장하다가 2020년도부터는 크게 늘었다. 2차 가해 수법 방식은 상당히 그럴싸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2차 사기도 리딩 사기랑 똑같이 피싱 급이다. 일면식도 없이 카톡이나 문자를 주고받다가 입금을 유도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를 회복해준다고 접근을 하거나 먼저 수수료를 요구할 경우 사기인 경우가 많다. 일부는 실명을 사용하고 신분증을 주기도 하는 등 최근 사기 조직의 수법이 굉장히 정밀해졌다”며 “만약 피해를 입었을 때는 복구를 시도하기보다는 형사고소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빠른 방법이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