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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고향 풍기 원문보기 글쓴이: 배규택
시보네 에세이 32
달비 한 타래에 담긴
삭발의 모정
보릿고개, 그 가난의 계절
봄이 왔건만 봄이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 초, 그 시절의 봄은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이 아니라
죽음을 부르는 계절이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수확한 곡식은 바닥났고,
올해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았던
그 잔인한 시간. 우리는 그것을
'보릿고개'라 불렀습니다.
배고픔이 일상이었고,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 한 술이
부모님 삶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시절.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에게
머리카락은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꺼내 쓸 수 있는
'생명의 보석'이었습니다.
영주의 작은 농가에서 일어난
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 시절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가난보다 무거운 모정
1960년대 초,
영주 철탄산 아래 작은 농가.
이곳의 시계는 늘 배고픔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병든 남편과 네 남매를
건사해야 했던 어머니 반연옥 여사에게
가난은 피할 수 없는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선에서 복무하던 아들 종준이
휴가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반가움도 잠시, 어머니의 가슴은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전방에서 고생하다 온 아들에게
고기 한 점, 뜨끈한 국 한 그릇
먹여 보내고 싶은 것이 어미의 마음인데,
뒤져본 쌀독은 바닥을 보이고
찬장엔 찬바람만 감돌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귀대일은 다가오는데,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빈손이었습니다.
궁리 끝에 어머니는
거울 앞에 앉았습니다.
40년 평생 소중히 길러온,
비녀로 단정하게 말아 올렸던
그 긴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여인에게 머리카락은 자존심이자
마지막 남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했습니다.
몸과 머리카락까지도
부모님께 받은 것이니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
하지만 아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일보다 소중할 수는 없었습니다.
서걱, 서걱.
무딘 가위가 지나갈 때마다
40년 세월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처녀 시절의 설렘도,
첫아들을 낳던 날의 기쁨도,
시집살이의 눈물도,
그 모든 세월이
가위질 한 번에 잘려나갔습니다.
어머니는 그 머리카락을 모아
시장에 나가 '달비'로 팔았습니다.
손에 쥔 돈으로 소고기 반 근,
미역 반 오리, 쌀 반 됫박을 샀습니다.
그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어머니의 살점이었고 눈물이었으며,
40년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수건 속에 감춘 눈물겨운 훈장
아들이 떠나기 전날,
밥상 위에는 기적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이밥과
소고기와 미역국이 올랐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고단한 형편을 알기에
의아해하며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보인
어머니의 뒷모습이 낯설었습니다.
집안에서도 웬일인지 수건을 머리에
깊게 눌러쓰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날도 더운데
왜 수건을 쓰고 계세요?"
아들의 손이 어머니의
수건에 닿았습니다.
툭, 하고 수건이 벗겨진 자리.
그곳엔 곱게 빗어 넘긴 머리 대신
투박하게 깎인 '까까중'
머리가 드러났습니다.
아들은
그제야 밥상 위의 고기 국물이
어디서 왔는지 깨달았습니다.
어머니의 자존심이,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어머니의 40년 세월이
이 한 끼 밥이 되었다는 것을.
아들은 숟가락을 놓은 채
어머니를 붙들고 통곡했습니다.
"어머니, 이 머리가 어떤 머린데...
이 불효자를 위해 이 머리를...“
모자는 서로를 껴안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밥상 위의 밥은 식어가고,
국은 차가워졌지만, 그 방 안은
그 어떤 것보다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영화가 된 실화,
국민의 눈물이 되다
이 눈물겨운 이야기는
입소문을 타고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본 강대진 감독은
직접 영주로 내려와
이 이야기를 영화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1965년 개봉해
온 국민을 울린 영화
<삭발의 모정>입니다.
배우 황정순 씨의 열연과
은방울 자매의 애절한 주제가는
당시 서울 거리를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머리에 수건 쓰고 감추려 했지만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감출 수 없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삭발인들 어떠리
깎아버린 머리카락 모정으로 피었네
아~ 삭발의 모정
잊지 못할 어머니의 사랑"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의 눈가는
모두 젖어 있었습니다.
영화 속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우리 곁에 살았던
영주 반연옥 여사의 실화였기에
그 감동은 더욱 깊었습니다.
사람들은 영화관을 나와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했고,
누군가는 귀향길 차표를 끊었습니다.
60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그로부터 60년이 흘렀습니다.
대한민국은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보릿고개는 역사책 속 단어가 되었고,
이제 우리는 먹을 것이 넘쳐나
음식물 쓰레기를 걱정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거리엔 화려한 미용실이 즐비하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염색하고
펌을 하는 데 수십만 원을 씁니다.
잘라낸 머리카락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갑니다.
누구도 그것을 '달비'로 팔아
밥을 사 먹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습니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수출하고,
K-팝과 K-드라마로 세계를
열광시킵니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를 이야기하고,
우주 개발을 꿈꿉니다.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그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요?
변화하는 가치,
변하지 않아야 할 것
요즘 뉴스를 보면
씁쓸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고
연락을 끊는 자식들,
유산 때문에 법정에서 싸우는 형제들,
"부모 봉양은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젊은이들.
우리는 '효' 라는 단어를
낡은 유교적 가치로 치부합니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가 최우선이고,
부모에 대한 의무는
강요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시대가 변했고, 가치관도 변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낡은 도덕일 뿐일까요?
아니면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무언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그 무엇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반연옥 여사가
머리카락을 자를 때, 그것은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사랑.
자식이 배고프면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던 그 시대의 사랑.
지금 우리는 조건적
사랑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이만큼 해야 한다"는
계산적 사랑.
부모는 자식에게 투자하고,
자식은 그 투자에 대한 수익을
기대받습니다.
사랑도 거래가 되고,
관계도 계약이 됩니다.
풍요 속의 빈곤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어쩌면 더 가난해진 것은 아닐까요?
냉장고에는 음식이 가득하지만
함께 밥 먹을 가족은 없습니다.
스마트폰에는 수백 명의 친구가 있지만
외로움은 더 깊어집니다.
집은 넓어졌지만 마음을 나눌 공간은
좁아졌습니다.
반연옥 여사의 집은
보잘것없이 작았습니다.
밥상은 보리밥과
된장찌개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집에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가난했지만 풍요로웠습니다.
없었지만 충만했습니다.
지금 우리 집의 식탁은 어떤가요?
풍성한 음식 위로 침묵만 흐르고,
각자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말하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는
'삭발의 모정'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
자신의 식당 문을 닫을지언정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멈추지 않았던 식당 주인.
교통사고로 쓰러진 딸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한 아버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10년째 집에서 돌보는 딸.
이들의 이야기는
뉴스에 크게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자신의
'무엇'을 베어내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살아갑니다.
발전과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조건적 사랑'의 가치,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께
바치는 헌사
이제는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야 하는 가난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베어냈던
그 '삭발의 마음'만은 우리 가슴속에
여전히 흘러야 합니다.
산 아래 그 작은 집에서
일어났던 기적 같은 사랑.
반연옥 여사라는 이름은 잊힐지 몰라도,
아들을 위해 까까중 머리가 된 채
미소를 짓던 그 숭고한 어머니의
뒷모습은 영원히 우리 시대의
성화로 남을 것입니다.
60년 전 그날,
수건 아래 감춰진 짧은 머리를 보며
통곡하던 아들처럼, 우리도 가끔은
멈춰 서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베어낸 것들을.
나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베어낼 수 있는지를.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지를.
그 질문 앞에 선 우리가,
비로소 진정한 발전을
이룬 사회가 아닐까요.
“머리에 수건 쓰고 감추려고 했건만
그 어이 모를소냐 단발한 머리
쌀밥에 고기반찬 말없이 보며
목이 메어 모자는 울고 말았네
아~ 눈물겨운 삭발의 모정”
2026.3.8.
배규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