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의 성미술에 대한 문제를 짚어내고 대안을 내놓은 박사논문이 발표되었다.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의 홍수원 씨는 '한국천주교회의 성미술 발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그리스도교 안에서 성미술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사를 살피고, 한국 천주교회 성미술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출했다.
홍수원 씨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진리를 표현하는 시각적 예술이자 신앙심을 높이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성미술과, 평신도 개인 신앙생활에서 사용하는 성물은 예술영역 밖에 방치된 채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서, 유럽에서 태동한 성미술의 최고 후원자는 교회였으며, 당대 최고 화가들이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최고걸작을 탄생시켰음을 상기시키며, 성미술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홍수원 씨는 성미술이 ▲인간의 언어를 초월하는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시각적 언어'로 전달하는 교리교육적 역할을 하며 ▲7성사가 행해지는 전례공간에서 주례자와 참례자의 전례행위를 돕고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하느님과 소통하는 기도와 묵상도구로 신앙심을 고취시키며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집인 본당공동체 고유의 특성과 신앙을 표현하며 ▲비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간접선교를 하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만의 소유가 아니며 세상 속에서 호흡해야한다고 말한다.
국적불명의 서구적 성물이 판치는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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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자화, 부통신부 |
그러나 한국천주교회는 "성미술을 아름다운 성당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나 전례와 신자들의 기도생활을 돕는 도구라는 소극적 인식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성당건축을 하더라도 성미술품은 십자가, 성모상, 성모자상, 십사처, 감실 등에 한정되어, '보는 성서'라는 교리교육적 역할은 실종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표출인 성미술이 단지 교회에서 필요한 물질적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홍수원 씨는 "비잔틴미술은 교회에 헌정된 미술로 그 시대의 신학과 교의 체계를 드러냈으며, 로마네스크와 고딕미술은 평신도들의 열렬한 신앙심에서 비롯되었지만, 한국교회의 성미술은 우리 시대의 신앙을 얼마나 대변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고 자문한다.
또한 한국교회의 성미술은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을 교회미술의 전형이라고 생각해, 유사 로마네스크, 유사 고딕양식으로 국적불명, 시대불명, 작불명의 서양식 미술을 선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에서도 "교회는 어떠한 미술 양식도 자기 고유의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오로지 민족들의 특성과 환경, 그리고 각종 예식의 필요에 따라 각각 그 시대의 양식들을 받아들였으며, 여러 세기의 흐름을 통하여 이루어진 미술의 보화를 온갖 배려로 보존하게 하였다"고 말하며, 우리시대의 문화와 감성, 그리고 오늘날 가능한 재료와 수단을 사용하면서, 오늘날의 신앙에다 그 형태와 표현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토착화의 문제는 현대화의 문제"라면서, 한국교회의 성미술 가운데 한복 입은 한국여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성모상이나 성모자상, 현대적 건축에 처마만 얹은 성당건축, 격자무늬와 색동 같은 전통모티브만 단순하게 적용한 조악한 개인 성물을 '표피적인 토착화' 사례로 꼬집었다. 오히려 지금 한국인의 감성과 정서에 맞는 현대화 작업을 요청했다.
본당 사제의 취향에 따라 성미술 설치, 훼손, 방치
한편 한 해에 50개 정도의 성당이 신축되면서도 한국교회를 대표할만한 성당이나 성미술 사례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한번 지으면 수백 수천년 동안 교회공동체의 터전이 될 교회건축을 전례적, 예술적, 역사적 고려 없이 짓는 행태를 지적했다. 이런 건축을 기획하고 설계하는데 전혀 경험 없는 본당 사제들이 모든 권한을 지니는 것도 문제 삼았다. 기본적으로 전례, 미술, 가톨릭교의체계 등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춘 기획자와 미술가 없이 진행되는 건축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성미술을 단순한 장식으로 여긴 나머지, 건축예산에 성미술품을 고려하지 않고, 부족한 예산을 빌미로 모든 성미술 작품을 미술가에게 기증받거나 신자들의 기부로 충당하려는 한다. 따라서 낮은 작품비로 조악한 성물이 비치되기 십상이라고 말한다. 또한 아름답지 않은 복제 성미술품들, 제단 위에 설치된 여러 개의 성상들, 제대 뒷벽에 걸린 현수막, 제대를 압도하는 제대꽃꽂이. 제단에 설치된 스크린, 부적절한 위치의 성가 안내 전광판 등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분심을 일으키는 사례가 속출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홍수원 씨는 각 본당의 주체는 사제가 아니라 신자라면서, 이들 신자들이 성미술에 관심을 갖기를 주문했다. 사제들은 주기적으로 이동하는 사람이면서도, 새로 부임한 사제들이 본당 성미술이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철거, 훼손, 방치하는 사태를 신자들이 막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복 입은 성모상과 갓 쓴 예수상이 토착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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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 위 십자가, 최종태, 서울대교구 연희동성당 |
개인성물에 관해서도, 한국교회의 신앙인들이 성물 소유에 대한 욕구가 커서 한국교회에 보급된 성물의 양은 측정할 수 없을만큼 막대한 양이며, 성물판매소에서 판매되는 대부분 성물들이 국적도 제작자도 알 수 없는 출처불명의 복제성물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성물 역시 한국인의 감수성이 배제된 푸른 눈의 긴 머리를 가진 서양인 모습의 예수상과 성모상, 한복 입은 성모와 갓 쓴 예수 등 조악하다.
특히 불법복제된 성물들은 판매가격을 낮추기 위해 값싼 하청업체에 의해 대량생산되기 때문에 성물의 질도 문제다. 대개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어 도매시장을 거쳐 교회로 유통되는데, 문제는 성물제작자의 의식에 있다고 지적한다. 신앙심은 배제된 채 이윤 추구라는 상업적 목적만으로 성물을 불법제작 유통시키기 때문이다.
홍수원 씨는 "성물은 준성사적 의미가 있어 함부로 버릴 수도 없는 사물인데, 신자들의 가정에 놓인 수많은 저급한 성상, 십자가, 묵주 대신에 미술가들이 정성껏 만든 예술성과 신앙심이 담긴 성물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인간은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전문기획자와 교구 차원의 관리 필요해
이러한 교회 안에 널린 성미술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문적인 그리스도교미술연구소가 설립해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며, 성미술의 획일화와 상업화를 막고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전문기획자가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경우에, 잘 기획된 성당건축 성미술로 서울교구 혜화동성당, 춘천교구의 죽림동성당과 강촌성당 등을 사례로 들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 미술가를 양성하고, 특히 신학교에서 미술교육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리고 교구 차원에서 독립적인 성미술위원회를 성치하여 성당건축에 따른 지침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2004년 교황청 문화재위원회에서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교회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그 가치를 증진시키고자 그 현황을 파악하고 보존, 보호, 진흥에 힘써야 한다"고 권고하고, 이에 한국교회가 2009년 11월 29일 '한국 천주교 문화유산 보존 관리 지침'을 제정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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