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지금껏 보아온 영화들이 당의정이라고 느끼게 하는 영화가 있다. 아무리 근사하고 의미 깊은 것 같아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 나는 달콤한 영화를 보아왔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호텔 르완다가 그랬고 크래쉬가 그랬다. 르완다는 빼기로 하자. 여기서는 엊그제 본 크래쉬이야기만 하기로 하자.
산드라 블록이니 브렌든 프레이저니 하는 유명 배우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단순히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돈 치들이라는 아주 아주 선하며 유약해보이고 밋밋해서 기억에도 잘 안남는 흑인 배우가 주인공이라고 보아지는데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중요하지 않다. 각 인물 모두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탓으로 차도둑과 부패 경찰마저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헷갈리는 판이니 아마 모두가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을 흐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인종 차별, 그러나 선인 악인의 구분은 없다. 인물 모두는 상황에 따라 반응하고 자신의 과거가 보여주는 궤적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아니 처음 선하게 보였던 이들이 오히려 죄를 범한다면 그건 무엇일까? 삶에는 결코 선악의 구분이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일까?
영화는 형사 그레이엄이 시체가 발견된 장소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전날 밤으로 돌아간다. 두 흑인 청년이 부자인 백인 부부(산드라 블록과 브렌든 프레이저로 그는 지방 검사다)의 차를 빼앗는다. 흑인 청년들이 주고 받는 말은 싱겁기 짝이 없다. 어! 하는 순간에 그들은 총을 들이대고 차를 뺏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 악당이라면 악당답게 포악하게 혹은 돈 때문이라는 표시가 좔좔 흘러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들은 레스토랑에서 점원들에게 인종 차별을 받았다는 대화를 무슨 랩 부르듯 흘리다가 이내 강도로 돌변하는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일까. 물론 후에 차를 장물아비에게 팔기는 하지만.
연락을 받은 백인 형사들, 라이언과 핸들은 차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흑인 부부가 모는 차를 세운다. 그리고 차안에서 풍기문란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여인의 몸을 더듬는다. 프로듀서인 남편 카메론은 아내 크리스틴이 당하는 수모를 지켜보면서도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생각하는 것, 오히려 경찰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입장. 흑인으로서 오르기 힘든 자리, 차안에서 오랄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의 자리는 어떻게 되는가.
이란계 이민자인 파라드는 가게를 지키기 위해 총을 사러온다. 영어라고는 몇 마디뿐, 글을 읽지는 못한다. 백인 주인은 말이 안 통하는 파라드에게 인종차별하는 어휘를 쏟아낸다. 테러리스트라는 말까지 쏟아져 나오고 아버지와 주인을 달랜 딸은 공포탄을 사들고 돌아간다. 그러나 가게 자물쇠는 고장나고 수리공인 멕시코인 대니얼은 문을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파라드는 대니얼이 자신을 속이려고 든다고 생각한다. 자물쇠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문을 고치라는 말은 자신에게 사기를 친다는 것. 대니얼은 그냥 돌아가고 그의 가게는 밤새 엉망이 된다. 파라드는 앙심을 품는다. 모든 것이 대니얼때문이다. 총을 잡는 그.
릭의 차를 강탈한 피터와 앤쏘니는 카메론의 차를 강탈하려다가 형사들과 부딪친다. 그리고 우여곡절. 카메론은 악에 받쳐 경찰들에게 대든다. 무모한 카메론을 본 핸들은 전날 밤의 죄의식에 동료 경찰들을 막아서면서 카메론을 변호한다. 여기까지 보면 크리스틴의 몸을 더듬은 라이언은 악인이고 카메론이 총에 맞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막은 핸들은 선인이다. 영화 법칙,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권선징악, 영화는 라이언이 경찰에서 쫓겨나고 핸들이 보상을 받는 식으로 끝나야 옳다. 그러나...
헷갈리기 시작한다. 라이언에게는 전립선염을 앓는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를 끔찍히 챙기는 아들이 바로 라이언이다. 게다가 라이언은 교통사고로 뒤집힌 차에서 운전자를 구해내는데, 불이 붙기 시작하는 그 자동차에서 그가 목숨을 걸고 끌어낸 운전자는 바로 크리스틴, 전날 밤 그가 몸을 더듬었던 바로 그 흑인여성이다.
선해 보이던 핸들은 집으로 가는 길에 흑인 강도 중 한 명이며 형사 그레이엄의 동생인 앤쏘니를 태워준다. 몹시 추운 밤, 밖에서 한 시간이나 떨었다는 그를 태워주는 핸들의 행동은 분명 선한 행동이다. 그러나 앤쏘니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한다는 이유로 그를 쏘아버린 행동은 과연 선한가? 앤쏘니가 흑인이기에 그의 머릿속에는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총에 대한 공포가 그를 행동하게 만들었는가. 편견이 그로 하여금 총을 쏘게 만들었는가?
선하게 보였던 이는 사람을 죽이고 악하게 보였던 이는 사람을 구해낸다. 죽은 자나 구함을 입은 자나 모두 흑인이다. 동일한 강도라도 더 악하게 굴었던 피터, 주범으로 보였던 피터는 사람들을 구해낸다. 자신이 친 한국인, 그의 밴을 팔려고 가져갔는데 그 안에 난민들이 실려 있었던 것. 피터는 그들을 풀어준다. 팔아넘기라는 장물아비의 말을 무시하고. 사람을 치고 그의 밴을 훔쳤으니 분명한 악인인데 그가 그 속에 실려 있던 불법 이민자들을 구해내는 이 설정은? 악인도 없고 선인도 없는 것인가? 모든 사람은 상황에 따라 움직인다고?
파라드는 대니얼을 찾아와 쏜다. 다섯 살난 딸은 대니얼에게 달려들고 대신 총을 맞는다. 그러나 그 총알은 공포탄.
사람들은 저마다 힘들게 살아가고 그의 행동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분명 편견도 있다. 때로 편견은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고 자신의 세계에만 갇혀 사는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느끼는 분노는 눈을 멀게 한다.
흑인에 대한 편견,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 중동인에 대한 편견. 그러나 백인들끼리는 편견이 없는가? 흑인이 백인에 대해 가지는 편견은 없는가? 가족들 내에서 편견은 없는가? 검사의 아내인 산드라 블록은 부잣집에 사는 마음 편한 유한 여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매사에 분노를 느끼고 불만이며 열쇠를 고치는 대니얼을 못 믿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열쇠를 바꾸라고 할 정도로 유색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차 있지만 진정한 친구는 없다. 자신의 집 가정부, 일년에 여섯명이나 바꾸어야 할 정도로 매양 불만을 털어내던 그녀는 넘어져 발목을 다치고 가정부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도 옳은 이는 없다. 선한 이도 없고 악한 이도 없다. 극히 선하게 보였던 그레이엄은 동생의 과거를 씻기위해 권력과 결탁한다. 거의 미쳐버린 어머니는 동생을 돌보지 않는다고 그레이엄을 탓하고 그 동생은 백인 형사의 총에 맞아 죽으며 그레이엄은 그 시체를 본다.
세상일은 조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저기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편견이 생활을 부수고 삶을 부수고 사회를 부순다. 그리고 권선징악이라는 관객들의 편견 또한 부순다. 처음부터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마지막에도 역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다른 영화들이 당의정이라고 느끼게 하는 영화. 우리의 삶은 얽히고 얽혀 흘러간다. 옳은 이도 틀린 이도 없고 착한 이도 나쁜 이도 없다. 어쩌면 진리 또한 없는 것 아닐까.
첫댓글재미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사온 이후 아직 영화를 한번도 못 봤습니다. 이번 겨울엔 볼 수 있으려나? '사람들은 저마다 힘들게 살아가고 그의 행동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영화란 게 참 너무 많이 가르치려고 하는 건 아닐까요? / 희야님, 오늘 가입인사방에 보니 소쇄원에서 마당쇠라는 분이 희야님을 찾아 오셨던데요.^^ / 한국영화도 중학생이 볼 만한 것 한두 개 소개해 주세요!
글쎄요. 영화는 재미없습니다. 처음부터 골치 아파요. 불량배들의 읊조림을 따라가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게 맞을 겁니다. 가르친다기보다는 우리 현실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서 소름끼치지요. /아? 저를 찾아온 분이 누구실까요?/우리 영화는 글쎄요. 크로싱을 보려고 하는데 아마 아이들과는 거리가 멀겠지요? 왕의 남자정도면 어떨까 싶네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글쎄 수준이 과한 것들이라서.
아~ 단비님. 제 생각이 다른 것일수도 있습니다만 이 영화는 재미 없습니다. 인간 존재의 의미를 따지는 고전과는 또 다른 맛이 풍깁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물론 고전도 좋지만 우리 현재의 삶은 고전만으로 버텨나가기에는 녹록치 않습니다. 고전은 가치관이 명확하지요. 그래서 그 가치관만으로 사는 사람과 그랬던 시절이 부럽기도 합니다. 고전이 근간이라면 그 고전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들이 현재지요. 현재 삶을 그려내는 영화나 작품이 생생하고 아픈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정해야 하는데. 고전이 명확한 가치관으로 실존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다면 현대의 소설과 영화들은 절대적이지 않는 가치관, 상대적 가치관으로 실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현대 소설과 영화는 진리의 수준에서 보면 곁가지이고 더 작아진 것으로 보입니다만 훨씬 현실적이지요.
ㅎㅎ. 전 때로 비평이 살과 뼈를 붙여준다고 생각한답니다. 인물들의 특성과 행동의 의미가 마치 풍선에 바람들어가듯 풍성하게 살아나고 색채가 가미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두 시간 동안의 영화를 이 짧은 글 한편으로 자세하게 분석할 수는 없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 분석하려면 아마 이십 페이지는 훨씬 넘어야 할 것입니다. 그마저 개요만 분석하는 것일테지요. 그럼에도 다른 사람은 또 다른 관점으로 이 영화가 지난 다른 일면을 읽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지금 개봉하는 것이 아니니 그다지 의미를 둘 필요가 없을 겁니다.
첫댓글 재미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사온 이후 아직 영화를 한번도 못 봤습니다. 이번 겨울엔 볼 수 있으려나? '사람들은 저마다 힘들게 살아가고 그의 행동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영화란 게 참 너무 많이 가르치려고 하는 건 아닐까요? / 희야님, 오늘 가입인사방에 보니 소쇄원에서 마당쇠라는 분이 희야님을 찾아 오셨던데요.^^ / 한국영화도 중학생이 볼 만한 것 한두 개 소개해 주세요!
글쎄요. 영화는 재미없습니다. 처음부터 골치 아파요. 불량배들의 읊조림을 따라가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게 맞을 겁니다. 가르친다기보다는 우리 현실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서 소름끼치지요. /아? 저를 찾아온 분이 누구실까요?/우리 영화는 글쎄요. 크로싱을 보려고 하는데 아마 아이들과는 거리가 멀겠지요? 왕의 남자정도면 어떨까 싶네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글쎄 수준이 과한 것들이라서.
아 참. <쉬리>와 <동막골>이 있습니다. 전 <쉬리>를 더 좋아해요. 이념으로 본다면야 <동막골>이 한수 위지만...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마지막이 신파조라서...아쉬웠던 거지요.
고맙습니다!
좋은 영화 소개해 주시고 분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꼭 보겠습니다.
아~ 단비님. 제 생각이 다른 것일수도 있습니다만 이 영화는 재미 없습니다. 인간 존재의 의미를 따지는 고전과는 또 다른 맛이 풍깁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물론 고전도 좋지만 우리 현재의 삶은 고전만으로 버텨나가기에는 녹록치 않습니다. 고전은 가치관이 명확하지요. 그래서 그 가치관만으로 사는 사람과 그랬던 시절이 부럽기도 합니다. 고전이 근간이라면 그 고전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들이 현재지요. 현재 삶을 그려내는 영화나 작품이 생생하고 아픈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정해야 하는데. 고전이 명확한 가치관으로 실존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다면 현대의 소설과 영화들은 절대적이지 않는 가치관, 상대적 가치관으로 실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현대 소설과 영화는 진리의 수준에서 보면 곁가지이고 더 작아진 것으로 보입니다만 훨씬 현실적이지요.
일 자세히 말씀해 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공부하시기도 바쁘실 텐데... 현대는 상대적 가치관으로 실존을 다룬다구요? 그래서 종교의 위상이 흔들리는군요. 이에 대한 다음 글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넘 자세한 분석을 보고나서 영화 보면 좀......오늘 오스트레일리아 보러 갈려고 예매했었는데 중요한 일이 생겨서 다음으로 미루었답니다.....
ㅎㅎ. 전 때로 비평이 살과 뼈를 붙여준다고 생각한답니다. 인물들의 특성과 행동의 의미가 마치 풍선에 바람들어가듯 풍성하게 살아나고 색채가 가미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두 시간 동안의 영화를 이 짧은 글 한편으로 자세하게 분석할 수는 없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 분석하려면 아마 이십 페이지는 훨씬 넘어야 할 것입니다. 그마저 개요만 분석하는 것일테지요. 그럼에도 다른 사람은 또 다른 관점으로 이 영화가 지난 다른 일면을 읽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지금 개봉하는 것이 아니니 그다지 의미를 둘 필요가 없을 겁니다.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봤습니다. 내 속에도 저런 차별과 편견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고 소름끼치도록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한 가지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경솔한지도 재삼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