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날들- 막내딸과 막내사위가 작년 크리스마스 때 남편을 위해 차려준 음식
인공관절 수술 후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다리꺾기 치료다. 요즘은 기계로 꺾기 치료를 하지만 옛날에는 담당 원장님이 했단다. 아이 낳는 고통보다 더해 원장님의 머리카락이 남아나질 않도록 뜯기고 난리도 아니었던 모양이다.(이게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회진 오신 원장님께 수십 년을 뻣뻣한 뻗정다리로 살았다고 했더니, 누워보라고 하시더니 갑자기 다리를 닭다리처럼 꺾는데, 나도 모르게 병원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옆에 환우는 무서워서 밖으로 도망가고 복도에는 환자들이 다 나오고 병원이 한바탕 쓰나미가 지나가는 것 같이 난리가 났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두 번을 꺾는데 으악 으악하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잠시의 고통으로 뻗정다리를 면한다면 나야 고맙지하며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그것도 나를 위한 원장님의 배려였다. 요즈음은 손수 다리를 꺾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밖에는 안 든다.
그렇게 입원 3주차가 흘렀다. 원래는 3주 만에 퇴원 하라고 한다. 재활 2주를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하기 싫어서 이 병원에 2주 더 있을 수 없냐고 문의했다. 수술환자들이 밀려있어 일주일 밖에 연장을 못한다고 해서, 이 병원에서 4주를 채우고, 집에서 재활을 하기로 결정했다. 3주 동안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 남편은 혼자서 너무 외롭다며 하루에 3번은 꼭 전화를 하라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긴 시간 떨어져 지내본 게 언제였던가. 게다가 크리스마스에, 연말에 더 외로울 일들만 줄줄이 남아서 혼자 있는 남편이 걱정됐다. 그러던 찰나, 정말 다행히도 막내딸과 사위가 크리스마스에 혼자 있는 아빠를 찾아왔다. 아빠 좋아하는 참치회에 온갖 음식을 준비해서 '서프라이즈' 방문을 했다.
3박 4일 동안 지내면서 스크린 골프장도 가고, 외식도 하고, 마음껏 효도를 하고 갔다. 자식들 덕분에 남편이 쓸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한달이 지났고, 기대하고 고대하던 퇴원 날이 됐다. 정들었던 원장님과 간호사 선생님과 간호조무사, 환우들과 막상 헤어지려니 섭섭했다.
남편은 새벽부터 서둘러 차를 몰고 병원으로 왔다. 퇴원할 때 다음 진료일까지 먹을 약을 받았는데, 약 봉지에 원장님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불안해하신 환자분께 다정히 손잡고 안심시켜드리고 더 치료에 응원해 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환자분께 편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잘 견뎌주시고, 내색 없이 저를 신뢰하고 치료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장문의 편지였다.
모든 환자에게 남기는 편지겠지만, 내용을 보니 나만 별도로 써 주신 것 같아 특별대우 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 고생한 맏딸과 퇴원 수속을 마치고, 딸은 회사로 우리는 집으로 왔다. 오는 내내 남편은 내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아프단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한 달간의 병원 생활로 내 몰골이 말이 아니다. 뼈만 남고 얼굴은 분칠한 게 아니라 풀칠을 한 것 같다면서 집에 가는 길에 영양보충 하자며 고깃집에 데려갔다. 입에 살살 녹는 한우 숯불고기였다. 평소라면 잘 먹었을 텐데 약 때문인지, 입맛도 없고 속도 안 좋아서 금방 숟가락을 놓았다.
장모가 입맛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큰사위는 통 크게도 환자들에게 좋다는 특대 전복과 법성포 영광굴비를 한 박스씩 보냈다. 열 아들 안 부러운 사위들이다.
그리고 남편은 또 어찌나 지극정성인지. 남편이 아플 때는 내가 간호를 해줬는데, 이번에 내가 아프니, 남편은 하늘의 별과 달이라고 다 따다줄 태세다. 젊을 때와 달리 늙으면 오로지 부부 밖에 없는지, 매일 매일 재활 치료를 할 수 있게 동네 병원에 데려다 주고, 영양제, 몸에 좋다는 음식은 다 사먹이고, 집에서도 손 하나 꼼짝 못하게 지성으로 챙겨준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수술 과정, 남편과 가족들이 그리웠던 시간, 코로나19에 걸릴까 두려웠던 순간까지. 지난 한달의 기억이 지금! 남편 덕분에 여왕놀이를 하며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다.
'할마이 O자 다리'가 처녀처럼 1자 다리가 되었다. 살기 좋은 세상! 자식들에게 짐이 안 된다면 20년 이상 간다는 인공관절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건강하게 남편과 알콩달콩 오래 오래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