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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삼양라면 봉투를보고 전투기로 귀순한 북한공군 이때 당시에 수도권 전지역에 공습경보가 울리고 있었고 라디오방송에서는 인천이 폭격당했다는 오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평양시 사회안전부 소좌 리광정과 맹성월 부부의 2남 5녀 중 장남이자 셋째로 출생 김책공군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 공군 1비행사단 책임비행사로 복무하였다. 1983년 2월 25일 당시 조선인민군 공군 대위였던 그는 미그 19 전투기를 몰고 월남하였다. <이웅평대위가 실제 타고온 미그기> 로켓 사격 훈련을 위해 10시 30분 평안남도 개천비행장을 이륙한 미그기는 갑자기 편대를 이탈하여 남쪽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행로를 이탈한 미그기는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50~100m를 유지하면서 시속 920㎞의 전속력으로 남하, 10시 45분 황해남도 해주시 상공을 지나 연평도 상공의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었다. 당시 팀스피리트 훈련을 하고 있던 대한민국의 방공망에 미그기가 포착되자 공군의 F-5 전투기들이 요격에 나섰다. 그러나 미그기는 날개를 흔들어 귀순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F-5기는 미그기를 유도해 11시 4분 수원 비행장에 착륙시켰다. 귀순 3개월 뒤인 1983년 5월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군복을 갈아입은 이웅평은 1984년 11월 2일 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 교수의 딸과 결혼,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이후 대한민국 공군에서 계속 근무하다가 1995년 대령으로 진급했고 공군대학 정책연구위원 및 교관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97년 갑작스러운 간경화로 쓰러져 간이식 수술을 받았고 회복되는 조짐을 보였으나 이후 거부 반응이 일어나 다시 건강이 악화되었고, 2002년 5월 4일 간기능부전증으로 국군수도병원에서 사망하였다. 국립대전현충원 장교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후 십여년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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