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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마태복음 24 : 32 - 44
기독교는 하늘로 올려져 가신 예수님이 다시 내려오실 것을 믿습니다. 하늘로 올려져 가신 예수님이 구름이 가리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성장과 고난과 십자가에 죽으심, 그리고 무덤에 장사되고 사흘 만에 살아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이 모든 것들은 예언된 말씀대로 역사적으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재림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재림 역시 예언된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세상 끝 날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날을 종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세상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날을 최후 심판의 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 오셔서 세상 모든 민족을 의인과 악인으로 나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인들은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이며, 악인들은 지옥으로 던져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그날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24:3)라고 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재림과 세상 끝 날에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4-51절까지 하셨습니다.
종말의 첫 번째 징조는 거짓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4,5). 오늘날에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이 일어나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온갖 이단들이 일어나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두 번째 징조는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6-8).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소식을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지진으로 여러 나라가 재난을 당하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듣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합니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징조는 성도들에 대한 박해와 불법이 성행하는 것입니다(9-13). IS라고 하는 이슬람 단체가 자살 폭탄 테러 사건으로 온 세계가 진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국가와 성도들을 죽이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로마를 비롯한 우리나라까지도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14)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종족들에게 교회가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습니다. 아마죤의 원시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징조들은 이미 우리가 듣고 보고 또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말이 다 되었다고 합니다. 다니엘서에 마지막 때에는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통이 발달해서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었습니다. 이웃 나라에 같다 오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바둑계에 최고인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인공지능)와 대결을 한 것이 세계적인 이목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과 컴퓨터와 바둑대결을 한 것입니다. 대결하기 전에는 5:0으로 사람이 완승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대결해서 사람이 졌을 때 모두가 놀랐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도 사람이 졌을 때, 더 이상 사람은 알파고를 이길 수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겨우 한 번 이겨 4:1이 되었습니다.
요즘 야구나 농구나 배구 시합을 할 때 비디오 판독을 해서 심판이 오심을 가려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심판관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사람이 심판하는 것은 오심이 많지만 카메라와 컴퓨터는 오심이 없습니다. 은행 업무도 대부분이 컴퓨터가 합니다. 이정도로 지식이 발달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로버트가 사람을 지배할 것이라고 합니다. 자동차 운전도 사람이 하지 않고 컴퓨터가 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징조들입니다.
종말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언제일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비밀로 감추었기 때문에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4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란 종말의 징조들을 보아 그날이 매우 임박하기 때문에 깨어 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날은 내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우리는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날은 단 한 번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일들은 준비를 못해 한 번 실패를 했으면 다음에는 철저히 준비를 해서 실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은 그러한 기회가 없는 최후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종말이 중요한 것은 마지막이라는 점입니다. 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종말이 완전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차라리 죽음으로 끝나고 아무것도 없어진다면 잘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아야 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에 깨어 그날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끝나고 다음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됩니다.
내 생명이 끝나고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에 그날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새로운 시작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멍청하게 생각 없이 있지 말고 정신을 똑 바로 차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줄 알고 준비하고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이 오기 전에 몇 가지 징조가 있을 것을 비유하셨습니다. 첫 번째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32-33). 무화과나무가 잎이 나는 것은 여름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신호와 같습니다. 두 번째로 노아의 때를 비유했습니다(37-39). 노아의 홍수가 어느 정도는 예측 할 수 있도록 계시되었던 것처럼 재림의 때도 그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나타나는 징조들을 통해 종말의 때가 가까움을 알고 그 때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 번째가 집 주인의 비유(42-44)입니다. 집 주인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도적이 들어와서 귀중품을 다 훔쳐가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도 도적같이 예기치 못한 때에 오실 수 있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도적 같이 오리라 했지만, 믿는 사람들에게는 도적이 아니라 반가운 손님입니다. 신부된 성도들에게는 반가운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도적이 언제 가노라고 알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각에 올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도적같이 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번째가 두 종의 비유(45-51)입니다. ‘종’은 주인을 대신하여 집안의 제반 사무를 관장하고 다른 종들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주인이 집안의 모든 것들을 종에게 맡기고 멀리 떠났습니다. 주인이 없을 때 종은 주인으로부터 맡은 일을 잘 관리를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종들을 관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뜻하지 않는 날에 돌아와서 종이 열심히 집안을 관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맡긴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종을 보았을 때 종이 여간 미덥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큰 일을 맡기게 될 것이므로 “그 종이 복이 있으리라”(4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는 생각으로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는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주인이 와서 보니 한 마디로 집안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악한 종을 엄히 때리고 악한 자가 받는 벌에 처하므로 종은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종’은 하나님의 교회에 지도자들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 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같이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상관없이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한 종은 맡겨진 일에 불충성할 뿐 아니라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을 때리며 방해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므로 주인의 재산을 축내며 부정직하며 무절제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는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주인이 오셨을 때 그 모든 일들이 들통이 나는 것입니다. 악한 종의 생각은 마치 재림의 날짜를 추측하는 각종 이단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전혀 예기치 않은 날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아무도 알지 못하므로 성도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재림은 마치 노아 홍수의 때와 같이 불현 듯 돌연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재림의 때를 전혀 예측 할 수 없지만, 나타나는 징조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러한 징조들을 통해 종말이 가까움을 알고 그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시점을 단정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 홍수가 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셨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은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먹고 마신다고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장가들고 시집가고’, 이것은 인류의 보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일입니다. 종말을 준비한다고 해서 ‘먹고 마시며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먹고 마시며’, ‘장가들고 시집 가고’라고 한 것은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고 육적인 일에만 열심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대한 소망도 없고 세속적인 일에만 관심을 두었을 뿐 영적인 일에는 전혀 무관심하다가 돌연히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재림으로 인해 생길 최종적인 분리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40절에 ‘두 사람’과 41절에 ‘두 여자’는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동일한 일에 종사하지만, 영적 상태는 정반대였습니다. 두 사람은 밭에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직장이나 사업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 여자가 매를 간다는 것은 가족들을 위한 집안일입니다. 주로 여자들이 집안과 가족들을 위하는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종말이 되기까지 직장도 사업도 열심히 하며 집안도 잘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종말이 임박하다고 해서 직장도 버리고 가족도 살피지 않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깨어있으라’는 말씀은 직장과 가정을 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영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일이 바빠서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일에 매여 세상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밭에서 일하는 두 사람과, 맷돌질하는 두 여자 중에 재림의 날에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은 휴거입니다. 그러나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은 저주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였지만 영적으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한 사람은 들림을 받아 하늘로 올려져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지만,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버림을 받아 영원한 지옥불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종말을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종말이 곧 바로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세상일도 하지 않는 것도 역시 올바르지 않습니다. 밭에서 일하고 맷돌질을 하면서 종말을 준비를 하는 깨어 있는 신앙이라야 합니다. 언재라도 주님이 오셔서 데려감을 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셔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버려둠을 당하여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종말이 오기까지 직장에서, 농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집안일을 살피며 자녀들을 돌보다가 어느 날 주님이 오셔서 데려감을 당하여 천국으로 들어가는 깨어 있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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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설교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설교 말씀 고맙읍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