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속의 물고기>
자기 삶과 자기 직분에 충실하고자 했던 어항 속의 물고기를 어느 날 갑자기 신으로 만들어 가려는 인간들 때문에 오늘은 오래 전에 쓴 졸작 <어항 속의 물고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어항 속의 물고기/ 정임표
어항 속의 물고기가
물위로 입을 내 놓고 뽀끔 거리고 있다.
맑은 물에서 살고 싶다.
맑은 물에서 살고 싶다.
어항을 깨면 고기가 죽을 것이고 어항이 없어지면 갇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깰까 말까 고민 중인데, 사람들이 모여서 한마디씩 한다. 숨만 쉬면 죽지 않는다는 사람, 고기를 바꾸라는 사람, 누가 여기다가 물고기를 넣었느냐는 사람, 내 관할이 아니라는 사람, 규정대로 하자는 사람, 나서면 손해라는 사람, 어느 편에 설지 눈치 보는 사람, 어항에 들어간 놈이 바보라는 사람, 물고기 입을 틀어막자는 사람, 그래서 죽어도 싸다는 사람, 죽음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 죽지 않고 사는 물고기가 대단하다는 사람, 물고기를 위해서 기도하자는 사람, 마지막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
어항에 갇힌 물고기가
물위로 입을 내놓고 뽀끔거리고 있다
바다에서 살고 싶다
바다에서 살고 싶다
* 정임표 수필집 <생각 속에 갇힌 인간> 에서
요즘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신 이국종 교수님께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작심하신 듯 그 동안 참고 있었던 우리나라 외과 병원 응급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말씀을 토해내고 계십니다.
"에이즈 환자를 사전 검사 없이 수술한 적도 있다"
“간호사는 300여 시간 저하고 같이 비행을 하다가 쓰러진 이후에 다시는 비행을 하지 못합니다, 이제. 자꾸 걷다가 쓰러집니다. 유산을 하기도 합니다. 헬기 타고 출동할 때 그런 거에 대해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씁니다. 저는 환자의 인권침해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잘못됐다는 게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인권침해를 말씀하시기 전에, 환자의 인권침해를 말씀하시기 전에 정작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비참하게 일하고 있는 중증외상센터 직원들… 한국에 있는 모든 병원들은 영미권에 있는 선진국 병원들에 비해서 직원을 3분의 1 정도밖에 고용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귀순한 북한군 병사)이 죽음을 무릅쓰고,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자기 몸에 총을 4발 이상을 맞아서 거의 죽어가면서 여기까지 온 이유는 자기가 생각했던 한국의 긍정적인 모습을 기대하고 왔지, 중증외상환자가 갈 데가 없어서 수용을 못하거나 환자분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려고, 그걸 알려고 한국에 온 건 아닐 겁니다… 그 환자가 저희 병원에 도착해서 수습, 응급 처치를 마치고 수술방에 들어가는데 30분 걸렸습니다. 이게 제가 배웠던 미국과 영국과 일본에서의 스탠더드입니다.”
자기 문제를 자기 힘으로 해결할 힘이 없는 병원이 이 교수의 발언으로 언론에 주목을 받으니 내가 병원장이라도 격노하여 담당 의사를 호출했을 것입니다. 경각에 달한 생명을 살리는 수술에다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의사가 병원장에게 수시로 호출을 당하니 그런 상황들이 “견디기 힘들어 자괴감이 들 정도”가 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도 더 심하게 들 것입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말들이 많습니다. 이 교수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말이 말을 낳고, 낳은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말의 잔치가 돼버리는 그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저희는 그걸 헤쳐 나갈 힘이 없습니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의료응급 체계의 사정이 이러한데도 그동안 우리는 의사만 나무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국종 교수만 나무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국종 교수는 환자의 인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법률, 문학, 언론등등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전념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만드는,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부조리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 곳곳의 문제 입니다. 이를 바로 잡는 길은 모든 곳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국종 교수님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분들이 나서서 우리 사회의 자원과 에너지가 “사람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외쳐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부터 살리고 보는 의식”이 우리 사회 곳곳에 가득 차고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덮으면 우리는 영원히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 신세가 됩니다. 그런데 언론이 불쑥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이국종 교수님!
“정계로 진출하실 의향은 없으세요? ”